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원자재 가격하락, 침체된 국제경기 되살릴까

헤지펀드 등 투기자금이 원자재 시장에서 빠져나가면서 하락세 이어져

2008-09-03     이준호 기자

   
▲ 유가 급등은 경상수지 악화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수입물가 상승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소비 및 투자가 위축돼 생산 둔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유가 및 원자재의 절대가격 수준 자체가 여전히 높은데다 세계 경기 둔화 위험이 부각되고 있어 아직 상황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조심스런 평가를 내놓고 있어 추세전환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격인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 8월 22일 116.74달러로 마감하며, 지난 5월 8일(116.48 달러) 이후 3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달 15일 배럴당 140.22 달러로 최고 정점을 찍은 후 내림세를 타면서 20일 만에 배럴달 16.7%하락을 보인 것이다.
금과 구리, 알루미늄, 니켈 등 비철금속도 수요감소 전망에 따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NYMEX에서 12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날보다 2.4% 하락한 온스당 886.10달러에 거래돼 900달러 밑으로 떨어졌고,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전기동(구리) 선물은 t당 7,621달러를 기록해 지난달에 비해 880달러(10.35%) 하락했다.
곡물의 경우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대두 선물가격은 부셸당 1,269달러로 지난달에 비해 389달러(23.46%) 급락했다. 이에 따라 원유 등 19개 상품으로 구성된 로이터/제프리스 CRB 지수는 3.4% 하락한 401.98을 기록해 지난 5월 2일 이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데 이어 하락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이 당분간 하향조정 국면을 거치겠지만 본격적인 하락추세로 돌아선 것으로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금융센터의 담당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끌었던 수급 불균형이 완화됐지만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당분가 하향조정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본격적인 하락추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도 “수요 둔화와 지정학적 불안요인, 허리케인, 달러화 가치 변화 등이 유가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구리와 알루미늄은 비수기로 인한 단기적 공급과잉으로 가격조정을 겪었지만 앞으로 수급상황이 타이트할 것으로 예상돼 가격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국내 경기에 내리는 단비 ‘유가·원자재 가격 하락’
그동안 우리 경제를 옥죄던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하락으로 정부의 거시경제운용에도 다소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 급등은 경상수지 악화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교역조건을 악화시켜 수입물가 상승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소비 및 투자가 위축돼 생산 둔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국제석유제품 가격 상승은 1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류 가격에 반영되며,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가 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까지 하락하고 있어 물가관리에 시달려온 정부 당국은 한층 반기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하락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다만 원자재 가격 하락의 배경에 선진국의 경기 둔화 우려 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입장에서 경계할 점도 많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은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소비자물가의 안정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서민경제 회복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세전 판매가격의 경우 지난 7월 셋째 주에 휘발유가 ℓ당 986.64원, 경유는 1,180.97원이었으나 넷째 주에는 각각 921.06원과 1,116.15원 등으로 65원 안팎이 떨어지면서 이미 국제유가 하락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김동수 재정부 제1차관은 민생안정을 위한 차관회의에서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최근에 의미있는 수준의 하락세를 보여 소비자들의 대차대조표에도 일부 개선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 최근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물가 상승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됐음을 시사했다. 또 정부 관계자는 “유가의 경우 아직 하락세라고 단언하기 어려우므로 홀짝제 등 에너지 절약 대책을 해제하기에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며 “정부는 원자재 가격 하락이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인하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연결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물가가 급등하면서 3년 반 만에 처음 실질금리 ‘제로(0)시대’가 왔다.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급등한 결과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될 가능성도 경고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물가 상승률, 이자 오름세 앞질러
물가가 급등하면서 3년 반 만에 처음 실질금리 ‘제로(0)시대’가 왔다.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급등한 결과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될 가능성도 경고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중 예금은행의 실질금리는 지난 2005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0%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5%였고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중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저축성수신 평균금리가 연 5.5%로 그 차이는 ‘0’이 된 것이다.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통화당국의 목표치를 훌쩍 넘어서면서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금리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는 분석으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예금 이자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예금을 하더라도 이자소득세(세율 15.4%) 부담까지 감안하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손해로 여겨질 수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실질금리가 ‘제로’를 나타내면서 소비 및 내수가 위축돼 인플레이션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실질금리는 지난해 8월 3.11%였으나 이후 2%대로 내린 채 5개월 동안 유지되다가 올해 2월부터 1.8%, 1.43%, 1.35%로 하락곡선을 그렸다. 올해 들어서는 그 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5월에 1%를 깨고 6월에는 0%를 기록했다. 7월 물가상승률이 5.9%에 이른 점에 비춰볼 때 금리 인상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실질금리 하락세는 자칫 마이너스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질금리가 하락한 것은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정책금리를 제때 인상하지 못한 결과”라면서 “물가상승에 비해 이자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자생활자들의 소비 심리가 더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아직은 우세하다. 한국은행이 물가상승 부담을 감안해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인데다 국제유가와 국제원자재 가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어 하반기 물가관리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부, 원자재가격 하락으로 생필품 값 인하 유도 

