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 명단 발표, 역사 복원인가 자학인가

안익태, 최승희, 장지연 등 추가로 논란 끊이지 않아…과거사 청산의 시작인가

2008-06-05     신혜영 기자

   
▲ 지난 4월 29일 2차 친일인명사전 4,776명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지난 2005년 8월 1차 발표에서 거론된 박정희, 방응모, 김활란, 홍난파를 비롯해 시인 박팔양, ‘선구자’의 윤해영,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친일인명사전은 구한말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으로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된다.
사전에 수록된 친일 인물들은 ▲조약체결 등 매국 행위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자 등 민족반역자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 식민 지배의 하수인 노릇을 했거나 침략전쟁을 미화, 선전한 문화예술인 등 부일협력자 등 두 부류로 나뉜다. 편찬위가 채택한 친일파에 대한 정의는 ‘을사조약(1905)’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물리적·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사람을 말한다.
분야별로 매국인사 21명, 수작·습작 138명, 중추원 335명, 일본제국의회 11명, 관료 1,207명, 경찰 880명, 군 387명, 사법 228명, 친일단체 484명, 종교 202명, 문화예술 174명, 교육학술 62명, 언론출판 44명, 경제 55명, 지역 유력자 69명, 해외 910명 등 5,207명(중복자 포함)이다.

안익태, 최승희, 윤해영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 대거 포함
민족문제연구소(임헌영 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윤경로 위원장/이하 편찬위)는 지난 2005년 8월 1차 발표에서 거론된 박정희, 방응모, 김활란, 홍난파를 비롯해 시인 박팔양, ‘선구자’의 윤해영,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와 조택원, 가곡 ‘가고파’ ‘목련화’ 등을 작곡한 김동진,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 ‘고향의 봄’을 지은 아동 문학가 이원수, 애수의 소야곡 가수 남인수,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지은 작곡가 박시춘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또 교육학술 분야와 해외 친일인사인 조선독립신문 윤익선 사장, 현상윤 전 고려대 총장, 고승제 전 서울 상대 교수, 3선의 서범석 전 의원, 고재필 전 보건사회부 장관, 진의종, 신현확 전 국무총리,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장지연 선생 등 문화예술계 1,686명의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장지연 선생의 경우 주필로 있던 경남일보 1911년 11월 2일자에 천장절(메이지천황 생일기념일)을 축하하는 한시와 일장기를 싣고 경축행사를 주관했으면 1909년에는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이또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기 때문에 친일 인사에 포함되었다. 안익태의 경우 일본 천황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하고, 나치 독일에서 ‘일독회’란 친 나치 단체에 가담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명단에 포함되자 일각에서는 ‘애국가’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앞으로 논란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익태기념재단의 김윤경 사무국장은 “당시 본인 선택과 상관없이 국적을 잃은 안 선생은 일본인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승희는 10여 회에 걸쳐 국방헌금 7만여 원의 국방헌금을 헌납하고 일본 군부대 공연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포함되었다. 그러나 최승희 추모사업회의 김홍배 회장은 “최 선생이 일본 군용비를 냈다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는데, 당시 홍천군 남면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며 “무용을 통해 조선을 알리고, 조선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 그를 친일행위자로 선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최승희 추모사업회는 친일인명사전에서 최승희를 빼달라는 홍천군 남면 주민 1,5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민족문제연구소에 최근 이의신청을 냈다.
