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시우의 ‘RED’

뉴욕에서 만난 아티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김시우

2020-05-01     강창호 기자

[시사매거진=강창호 기자] 약속 시간에 맞춰 레드 바이올린 케이스를 메고 나타난 김시우, 그의 케이스를 보니 1998년 작 프랑소와 지라르 감독의 이태리 영화 <레드 바이올린>이 생각난다. 영화는 어느 사연이 깊은 ‘레드 바이올린’이 부자와 가난한 자, 예술가 그리고 전혀 낯선 북경의 어느 집에까지 손에 손을 거쳐 흘러 들어간다. 이렇게 바이올린은 세월을 넘어 다양한 시대와 나라를 전전하며 RED를 손에 쥔 사람들의 삶과 각 시대의 문화를 통해 예술의 불멸성을 극적으로 역설한다. 그럼 김시우의 RED에는 어떤 사연과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부모님 그리고 알미타 베이모스

뉴욕과 미국 전역을 무대 삼아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시우, 그는 아주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대다. 한국에서 2살 반부터 1/16 바이올린을 집어 들고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이후 미국에서의 그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여느 집 아이들처럼 그 또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김시우는 바이올린과 점점 한 몸이 되어가는 혹독한 과정들을 겪어 내야만 했다.

부모는 원주에서 제법 큰 음악학원을 운영했다. 그래서 자신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고 여러 악기들 중에서 유독 바이올린을 좋아했다고 말한다. 특히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이 결국 미국에 와서도 음악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김시우는 자신의 인생 가운데 늘 부모님의 기도와 헌신이 함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기에 그는 부모님의 기도처럼 줄리어드를 거쳐 카네기홀과 여러 무대에서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처음 줄리어드에 입학했을 그 당시의 감격을 생각하면 아직도 흥분됩니다”라고 말하는 김시우, 그는 인터뷰 내내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쏟아냈다.

한 집안에 음악가를 키워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자식의 재능을 일찍 발견한 부모로서는 기쁨도 기쁨이겠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 또한 여간 고민이 아닐 수 없겠다. 당시 어머니는 바이올린을 선택한 아들을 보며 “시우가 앞으로 외롭지 않은 삶을 살겠구나”라고 했단다. 이렇듯 그는 현재 여러 앙상블에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한 지금의 김시우를 보면 부모 입장에서 전문음악인으로 잘 성장해준 아들의 모습에 많이 대견해할 것 같다.

또한 그는 “제가 음악을 쉬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에너지는 바로 저의 오랜 스승인 알미타 베이모스(Almita Vamos, 1938)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레드 케이스도 바로 베이모스 선생님이 오래전에 제게 주셔서 이렇게 저의 분신처럼 항상 소중히 지니고 있답니다.”

10살 때부터 이어진 베이모스 선생님과의 인연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많았다. “제가 중도에 잠시 음악을 쉬었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제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바이올린과 활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음악축제마다 함께 해주시고 장학금은 물론, 줄리어드에 입학할 때까지, 심지어 렛슨비도 사양하셨습니다. 늘 부족하지만 가까이에서 격려해주신 덕분에 저의 실력은 점점 좋아졌고 여러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를 하게 됐습니다. 정말 베이모스 선생님은 제게 부모님 같으신 분입니다.”라고 그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알미타 베이모스 선생님은 실제로도 한국인 제자들이 여럿 있으며 제니퍼 고와 벤자민 베일 만 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수많은 연주자를 길러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RED

RED는 뉴욕 카네기홀 앞에서 김시우를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컬러다. 그것도 흔치 않은 바이올린 케이스의 모습으로. 그래서 유독 눈길이 많이 머문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김시우의 컬러는 첫인상 ‘RED’로 강렬한 인상을 줬다. 또한 그의 RED 안에는 당연히 진귀한 보물이 담겨 있을 법했다. 과연 어떤 게 튀어나올지… 드디어 뚜껑이 열렸다. 1753년 밀라노, 지오반니 과다니니(Giovanni Guadanini)가 제작한 손때 묻은 진귀한 보물이 미소를 지었다.

김시우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면 그의 삶 또한 RED이다. 미국의 클래식 음악계에 한국인 이민자로서 주류사회 진입이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김시우는 그동안 라이징 했던 지난 세월을 통해 줄리어드와 카네기홀 ‘앙상블 커넥트’, NYCP 등과 말보로, VIVO 페스티벌 등 다양한 연주 활동을 펼치며 서서히 주류사회의 입지를 확고히 굳혀가고 있다. 솔리스트의 화려한 콩쿠르 경력보다 더 화려하고 불꽃같은 그의 연주 이력이 김시우의 삶을 더욱 강렬한 RED로 부각되게 만든다. RED에 담긴 과다니니 그리고 영화 <레드 바이올린>, 이 둘의 관계가 흥미롭다.

세계 곳곳에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꿈도 못 꿀 그런 높고 높은 장벽이었지만 이젠 세계 어딜 가나 뛰어난 한국인의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렇듯 그들의 열정은 세월과 시대를 넘어서도 변치 않은 영원한 ‘RED’로 자리하리라.

김시우 또한, 그의 레드 케이스 안에 담긴 보물처럼 소중하고 귀한 세계적인 ‘RED’ 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