   
▲ 김동수 재정부 제1차관은 민생안정을 위한 차관회의에서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최근에 의미있는 수준의 하락세를 보여 소비자들의 대차대조표에도 일부 개선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 최근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물가 상승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됐음을 시사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한국은행·소비자원·대한상공회의소·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물가 및 민생안정 차관회의’를 민관합동으로 개최하고, 최근의 물가 동향 및 향후 대응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김동수 차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그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3월 이후 국제 밀가루 가격 하락분이 국내 밀가루 가격에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밀가루 관세를 무세화하고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는 밀가루를 직수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한제분, 동아제분, CJ 등 제분업계는 밀가루 관세율 인하 효과를 감안, 밀가루 가격을 8~20% 인하하기로 화답했다. 이와 관련해 김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밀가루 가격이 내려감에 따라 관련 업체들이 라면과 빵 등 서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품목에 대한 가격을 인하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품목별로 ‘수입, 생산, 유통, 소비’ 전 단계에 걸쳐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물가교란요인 발생시 선제적 대응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그간 수입원재료 등의 가격 상승폭이 큰 품목을 중심으로 관련 품목에의 파급효과를 세밀히 분석, 가격안정 대책을 마련할 뜻을 내비쳤다. 개인서비스 요금 등의 과다·편승 인상 방지를 위해 소비자단체 물가신고센터 신고사항에 대해서도 소관부처 검토 후, 필요시 매점매석·담합 등의 조사도 추진키로 했다. 김 차관은 “분위기에 편승해 가격을 올리는 행위 등을 집중 점검할 것”이라며 “특히 신학기를 앞두고 교복·참고서 등 가격 동향을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최근 의미있는 수준의 하락세를 보였다”며 “낙엽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언급, 물가상승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됐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민간단체에도 “경제 전반에 걸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달라”고 당부했다.

금리동결 당분간 유지, 인플레 압력 완화 기대
국제유가가 3개월여 만에 배럴당 120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등 고공행진을 해온 상품가격이 하락세를 보여 세계 경제에 단비가 될지 주목된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미국발 신용위기 속에 성장이 둔화되면서도 유가와 곡물.원자재가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유가 하락은 인플레이션 부담을 줄여 경제의 불안 요소를 덜어줄 전망이다. 또 유가 하락은 성장 둔화 속에 인플레 우려로 통화정책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운신의 폭도 넓혀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가를 비롯한 상품 가격의 하락은 커지는 경기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플레 압력 때문에 고심하던 미 FRB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연방기금 금리를 2%로 동결, 지난 6월 말 회의에 이어 2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인플레 압력이 커져 오면서 여전히 지속되는 신용위기와 성장의 둔화 위험이 금리 동결을 이끌었다. FOMC는 이날 금리 동결을 밝힌 성명에서도 지난 6월 성명에 넣었던 ‘경제 성장의 하향 위험이 여전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는 문구를 삭제해 인플레 위험 못지않게 경기 하강 위험에도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 미 상무부는 지난달 31일 2.4분기 경제성장률을 1.9%로 밝히면서 작년 4분기 성장률을 마이너스 0.2%로 수정한 것을 비롯해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최근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FOMC는 그러면서도 에너지 가격 상승 등에 의해 촉발된 인플레 압력이 높아져 왔고 인플레가 올해 후반기나 내년에 완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인플레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다고 밝혀 인플레 우려도 강조했다. 미국의 6월 개인소비지출 물가가 1년 전에 비해 4.1% 올라 1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르는 등 물가 상승 우려가 전에 없이 커진 탓이기도 하다. FOMC의 이런 입장은 경기 둔화와 인플레 우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경기 둔화의 우려를 전보다 강조한 것으로 볼 때 당분간 금리 동결이 이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를 비롯한 상품가격의 하락은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이라는 선택을 강요받는 막다른 상황에 몰릴 수도 있었던 FRB에 금리 인상 시기를 늦출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기금 금리 선물시장에서는 FRB가 9월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금리 결정전에 68%에서 77%로 높아졌고, 10월 회의에서의 동결 가능성도 48%에서 55%로 높아졌다. 즉 FRB가 올해 안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전망이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유가 하락이 FRB에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시 금리를 인하하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미·러 ‘新냉전시대체제’, 세계경제는 ‘급랭’

                폴란드·시리아 미사일기지 신경으로 유가·달러 또다시 ‘소용돌이’

미국과 러시아간 긴장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유가는 급등했고 달러가치가 하락세를 보이는 등 국제 상품 및 외환시장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미-러간 신냉전 기류는 국제유가의 급등을 자극하는 등 국제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 7월8일(이하 현지시간) 체코와 레이더 기지 설치에 합의한 데 이어 지난  8월 20일 폴란드와 요격미사일 10기를 폴란드에 배치하는 내용의 미사일방어(MD) 기지협정에 서명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이날 MD 협정에 공식 서명했다.
라이스 장관은 “MD 협정은 미국과 동맹국 방어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러시아는 이에 대해 “미국의 목적은 러시아의 핵 능력을 무력화하고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시리아에 미사일 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지난 8월 21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러시아 미사일 기지를 시리아에 유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루지야에서 벌이는 미국과 러시아간 신경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와 정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즉각적인 철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그루지야의 주요 거점을 장악하고 있다. 한편 터키 정부는 의료 지원품을 실은 미 해군 함정 2척의 보스포러스해협 통과를 승인했다. 따라서 미국은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해 그루지야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같은 국제정세 불안은 상품 및 외환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