[인터뷰] 첼리스트 박지원 “동기부여 없는 반복, 힘들지만 음악적으로 더 성숙해질 기회”
남들보다 보다 늦은 나이에 접한 첼로로 음악영재 선발 14세 러시아 국립 볼고그라드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데뷔
[시사매거진] “동기부여가 없는 상태에서 매일 반복하는 연습이 이렇게 지겨운 줄 몰랐다.”
최근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는 가운데, 연습실에서 슈만 첼로 협주곡을 한창 연습 중이던 첼리스트 박지원 양에게 첫 인사를 건네자 이렇게 대답했다.
현재 전남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지원 양은 클래식 분야에서 차세대를 이끌어갈 지역 예술 인재로 선정되어 지난 2년간 마에스트로 금노상 지휘로 채동선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협연, 2018년 여수시민과 함께 한 송년음악회 등 많은 무대를 서왔다.
이후 국립국군교향악단, 서울바로크합주단, 여수시립국악단, 우크라이나국립오케스트라, 채동선필하모니오케스트라, 여수영재오케스트라, 연세대오케스트라, 순천시립청소년관현악단, 광주청소년관현악단, 여수필하모니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며 해외 및 국내의 다양한 무대에서 솔로 및 앙상블등 다채로운 연주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연주가로서 성장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계획되어 있던 연주와 콩쿠르가 연기 또는 모두 취소되신걸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공연도 콩쿠르도 연기되고 유학 준비마저 불투명해지니 원래 한 가지 목표가 생기면 딴 생각 안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편이라 당장의 목표가 없어지니 혼자만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이 몰려와 떨치기 힘들었어요.”
▲그럼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청중들과 만나 연주하는 것, 평범한 대학생활은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그리워요.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연주회와 콩쿠르 준비 때문에 연습실만 오가느라 지금과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예쁜 카페를 가거나 마스크 없이 맑은 공기 마시며 러닝 하는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만 해도 기쁠 것 같아요.”
▲첼로를 시작한 게 아주 빠른 나이는 아니셨죠?
“네, 초등학교 4학년이면 남들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죠?”
▲음악을 전공하신 부모님 슬하에서 오케스트라가 유명한 여도초에 입학했는데 의외입니다.
“오히려 부모님께서 음악을 전공하셨기 때문에 음악가로써의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너무 잘 알아서 자식들이 고생하는걸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저보다 음악적 재능이 훨씬 뛰어나 피아노와 클라리넷으로 콩쿠르 우승을 차지했던 오빠는 부모님의 반대로 공학을 전공해 현재 반도체 관련 회사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구요”
▲그런데 첼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는 오빠를 따라 다니며 잠깐 클라리넷을 배웠는데 오빠에 비해 그리 잘 하지 못해서 금새 흥미를 잃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때 학교 발표회를 앞두고 지휘자셨던 교장선생님께서 편성상 첼로가 부족했는지 저에게 첼로 파트의 맨 마지막 줄에 앉아서 연주하는 척 흉내만 내라고 하셔서 열심히 연주하는 시늉을 했죠”
▲뭘 알아야 흉내도 냈을 텐데 잘 해냈나요?
”핸드싱크도 뭘 알아야 하는 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열심히 흉내는 냈죠.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으니 감동이 확 몰려오는게 그 느낌이 꽤나 강렬했던 탓에 나도 진짜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웬일로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생각해보면 청중들 대부분이 거의 부모님들이니 본인 자녀들한테 얼마나 열정적으로 환호를 보내셨겠냐”며“어느 유명 연주자도 그보다 더 열광적인 리액션은 못 끌어내는데 제가 낚인 거죠”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낚인 거라고 하기엔 미래를 이끌어갈 음악 영재로 선발되고 중 2때 러시아 볼고그라드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데뷔하셨는데
“저보다 음악에 재능이 있던 오빠는 반대하셨는데 저는 허락해주시고 또, 타의로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결과가 괜찮았던 걸 보면 운명이란게 있나 봐요.”
박지원양은 그렇게 우연히 접한 첼로지만 남들에 비해 늦게 시작한 만큼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강하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홈스쿨링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단 1시간의 레슨을 받기 위해 여수와 서울을 왕복 10시간을 버스로 왕복하며 음악에만 몰두한 결과 KBS교향악단 학생 단원 선발되어 여수음악제 참가, 유소년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수석으로 6년 활동했으며 전남대 음대 콩쿠르, 에듀아트 앙상블 콩쿠르, 음악협회 콩쿠르 등을 연이어 석권하며 명성을 쌓아갔다.
▲힘들지는 않았나요?
“2년간 겨우 한 사람 들어갈 수 있는 연습실에서 대화 상대 한 명 없이 오직 대학입시만을 목표로 달리다보니 내가 스스로 선택했던 음악인데 너무 지겹고 스트레스가 심해 나중에는 손이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다”며 ”하루는 레슨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마비되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빠에게 울면서 전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화를 받으신 아빠는 행복 하려고 하는 것이 음악인데 그로 인해 불행하다면 아무리 좋은 명문대도 의미 없다며 주저 없이 다른 길을 권하셨어요.”라며 “전화 할 땐 힘들어서 다 포기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너무 단칼에 그만하라고 하시니까 오히려 고민이 되었죠. 막상 다른 길을 선택해보려고 생각해봐도 음악 외에 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솔직히 이제까지 죽어라 한 게 너무 아까운 마음도 들었어요.”
음악이 다시 하고 싶었던 박지원 양은 부모님의 권유로 가족이 가까이 있어 안정감을 주는 지방대학을 추천하셨고 전남대학교에 지원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공연이 취소돼 음악가로선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첼리스트 박지원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어느 분야나 힘든 시기겠지만 청중이 있어야 하는 공연 예술계에는 정말 큰 타격이죠. 그러나 연주자는 연주회나 콩쿠르라는 명확한 목적이나 계획이 없어도 연주를 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힘들더라도 미래를 봐야죠. 지금의 시간들이 음악적으로 더욱 성숙시켜 줄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라 생각하며 매일을 지루하지만 힘든 연습과 운동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임지훈 기자 cjs12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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