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거위’ 실버산업, 한국 아직은 ‘회색빛’
한국 노인의 경제력은 ‘美·日’의 3분의 1, 선진국 수준 되려면 20년은 더 있어야
▲ 정부 보고서는 ‘한국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듦에 따라 실버산업이 급성장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인들의 수’가 아니라, ‘노인들의 소득’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의 경우, 60세 이상 노인이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75%를 보유하고 있다. 쉽게 말해 일본의 고령층은 부자라는 뜻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실버산업은 선진국의 예로 볼 때 국민소득이 3만 달러는 되어야 성장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의 수’가 아닌 ‘소득’이 중요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자의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금융자산(2006년 기준 1,521조 원)의 20%로 미국이나 일본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부산하게 일고 있다. 서비스산업, 로봇산업, 바이오산업, 실버산업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이 가운데 실버산업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정부 연구기관의 진단이다. 세계에서 노인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148조 실버시장(2020년) 전망은 현실감이 떨어진 탁상공론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실버시장 규모가 향후 10년 동안 5조~10조 원 수준에 머물 전망이며, 시장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앞으로 20년은 더 지나야 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정부 보고서는 일본과 미국을 예로 들며 ‘한국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듦에 따라 실버산업이 급성장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올해 전체 인구의 10%선에서 2018년 14%로 높아지고, 2026년에는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정부는 이처럼 노인 수가 많아지면 실버상품도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인들의 수’가 아니라, ‘노인들의 소득’이라는 지적이다. 실버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일본의 경우, 60세 이상 노인이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75%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은 50세 이상이 전체 금융자산의 77% 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쉽게 말해 일본과 미국의 고령층은 부자라는 뜻이다. 실버 비즈니스가 두 나라에서 번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실버산업은 선진국의 예로 볼 때 국민소득이 3만 달러는 되어야 성장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日, 노인 절반이 월 20만~35만 엔 연금 받는다
일본은 노인 천국이다. 65세 이상 노인 수가 2,6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에 달한다. 노인이 많다 보니 전국 곳곳에 노인 쇼핑센터와 노인 거리가 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노인용품이 숱하게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일본은 전체 개인금융자산(1,700조 엔)의 75%를 60세 이상 고령자가 보유할 정도로 노인이 부자인 나라이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상속 문화도 우리나라보다 약하다. 나를 위해 먼저 돈을 쓴 다음에 돈이 남으면 그때 자녀에게 준다. 일본 노인들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외제 자동차를 구입하고, 해외여행을 자주 즐기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안정된 연금제도도 노인들의 생활을 풍족하게 해준다. 30~4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한 다음 퇴직을 할 경우, 매월 20만~35만 엔 정도의 연금을 받는다. 일본에선 이 정도의 연금을 받는 노인이 전체 노인의 50%에 달한다. 연금이 이처럼 충실한 데다, 보유 재산까지 많다 보니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겨냥한 실버산업이 번성하는 것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일본과 한국은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너무 다르다”면서 “일본시장을 고려하여 한국의 실버시장의 미래를 예측한다면 실수투성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세청 소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32%는 금융자산은 물론이고 소득이 한 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빈곤선에서 허덕이다 보니 병원도 못 가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시범사업을 진행한 결과, 노인들의 50%가 월 10만~12만 원의 돈도 못 내 요양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이 없는 한국의 고령층
이러한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의 노인들은 너무 가난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금융자산 분포도에서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고령자가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은 전체 개인금융자산(2006년 1,521조 원)의 20%에 불과하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한국 노인의 경제력은 일본과 미국 노인들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것이 한국에서 실버산업이 뜨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국세청 조사도 비슷하다. 국세청 소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32%는 금융자산은 물론이고 소득이 한 푼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빈곤선에서 허덕이다 보니 병원도 못 가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시범사업을 진행한 결과, 노인들의 50%가 월 10만~12만 원의 돈도 못 내 요양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시행의 파급효과
