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법질서 확립’ 배경, 사정정국 도래하나
합동수사 TF 편성, 거대 사정기관 우려…민주당, 친노 강력 반발
이 대통령은 취임 후 기회 있을 때 마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법질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으나 최근 들어 그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또한 최근의 미묘한 정치 환경과 맞물려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
이 대통령은 9월 26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 축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는 인기와 여론이 아니라 오직 정의와 양심의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서 “사법의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더욱 의연한 자세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이 시대의 정의와 양심의 등불이 돼 달라”고도 했다.
앞서 전날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7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제 임기 중에 정말 법질서를 지키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서 “여기서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말 그대로 법질서 확립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 이 대통령은 ‘낙후된’ 법질서 환경을 정비하지 않고서는 시대적 과제인 경제살리기는 물론 선진일류국가 건설 비전도 달성할 수 없는 만큼 다른 것에 앞서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우리나라의 준법의식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라면서 “이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으며, 이 대통령이 그런 차원에서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 당국에 변화와 개혁을 주문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 여론몰이식 주의·주장이나 소모적인 정치공방에 휘둘리지 말고 확고한 원칙을 토대로 법과 질서를 확립해 나가야 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사법 당국이 정도를 지키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고, 이와 관련해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날 ‘사법 60주년 기념식’ 자리를 빌려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 사과한 것도 이런 분석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민주당 “표적수사, 정치보복성 기획사정” 반발
그러나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법질서 관련 발언이 본격적인 사정정국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특히 구(舊) 여권 인사들과 관련한 잇단 검찰 수사, 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비리수사를 위한 ‘합동수사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을 거론하며 이 대통령이 국정장악을 위해 이미 ‘사정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사법당국이 전방위로 나서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표적수사’, ‘정치보복성 기획사정’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면서 “앞으로 이런 수사가 더 확대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22일 검찰의 조영주 KTF 사장 비리 수사과정에서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조 사장의 개인비리를 전 정권 인사와 연결시켜 범죄인 취급을 하고 비자금 등과 연계시키려는 부당한 시도는 중단되어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검찰의 칼끝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친노(친노무현) 진영 역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은 “사정당국의 일련의 행보는 야당탄압과 표적수사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며 “정부와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권력비리에 대한 수사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원우 의원도 “특정 혐의를 잡고 수사하는 게 아니라 누가 누구와 친하다는 얘기가 나오면 해당 기업이나 인사를 덮치는 식”이라며 “그럼에도 최측근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드러난 것은 없고 오히려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것만 밝혀지고 있지 않느냐”고 성토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내가 장담컨대 몇몇이 푼돈은 챙겼을지 몰라도 참여정부의 ‘권력형 비리’는 없다”며 “사정 정국은 양날의 칼이다. 사정 정국에서 이명박 정권의 인사 한 사람만 걸려도 집권층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독화살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사정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맞서 국정감사에서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하는 등 ‘맞불’ 작전을 펼 방침이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 또는 프라임, 애경, 강원랜드 등 참여정부 시절 성장했던 기업에 대한 수사가 과연 형평에 맞느냐는 점이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며 “항간에는 참여정부 출신, 호남 기업 죽이기가 시작됐다는 얘기가 떠돌 정도”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 지난 5월 2일 고발된 지 4개월이 지났는데도 결론이 안 나고 있는데 이는 형평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누구라도 잘못하면 조사를 받아야 하겠지만 대통령과 관계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조사가 안 되고 지난 정부의 일들에 대해서만 구체적 수사 상황이 공개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가세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검찰의 신중한 태도를 주문했다. 장윤석 의원은 “권력형 비리나 정치적 사건에 대해 검찰이 소신껏 수사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고, 주광덕 의원은 “권력자와 권력을 놓친자에 대한 수사의 형평성과 시의적절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경한 법무장관은 “지금까지 보고 받은 바로는 지난 정권 인사가 관련된 사건은 없었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 것이지만 일부 오해가 있다면 어떻게든 시정해 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기업 비리 수사 과정에서 다른 비리 범죄 행위가 포착되거나 첩보가 수집돼 자연스레 시작한 것이지, 정치적 의도는 없다”라며 “사정정국을 일부러 만든 것도, 표적 수사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한편 일부 의원들은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들어 검찰과 교정시설의 문제점을 지적, 눈길을 끌었다. 박지원 의원은 “저도 거기서 좀 살다 나왔는데 대한민국 공무원 가운데 에어컨, 난방 시설 없이 근무하는 공무원은 교도관 밖에 없고, 엑스레이 등 의료기구도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친박연대 노철래 의원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 받은 적이 있는데 수사관이 담배 연기를 푹푹 뿜어대더라”라며 “어휘 선택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합동수사 TF’ 편성도 논란
한편, 법무부의 ‘합동수사 TF’ 편성과 관련, 법무부는 9월 25일 ‘거대 사정기관의 탄생이 아니다’며 해명에 진땀을 뺐다.
