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 · 결단력 겸비한 독일판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

되살아난 獨 경제, ‘유럽의 병자’에서 ‘성장엔진’으로 도약

2008-11-13     이연제 기자

 

6개 대륙의 ‘마담 프레지던트’ 시대
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미와 남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 6개 대륙을 보자. 모두 여성 정상시대. 즉 ‘마담 프레지던트’ 시대가 열렸다. ‘마담 스피커(Madam Speaker)’, 여성 하원의장을 뜻하는 이 단어는 지난 2007년 1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말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인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의원이 하원의장이 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미국 하원의장은 남자의 몫이었기 때문에 호칭은 ‘미스터 스피커’였다.
이처럼 세계를 호령하는 여성정치인 중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은 2005년 독일의 첫 여성 총리가 됐고, 타르야 할로넨은 이보다 5년 앞서 2000년 핀란드 첫 여성 대통령이 되었다. 2006년에도 재집권에 성공했다. 헬렌 클라크는 1999년부터 뉴질랜드 총리로 집권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지난해 남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됐다. 이 밖에도 아일랜드의 메리 매컬리스 등 많은 여성들이 국가를 이끌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국내에서도 남성이 독점적으로 누려 왔던 국가수반의 자리도 여성에게 넘어가고 있다. 한명숙 전 열린 우리당 의원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한국의 여성 총리가 됐다. 이에 앞서 2003년 전효숙 씨는 첫 여성 헌법재판관이 됐고 김영란 판사는 2004년 여성으로서 첫 대법관의 자리에 올랐다. 2002년에는 군에서도 첫 여성 장군(양승숙)이 배출됐다.
여성으로의 힘의 이동이 중요시되는 것은 여성들이 주요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물론 시장에서, 기업에서, 여론조사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계(政界)·관계(官界)·재계(財界)의 수뇌들이 모여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세계경제 발전방안 등에 대하여 논의하는 다보스포럼에서도 ‘여성’에 의한 사회와 소비 패턴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들은 사회활동을 통해 경제적인 자립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정계 진출을 통해 권력 면에서 막강한 힘을 축적하고 있다.

 

‘독일의 마가렛 대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의 마가렛 대처’로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954년 7월 17일 통일독일 이전의 서독 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같은 해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동독 브란덴부르크의 템플린으로 이주하였고,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물리학 박사로서 1978년부터 1989년까지 동베를린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동독 민주화 운동단체인 민주개혁에 가입하면서 정치 활동에 첫 발을 디딘 그는, 1991년 콜(Helmut Kohl) 총리의 발탁으로 여성청소년부 장관이 되었다. 이때부터 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일명 ‘콜의 정치적 양녀(養女)’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겪기도 하면서 그녀가 훗날 여성 정치인으로 정치 무대로 나가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변화의 시기로 작용했다.
1994년 환경부장관에 오른 메르겔 총리는 독일기독교민주동맹(CDU:기민당)이 비자금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던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98년 총선에서 기민당이 패배하면서 기민당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에 오르며 승승장구 했다. 이듬해에는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린 콜 전 총리의 당수직 사퇴와 정계 은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이루었다.
이후 2000년 4월 드디어 기민당 최초의 여성 당수 겸 원내총무가 되었고, 2005년 9월 총선에서는 기민당과 기독교사회연합을 이끌어 집권 독일사회민주당(SPD:사민당)에 박빙(薄氷)의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우파 정당인 기민당과 기독교사회연합, 좌파 성향의 사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면서 독일 총리로 선출되었다.