또한 일본 군수성 총동원국 군수관리관보 출신으로 박정희 사후 5공화국 출범 전까지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과 이원수의 경우 일본군 지원병 칭송시를 쓴 게 드러났다. 신현확 전 총리의 아들인 신철식 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아버지가 일본 관료로 근무했다는 단편적인 면만 봤지 실제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며 “일단 이의 신청을 한 뒤 잘못된 내용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명단에는 해외에서 활동한 친일인물이 대거 포함되었다. 주로 만주, 러시아, 일본, 중국관내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 중 만주지역에서 친일인물이 대거 포함됐다.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던 만주는 일제가 항일세력 탄압을 위해 보민회, 간도협조회, 훈춘정의단, 간도특설대 등의 ‘토벌대’를 운용한 곳으로 윤상필과 윤익선, 염창섭과 같이 토벌대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이 2차 친일명사에 다수 포함됐다. 1934년 일제가 만주에 식민통치국가인 만주국을 세우면서 만주국의 관료와 경찰로 활동한 친일 인사들도 많이 포함됐다. 일본의 경우 재일조선인 권일을 비롯해 재일조선인사회를 중심으로 재일거류민단 중앙총본부 단장이었던 권혁주와 같은 친일단체의 핵심간부들이 선정되었다. 중국관내에서 조선여성을 전쟁에 동원하는데 적극 협조한 중국내 군위안소 경영자들이 반인륜적 전쟁범죄자로 친일 명단에 포함됐다.
그러나 시인 유치환은 국내 및 만주 전문가들의 심의가 진행 중이란 이유로 이번 명단에서는 빠졌다. 친일 경력이 드러났거나 친일 의혹이 제기된 신기남, 김희선 통합민주당 의원의 부친은 1차에 이어 2차 발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신 의원 부친은 일제 헌병 오장(하사관)을 지낸 사실이 확인됐고, 김 의원 부친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특무(경찰)로 있으면서 독립지사들을 체포해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반면 당사자·유족·후학들의 참회가 이어지기도 했다. 하동·창녕 군수를 지낸 이항녕은 “적어도 고등관 이상의 관리는 친일파”라며 “일제 청산은 부역자들의 사죄가 앞서야 한다”고 반성했다. 전남 화순군수 등을 지낸 현석호 역시 “나는 일정 때 고급관리로서 협력한 친일파”라고 고백했다.
파인 김동환의 아들 김영식씨는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사죄했다. 한용수·한창수·한상용의 후손 한진규씨는 2005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발표 후 “조상들의 업적과 함께 친일행동도 후손이 책임지는 것으로 한국사회를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갖는다”고 밝혔다. 한용수·한창수·한상용의 후손인 한진규(25) 씨도 1차 명단 발표 후 민족문제연구소에 이메일을 보내 사죄의 뜻을 밝히고 “작지만 용기 있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한국사회는 조금씩 바뀌어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격려를 전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 매국노 : 이완용(경술국적), 송병준(정미칠적), 이지용(을사오적) 등 21명
■ 수작·습작 : 박영효(후작), 민영린(백작), 고희경(습작), 송종헌(습작) 등 138명
■ 중추원 : 민병석, 윤치호 등 335명
■ 일본제국회의 : 김명준(귀족원의원), 박중양(귀족원의원), 박춘금(중의원의원) 등 11명
■ 일제관료 : 이두환(도장관), 김대우(도지사), 손영목(도지사), 계응규, 윤길중 등 1,207명
■ 경찰 : 노덕술(경사·경부), 홍순봉(경사·경부), 하판락(고등경찰) 등 880명
■ 군 : 어담(장교), 홍사익(장교), 감창룡(헌병), 최윤주(헌병) 등 387명
■ 판·검사 : 민복기, 조용순 등 228명
■ 친일단체 : 선우순, 이용구 등 484명
■ 종교 : 갈홍기(개신교), 노기남(가톨릭), 이종욱(불교), 신용구(천도교), 정만조(유림) 등 202명
■ 문화예술 : 서정주(문학), 이광수(문학), 홍난파(음악무용), 현제명(음악무용), 김은호(미술), 심형구(미술),
   문예봉(연극영화), 유치진(연극영화) 등 174명
■ 교육학술 : 김활란, 백낙준 등 62명
■ 언론출판 : 박희도, 홍양명 등 44명
■ 경제 : 문명기, 박승직 등 55명
■ 지역유력자 : 문재철, 송병문 등 69명
■ 해외 : 박석윤, 윤상필, 이오익, 홍순봉, 손창식, 이학로, 이기동, 엄인섭 등 910명
<전체 4,776명(중복자 포함 5,207명)>

엄격한 증거주의와 객관적인 서술원칙 두고 사전 편찬
1차 명단은 전국적 규모의 국내 중앙 인물과 군 장교를 중심으로 발표했지만, 이번 2차 발표에서는 추가조사에 의해 행적을 보완한 친일 혐의자와 지역유력자, 해외에서 활동한 친일인물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편찬위는 자발성을 가지고 일제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오랫동안 협력했는지 평가했으며, 반복성과 중복성·지속성 여부도 주요 선정기준으로 삼았다.
