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된 강력한 경쟁우위는 1등 기업을 만든다

월마트의 가격정책은 ‘언제나 낮은 가격(EDLP·Every Day Low Price)’이다.

2008-11-13     이준호 기자

   
▲ 1945년 샘 월튼 회장은 벤 프랭클린이라는 잡화점체인을 운영하는 지역 소매상과 계약을 맺고 아칸소 주에 싸구려 상품을 파는 잡화상을 인수하면서 소매업에 첫발을 내딛은 후 그곳에서 상점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다.

지난 수 십년간, 전략의 수립과 실행은 기업 경영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영 환경 하에서 성공하는 전략들이 가져야 할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대의 경영 환경 하에서 효과적인 경영 전략의 수립과 실행이 갖는 중요성은 그 어느 때 보다 강조되고 있다. 물론 모든 기업들을 성공 기업으로 만들어주는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들의 규모와 산업이 다르고, 고객과 시장이 변화하며, 재무 구조와 핵심 기술 또한 같지 않은 만큼 ‘이런 전략은 성공하는 전략이고 저런 전략은 실패하는 전략이다’라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미국 전역에 78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초대형 소매 기업 월마트는 자신만의 경영원칙과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세계유통시장을 선도하며,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월마트의 기업소개
1945년 샘 월튼 회장은 벤 프랭클린이라는 잡화점체인을 운영하는 지역 소매상과 계약을 맺고 아칸소 주에 싸구려 상품을 파는 잡화상을 인수한다. 바로 월튼 회장이 소매업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월튼 회장은 상점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다. 가격을 낮추면 판매가 늘어나고 결국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할인 판매전략, 인구 1만 명을 넘지 않는 도시에서도 할인점이 충분한 사업성을 갖고 있다는 소도시 중심의 진입전략 등 이런 아이디어가 모두 이때 싹튼 것이다. 월튼 회장이 할인 업 진출을 결심한 것도 바로 이때다. K마트, 울코, 타깃 등 할인점이 잇달아 문을 연 1962년 할인점 개설 붐 속에서 월마트도 1호점을 열었다. 이렇게 월마트는 1962년 샘 월튼에 의해 아칸소에 첫 상점을 열게 된다. 1969년 월마트는 법인으로 등록되었으며, 1970년 처음으로 분배센터와 아칸소 벤톤빌에 본점을 만들었고 뉴욕 증권시장에 회사를 공개하고 주식을 상장하게 된다. 1979년 연 매출이 최고인 1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1983년 샘스 클럽 창고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1988년 처음으로 슈퍼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다. 1991년 첫 해외점포가 맥시코에 문을 열게 된다.
세기가 바뀌면서 월마트는 할인점에서 세기의 소매상으로 이름 붙여졌으며 포츈지에서 선정하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할만한 회사이고 일하고 싶은 좋은 회사 100위 안에 포함되며, 2002년도에는 포츈이 선정한 500개 기업 중 종업원과 운영자간의 관계가 가장 좋은 성취도가 높은 회사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월마트의 신화는 월마트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디스 카운터 스토어 1호점인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를 개점하면서 시작되었다. 샘 월튼은 1호점에서 2년 동안 차분히 디스카운트 스토어 노하우 부문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1964년 2호점을 개점한 이후 1969년 월 디스카운트 스토어는 18개점, 밴 프랭클린 가맹점은 14개점으로 체인 스토어를 확대했다. 1970년 초에는 배송센터 1호를 본부병설로 개설하고 그해 매출액 4,400만 달러, 점포 수 32개점으로 성장했다. 1972년 월마트는 주식을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이때 기업규모는 점포수 51개점, 매출액 7,800만 달러였다. 1974년 점포 수 78개점, 매출액 1억 6800만 달러에 이르자 샘 월튼은 회장 자리를 당시 재무담당 이사였던 론 메이어에게 넘겨주었다. 1976년 점포 수 125개점, 매출액 3억 4,000만 달러로 증가되었고 1977년 월마트는 처음으로 미시간과 시카고에 있는 16개의 모어밸류회사를 인수하였다. 1978년 월마트는 허치순 슈 회사를 인수하고 약국 오토서비스 센터와 쥬얼리 부문을 직영했다. 1980년 월마트는 EDLP, ELCO시스템을 도입하고 1982년 샘 월튼 회장은 포브스지 선정 미국 부호 19위에 올랐다. 1988년 수퍼 센터 1호점을 미주리주 워싱턴에 개점했다. 그리고 수퍼 세이버 점포를 인수했다. 월마트는 점포 수 1,364개, 매출액 206억 달러 순이익 8억 3,720만 달러로 성장, 미국 소매업 순이익 1위를 차지했다. 1990월마트는 K마트와 시어즈를 제치고 미국 소매업계 매출액 1위를 달성했다.