메르켈 총리, 금융위기 속 대처 능력 입증해 보여야
최근 미국발 금융 위기에 대한 유럽각국의 공동 대응이 가시화되면서 독일의 메르켈 총리 역시 유럽연합 최대 규모의 구제 금융안을 발표했다. 5,000억 유로(우리 돈으로 843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이다. 은행간 대출 보증에 4,000억 유로, 대출 손실에 대한 준비금으로 200억 유로가 투입될 예정이다.
800억 유로는 ‘금융시장 안정화 펀드’를 만들어 내년 말까지 은행의 자본 확충을 돕고 부실 자산을 인수하는데 쓰일 예정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 4개국 정상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그 동안 핑크 빛 전망만 계속되었던 메르켈 총리의 위기극복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국제 공조를 이끌어낸 믿음직한 ‘지도자’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반면, 조시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유부단함과 일관성 없는 정책 결정으로 도마에 오른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영국이 제안한 국유화 방식을 시종일관 반대하다가 뒤늦게 찬성으로 돌아서는 등 정책 혼선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들어야 했다. FT는 “독일의 구제금융안은 일관성이 없었다”며 메르켈의 리더십에 의문부호를 달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우파인 메르켈이 원칙을 저버리게 된 이면에는 독일 경제의 절박한 현실이 놓여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독일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0.0%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다. 과거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 경제는 메르켈 총리의 집권 이후 분기별 성장률 1.2%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지속하며 메르켈 총리의 성장우선 경제정책에 힘입어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그 동안 독일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던 실업률도 대폭 낮아졌다.
정부 입성 후 메르켈 총리의 첫 실행 과제는 ‘노동법 손질’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개혁을 본격화하였고, 고질병이었던 실업문제가 해결되면서 한 때 ‘유럽의 병자’로 지적됐던 독일 경제는 이런 처방에 극적인 결과를 내보여 주었다. 지난해 독일 경제 성장률은 2.5%로, 이는 미국을 앞지른 수치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독일의 국가경쟁력은 25위에서 16위로 무려 9계단을 뛰었다. 실업률도 6.7%로 전월에 비해 0.3%포인트 낮아졌다. 
하지만 이번 구제금융안과 더불어 외신들은 “노련한 정치가인 메르켈 총리의 강한 리더십과 경제개혁이 금융위기 속에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10월 7일 “독일 경제는 현재의 금융위기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날 연방하원(분데스탁) 연설을 통해 “금융위기의 결과에 대응하는데 있어 튼튼한 독일 경제가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 한다”면서 굳은 의지를 표명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목표는 하나, 새로운 신뢰 형성입니다. 바로 은행 간 신뢰, 경제적 신뢰, 시민들의 신뢰입니다”고 말하며 “정부는 질서의 수호자이다. 우리는 단호한 결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금융위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고 전했다.
금융위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금융위기 속에서 각국 정상과 참모들의 치열한 리더십 경쟁은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관심사이며,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앙겔라 마르켈 총리가 이번 난관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유연성, 책임성, 도덕성 등을 겸비한 ‘파워우먼’ 메르켈 총리
경제 주간지 포브스에서 ‘세계의 파워우먼 100명’ 중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여성으로 선정된 메르켈 총리는, 지난 다보스 포럼에서 “빨리 가려면 혼자 가도 된다. 그러나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하며, 내외적으로 많은 대립과 경쟁이 있을 수 있으나 경쟁이나 대립을 적으로 보기 보다는 의견존중으로 더 커 나갈 수 있는 같은 키워드로 뭉친 집단이나 조직으로, 또 다른 친구집단의 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녀의 생각이다.
또한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정치력과 뚝심을 보여줘 정치력을 과시한 바 있는 그녀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각국의 동의를 이끌어 낸 데 이어,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는 교착 상태에 있던 EU헌법 합의안을 미니 조약 형태로 살려내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첫 총리, 독일 최초의 과학자 출신 총리로 정치 감각과 수완이 뛰어나고, 배포도 커서 일명 ‘독일의 마거릿 대처’로 불리는 앙겔라 마르켈 총리. 한편으로 순탄한 길을 달려온 그의 정치 이력은 개인적인 인내와 우연의 결과로 채색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강한 집념과 승부사다운 결단력이 남성중심의 ‘마초 세계’에서 그가 성공한 비결이란 분석이다.
유약한 이미지와 달리 끈기와 과감한 결단력을 무기로 정치경력을 쌓으면서 독일판 ‘철의 여인’이란 평을 얻고 있는 마르켈 총리는 실제로 그는 여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치하지 않았고, 또 여성의 권리를 위해 활동한 적도 없다. 그러나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영국 병’을 치유한 것처럼 메르켈이 독일의 높은 실업률과 사회의 비관주의를 털어내고 성장을 이끌어 내자 그 동안 반신반의하고 있던 독일사회는 결국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율이 늘어나면서 세계 각국 정계 여성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다소 큰 상승폭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여성의원 수가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여성 지도자의 육성에 대한 국가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유연성, 책임성, 도덕성 등을 겸비한 21세기 창조적 여성 지도자의 출현은 해당 국가는 물론 세계적으로 선진사회를 이끌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美·유럽 구제금융 한배. 미-유럽 개입 통해 ‘확신 회복’ 추구 

