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변화에 맞춰 성공적인 ‘변신’과 ‘진화’를 거듭

“과거의 성공기업이 미래에도 반드시 성공 기업이 될 수는 없다”

2008-12-12     이준호 기자

 

1892년 에디슨제너럴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 Company)과 다른 두 전기회사의 총자산을 통합하여 새로운 법인으로 출발하였다. 그 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 소비재를 생산하며, 제너럴일렉트릭과 핫포인트(Hotpoint)라는 제품 브랜드를 통해 다양한 가전제품을 생산·판매해 왔다. 세기가 지나면서 GE는 제트엔진, 산업용 부품, 발전설비 등 그 영역을 확대해 가면서 GE파이낸셜서비시스(GE Financial Services, Inc.)의 설립과 함께 부동산, 사업자금 융자, 재보험, 투자금융 등에 관여하고 있다.
1986년에는 RCA(RCA Corporation)를 인수하면서 RCA가 소유하고 있던 텔레비전 방송망인 NBC(National Broadcasting Company, Inc.)까지 함께 인수하였다. 그러나 1987년에는 RCA의 전기 소비재 부문을 프랑스 국영기업인 통송SA(Thomson SA)에 매각하였고, 통송으로부터는 의료기술 부문을 매입하여 이후 가전제품, 의료장비, 송전 및 발전 설비 등에 관계된 유럽의 사업 부문을 영국 기업 제너럴일렉트릭컴퍼니와 통합하였다. 2000년 10월에는 허니웰인터내셔널(Honeywell International Inc.)을 매입하여 항공기 엔진과 플라스틱 사업 부문을 확장시켰다. 그 결과 2000년 현재 총자산 4370억 600만 달러, 매출액 1294억 1700만 달러로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 1위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내고 있으며, ‘Business Week’지가 선정하는 세계 1,000대기업(Global 1,000)평가에서 시장가치(market value) 5,340억 달러로 1위의 영예를 차지하면서 초대형 우수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General Electric의 역사
발명왕 에디슨이 1878년에 설립한 에디슨 회사로부터 시작한 GE는 1세기를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온 세계 인류에게 GE의 정성어린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날의 GE는 1,000억 달러가 넘는 매출규모를 가진 초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고객들에게 가장 우수한 기술, 최고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세계 34만 여명의 GE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고를 추구하며, 또 다른 새로운 도약을 목표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1876년은 미국 역사상 괄목할 만한 해였다. 특히,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기 전시회는 인류의 발명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고, 토마스 에디슨, 엘리후 톰슨 등 몇몇 과학자들의 개척정신과 노력이 에디슨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후 1892년 4월 15일 시카고 대 박람회와 세계 박람회에서는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전기를 이용한 정교한 광경을 선보인 새로운 회사가 나타났다. 그 회사가 바로 에디슨 전기회사와 톰슨-휴스턴 회사가 합병하여 만든 제네랄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사이다. 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대차대조표에서 찾아 볼 수는 없는 것들이다. 바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엘리후 톰슨(Elihu Thomson), 챨스 스타인메츠(Charles P. Steinmetz)와 다른 많은 과학자들 같은 인적 자원들이 그것이다. 즉, GE의 인재들과 그들을 도와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 세계 4위, GE의 Brand Management
일반 소비자에게 GE의 첫 번째 이미지는 주로 가정용 전자 제품인데 반해 실제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저히 낮다. GE Finance부문의 매출이 50%로 나머지 부문들을 압도하고 있으나, 가정용 전자제품으로 우선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과 노출 효과가 가장 큰 방송 부문의 NBC를 과연 브랜드 상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있는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GE는 단일브랜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GE에 있어서 Master Brand는 모노그램 심벌로 고객에 대한 배려 및 역사, 교감을 상징하고, 여기에 다양하게 진출한 업종들의 일반적인 표현이 붙으면서, 각각의 분야에 있어서의 GE의 브랜드 파워를 이용하고, 거기서 배양된 신뢰와 파워가 다시 마스터 브랜드를 강화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마스터 브랜드 위주의 단일브랜드 정책은 합병된 기업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지속되고 있다.