법무부는 공직자·사회지도층 비리를 중대 비리로 선정하고 범정부적 공동 대응을 위해 대검 중수부 또는 일선 지청에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합동수사 TF’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유관기관에는 국세청, 경찰 등이 포함될 예정이며 해외 기술유출 범죄와 금융범죄, 유통질서 교란범죄 등에 대해서도 관련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공조체계를 공고히 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사정 정국 전위대로써의 합동수사 TF 아니냐’, ‘거대 사정정국의 신호탄’ 등의 지적들이 나오자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합동수사 TF구성’ 브리핑 3시간여 만에 별도의 해명 브리핑을 마련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2시경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열고 “거대 사정기관의 탄생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상시적으로 대규모의 합동수사반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 수사시 인력을 지원받은 이후 사건이 종료되면 해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법무부는 “나라를 어지럽게 만드는 중대 사건에 대해 선별적으로 수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라며 “기술유출 범죄 등은 검찰 인력만으로는 수사가 어려운 점이 있어 유관기관으로부터 전문 인력을 지원받는 것이 발표의 요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유관기관에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가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말씀 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해외기술 유출 범죄를 다루기 위해서는 국정원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지 않느냐’는 재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을 피했다.
또 ‘검찰이 국세청이나 금융정보분석원의 자료를 영장 없이 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한 합동수사반 편성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국세청 직원이 협조를 할 뿐이지 국세청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을 검찰이 이관 받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기존에도 유관기관의 인력 지원은 이뤄져오고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부 수사 협조가 원활치 못한 부분이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오는 11월까지 ‘합동수사 TF’ 설립의 법률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시행령과 세부 계획을 위한 법리 검토를 병행중이다.
불교계가 종교 편향성 논란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사실상 수용함으로써 종교 갈등이 수습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하지만 불교계가 공언한 ‘대구·경북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는 11월 1일에 열기로 잠정 결정함으로써 종교 편향을 둘러싼 갈등이 완전히 해결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불교계-정부 종교갈등 수습
범불교 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인 원학 스님은 9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에서 열린 교구본사 주지회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경제에 어려움이 있고, 여타 사회 갈등으로 고통이 큰 만큼 이 대통령의 언급을 대승적으로 판단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9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종교 편향과 관련, 유감을 표명한 데 이어 같은 날 생방송된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불찰’이라고 표현하며 머리를 숙였다.
나아가 원학 스님은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한 파면 요구 등은 유효하다고 전제하면서도 “대구·경북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 이후 어 청장의 사과를 받아들일지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해 어 청장의 파면 요구도 거둘 수 있음을 시사했다. 종교 차별 금지의 입법화 요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훈령 등으로는 미흡하다고 보고 이번 국회 회기 중 차별 금지법을 제정케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조계사에 피신한 촛불집회 수배자들에 대한 불교계의 선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이라고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