편찬위는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보다 엄중하게 평가했다”며 “군·경찰·헌병 등 식민통치 폭압기구의 복무자들에게는 보다 가혹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생계형 부일협력자는 뚜렷한 친일 행적이 없으면 제외하되 권력과 부 명예를 좇는 출세형 협력자는 엄중하게 취급했으며 말단의 집행자보다 상급의 지휘 책임을 더 중시했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물 정보의 집적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당시의 공문서·신문·잡지 등 문헌자료를 1차 분석 대상으로 삼았으며, 해방 후의 신문기사·회고록·증언 등은 방증으로 채택했다. 여기에는 조선총독부 관보·직원록 등 관찬사료 23종 200여 권, 매일신보·만선일보 등 신문자료 40여 종, 삼천리·조광 등 친일 잡지·기관지 80여 종, 조선신사록·조선인사록 등 명감류 140여 종, 각 도·시·군지 등 지지(志誌)류 160여 종, 각종 연감·사전류 60여 종, 공훈록 40여 종, 일기·회고록·평전류 1,500여 종 등 총 2,000여 종의 일제강점기 원사료 등 방대한 기초자료가 활용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를 분석, 재정리해 100만여 건에 달하는 인물정보를 구축했고 이를 토대로 2만 5,000건에 이르는 친일혐의자 모집단을 추출, 다시 정밀 분석했으며, 권위 있는 전공자들의 검증을 거쳤다.
친일인명사전은 총론편 1권, 인명편 3권, 부록 3권 등 총 7권으로 구성되며, 이 중 각계가 주목하고 있는 인명편 3권이 우선 오는 8월말 발간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편찬위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지방편해외편) 4권, 식민지통치기구사전 1권, 자료집 4권, 백서 1권 등 총 17권의 친일문제연구총서를 2015년까지 완간할 계획이다.

   
▲ 뉴라이트 코리아 등 4개 보수단체들은 기자회견장에 몰려와 박정희와 안익태 등 일부 인사들이 명단에 포함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항의했다.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이번 명단 발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건국 이후 선진화를 위해 애쓴 인물 사전을 새로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친일 명단 놓고 찬반 입장 팽배, 선정기준 놓고 ‘맞다 아니다’
그러나 일부 후손들은 선정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법적대응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친일 인사로 선정된 주요 인사들의 유족이나 관련단체 등은 “표면적인 것만 갖고 친일파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도 “과거를 의도적으로 후벼 파는 것은 미래를 향하는 발길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도 “반국가적 행위, 우리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폄하하는 자학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편찬위의 윤경로 위원장은 “친일 문제는 대한민국 건국과 동시에 시작됐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친일인명사전 발표는 물론이거니와 더 엄중하고 냉정한 평가로 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선정기준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주의연대 홍진표 사무총장은 지난 5월 1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명단 선정기준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라고 지적하며 “판검사라든지 군수라든지 장교·고등문관 등 일정지위 이상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명단에 넣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하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실제로 더 친일행위를 강하고 가혹하게 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빠지는 결과가 됐다”고 말했다.