다양한 부문들이 GE라는 한 브랜드 아래 모일 수 있고,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그만 큼 GE라는 브랜드가 뜻하는 바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GE 브랜드의 고객에 대한 약속을 표현한 브랜드 슬로건은 사실 19세기 GE의 태동기에 이미 확립된 것이었다. 반세기 너머 기업의 출발점인 전기 전자 산업에 국한된 범위를 우선 기술 부문으로 확대하고, 그것을 1970년대에 들어서 거의 전 산업 부문에 적용 가능하게 확장한 것이다. 현재의 ‘We bring good things to life’는 GE 내부 및 외부를 향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적용되며, 광고의 경우 부드럽고 감정적인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톤과 매너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GE는 슬로건에 나타난 브랜드 약속을 기업의 경영이념으로서 뚜렷하게 정의하여 놓았고, 기업 경영이념이 단지 문구로서 만이 아니라 임직원들의 생각, 감정, 조직관계에 스며들어서, 모든 제품과 모노그램이 노출되는 곳에 어김없이 함께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GE에서의 정교한 브랜드 조직 체계는 없다. 회사의 역사만큼이나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정례적인 워크샵과 교육 프로그램, 세밀하게 규정된 GE 모노그램의 광범위한 활용 용례를 규정한 브랜드 가이드라인 정도가 전부이다. GE의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강하게 만든 것은 명문화, 규칙화시키기 어려운 소프트한 측면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브랜드 매니지먼트에 대한 GE의 역사적 전통과 최고경영자로서의 회장이다.
GE의 브랜드 활동은 처음부터 최고경영자의 의지를 후광으로 출발했으며, 그 전통이 면면이 이어 온 것이다. 당시 캠페인을 ‘The electronics conscious campaign’라고 불렀는데, 처음부터 명확하게 사내 임직원을 외부 소비자와 함께 가장 중요한 타겟으로 설정하였다. 그러한 초기부터의 사내 전 임직원의 브랜드 공유, 그리고 잭 웰치에서 정점에 이른 브랜드 요소이자 사내·외 전파자로서의 최고경영자의 후원과 정력적인 활동이 어우러진 것이 GE 브랜드 매니지먼트의 실체이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GE 내에서 이질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NBC를 GE 모노그램과 결부시키지 않는 이유는 NBC라는 자체의 축적된 브랜드 파워가 워낙 크고 GE 브랜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자체 로고를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 것이다.
GE의 이러한 브랜드 전략은 아무리 다각화된 사업이라도 어떤 포지셔닝 혹은 브랜드 에센스를 전체가 공유한다면, 한 브랜드 아래에 머무를 수 있고, 그것들이 서로간에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NBC 건에서 볼 수 있는 유연함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그 브랜드 에센스를 지키고 확대, 발전시키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기업을 강하게 만드는 힘, 기업문화
전 세계 기업을 통틀어 ‘세계화’가 가장 잘 된 기업으로 많은 이들이 GE를 꼽는다. GE는 오늘날 총 매출 중 절반 이상이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고, 25개국 113곳에서 다국적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경영의 귀재 ‘잭 웰치’에 의해 유명세를 치르면서 세계화에 역점을 두고 다시금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초일류 기업 중의 초일류 기업이 바로 제너럴 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거의 성공기업이 미래에도 반드시 성공 기업이 될 수는 없다’라는 현실 앞에 꾸준히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던 우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GE는 13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초일류 기업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세계 최고의 기업 GE의 주요 전략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GE의 모든 사업분야에서 추구하고 있는 세계화(Globalization)이고, 둘째는 이미 판매된 GE의 제품에 대한 철저한 고객대비 서비스 (Services), 셋째는 제품 및 공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량을 제거하기 위한 GE만의 전술인 식스 시그마 (Six Sigma Quality), 그리고 넷째는 앞으로 엄청난 기회를 부여하게 될 인터넷 혁명인 전자 상거래 (e-Business)입니다. 이 4개의 전략들이 바로 세계최고의 기업 GE를 만들어 가는 밑바탕이다.
