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저출산 현상
2004-03-31 시사매거진
70, 80년대 예비군훈련장에선 늘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됐다. 훈련시작 전 누군가가 나와 정관수술을 권유하면서 훈련을 면제해준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상당수의 지원자가 나왔고 이들은 수술을 받기 위해 곧바로 훈련장을 떠났다. ‘가족계획’으로 불리던 정부의 출산억제정책 중 하나였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다소 거친 표어로 시작된 인구억제정책은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이라는 공포로 이어졌다. 그만큼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에서 인구증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세계 최저 출산국가로 떠올라
“산모에게 최대 100만원의 출산 장려금을 드립니다.” 오효진 충북 청원군수가 2002년 7월 취임 직후 직접 아이디어를 내 전 국 최초로 펼친 출산장려 정책이다. 충북 청원군이 군내 곳곳에 내건 홍보물은 달라진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청원군은 지난 1월1일부터 아기를 낳은 여성 주민한테 100만원 상당의 육아용품과 현금을 주고 있다.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져 군 인구가 감소하자 고심 끝에 내놓은 출산장려책이다.
모든 산모에게 35만원 상당의 육아용품을 제공하고, 특히 전업농 출산여성에게는 농사일을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하는데 따른 인건비조로 65만원을 보조해준다. 청원군은 “올해 출산장려금으로 2억6천만원의 예산을 배정해놓았는데, ‘아, 이런 일도 있구나’하면서 많은 산모들이 출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청주시에 주민등록을 해놓은 주민들이 다시 우리 군으로 옮기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40여년간 이어져 오던 정부의 출산 억제 정책이 최근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출산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1960년대 “세 자녀만 낳자”에서 70년대 “두 자녀만 낳자”는 운동으로 바뀌더니 80년대 들어서면서 “아들 딸 구별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운동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한국 사회가 이제는 출산율 1.17명의 세계 최저 출산국가라는 다소 걱정스러운 이름표를 하나 달게 된 것이다.
저출산현상 ‘설마한 일이 현실로’
우리나라의 저출산현상은 한눈에 수치로 나타난다. 가임(可姙)여성(14∼49살) 1명이 평생 낳는 아이는 지난해 기준으로 1.30명으로 집계됐다. 1950년대 5.4명에서 1990년대 들어 1.5명으로 뚝 떨어졌다. 지난 2001년에는 1.3명으로 더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의 평균출산율(1.7명)보다 낮다. 유·소년인구(1∼14살)는 1970년 전체인구의 42.5%에서 1990년 25.6%, 2000년 21.1%로 30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 1.30명의 출산률은 미국(2.13명)은 물론 출산장려금까지 지급하고 있는 프랑스(1.89명)보다 훨씬 적었다. 비슷한 문화권인 일본(1.33명)과 엇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1개국 가운데 체코(1.14명) 이탈리아(1.25명) 스페인(1.22명)에 이어 하위 4위를 차지했다.
통계청 이춘석(李春錫) 인구분석 과장은 “지난해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26.8세로 선진국들보다 늦은 데다 사회적으로도 맞벌이부부가 늘고 주택 육아문제도 쉽지 않아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목할 점은 감소의 ‘속도’. 한 사회가 인구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구대체출산율은 2.1명으로, 가임여성 한명이 2명 정도를 낳아야 인구가 줄지도 늘지도 않는 정체상태로 간다. 우리나라가 이 수준에 도달한 것은 1985년. 당시만 해도 정부는 저출산속도를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아들 선호경향이 유지되는 한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누구나 결혼하고 아이를 2명 이상 낳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속에 설마 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건사회연구원 김성근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많이 죽고 많이 태어나는 단계에서 덜 낳고 적게 죽는 단계로 인구가 전환되는 데 걸린 기간은 25년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빨리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설마한 일이 어느새 현실로 닥친 것이다.
미혼남녀 “장려금줘도 더 안낳겠다”
정부가 출산장려금 제도를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미혼 남녀 절반 이상은 장려금을 주더라도 자녀를 더 낳지 않을 생각인 것으로 조사됐다. 결혼정보제공업체 듀오가 인터넷을 통해 미혼 남녀 491명을 상대로 자녀 출산계획을 설문조사한 결과, 출산장려금을 지원해도 남성의 60.8%는 아이를 더 낳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여성의 경우도 51.7%가 출산을 원치 않는다고 답해 미혼 남녀 모두 육아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미혼 남녀는 결혼 후 평균 1.74명의 자녀를 갖고 싶다고 답변했다. 응답자 가운데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남성은 한명도 없었던 반면 여성은 6.3%를 기록했다.’1명 낳겠다’는 대답이 전체 응답자의 29.7%,’2명 낳겠다’는 대답은 57.2%였다.
