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당하는 ‘장애인의 성(性)’ 사회적 관심 필요

2008-04-21     글_김영란 차장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성 인식 제고, 해결 능력 향상시켜야
영화 ‘오아시스’의 주인공 공주는 어둡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중증뇌성마비장애인이다. 마치 공간의 일부처럼 방치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은 영화 속에 그려진 단순 인물이 아닌 살아있는 시대의 초상이다. 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장애인수는 전인구의 4.59% 정도며, 각국 인구의 10% 정도를 장애인으로 보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르면 그 수가 500만에 이른다. 이들은 문화, 물리적 환경, 경쟁 환경, 취업, 성(性)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무력감이나 장애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성인 장애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방안은 꽤 많이 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장애인이라고 성(性)까지 장애는 아니다
2004년 한 하반신 마비 1급 지체장애인 여성의 누드사진들이 공개되면서 언론은 물론 네티즌들에게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장애인자립센터의 활동보조이자 같은 처지의 중증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동료 상담가였던 이선희 씨는 자신의 누드 사진을 세간에 선 보인 후 “저의 누드를 보고 장애가 있는 여성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느끼고 모두 편견을 버리고 어울려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일은 지금까지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장애인의 성’이라는 부분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세간에서는 그녀가 마치 돈을 벌기 위해 누드 사진을 찍은 것처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선희 씨는 ‘장애인도 성이 있다’는 금기의 빗장을 연 누드 사진 기획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그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사진 촬영 후 그녀는 “껍질을 벗은 듯 후련해 졌다”는 말로 어둠 저편에서 억압되고 숨 죽여 왔던 현실에서의 참담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애인들의 성에는 무관심했고 사회적으로도 터부시해 왔던 게 현실이었다. 비장애인들의 성(性)에 대한 부분조차도 양지로 끌어올려진 지 불과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장애인들의 성(性)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너무나 문외한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남자와 여성이라는 관계뿐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를 것이라는 이중 잣대를 대면서, 성인으로서 누리고 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욕구의 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들은 대부분 성생활을 할 수 없으며, 성욕조차 느끼지 못하는 대상이라고 인식하면서 장애인 스스로들에게 조차 그러한 분위기를 강요하는 분위기로 흘러왔다. 하지만 자기 몸과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어 장애인 차별의 벽을 깨고자 한 용기있는 여성으로 인해 이러한 불공평한 편견들은 차츰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을 달리 하고 있다.

장애인의 성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요소
성행위가 단순히 육체적이나 생리적인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또 하나의 인간관계라는 점에서, 사회적 모든 인간은 장애 여부를 떠나 성에 대한 권리가 있다. 성욕 또한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으로서 장애인의 성도 비장애인의 성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성적존재로 인식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 지체장애인이 성매매 업소를 찾는 모습이 담긴 ‘R레터’와 다큐멘터리 영화 ‘핑크 팰리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 영화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남성장애인들이 대부분 공감하는데 반해 여성단체는 성인지적 관점이 결여된 부분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핑크 팰리스’는 장애인의 성 향유 권리를 정면으로 의제로 삼은 한국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영화 전반부에 자신의 성욕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는 장애인들의 인터뷰와 함께 주인공 최동수 씨의 성적 열망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장애인들 자신의 성적 열망, 자위 방법, 체위, 성관계를 가질 때의 어려움 등을 거론하면서 거침없이 이어져 간다. 거침없는 성 고백, 절규에 가까운 직접적 언어, 가감 없는 편집에 비장애인 관객은 당황스럽지만, 무성적 존재로만 인식해왔던 장애인들의 욕망에 대한 편견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영화였다.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장애인의 억눌린 성을 이슈화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성매매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 남성 중심적 신화의 연계 선상에 대한 비난과 함께 여성단체의 극렬한 항의로 이 영화들은 재방 중지와 공식 사과문 게재를 하면서 일단락됐다.