   
▲ 월마트의 신화는 월마트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디스 카운터 스토어 1호점인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를 개점하면서 시작되었다. 샘 월튼은 1호점에서 2년 동안 차분히 디스카운트 스토어 노하우 부문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1964년 2호점을 개점한 이후 1969년 월 디스카운트 스토어는 18개점, 밴 프랭클린 가맹점은 14개점으로 체인 스토어를 확대했다. 1970년 초에는 배송센터 1호를 본부병설로 개설하고 그해 매출액 4,400만 달러, 점포 수 32개점으로 성장했다.

월마트의 시장규모
월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상점으로써 2003년 1월 31일 회계연도를 마감했을 때의 매출액이 2,445억 달러였다. 월마트의 종업원은 세계적으로 130만 명 정도로 예상되며 미국에만 3,200개가 넘는 점포와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캐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영국에 걸쳐 1,100개가 넘는 점포를 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월마트를 방문하는 한주 동안의 고객 수는 약 1억 명 정도로 예상된다. 샘 월튼의 열정에 의해 월마트는 고객만족과 매일의 가장 낮은 가격을 목표 인도되어 왔다. 월마트는 4가지 세분된 체제로 나뉜다. 월마트 슈퍼센터, 할인점, 지역상점과 샘스클럽 창고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고객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현재 월마트의 매출액은 우리나라 1년 예산의 2배에 해당한다. 이는 GM, 포드, 엑손에 이어 미국 4위로 종업원 수는 미국 우정공사(우체국)에 이어 2위 규모이며, 매주 월마트에 들러 쇼핑하는 인구만도 전 세계 4,0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1965년 샘월튼에 의해서 애리조나주 뉴포트에서 창립된 월마트 성공의 원동력은 경영이념, 경영전략, 그리고 정보기술의 효과적인 결합에 기인한다. 소매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유통업의 대명제라고 할 수 있는 저마진의 현실화를 실현하기 위해 경영전략과 정보기술을 적절히 연계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누릴 수 있었고, 1990년대 마침내 미국 최대의 소매 업체이던 Kmart, Sears 등을 따돌리고 세계 최대의 소매업체가 되었다. 이후에도 20%대의 고성장을 계속한 월마트는 1994년 말 82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경쟁업체인 K-mart의 350억 달러와 비교해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월마트의 성공요인과 전략
샘 월튼 회장이 월마트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시키기 위해 착수했던 일은 연관 사업으로의 다각화였다. 잡화상을 운영하면서 할인판매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듯, 월튼 회장은 할인판매를 하면서 도매업의 개념을 사업에 도입했다. 80년대 초 월튼 회장은 경비를 줄여 월마트보다 싼 값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클럽’아이디어를 사업화했다. 창고형 할인점 샘스클럽이 바로 그것이다. 주요 타깃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고객이었다. 이후 1988년에는 대형매장으로 인해 상품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진열상태가 나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던 하이퍼마트를 개조, 할인매장과 하이퍼마트를 결합한 슈퍼센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다각화 전략에 힘입어 1990년부터 월마트는 매출과 순익 양면에서 K마트와 1백년 역사를 지닌 시어즈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멕시코시티에 처음으로 인터내셔널 스토어를 개점하면서 월마트는 국제적인 회사로 성장하게 계기를 마련하면서 현재 월마트는 멕시코를 비롯 캐나다,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등 7개국에 6백7개의 해외체인점을 갖게 되었다.
월마트는 변신에 능하기로도 유명하다. 대대적인 부실점포 정리가 대표적인 예인데, 월마트는 경영이 부진한 점포를 폐쇄하거나 업태를 전환하고, 취급상품의 구성을 바꾸는 등 경영전반에 대한 수술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잡화위주의 할인점에 1차 식품을 강화한 슈퍼센터를 향후 성장을 이끌어 나갈 주력업체로 선정, 육성하는 경영혁신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월튼 회장은 오랫동안 유통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시어스가 무너진 이유를 “월마트나 K마트를 진정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정상을 넘보는 도전자는 항상 존재한다. 경쟁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하고,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는 월튼 회장의 이런 긴장감이 바로 월마트의 파워를 유지시키는 비결이다.