치매와 중풍 등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한 65세 이상의 노인을 사회 구성원이 함께 돌본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노인장기요양보험서비스가 시행 두달째를 맞고 있다. 아직 공과를 따지기엔 이른 시기지만 일부에선 서비스도 받아보기 전에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에는 서비스의 질이나 비용 등을 문제 삼는 글들이 적잖이 올라오고 있다. 때문에 서비스 대상자로 판정받은 사람들도 즉각 서비스 이용을 신청하기보다 각 시설의 서비스 수준, 비용의 적절성 등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신중을 거듭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오히려 적지 않은 대상자가 시설과 재가 중 어떤 서비스를 받을 지, 어느 시설을 선택할 지 등을 놓고 아직 결정 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일부 이용자들이 제기하는 불만은 아직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는 잘못 알려진 정보와 일부 시설의 위법 의혹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김성이 장관은 특히 기존 노인시설을 이용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비용이 예전보다 오히려 비싸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 요양시설들이 보험 비급여 항목에서 비용을 과다 청구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각 지자체가 단속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예컨대 실비만 받도록 한 하루 식대가 1만 원을 넘어간다거나 침실 이용료가 평균보다 비싸다는 민원이 제기된 곳은 실사 과정을 거쳐 과태료 부과 등을 통해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또 장기요양보험 민원상황실을 설치해 운영하면서 건강보험공단 민원대책반과 협조해 민원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시·군·구 위주로 현지 실사를 하기로 했다.
실버비즈니스가 대부분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그치고 있는데 비해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인해 실버산업의 구체적인 시장으로 기대되는 것이 바로 요양산업이다. 요양산업은 아픈 고령자들을 보살피고, 이들에게 필요한 복지용구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다. 지금까지 이 시장은 민간시장으로 존재해왔으나, 지난 7월부터 시작되어 시행 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따라 정부가 대금 지급을 보장하는 ‘확실한 실버시장’으로 바뀐다. 문제는 장기요양보험 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커지느냐이다. 실버산업 종사자들은 노인 증가에 따라 요양보험 수혜자들이 급증할 것으로 기대하나, 전문가들은 이런 전망에 부정적이다. 우리나라 국고(國庫)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선우덕 박사는 “독일과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보험 수혜자의 범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해 갈 것으로 본다”면서 “요양보험이 도입됐다고 해서 실버시장이 급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실버타운이 고전하는 이유
실버산업 가운데 현재 비즈니스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주택산업이다. 실버타운 건설과 농촌전원마을 조성사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버타운은 주택 한 채당 2억~6억 원의 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건설회사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실버타운 업계는 크게 고전하고 있다. 90년대 말 이후 30여 개의 실버타운이 생겼으나 대부분 망했다. 수억 원에 달하는 입주금도 큰 부담이지만, 집을 떠나 실버타운에서 살려는 노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노블카운티 이호갑 상무는 “수요가 별로 없다 보니 실버타운 대부분이 입주자 부족으로 적자경영을 하고 있다”면서 “값싼 실버용품은 모르지만, 수억 원을 호가하는 실버타운 분양 사업은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중국제품이 휩쓰는 실버제조업도 문제
국내 실버박람회에 가보면 침대, 휠체어, 지팡이, 목욕용품 등이 전시 매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한편에서 장묘업체들이 납골당 분양홍보를 하고, 식품업체들이 건강 드링크를 팔고 있다. 실버 로봇, 고령자용 자동차 등 고가의 첨단제품이 번쩍이는 미국과 일본의 실버박람회와는 딴판이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실버업체 대부분이 자본금 10억 원 미만의 영세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연구투자비를 넉넉하게 쓸 수 없고, 그래서 제품의 질도 고만고만하다. 고령친화용품산업협회 이규연 회장은 “시장 규모가 열악한 상태에서 고가품 시장은 일본 업체가, 저가품 시장은 중국 업체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국내업체 대부분이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정부가 실버산업에 관심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신규 고용 창출 효과 때문이다. 정부 예측에 따르면, 실버산업 취업자는 2020년 6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는 “실버시장 성장세를 과대 추정한 결과, 고용 창출 규모를 너무 낙관적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일부 업종에서 인력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요양산업이 그런 분야이다. 일본의 경우, 젊은이들이 일은 힘들고 임금은 낮다는 이유로 요양산업 취업을 기피해 산업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일본 요양업계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일할 사람을 수입해다 쓰고 있다. 한국도 머지않아 이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노인수발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
사업성과 별개로 기업이 사회적 효(孝)를 실천한다는 취지로 대기업이 선두로 노인수발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보령그룹은 사회복지재단 운영을 위한 수익사업으로 노인수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솔고바이오메디칼은 전동침대와 같은 장기요양용품을 전문으로 빌려주는 렌털회사를 세웠다. 빙그레는 최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식사를 배달해주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일본 노인식사 배달 시장 1위 회사인 엑스빈과 제휴해 올 하반기(7∼12월)에 노인 개개인별로 칼로리와 건강상태를 고려한 식사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다.