또 홍 총장은 이번 명단에서 작곡가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등 문화예술인이 포함된 데 대해 “문화예술인의 경우에도 대체로 당시에 일본 정부와 관련된 어떤 행사에 동원됐다거나 아니면 전쟁과 관련된 어떤 독려하는 글을 썼다거나 이런 대목들을 많이 지적하고 있다”며 “당시에 그 분야에서 실력 있는, 유명한 인사들이 많이 동원됐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익종 연구위원은 “충분한 검토 없이 친일파라는 결과를 내놓으면 심각한 분열과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밝혔다. 이에 진보신당 이지안 부대변인은 “과거사 문제는 정권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 내부의 반성이 전제될 때 일본에 대해서도 과거사 청산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정치현실과 역사인식을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서도 과거사 정리는 필수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친일 인사 기리는 기념관, 행사 놓고 논란 예상
친일 명단이 공개되면서 이 명단에 포함된 친일 인사들을 기리는 각종 행사와 시설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북 고창군은 지난 2001년 10억 5,000만 원을 들여 시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시문학관을 세워 현재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서정주는 대표적인 친일 시인으로 꼽히고 있어 기념관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는 지난 2005년부터 180억 원을 들여 작곡가 홍난파의 생가터에 홍난파자료관과 야외음악당, 공원 등을 갖춘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 또한 비판을 받고 있다.
경남 진주시의 경우 지난 1999년부터 이 곳 출신인 남인수의 이름을 딴 가요제를 열고 있다. 이에 대해 진주시 문화예술 담당자는 “오는 8월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이 확정되는 것을 보고 남인수가요제의 이름 문제를 결정하기로 이미 지역에서 합의돼 있다”고 말했다. 2006년 가을에는 남인수가요제의 명칭이 부적절하다며 한 시민단체가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남인수와 마찬가지로 친일행적이 드러난 대중음악인들의 이름을 딴 경북 성주군의 백년설가요제는 2005년부터, 경남 마산시의 반야월가요제는 2007년 이후 잠정중단 된 상태다. 친일청산 시민행동연대 김영만 위원장은 “오는 8월에 최종 확정되지만 몇 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 사전에 수록될 것으로 예고된 사람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예산이 투입되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4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은 7대 종교 대표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 문제는 국민 화합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리를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한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대통령, “일본 용서했다” 발언에 국민들 어이상실
친인인명사전 명단 발표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은 7대 종교 대표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 문제는 국민 화합 차원에서 봐야 한다”며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정리를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한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장 시절 서정주 시인 후손들이 팔려던 서 시인의 생가를 서울시가 사들여 복원한 사례를 들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시인인데…”라며 “잘못은 잘못대로 보고 공은 공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야당은 거세게 반발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친일 진상규명과 관련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일본과 친일파를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국민에게 그것을 강요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통합민주당 유은혜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우리가 일본을 용서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국민은 용서할 수 없다”며 “실체불명의 ‘이명박식 실용’ 앞에 역사의 진실이 땅에 묻힐 위기에 처하고 국가적 자존심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도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함은 물론, 명단발표로만 그칠 게 아니라 친일행위를 통해 형성한 재산과 기득권에 대한 분명한 조치가 절실하다”며 오히려 정부 협조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위원장인 김원웅 의원도 이 대통령의 역사인식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내고 “과거사청산위원회를 대통령이 나서서 없애겠다고 하는데 도대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 연구실장은 “친일인명사전은 진실을 밝히고 진실에 입각해서 반성을 함으로써 용서를 하자는 거다. 일본은 식민지배 사실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반성도 없는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용서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첫째로 문제가 될 것이고 공과를 보자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친일문제를 얘기하는 거다”라고 이 대통령의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네티즌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아이디 ‘ktae9309’는 “국민이 탄핵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디 ‘hostnet’은 “이명박이 용서하면 국민이 다 용서한 건가. 기가 막힌다. 나중에 일본이 독도가 자신의 영토라고 우기면 용서하고 독도 줘라”며 비꼬았다. 아이디 ‘sonjw0082’는 “정말 대통령이 할 말인가”라며 “친일 인사들을 응징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바로 알자는 건데 그것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현실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아이디 ‘vnfgkdntm614’도 “국가적인 차원의 용서는 대통령이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학술연구와 실천운동 병행하는 사례로 평가 받아
