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언론장악 시나리오, 인선개입 드러나나
청·방송위 ‘대책회의’ 탄로나, 야권 “중립성 벗어났다” 비판
▲ 신임 KBS 사장 인선문제로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KBS 전현직 임원들이 만나 ‘대책회의’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정정길 대통령 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서울 시내 호텔에서 비밀리에 가진 ‘대책회의’는 사실상 KBS 사장후보들을 면접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정정길 대통령 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 등이 서울 시내 호텔에서 비밀리에 가진 ‘대책회의’는 사실상 KBS 사장후보들을 면접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 대변인은 지난 8월 22일 “KBS의 공영성 회복 등에 관해 원로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고 정정길 대통령 실장과 저는 정말 듣기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임 참석 경위와 발언 내용에 대한 다른 참석자들의 전언을 종합해보면 이 대변인의 말과 크게 배치된다.
참석자들은 당시 모임이 지난 8월 17일 저녁 7시부터 2시간여 동안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7층 중식당 ‘도원’에서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 호텔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승리 후 초대 내각과 청와대 수석 후보들을 만난 곳일 뿐더러 최시중 위원장 등 핵심 측근들과 자주 회동한 장소다.
이 모임에 참석한 KBS 전직 임원들에 대한 연락 실무는 유재천 이사장이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KBS 사장 임명 제청권자인 유 이사장은 김은구 전 KBS 이사(현 KBS 사우회장) 등 3명에게 각각 연락해 “저녁을 먹자”며 개별 모임처럼 불러 참석케 했다. 모임은 저녁식사 외에는 반주 한 잔을 곁들이는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이들은 말했다. 한 참석자는 “유 이사장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해 나갔더니 약속 장소에 최시중 위원장은 물론 정정길 실장과 이동관 대변인까지 나와 있어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이 전한 모임 발언 내용은 이 모임의 성격을 시사한다. 최 위원장은 참석자들이 모두 도착하자 “KBS 후임 사장 인선이 중요해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려고 여러분들을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 위원장의 발언에 이어 정 실장은 “KBS 문제가 매우 중요하니 다음 사장을 잘 정해야겠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김인규 씨를 사장으로 보내야 했는데, 낙하산 얘기가 하도 많이 나와 힘들어졌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김인규 카드가 무산돼 후임 사장 임명 문제가 시급해졌다.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고 거들었다고 한다. 이 모임이 (KBS 상황과 관련해) 원로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는 이 대변인의 해명이 무색해진다.
참석자들도 당황한 모임
최 위원장과 정 실장, 이 대변인의 발언 후 모임은 유 이사장이 주도했다. KBS 상황 및 새 사장 인선 문제에 대해 사회를 보듯 대화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은 “그날 KBS 이사장의 처신을 보고 놀랐다”며 “청와대 인사들이 전직 임원 3명에 대해 인상도 보고 견해를 물으며 사실상 면접을 보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은구 KBS 전 이사는 “KBS 사우회에도 인재들이 많은데 원로들은 이번에 신청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한 뒤 시종일관 말을 아꼈다고 한다. 최동호 육아TV 회장은 “KBS 사장은 국민 대다수가 수긍하는 더 젊고 활기찬 사람이 적합하다”고 의견을 냈고, 박흥수 강원정보영상진흥원장은 “KBS 사장은 사회통합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명백한 청와대 개입’ 비판 피하기 어려워 ▲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사실상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장이 KBS 후임 사장 인선을 진두지휘하고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청와대의 KBS 사장 인선개입이 드러난 것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사실상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장이 KBS 후임 사장 인선을 진두지휘하고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8월 2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통합방송법은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이사회가 KBS사장의 임명을 제청하면 대통령은 이를 임명만 하게 돼 있다”면서 “청와대 관계자들과 방송통신위원장이 KBS사장 인선을 논의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찰 일”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시대착오적이고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를 그만 두고 통합방송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차질 없이 법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도 “방송법에 따라 KBS 이사들과 협의해 독립적인 후보제청권을 행사해야 할 이사장이 대통령실장, 청와대 대변인 등과 함께 KBS 새 사장 인선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이러려고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켰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특히 “유력한 KBS사장 후보인 김은구 전 이사까지 참석해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다”며 “청와대는 즉각 사과하고 KBS 사장 선임문제에 개입을 시도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도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 KBS 이사회가 손발을 걷어붙여 공영방송 관제화의 한 길로 달려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 대변인은 “당시 참석자들은 김은구 전 이사에게 낙점 사실을 알리고, 축배를 들었을 것”이라면서 “김은구 씨가 지난 8월 25일 KBS 신임사장으로 결정되는 것이 최종 확인되면 온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사유화를 기념하기 위해 촛불을 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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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KBS 사장 선임문제는 방송법에 따라 KBS 이사들과 협의해 독립적인 후보제청권을 행사해야 할 이사장이 대통령실장, 청와대 대변인 등과 함께 KBS 새 사장 인선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청와대 “의견수렴이었다” 야당 주장 일축
청와대는 “이들이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의견수렴 차원이었을 뿐”이라고 야당의 주장을 일축하면서 진화에 주력했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전략적 활용을 경계하는 등 촉각을 기울였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저를 포함해) 정정길 실장 등이 유 이사장 및 KBS 전직 원로들을 만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어디까지나 KBS 공영방송을 위한 독립성·공정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와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의견을 들으러 간 자리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하지만 누가 후임이 돼야 한다는 등의 인선 얘기는 전혀 없었다”며 KBS 방향과 경영 개선을 위한 의견에 경청만 했다며 청와대 개입설을 부인했다.민주당은 이에 대해 역시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가 확인된 것이라며 격앙된 분위기를 보였다.