1876년 토마스 에디슨이 설립한 ‘에디슨 電氣’로부터 출발한 회사로서, 전기가 인류 생활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면서부터 계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설립 후 24년 이 지난 1900년 당시 ‘월 스트리트 저널’이 미국의 12개 초우량 기업 중의 하나로 선정될 정도였다. 그 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살아남은 유일한 기업이 바로 GE다.
그동안 유명한 제조업 브랜드 중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제너럴 일렉트릭(GE)이다. GE가 살아남는데 그치지 않고 과거 어느 때보다도 번영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브랜드 관리법을 제대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은 GE는 여러 브랜드의 창조자이자 이들 브랜드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주체가 되고 있다.
GE는 1980년 12월부터 활력에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잭 웰치(Jack Welch)가 GE의 신임 CEO겸 회장으로 발표되었다. 이는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45세의 웰치는 역대 GE 최고경영자 중 최연소였다. 그가 경영책임을 떠맡은 회사는 기업의 위력면에서나 현대적인 경영 관리 수법면에서 다른 기업들에게 기업경영의 모델이 될 만한 업체였다. 웰치가 CEO로 취임했을 당시 GE의 순수입은 17억 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9%나 성장한 수치였다. 그만하면 어떤 기준으로도 견실한 성장세를 보인 기업으로 평가될 만했다. 하지만 항로가 표시된 잭 웰치의 해도는 순항이란 없었다. 1980년대에 웰치는 GE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주식회사에까지도 자신의 역동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에 따라 GE의 모든 사업 부문은 대대적인 수술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GE의 임직원은 웰치의 맹렬한 경쟁력 강화 노력의 역풍에 휘말려 들었다. 이에 GE의 임직원 20만 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고, 그 결과 60억 달러 이상의 경비가 절감되었다. 다운사이징은 바로 이 때 GE에서 창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GE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끈 ‘잭 웰치’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라고 흔히 말한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나서는 일은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던져진 상당히 긴박한 숙제거리임엔 틀림없다. 그것은 ‘리더쉽’이라는 테마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특히 기업 경영의 모든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시점에서 그 동안 해오던 방식의 리더십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생각을 정리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데 있어 여러가지 문제점에 부딪칠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불황 속에서 경영의 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는 이 시대 최고의 CEO 인 GE의 잭웰치의 경영원칙과 리더쉽은 한국의 CEO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GE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데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해온 잭 웰치 회장의 리더십에 관한 관찰과 연구는 우리나라 모든 기업 경영인뿐 아니라 개혁을 지향하는 모든 조직의 관리자들을 위해 긴요한 지침이 되고 있으며, 각 조직 구성원들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관계 유지에 있어서도 리더십은 적용되고, 꼭 필요한 것인 만큼 상당히 실용적인 정보가 되고 있다.
45세의 젊은 나이로 GE의 회장에 취임한 이래 그가 발휘한 리더십 역량은 GE를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GE는 10여 년 만에 매출과 이익 규모 등이 3배 이상 증가되었고, 기업의 시장 가치는 800억 달러를 넘어 1위를 다투게 되었으며, 투자 수익률은 20%로서 미국 기업들의 평균 수치인 12%의 2배에 가깝다.
이러한 결과는 GE의 잭 웰치 회장을 ‘포보스’지 등 경영 관련 잡지들로 부터 초일류 기업, 최고의 경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또한 미국의 경영학회로부터는 20세기 초반을 풍미했던 GM의 슬로안 회장과 더불어 금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 동안 미국에서는 ‘잭 웰치 회장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하는 궁금증 때문에 그와 GE에 관련된 책들이 여러 종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소개된 바가 있다.
잭 웰치는 GE안의 관료주의를 타파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그는 회사 안에 너무 많은 벽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웰치의 여러 경영전략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벽 허물기 작업이었다. GE와 같은 거대기업에서 필요한 것은 조그만 회사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는 능력이었다. 이 벽 허물기 작업은 조그만 회사처럼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하여 필요한 작업이었다.
