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비정규직법 각축전 예고

비정규직 고용기간 4년 연장·파견업종 확대, 또 다시 ‘기업 프렌들리’ 논란 제기

2008-11-11     신혜영 기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제정 및 개정된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처우를 시정 및 금지하고, 기간제와 단시간 근로의 남용을 제한하며, 불법파견에 대한 제재와 파견근로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지난 2007년 7월 1일부터 종업원 300명 이상 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었다.
주요 내용은 기간제 근로자로 2년 이상 일하면 사용주가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강제하지는 않으며, 기간제로 고용할 수 있다. 기간 초과뿐 아니라 파견허용 업종을 위반한 경우에도 적발 즉시 직접 고용해야 한다. 무허가 파견 등의 불법파견 유형에 대해서도 고용한 지 2년이 지난 경우에는 직접고용을 의무화하였다.

 

정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 해소”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주요 개정안은 기간제 노동자 및 파견 노동자의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업종 범위 확대 등으로 파견 노동자의 파견 기간 역시 현재 2년에서 2년 더 늘리는 안이다. 파견대상 업무도 현행 32개 업무보다 더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비정규직법이 오히려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측면도 있어 보완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법적인 정규직 전환시점은 내년 7월이지만 기업체는 연초에 인력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이 문제를 빨리 정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비정규직 고용 연장을 강력 시사했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시점인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이같이 법 시행 1년 만에 개정에 나선 외형적인 이유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불안이다. 내년 7월이면 비정규직 노동자 100만 명 이상이 고용불안 상태에 처하게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비정규직을 위협하는 악법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지적은 이런 이유에서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일 이후 고용계약을 한 뒤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이 정규직 전환 대신 고용계약을 종료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정규직 고용 제한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추진 배경에 대해 “내년 7월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해 일자리를 잃게 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현재보다 1년 또는 2년을 더 연장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 7월 이후 고용기간 2년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경제부 고위관계자는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2년간 고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 중인 ‘경제제도 선진화 방안’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간을 3~4년으로 늘리고 더 나아가 단계적으로 더욱 유연화하는 방향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이미 내놓은 상태다. 여기에 기업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용역·도급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최저임금제도도 교통비와 급식수당까지 최저임금액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될 경우 최저임금 수준만을 받고 일하는 용역·도급 등 간접고용 노동자의 경우 실소득액이 대폭 하락할 전망이다.

 

노동계 “비정규직보호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
그러나 노동단체는 개정안이 확정되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현재보다 더욱 늘어나 비정규직 차별대우로 인한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비정규직보호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경란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비정규직 사용 남용을 막겠다는 비정규직법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방안”이라며 “정부가 재계의 요구를 고스란히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비정규직법의 도입취지가 무엇이냐, 비정규직 노동자가 너무 늘어나고 차별시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것 아니냐”며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고 해서 고용안정이 보장될 수 있냐”고 질타했다.
강성천 한나라당 의원은 “노동부가 앞장서서 기간연장을 논의하면 자칫 사용자에게 지금 쓰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계속 비정규직으로 써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고 해서 고용안정이 보장될 수 있습니까. 4년으로 무턱대고 늘리게 될 경우 오히려 3년 11개월짜리 계약과 같은 악질 사업주의 편법과 횡포가 극에 달할 것입니다”라고 쓴소리를 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은 “비정규직을 실업의 위험에서 구제하는 효과보다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며 “비정규직 고용형태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노동부 관계자는 “규제 완화라는 방향에서 여러 안을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이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 “노사정 논의 과정에서 어떤 타협안이 만들어질지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실 비정규직보호법을 둘러싸고 시행 단계에서부터 노사 양측이 모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노동계에서는 이 법들이 임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파견근로를 확대시킬 뿐 아니라 차별해소 방안도 실효성이 없어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라며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사용자측에서는 고용기간 2년 초과시 무기계약으로 간주하고, 파견허용 대상 업무의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도록 한 것 등에 대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하였다.

 

경영계 비정규직법 적용 회피 논란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은 그간 경영계가 끊임없이 요구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지난 6월 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이 기업인력 운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기업의 55.8%가 ‘기간제 사용제한 규정을 폐지, 비정규직 일자리를 확보하고 처우개선에 노력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 7월, 노동부 등에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업계 의견 건의문’을 제출해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하며 차별금지 조항의 100인 미만 사업장 확대적용 유예와 사용기간 제한 예외 대상에 50세 이상의 준고령자를 포함할 것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경영계는 왜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에 목소리를 높일까. 일단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저렴한 임금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올해 비정규직의 임금 비율은 정규직의 60.5%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고용 상태가 불안하니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도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이처럼 비정규직을 쓰더라도 직접고용보단 파견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 기업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따라 고용주에게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직접 고용하여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의무가 생겼다. 그러나 계약 기간에까지 강제력이 미치질 않기 때문에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계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사용기간 제한에 관련한 예외 대상의 확대 요구는 비정규직 남용을 억제하려는 비정규직법의 기능을 약화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비정규직 계약을 해지하거나 외주화 전환 등 편법을 통해 비정규직법의 적용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견 수렴해 개정 추진할 것
현재 노동계는 ▲동일 일자리에 비정규직의 교체 사용 금지 ▲집단해고에 대한 법적 제한 ▲무분별한 외주와 용역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부 장하진 근로기준과장은 “일각에서는 고용 동향에 비정규직법의 영향이 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지만 고용이 부진한 것은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 문제”라며 “종합적으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책을 마련하고, 기획재정부 뿐만 아니라 노사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 내년 7월1일이다. 그러나 노동계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의 강한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 당분간은 본격적인 개정 작업 대신 내년 상반기까지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자리 축소의 주요 원인으로 비정규직법이 지목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6월 신규 일자리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4만 7,000개 늘어나는데 그쳤다. 신규 일자리가 15만개 이하로 줄어든 것은 2005년 2월 이후 3년 4개월만이다. 기획재정부는 비정규직법에 따른 부담 때문에 기업체에서 비정규직 계속 고용을 기피하면서 임시·일용직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이 축소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지난 3월 기준 비정규직은 전년 동월 대비 13만 5,000명이 감소했다. 특히 이달부터 비정규직법 적용대상이 된 100~299인 사업장에서 8만 6,000명이나 감소한 것은 비정규직법의 영향이 컸다고 보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법이 고용 불안의 중대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만큼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한국노총 이민우 정책실장은 “비정규직 일자리 규모의 감소는 비정규직법이 원인이 아니라 경기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며 “기업 임금인상은 자제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비정규직법에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