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전 ‘길’…‘라카페갤러리’ 18번째 전시

2020년 9월 1일부터 '라카페갤러리'(종로구 자하문로10길 28 (통의동 10)) 입장료 무료, 오전 11시~오후 10시 관람, 월요일 휴관

2020-08-24     하명남 기자

 

[시사매거진=하명남 기자]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라 카페 갤러리’의 18번째 전시,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길>展이 2020년 9월 1일부터 개최된다. 인생의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끝없이 쫓기며 달려가야 하는 시대. 지난 20여 년간 지구 시대의 유랑자로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어온 박노해 시인의 이번 〈길〉 사진전에는, 다양한 길 위의 풍경과 삶이 담긴 37점의 흑백사진과 이야기가 펼쳐지며 우리를 저마다의 ‘다른 길’로 안내한다.

“2020년 오늘, 세계가 재난 상황이라 한다. 재난disaster의 어원은 ‘떨어지다’라는 뜻의 dis와 ‘별’이라는 뜻의 astro가 합쳐진 ‘별이 떨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더는 나아갈 길이 없고 희망이 없는 처지가 바로 재난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역사상 처음으로 78억 지구 인간이 동시에 공포에 휩싸인 강렬한 체험. 실시간으로 목도한 세상 끝의 풍경. 사람이 사람에게 공포가 된 ‘불가촉 세계’의 날들. 세상이 일제히 멈추고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人間의 길’이 끊긴 지금, 그럼에도 우리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 더 속 깊은 만남으로 나누고 모이고 얼굴을 마주 보며 생생히 살아야 한다.”

― 박노해 사진에세이 03 『길』 서문 중에서 (2020.9.01 출간예정)

 

 

사랑의 무게

Jaipur, Rajasthan, India, 2013.

 

묵직한 물 항아리를 이고

날마다 사막을 건너는 라자스탄 여인들.

귀한 물을 기다리는 식구들과 가축들을 위해

무거운 걸음을 하루도 멈출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건 사랑,

사랑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있을까.

사랑의 무게를 지고 걷는 고귀한 이여.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

Turkey, 2005.

나는 많은 길을 걸어왔다.

내가 걷는 길은 태양보다 눈물이 더 많았다.

아침부터 찬비가 내린다.

나에게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눈물방울.

젊어서 먼저 생을 완주한 나의 동지들이

폭음 속에서 내 품에 안기던 여윈 아이들이

영혼의 총을 들고 산으로 가던 소녀 게릴라들이

그만 등을 돌리고 싶은 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눈물이 길이다. 눈물이 길이다.

눈물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안다.

눈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가라.


박노해 작가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군사독재의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년 체포,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옥중 시집 『 참된 시 작』,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하고 생명 평화 나눔을 위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2010년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첫 사 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를 출간했다. 2012년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좋은 삶의 문화 공간 ‘라 카페 갤러리’에서 글로벌 평화나눔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다. 2014년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세종문화회 관) 개최와 사진집과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출간했다. 2019년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의 첫 권인 『하루』를 펴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마을’을 세우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