편찬사업의 주간연구소를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는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을 계기로 1966년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여 지식인들에게 일대 충격을 주고 친일문제를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계승하여 지난 1991년 출범했다. 연구소는 이후 십수년  간에 걸쳐 ‘친일파 99인’ ‘청산하지 못한 역사’ ‘식민지 조선과 전쟁미술’ ‘일제협력단체사전’ 등 다수의 친일문제 연구서를 발간하고 지속적으로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개최하여, 역대 독재정권하에서 금기의 영역이었던 친일문제를 공론화하고, 학문적 시민권 확보에 성공했다. 편찬위는 1999년 8월 ‘친일인명사전 편찬지지 전국 교수 일만인 선언’이 발표된 후 본격적으로 구성이 추진되어, 2001년 12월 관련 학계를 망라한 조직으로 발족했다. 현재 5,000여 명의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에 운영되고 있는 편찬위에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의 교수 학자 등 전문연구자 13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을 포함하여 170여 명이 집필위원으로 위촉되어 4월말 현재 70%의 원고를 접수한 상태이다.
특히 7년 전인 2002년부터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편찬 작업은, 2004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지원금 중단으로 한때 중단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초에는 네티즌을 중심으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성금운동이 전개되어 열흘 만에 목표액 5억 원 전액이 모금하였으며, 이후 계속 성금이 답지하여 7억 5,000만 원에 달하는 편찬기금이 조성되었다. 지금도 5,000여 명의 회원들이 매월 후원하면서 지역과 사회 각 부문의 친일청산에 참여하는 등, 연구소는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 받아왔다.
이러한 역사바로잡기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뿐만 행해지는 일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나치청산을 위해 유럽 전체가 힘을 모았다. 폴란드 일간 ‘제츠포스폴리타’의 브로니스와프 빌드스타인 기자는 지난 2005년 2월 옛 공산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24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폭로해 폴란드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진위 논란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증거수집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프랑스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나치에 협력한 1만여 명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 이후 전국에 ‘부역자재판소’를 설치해 1948년까지 7,037명에게 사형을, 4만여 명에게 징역형을 각각 선고했다. 1980년대 2차 숙청작업이 벌어져 모리스 파퐁 전 파리 경찰청장이 유대인 1,600여 명을 학살한 혐의로 2004년 10년형을 선고받는 등 공직사회에도 과거청산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이들 국가 외에도 독일, 남아공, 칠레, 브라질, 스페인, 페루 등 적지 않은 국가들이 암울한 과거사를 정리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은 비단 잘잘못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출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친일파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단죄하지 못한 친일파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그 사실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것처럼 부끄러운 역사를 반추하고 이를 기록함으로써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박한용 연구실장은 “진실을 기록해야 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의무이다. 그런 것들이 먼저 전제가 되어야 되겠고 또 미래로 가기 위해서도 그렇다. 다시는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전쟁을 찬양하고 또 징병 같은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반성의 재료로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 작업
 ■ 1989년 3월 15일 임종국 선생, 친일인명사전 등 ‘친일파 총서’ 발간 계획 수립
 ■ 1989년 11월 12일 임 선생 타계, 유족 및 역사학자들 빈소에서 연구소 설립 결정
 ■ 1991년 2월 27일 반민족문제연구소 설립(1995년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
 ■ 1991년 3월 친일경력자 인물별 자료 정리 시작(1만 5,000명 대상)
 ■ 1999년 8월 11일 친일인명사전 편찬 지지 전국 대학교수 1만인 선언
 ■ 2001년 12월 2일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출범(초대위원장 이만열)
 ■ 2002년 8월 14일 친일문학인 명단 발표
 ■ 2005년 8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발표
 ■ 2008년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 발표
 ■ 2008년 8월 친일인명사전 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