미국 정부가 마침내 역사적인 구제금융의 세부내용을 공개했다. 금융사들의 모기지 관련 부실자산을 매입해 재무제표를 개선하겠다는 당초 계획과 달리 현금을 직접 투입하는 방안을 추가했다. 약으로 천천히 병세를 완화시키는 대신 ‘효과 직방’ 주사를 한 방 놔주는 치료법을 택한 셈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미국과 유럽의 구제금융 조치로 결국 전 세계가 금융위기와의 싸움에서 한 배를 탔다. 같은 듯 다른 두 개의 구제금융은 세계 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방증인 동시에, 위기 타개에 대한 희망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14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성명에 이어 폴슨 재무장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셰일라 베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사장이 공동 회견을 통해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의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미국에 앞서 유럽 주요국들이 잇따라 단행한 구제금융은 더욱 직접적이고 단호하다. 은행간 대출보증, 예금보증 등을 통해 금융기관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주요 금융사들을 잇따라 국유화하고 있다.
영국이 브래드포드앤빙글리(B&B)를 국유화한 것을 시작으로, 벨기에와 프랑스, 룩셈부르크 정부가 덱시아 등 몇몇 합작금융사에 현금을 쏟아 부었고, 국가 부도 위기에 빠진 아이슬란드는 란데스방키 등 3대 은행을 모두 국유화 조치했다.
유럽이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역시 ‘공포’에서 비롯됐다. 월가기업들의 붕괴를 목도한 유럽인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해 작은 불씨에도 산불처럼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
월가위기의 불똥을 맞은 기업들이 하나 둘 악재를 전하면서 유럽 전역 일대에 ‘뱅크런’을 비롯한 파국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됐다. 결국 해당 국가 정부들은 발 빠르게 국유화를 단행해 국가 전체의 위기상황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유럽의 결정은 역으로 미국의 변심을 재촉했다. ‘경제는 같이 정치는 따로’라는 유럽연합(EU)의 태생적 한계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예금자 지급 보증 등 개별 국가의 ‘치료법’이 주변국들에게는 ‘무기’가 되는 상황이 반복됐고, 유로존이 공동 대응을 결정했을 때는 이미 산발적인 대응책들이 상당부분 제시된 상황이었다. 미국의 변심으로 미국과 유럽의 구제금융은 유사한 형태를 띄게 됐다. 기업이나 시장에 자금을 직접 투입해 경제 전반에 돈줄이 즉각적으로, 막힘 없이 흐르게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영국이 5060억 유로, 독일이 5000억 유로, 프랑스가 3600억 유로,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각각 2000억 유로, 1000억 유로 등을 투입 키로 결정함에 따라, 유럽 8개국이 미화로 총 1조 2000억 달러, GDP의 13.6%를 쏟아 붓게 된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국유화에 대해서는 두 개의 구제안이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지분 상당부분을 매입하고 경영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계획이지만, 미국은 국유화는 피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매입하기로 결정해 국유화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 매입 우선주에 대한 5% 배당, 황금 낙하산 금지를 포함한 경영자 보상 제한 등을 조건으로 내걸긴 했지만,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