   
▲ 80년대 초 월튼 회장은 경비를 줄여 월마트보다 싼 값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클럽’아이디어를 사업화했다. 창고형 할인점 샘스클럽이 바로 그것으로 주요 타깃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고객이었다. 이후 1988년에는 대형매장으로 인해 상품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진열상태가 나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던 하이퍼마트를 개조, 할인매장과 하이퍼마트를 결합한 슈퍼센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세계적인 유통업체 월마트의 미미한 시작과 성공
현재 세계 최고의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시작은 미국 미주리 주의 농촌에서 농지 저당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난 샘 월턴이 1950년에 아칸소 주 시골인 벤턴빌에 개점한 조그만 잡화점이었다. 그 당시 어느 누구도 이 조그만 잡화상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샘 윌튼은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인구 1만이 넘지 않는 시골지역에만 그 가게를 넓혀가며, 1960년도에는 가게 수가 15개정도로 성장시켰다. 그가 단 기간 내에 자신의 가게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지역주민들의 독특한 취향 및 요구들을 적극 반영하고자, 하루 일이 끝나면 그는 차 뒤에 트레일러를 매달고 인접 주까지 넘나들며 고객들이 원하는 제품들을 찾아오는 노력하고, 가격은 최대한 낮게 하여 모든 물건들을 신속하게 팔아버리는 경영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월마트 보다 더 크고 유명했던 유통 대형업체인 K마트, 울코, 타깃 등이 미국 도시들 전 지역에 대형 할인점을 속속히 세우자, 샘 월턴도 시골지역에서 벗어나, 아칸소 주에 작은 지역인 로저스 시에 월마트 1호점인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를 열었다. 곧 바로 인근 해리슨 지역에 두 번째 점포를 열었을 때, 판매촉진용으로 길가에 준비해 둔 수박 두 트럭이 땡볕에서 모두 골아 터져 버릴 수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 사람들은 이 일을 보며 오히려 불길한 예감을 가졌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월마트는 급성장하여 오히려 그 당시 더 큰 대형업체들과 고급 백화점들을 누르고 오늘 날의 미국 제1뿐만 아니라, 세계 제1의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월마트를 키운 위대한 경영자 샘 월튼
세계 최대의 유통기업 월마트를 키운 위대한 경영자 샘 월튼은 우리 시대를 살았던 가장 성공한 사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아무런 기반 없이 월마트를 창업한 샘 월튼의 성공에는 중요한 10가지의 경영법칙이 있었다. 샘 월튼이 암투병중에 직접 정리한 10가지 성공법칙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인들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와 같다.
▲성공에 필요한 것을 행하라, 그리고 항상 열정을 가져라 - 샘 월튼은 그의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헌신적으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새벽 4시에 출근하여 전날 판매 보고서를 살펴보고, 임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각 사안을 통찰력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후에 행동으로 옮겼다.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평균 이상의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자극시키고, 고무시키는 위대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에 도움을 준 사람들과 성공의 과실을 나눠라 - 샘 월튼은 항상 개인은 승리할 수 없지만 팀은 그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처음부터 ‘수익 분배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그의 종업원들을 최고의 성과를 올리는 팀, 그리고 동기가 확실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변모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샘 월튼은 종업원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종업원들과 고객들이 상호 작용하는, 더 행복한 직장을 만들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과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라 -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위대함을 느끼게 하라. 그들이 도달할 수 있다고 꿈도 꾸지 않은 것을 해볼 수 있게 하라. 그들에게 강렬한 것을 행할 기회를 주고 그들이 일하는 동안 그들을 후원하라.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이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게 하라”를 강조했던 샘 월튼은 전염성 높은 동기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깨어있는 시간 동안 항상 더 나은 월마트가 되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던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강력한 직업 윤리를 가졌다.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고용주로서의 틀에 박힌 소리가 아닌 진짜 그의 직업 윤리에 의한 믿음이었다.
▲항상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줘라 - “가능한 많은 정보를 종업원들과 공유하라. 비즈니스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들을 이해시켜라. 모든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면 할수록, 비즈니스를 개선시키는 데 더 많이 관여하게 된다. 비즈니스에 대한 정보를 열린 마음으로 터놓고 분석하고 상의하라.”
▲종업원의 노력과 그 결과를 인정하라 - “참신하고 훌륭한 아이디어를 낸 혹은 꾸준히 올바른 일을 한 조직 내 종업원을 모범사례로 내세우고 인정하라. 그러한 인정은 당사자들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느낌을 줄뿐만 아니라 조직이 이러한 사람들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된다. 뛰어난 노력과 그 결과를 보여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라.”