민주당 언론장악음모저지본부 최문순 의원은 “애초부터 예견됐던 일이며 시작부터 청와대에서 총괄지휘했다는 증거로, 최종적으론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이라며 “좀더 사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퇴진은 이미 요구했으니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유재천 이사장의 퇴진 여부를 포함해 원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최재성 대변인은 “KBS를 장악하기 위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어 왔음이 확인된 것”이라며 “분명히 책임소재를 물어야 될 사안이며, (참석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자초지종을 몰라 뭐라 말하긴 이르다”고 했고, 조윤선 대변인은 “KBS 사장 인선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하면 된다”고 했다.
대책회의 참석자들 어떤 인물인가 조선·중앙·동아일보를 상대로 한 ‘광고중단 운동’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구본진 부장검사)은 다음 카페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개설자 이모 씨와 운영진 양모씨 등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중앙지법 김용상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들은 주도적 역할을 했던 만큼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사유를 밝혔다.
한편 이번 논란이 된 호텔 모임에 참석한 KBS 출신 3인은 모두 김영삼 정부 시절 KBS 임원이나 KBS 이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으로 시끄러워진 KBS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후임으로 KBS 출신을 물색한 것. 더불어 KBS에 대한 의견도 들을 수 있는데다 사실상의 면접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은구 KBS 사우회장(70·전 KBS 이사)과 박흥수 강원정보영상진흥원장(72)은 사장 공모 직전까지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력한 KBS 사장 후보로 거론되어 왔던 인물들. 낙하산 인사로 비판을 받아왔던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 방송전략실장 출신인 김인규 씨의 대체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최동호 육아TV 회장(69)은 사장 후보로 두드러지게 거론된 적이 없다.
3명 가운데 김은구 씨만 사장 지원을 했고, 서류 심사로 추려진 5명에 포함돼 ‘사전내정설’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KBS에서는 김인규 씨가 자신과 절친한 김 씨를 사장 후보로 천거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김 씨는 보도본부 기자 출신들의 모임인 ‘여맥회’와 퇴직 사우 모임인 ‘KBS사우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박흥수 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오인환 공보처 장관과의 친분으로 KBS 이사와 EBS 사장을 맡았다. 코리아타임즈 기자를 거친 언론학자(연세대 신방과 교수)다. 같은 강원 춘천 출신인 한승수 국무총리와 절친한 사이다. 현재 강원정보영상진흥원장으로 있으며 고향에 거주하고 있다. 최동호 씨는 오랫동안 KBS ‘뉴스9’의 앵커를 맡은 뒤 보도본부장을 거쳐 1994년부터 97년까지 KBS 부사장을 지냈다. 이후 세종대로 옮겨 언론홍보대학원장, 세종사이버대 총장 등을 지냈다.
‘광고중단운동’ 네티즌 2명 구속
법원 측은 “피의자들의 행위는 광고주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호소하고 설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광고주들의 상품 주문과 영업상담 등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할 지경에 못하게 하는 등 자유로운 영업활동과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한 것으로 통상적인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모 씨 등 영장이 청구됐던 나머지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은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카페 개설자 이 씨는 자신의 카페와 관련 사이트 등에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에 광고를 낸 업체들의 리스트를 수십 회에 걸쳐 게재하고 네티즌들에게 항의 전화를 독려하는 글을 700회 이상 올리는 등 광고 중단 운동을 주도한 혐의다. 양씨는 다음이 당국의 요청에 따라 광고주 리스트 글을 올릴 수 없도록 조치하자 구글에 광고주 리스트를 지속적으로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외에 다른 운영진과 광고 중단 운동에 활발히 참여한 네티즌들도 위법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불구속기소하는 등 사법처리를 확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