‘이상적인 자녀 수’에 대해서는 1명이 12.6%, 2명이 74.1% 등 평균 2.02명으로 출산계획 자녀 수보다 약간 많았다. 첫 아이를 낳는 시기로는 전체 응답자의 62.9%가 결혼 후 1~2년 사이라고 답했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방법에 대한 질문에는 60.1%가 여성이 육아휴직을 하고 키우겠다고 응답했다.
“아이를 하나만 가질 경우 아들과 딸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 는 질문에 대해서는’아들을 원한다’는 응답이 36.9%,’딸을 원한다’는 쪽은 9.4%였으며, 나머지 53.7%는 ‘둘 다 상관없다’고 답했다. 아들을 원한다는 비율은 남녀 응답자 각각 36.5%와 37.1%로 비슷했으나 딸을 희망한 경우는 남성이 13.7%로 여성 응답자 7.3%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아들을 원하는 이유로 응답자들은 가문승계, 아들을 통한 대리만족, 시부모의 압력 등을 들었 고, 딸을 원한 이유로는 예쁘게 키우고 싶은 욕구, 딸들의 부모 에 대한 강한 애착 등을 꼽았다.
물론 출산율이 낮아졌음에도 평균수명 연장에 따라 전체인구 수는 여전히 늘고 있다. 인구대체출산율 도달 이후 인구성장이 정지될 때까지는 보통 60년이 걸린다. 문제는 인구 수가 아니라 젊은층과 노인층의 비율, 생산가능인구 비율 등 이른바 ‘인구구조’다. 지금의 경제규모와 산업구조를 그대로 끌고 가려면 적정한 생산인력이 유지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저출산은 젊은 노동력의 감소를 낳고, 이는 성장잠재력을 위협한다.
고령화 사회 … 국가경제 위협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라는 경제학자는 1798년 ‘인구론’이라는 유명한 책을 발표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말로 유명하다. 이 같은 맬서스의 주장은 당시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맬서스의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0년에 전체인구 가운데 71.7%(3300만명)인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2016년을 고비로 감소세로 돌아선다. 2050년에는 2400만명으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늘더라도, 저출산에 따라 생산가능인구조차 중·노년층을 중심으로 고령화된다. 젊은 사람이 줄어들고 사회가 늙어가면 생산성과 성장률이 떨어지게 마련.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연구위원은 “인구규모가 경제력과 직접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적정한 수준의 출산율이 역동적인 젊은 인력들을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에 기여해왔다”고 말했다. 수출과 함께 한국경제 성장의 한 축을 이루는 소비측면을 보더라도 소비를 주도하는 젊은층 감소는 성장의 장애로 작용한다. 그만큼 출산은 세대를 잇는 인류의 지속뿐 아니라 ‘생산’이란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띤다.
저출산은 또 고령화사회를 낳는다. 우리나라 인구의 고령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이 2000년 7.2%에서 2019년 14.4%에 달하고 2026년엔 20%에 이를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한다.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으면 고령 사회로 평가받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노인인구 가 많은 프랑스는 준고령 사회에서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데 걸린 기간이 무려 115년에 달했다. 우리나라는 프랑스보다 5배 가량 ‘압축성장’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를 잉태한다. 우선 노인부양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노인을 부양하는 비율은 젊은이 9명 중 1명 꼴이다. 그러나 2019년엔 노인인구를 생산연령 인구로 나눈 노인 부양비율이 4명 중 1명 꼴로 높아질 전망이다. 노인인구가 많아지면 젊은이들이 돈을 벌어 노부모를 부양해야 하는데, 경제성장이 정체되면서 실업률은 높아져 가계 부실 문제가 골칫거리로 남게 된다.
국민연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국민연금 수령액은 줄어들고 국민연금 보험료는 점차 오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민연금기금 재정 안정을 위해 국민 연금 수급액을 현재 소득의 60%에서 50%로 낮추고 보험료는 9%에서 15.95%로 높일 예정이다. 만약 국민연금 수급액과 보험료를 현행대로 유지하면 2047년에 바닥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정부는 노인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엄청난 재정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13년만에 통합 재정수지를 흑자로 만들었으나, 다시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부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다. 일반 국민들도 지출이 많아져 저축률은 낮아지고 투자도 줄어 경제성장률은 선진국처럼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되는 등 이와같은 문제를 양산하게 된다.