▲자신의 성과와 팀의 성과를 축하하라 - “한국에 있는 한 테니스 볼 생산 공장을 방문했을 때, 샘 월튼은 모든 종업원들이 흥겹게 구호를 외치는 것을 봤다. 그는 이 아이디어가 맘에 들었고, 귀국한 후 다음과 같은 월마트 구호를 만들었다. ‘Give me a W!, Give me an A!, Give me an L!, Give me a Squiggly!, Give me an M!, Give me an A!, Give me an R!, Give me a T! What's that Spell? Wal-Mart! Whose Wal-Mart is it! My Wal-Mart! Who’s number one? The customer… always!.’ 샘 월튼이 매장이나 유통 센터를 방문할 때마다, 그는 열정적으로 그 구호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한 목소리로 불렀다.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종업원들은 그것을 좋아했다. 월마트를 나타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얻어라 - “샘 월튼은 고객과 접촉하는 현장 종업원의 말을 아주 주의깊게 경청했다. 그는 이 사람들이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었다. 그는 자신이 이들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들이 제안하는 바를 듣는데 열심이었다.”
▲기대를 초월하는 방법을 찾아라 - “월마트 방식은 고객이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기대를 넘어서는 것을 추구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샘 월튼은 이러한 기준, 즉 ‘만족 보증’이란 기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을 모두에게 권했다. 그는 회사의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월마트가 전설적인 고객 서비스로 널리 알려지도록 오랜 시간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샘 월튼의 목표는 월마트가 다른 경쟁 소매점과 차별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의 전략은 다음 두 가지 기본 요소로 구성되었다. 그 첫 번째는 ‘매장으로 고객을 유도하기 위해 파격적인 가격에 폭넓은 상품 범위(원스톱 쇼핑 기회)를 제공하라’ 두 번째는 ‘진실로 특별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여 고객이 또 다시 매장을 방문하게 하라’ 였다.
▲비용을 조정하라 - “샘 월튼은 대공황 시절에 성장했기 때문에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찾기를 좋아했다. 그 결과, 월마트는 지속적으로 비용 구조에서 경쟁자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절감된 비용이 안 그래도 낮은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는 고객에게 더 낮은 가격 혹은 훌륭한 서비스로 다시 전달되었다. 비용을 통제하는 것은 월마트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이다.”
▲강을 거슬러 수영하라 : 차별화하라! 현재에 도전하라 - “샘 월튼은 그의 비즈니스 인생 동안 인습적 사고에 도전했다. 인습적인 것에 도전함으로써 그는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샘 월튼은 비즈니스 리스크를 계산했고, 인습적인 것이 단순히 저항 요소인 경우가 잦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의 월마트는 샘 월튼이 변화를 좋은 친구로 껴안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샘 월튼은 모든 것을 단순화시켰다. 그리고 한번에 하나씩 고객에게 집중할 것을 종업원들에게 요구했다. 그는 탑다운(top-down, 위에서 아래로) 방식을 통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시도하기보다는 작은 것부터 시작한 뒤 그것을 확대하는 방식을 썼다.
흔히 급속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던 기업들이 창업자가 죽고 난 뒤 쉽게 퇴색되어 지는 일들이 많았다. 창업자의 자녀들이 기업경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참여한다든지 자녀들끼리의 이권다툼이 벌어져 기업이 무너지는 것이다. 하지만 월마트는 달랐다. 창업자인 월튼은 이런 문제점들을 걱정하여 회장직은 그의 아들에게 맡게하되, 실제로 월마트를 경영하는 CEO는 전문경영인을 두게 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그의 아들이 뛰어난 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고, 다른 자녀들이 월마트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일에 종사하였던 탓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월튼의 이러한 결정은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월마트가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월마트의 기업 형태는 크게 세 가지의 변혁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월튼이 처음 월마트를 설립했을 당시 개인기업의 형태였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빛이 늘어나게 되어 더 이상 개인 기업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주식을 공개해 주식회사로 전환하였다. 그 당시 월튼은 월마트가 주식회사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결국 월마트의 주식회사로의 전환은 이전보다 높은 성장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벗어나 해외에 진출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월마트 차이나’‘월마트 캐나다’‘월마트 인터내셔널’ 등과 같은 법인화라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월마트가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다국적 기업으로서 정장하는데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기업이 크게 성장을 하게 되면 이전의 결과에 만족하여 변화를 꺼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 순간부터 기업은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월마트는 변화가 필요한 순간마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을 단행했으며, 이러한 변화가 있어기에 월마트의 성공은 가능했다. 물론 월마트에도 위기는 존재했다. 해외 여러 나라들에 진출하면서 외국의 소비문화와 관습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미국 내에서 취했던 기존의 영업방식을 고수하다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다른 기업들로부터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월마트는 여기서 주저하지 않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여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실천하여 미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기업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월튼과 월마트의 단순하지만 확고한 원칙이 있다. ‘흐름을 거슬러 헤엄쳐라’ 때로는 남들과 정반대의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만의 기회를 얻는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는 월마트의 깊은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