조용국 빙그레 홍보팀장은 “기존 노인식사 배달 서비스는 단순한 도시락 배달에 그쳤다”며 “식사 배달을 통해 노인들의 건강과 안부를 확인하는 돌봄 서비스도 같이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 실시로 노년층의 구매력이 더욱 커진 만큼 대기업들도 노인수발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폐지를 줍는 노인 대부분은 고령으로 인한 신체능력저하와 판단력 부족으로 차도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교통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사회복지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급자가 되어야할 노인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길거리로 내몰리는 상황. 요즘 곳곳에서 폐휴지를 모아 손수레나 리어커를 끄는 노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출근길 아침에도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파지를 가득 실은 포대를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의 한 고물상. 백발이 성성한 80대의 할머니가 짐이 가득 실린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왔다. 신문지와 빈종이 박스, 하얀 철제 대야가 할머니 키만큼 높다랗게 쌓여 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할머니가 모아온 폐지의 가격은 kg당 160원이다. 두툼하게 수레를 가득 채웠지만 정작 무게는 얼마 안 된다. 그나마 백철은 시세가 좋아 1,500원(kg당)을 받는다. 계산이 끝난 노인들은 빈수레를 끌며 또다시 거리로 향한다. 고물상 주인은 “요즘에는 폐지를 모아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아졌다. 작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하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도 휴일에 신문을 묶어오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고물가시대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노인들이 이른 새벽부터 거리로 나서지만 ‘폐지시장’에도 불경기가 불어 닥치고 있다. 폐지량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줍는 사람들이 늘면서 벌이는 시원찮아졌다. 2년째 폐지를 줍고 있다는 김모(68) 할머니는 “예전에는 폐지를 줍는다고 불쌍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요즘엔 자기들이 수레를 끌고 다닌다”며 “지난해에는 하루 3, 4시간만 돌면 수레를 어느 정도 채웠는데, 올 들어서는 하루 종일 헤매고 다녀도 폐지가 모이질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급기야 지난달부터는 새벽 2시에 거리를 나선다. “가요방이나 술집에서 나오는 파지나 알루미늄 깡통을 차지하려면 일찍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하루 버는 돈은 1만 5천 원 정도. 이마저도 일정치는 않다고 했다. 할머니는 폐지를 주우려는 ‘경쟁자’들이 늘면서 단골 확보에 나섰다. 자주 들러 안면을 익힌 뒤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당부 하고 가끔씩 가게 주위를 청소 해주고 폐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인심도 각박해지고 있다. 무료로 폐지를 건네주던 가게나 사무실도 확 줄었다. 이렇게 노인들이 반나절을 돌고 신문 50kg을 가져와 받는 돈은 1만 원 정도. 정보지는 든든한 돈벌이가 되다 보니 노인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돌린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은 "물가는 오르는데, 나이가 들어 일을 할 수 없으니 폐지라도 주워야 먹고살 수 있다"고 말했다. 10월에 노인의 날이 들어서인지, 노인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넘친다. 올 7월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48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9.9%라는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보니 10년 후에는 노인 수가 14세 이하 어린이 수보다 많아진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