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이냐, 9억이냐… 종부세 개정안에 당정 오락가락

종부세 완화?유지 놓고 여권 내부 혼란, 이대통령 “좌고우면 안돼”

2008-10-15     김정숙 기자

 

종부세를 둘러싼 가장 첨예한 쟁점은 과세 기준을 9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부분이다. 9억 원 이상 주택 보유 세대는 16만 1,000가구로 전체의 0.9%에 불과해 정부 원안대로 밀어붙일 경우 한나라당이 '1% 부자 정당' 이미지를 벗기 쉽지 않다. 이런 비판을 피하고자 한나라당 내부에선 기준 금액을 현행 6억 원으로 유지하되 세율을 깎아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 기준 금액을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 등 대안이 거론된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변수다. 현행 세대별 합산 방식이 위헌 결정이 나면 6억 원, 9억 원 논쟁은 무의미해지므로 미리 손댈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정부는 “부자를 위한 게 아니라 징벌적 성격의 세금을 폐지하는 것이고 공평과세라는 원칙의 문제”라며 원안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샘플 조사 결과 종부세 대상자의 34.8%가 연소득 4,000만 원 미만이고 이들은 소득의 46%를 종부세로 낸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또 예산부수법안이므로 내년 예산안이 확정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가구 1주택 장기보유자나 무소득 퇴직자에 대한 감면에는 이견이 없지만 다주택자도 감면 대상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종부세가 다주택 보유 억제를 통한 투기 방지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갑작스런 완화가 투기 수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종부세 개편에 따른 재산세 인상 논란에 대해 김 차관은 라디오 방송에서 “기왕에 재산세를 부담하고 있던 계층의 부담을 더 늘릴 계획은 전혀 없다”고 못 박고 “행정안전부가 중심이 돼 관계부처 협의가 있어야겠지만 당장 재산세를 올릴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 관련 핵심규제는 유지할 것”이라면서 “다주택자와 투기자에 대한 중과세 원칙도 일관되게 견지하겠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재정부는 참여정부에서 만든 종부세는 부동산 소유자에 대한 징벌적 성격이 강한데다 국민을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법안으로 문제가 있는 만큼 이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란 입장이다. 여론이 악화되더라도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이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있는 만큼 이들과의 조율을 통해 최종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당정 합의 후 하루 만에 한나라당 내부에서 반발기류가 거세게 일어나는 등 엇박자를 내고 있어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편, 이날 오후 강 장관이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하려던 것은 ‘전례가 없고 정치적 논의 과정에 정부 인사가 참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에 밀려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한나라당의 ‘수용 뒤 손질’ 방침에 따라 정부 원안대로 국회에 제출될 전망이나 야당 협조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종부세 위헌 심판 등 변수에 따라서는 상당부분 수정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시행령 개정 작업도 만만치 않아 빨라야 내년 초 이후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 “정부안 고수” 정리
한편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종합부동산세 개편 논란과 관련해 일단 ‘정부안 고수’로 입장을 정리했다. 개혁에 대한 원칙을 밝혀 집권 여당 내에서의 불필요한 논란을 잠재우면서 지지세력의 결집효과를 노린 조치로 풀이된다. 여론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여기서 좌고우면할 경우 당-정-청이 모두 흔들려 앞으로 개혁정책들을 추진하는 데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아침 수석비서관 회의에선 여론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지난 9월 23일 종부세 개편안 발표 후 한나라당 일각에서 터져나온 ‘1%를 위한 감세’라는 불만을 의식한 발언이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종부세 개편안을 놓고 찬반으로 나뉘어 심각한 분열상황을 보이고 있다. 9월 24일 오전에는 종부세 부과기준을 도로 6억원으로 내리자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청와대 내부에서도 “그런 수정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기류가 감지됐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기류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원칙과 정도에 따라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게 정부 여당의 임무이자 역할”이라며 지역구 민심을 거론하는 일부 의원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공약으로 내세운 개혁방안까지 흔들릴 경우 어렵게 회복한 지지기반까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입법과정에서 조정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국회의 몫”이라고 말해 앞으로 개혁안의 입법화 성공여부에 대한 공을 여의도로 넘겼다.
정치권에서는 집권 초만 해도 부동산 시장에 대한 영향 때문에 언급 자체가 사실상 ‘금기’시 돼왔던 종부세 부과기준 9억 원 상향 조정이 갑자기 강행되고 있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는 “잘못된 징벌적 과세나 조세제도로 인해 한 명의 피해자라도 있으면 바로잡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원칙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속내가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당장 올 연말이면 소득이 없는 은퇴한 분들도 굉장히 부담스런 종부세를 다시 한 번 더 내야 되는데 올해는 해결해주지 못해도 내년부터라도 해결이 된다는 기대라도 드려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말은 은퇴자들을 위한 신속한 개편이지만 은근히 2010년 지방선거를 의식하는 뉘앙스의 발언이다. 특히 종부세 개편안이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1%를 위한 감세’라는 비난이 나올 개편안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미국발 금융쇼크로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고 있는 것도 종부세 개편안 추진에 좋은 토양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권 내부 논란 이어져
그러나 한나라당이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대폭 낮추는 정부 원안에 힘을 실어주기로 사실상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내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과세 기준을 현행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종부세 완화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수정론을 주장해온 의원들의 경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대 다수가 종부세 원안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고 한나라당의 씽크 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조사결과도 종부세 원안론에 대한 반대가 5~60%, 찬성은 10%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원안을 수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데 대해서도 당내에서조차 청와대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밀어붙이기의 부작용은 당장 정당 지지율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 방송사가 지난 9월 2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한 주간 정례조사 결과, 한나라당은 지난주에 비해 8.9%p 빠진 37.6%에 그친 반면 종부세 완화안 저지방침을 내세운 민주당의 지지율은 4.2%p 반등한 21.3%를 기록했고, 민주노동당 역시 2%p 상승, 7.4%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한 3선 의원은 “국민 여론이 8:2로 반대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것은 쇠고기, 대운하 때와 같다”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혼자서 밀어붙인 것이 당과 엇박자가 나자 청와대가 정부를 거들고 나서면서 꼬인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초선의원도 “국민의 생각,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현실 정치인데 그렇지 못한 정책들은 성공하지 못한다”며 “조세원칙, 형평성 운운은 서민층이 하는 얘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초선 의원도 “원칙적으로는 종부세 완화에 공감하더라도 의원들의 대다수는 정부 원안대로는 곤란하다”며 “특히 시기적으로도 지금은 종부세 문제를 꺼낼 때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건부 찬성이라 하더라도 핵심은 ‘정부안 수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최고위원회의가 당론을 정하더라도 당내 갈등을 완전히 봉합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고위원회의가 ‘정부 원안을 수용한다’고 밀어붙일 경우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초선의원은 “의원총회 논의는 종부세 개정안을 신중하게 손대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원안대로 하는 것을 당론으로 추인해 준적 없다”고 밝혔다.
또다른 의원도 “홍준표 원내대표가 결론이 나지 않으니 위임해달라고 했고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의총의 추인을 받겠다고 했다”면서 “의총이 더 남아있고 또다시 격론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종부세 완화에 대통령 지지율 곤두박질