정부 인구정책 전환 모색 시급
그동안의 우리나라의 인구억제정책에는 ‘과도한’출산이 오히려 경제발전을 해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충분한 일자리는 없고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 아이가 크면 나중에 생산인력이 되겠지만 그때까지 사회적 복지부담이 증가하고, 국가재원이 산업화에 제대로 투자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강력한 가족계획사업을 벌여온 정부는 1996년 인구억제정책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뗐다. 가족계획사업을 접고 대신 ‘엄마 젖은 건강한 다음 세대를 위한 약속’이란 슬로건을 내세운 모자보건정책으로 이동한 것이다.
저출산시대의 도래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출산율이 떨어지지만 우리나라의 국토면적, 경제력, 통일시대 등을 고려해 적정한 인구규모와 인구구조에 대한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아직 조심스러워했다. 그러나 출산장려쪽으로 인구정책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출산장려책으로는 아이를 많이 나을수록 △출산 보조수당과 아동양육 보조수당을 주고 △부양가족 세액공제로 세금을 깎아주고 △교육비 경감혜택과 주택청약 우선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돈으로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은 금방 한계를 드러낸다. 수당을 바라고 아이를 낳는 부부가 몇명이나 되겠는가. 최근 둘째를 낳아 청원군으로부터 육아용품을 제공받은 김아무개(31)씨는 “친구들이 농담조로 ‘군청에서 지원해주니까 하나 더 낳아도 되겠네’라고 말들 하지만 보육비와 교육비까지 지속적으로 제공돼야 진짜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산수당 등 직접적 지원은 정부의 의지 과시에 지나지 않을 뿐 실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시백 교수는 “출산장려 운운하는 건 지금의 저출산에 대한 과잉 우려에서 비롯한 것이다. 돈을 앞세운 출산장려책을 펴면 가장 예민하게 영향받아 출산을 늘릴 집단은 저소득층이다. 그러면 이들 자녀가 생산가능인구로 성장할 때까지 사회의 양육부담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프랑스 등에서 출산·육아 수당을 주지만 모든 출산여성한테 주는 게 아니고 키울 능력이 부족한 여성 또는 가정에만 지원해준다”고 덧붙였다. 출산·육아 수당 지급제도가 출산율을 높이려는 인구정책보다는 아이의 건강이란 복지정책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여성을 위한 복지시스템 마련 절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출산율을 다시 높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문제는 아기를 갖고 싶어도 꺼리게 되는 현실이다. 태부족인 보육시설은 여성의 사회참여를 가로막고, 출산은 곧 지나치게 높은 보육·교육비를 요구한다. 오죽하면 최근의 저출산을 놓고 ‘아이 키우기를 여성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에 대한 복수’이자 ‘ 출산파업’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결국 저출산 대책은 육아와 교육 등 사회복지 시스템 강화와 여성(또는 가정)의 가치관 변화라는 두 가지에 맞춰진다. 둘은 서로 맞물려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쪽은 “출산장려지원금이 한계를 안고 있는 만큼 여성들한테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자는 내용의 홍보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정한 생산인구의 유지 등 출산의 사회경제적 기능을 알리고, ‘아이 키우다 보면 나(또는 부부)의 삶이 희생당한다’는 의식 대신 사회적 책임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출산율 1.3명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가임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인 만큼 결혼여성은 보통 2명 이상을 낳는다고 볼 수 있다. 늦게 결혼하거나 독신으로 사는 여성의 증가로 출산율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출산의 원인으로 주로 지목되는 쪽은 가정보다는 여성이다. 그러나 직장보육시설을 비롯한 복지 시스템의 빈곤에다 막대한 사교육비라는 현실적 조건을 그대로 둔 채 의식 전환은 불가능하다. 둘 이상 낳으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는 시각도 이런 조건에서 형성된 것이다. 최근 첫 애를 낳은 유아무개(30)씨는 “아이 키우려면 직장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남의 집에 맡겨야 한다. 키우고 나서 직장에 복귀하려면 이미 나이들어 받아주는 곳이 없다. 아이 키우려면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삶을 즐길 기회를 빼앗기지 않느냐”고 말했다.
여기에 낙태와 호주제도, 고용지위 등 여성의 출산권과 모성권, 노동권을 신장시키는 법제도의 개혁이 포함되고, 모성정책을 받쳐줄 철학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성은 단지 여자의 기능이라는 가치관을 유지한 채 사회적 분담을 강조하는 모성정책이란 모순적이다.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모성의 가치를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몇 명이나 정책의 필요성에 설득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