한편 잭 웰치는 1위 아니면 2위라는 통일된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정책달성을 위한 기본이념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관리자가 되지 말고 리더가 되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GE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할 뿐이라고 말한다. 전 사원들의 특징과 장단점을 비교, 파악하여 그들에게 최선의 임무를 맡기는 것이 리더라도 생각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지식경영을 이루는데 가장 기본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GE를 경영하는데 있어서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주도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983년에 가정용품사업부를 없애버린 일은 그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토스트, 다리미, 선풍기 등을 생산하는 가정용품사업부는 GE의 오랜 유산과도 같은 사업이어서 이 사업부를 매각한다는 것은 사원들에게 있어서 큰 박탈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잭 웰치는 이런 사업에 미련을 버리고 단층촬영스캐너 장비, 차세대 제트엔진과 가스터빈 등 첨단산업분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GE의 강점은 뛰어난 기술력과 기술자원, 그리고 풍부한 자금이라고 잭 웰치는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강력하게 밀고나갔다. RCA와의 합병은 GE의 사업방향을 전환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RCA는 NBC 텔레비전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평소 GE를 서비스중심의 사업으로 키워야겠다는 웰치의 생각에 맞아떨어지는 회사였다. 역시 그의 선택은 최선이었고 선택에 있어서 후회하지 않았다.

GE의 R&D 효율화를 위한 여러가지 혁신 활동
2005년 기준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은 바로 ‘GE’다. 2005년도 시가총액은 3,700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잭웰치 전 GE회장의 취임직전인 1981년의 140억 달러에 비하면 무려 26배나 증가한 셈이다. 지난 20년간 GE가 지속성장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적, 물적 자산의 효율적 관리와 이를 통한 수익성 확대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식스시그마(Six-sigma)’로 알려진 GE의 업무개혁운동이다. 세계 각국의 인재가 모여 세상을 놀라게 할 발명품들을 개발해온 GE 연구소라 하더라도 이런 혁신활동의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과거와 달리 세계 곳곳에서 쉽게 저가의 모방품을 생산하고, 신제품의 주기도 짧아지고 있는 요즘 상황에서 ‘남보다 앞선 더 좋은 제품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시장에 출시할 것인가’라는 것이 GE경영진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관건은 R&D의 효율화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GE는 R&D 효율화를 위해 여러가지 혁신 활동을 해왔다.
잭 윌치 회장의 후임으로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취임하면서 CE는 다시한번 새로운 변화를 시작했다. 첫 번째가 바로 ‘ONE GE’이다. 금융, 건설, 운송, 의료 등 여러 사업부문들이 더 이상 ‘나 홀로 연구’만을 고집하지 않도록 요구한 것이다. 각 분야의 기술과 노하우가 뒤섞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영국의 대형 생명공학업체인 아머샴을 인수한 이후 1년 만에 아머샴의 진단기술과 GE의 기계장치기술을 결합하여 언제 어디서든 심장의 혈관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차세대 청진기 Vivid i’ 등을 생산한 것이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둘째는 ‘시간혁명’이다. 2003년 GE의 간부들은 도요타의 미국 켄터키 공장을 시찰하던 중, 시간 개념을 도입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있는 도요타의 혁신활동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 후 GE는 주로 비용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식스시그마에서 벗어나 도요타식을 도입한 ‘린 식스시그마’를 실시했다, 그 결과 2005년 ‘GE항공’은 종전에 약 60개월이 소요되던 엔진 개발기간을 그 절반 이하인 24개월로 단축시켰다.  셋째는 사업임원을 연구소에 전진 배치했다는 건데이들은 연구비 할당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GE 연구소 경영진들은 사업부서와 연구부서의 가장 큰 벽은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인식차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즉, 사업부서는 연구부서의 한계와 시간적 여유를 이해해야 하는 반면, 연구원들은 일부 연구 프로젝트는 마땅히 포기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GE는 제품 테스트 프로세스를 연구소에 구축하고 있다. 연구결과물이나 시제품을 현장 실험실에서 테스트하여 연구의 결함과 한계를 조기에 발견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사업부서와의 연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자 개개인의 상상력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상업성이 높은 혁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비단 GE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들의 공통된 과제이다.
매년 수백억 달러이상의 연구개발투자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도 연구개발 투자의 양적 확대와 함께 많은 연구성과가 미래 기업의 시장 확대와 이익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