정부의 종부세 완화 방침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지난주 모처럼 반등했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선을 이어가지 못하고 20% 중반대로 다시 하락했다.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 대비 3.4%p 하락한 25.6%를 기록했고,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큰 폭으로 상승, 10.2%p 증가한 65.3%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종부세 완화 조치가 잘못된 조치라고 부정평가 한 응답자가 65.7%로 나타났는데, 지지율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초 종부세 완화 가능성이 처음 보도됐을 때도 한나라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한 바 있다. 연령별로는 지난주 상승폭이 컸던 30대의 지지율(13.0%)이 가장 낮았고, 부동산세 완화 정책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게 될 수도권 응답자의 지지율도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지지율에서도 종부세 완화 방침이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았다. 당 지도부가 정부의 종부세 완화안에 대해 수용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지지율이 전주대비 8.9%p 빠진 37.6%에 그친것. 특히 지난 9월초 종부세를 포함한 여당의 부동산 세제개편안 발표 당시 한나라당의 지지율 하락폭이 9.4%p에 달하며 30% 초반대로 추락한 것에 비추어볼때, 종부세 논란이 한나라당 지지율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종부세 완화안 저지방침을 내세운 민주당의 지지율은 4.2%p 반등한 21.3%를 기록했고, 민주노동당 역시 2%p 상승, 7.4%의 지지율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