장애인 성 향유권이라는 부분은 장애인단체는 물론 소수자 운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도외시 당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성(性)이라는 부분들이 단순한 성적 행위에 대한 부분들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이성과 만날 기회를 갖고 소통하며 관계 맺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핑크 팰리스’의 서동일 감독은 “장애인의 자아실현 권리를 인정하고 사회가 그걸 도와줄 필요가 있다. 누구나 교육을 받고 그를 통해 자아 실현할 권리가 있듯이, 장애인도 이동권을 갖고 사람을 만나면서 관계를 맺고 자아를 실현할 권리가 있다.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그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공평하게 허락되어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 현실적 조건을 바꿔야 스스로 짝을 찾고 결혼 하는 것도 가능해 진다”라며 성적인 부분은 장애인에게도 행복 추구의 필수 요소 부분임을 강조했다. 장애를 넘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들의 아우성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외국 사례에서 보는 장애인들의 ‘권리로서의 성’
장애인들의 성 향유권에 대한 부분들이 국내에선 거론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인식수준이 미미하지만, 각 나라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일찌감치 다뤄져왔다. 일본 여성 저널리스트 가와이 가오리가 쓴 ‘섹스 자원봉사’라는 책은 신체적 한계로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무료 혹은 유료로 도움을 주는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네덜란드의 ‘선택적 인간관계 재단(SAR)’은 유료로 성매매 여성을 파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기구는 장애인의 성욕을 긍정하고 인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장애인들의 요청에 따라 신체적 접촉은 물론 섹스를 제공하기도 하는데, 장애인들 스스로가 여성들을 고르거나 하는 능동적인 부분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외면되어 오고 있다. 저자는 네덜란드 특유의 휴머니즘과 성에 대한 관대함을 이 서비스의 사회적 배경으로 꼽고 있지만, 제도적 섹스 서비스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해선 유보한다.
네덜란드가 장애인들이 원할 때 성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전문화된 기관들이 활성화돼 있는 반면, 독일은 성에 대해 보수적인 편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공식적인 기관이 없다. 하지만 베를린에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섹시빌리티즈(Sexybilities Berin)’라는 민간단체가 있다. 이곳에서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성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내담자가 성 서비스를 원할 경우에는 매춘여성 노동조합과 연계해 성 파트너를 소개해 주는 일도 하고 있다. 또한 담화모임이나 간담회, 대규모 문화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섹시빌리티즈에서 연결해주는 성 파트너는 특별한 기준에 의해서 선정하는 것은 아니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여성을 찾아 연결해 주고 있다. 모든 상담서비스는 동료 상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장애인 직원들이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 파트너 연결 시에도 소개료는 받지 않는다. 이 비영리민간기관의 책임자인 베르날디 씨는 “장애인의 성문제를 다룰 때에는 성 문제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모든 차별을 반대하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똑같이 음식점을 이용하고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성문제도 마찬가지다. 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 성 서비스의 기본 정신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잣대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도덕성, 윤리성 등의 면에서 그 취지가 폄하할 수 있는 요지가 있겠지만, 성의 문제를 단순히 행위 자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녀의 차별을 없애는 사회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좀 더 폭 넓은 분야로의 다각적인 접근이 가능한 문화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성(性), 그러나 학대받는 장애 여성들의 성
장애인들의 성에 있어서 또 다른 문제의 제기는 남녀 차별적인 부분이다. 남성이 욕구에 대한 표출과 만족감에 우선을 두는 반면, 여성 장애인들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부정과 동시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게 사실이다. 이런 부분들은 단순히 남녀 차별적인 부분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이들이 동시에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된다는 암울한 현실을 담고 있다. 행위에 있어서 본인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성적인 향유가 아니라,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형태로 성을 착취당하는 여성 장애인들의 사례가 공공연하다.
여성가족부 인권보호팀이 2006년 전국 각 성폭력상담소 상담건수를 집계한 결과,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수는 119,655건 중 17.3%인 20,763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배 이상 급증했다. 연령별로는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순으로 날로 건수가 급증하면서 여성 장애인들의 성범죄 노출에 대한 부분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특히 이들에 대한 가해자들은 이웃 혹은 근친 등의 주변 인물이 대다수로 충격을 주고 있다. 여성 장애인들에 대한 성범죄가 갈수록 늘어가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대체로 미미한 정신연령 수준을 가진 상태고, 가해자로부터 위협 당해 피해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범죄사실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가족들 역시 같은 병력이 있거나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장애 여성을 방치함으로써 이러한 파렴치한 범죄행위가 상당기간 반복적으로 이어진 사례도 많다. 특히 이들은 이웃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 성폭행을 당한 후에도 마땅히 상담하거나 하소연 할 곳도 없으며, 성폭력 관련 법적 장치도 허술해 성범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장애여성 성폭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원인으로 해당 전문가들은 장애여성의 여성성(性)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지적했다. 특히 “장애여성은 우리 사회 가장 소외된 곳의 가장 왜곡된 존재이며, 장애여성의 인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비장애 남성들에게 접근이 용이한 성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라며 사안에 대한 심각성을 지적했다. 장애인 성폭력 범죄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이러한 끔찍한 고통을 당한 장애 여성들이 치료를 받으며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여성장애인 전용 쉼터’가 전국적으로 4개에 불과하고 성폭행 신고부터 상담, 치료 등을 한 곳에서 처리하기 위해 2005년 설립된 ‘원스톱센터’도 전국에 15개가 있지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해당 담당자는 “시민단체가 꾸준히 이들을 보살피는 게 유일한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며 토로했다. 현재 여성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처벌규정인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특별법과 형법 302조에 규정한 ‘심신미약자에 대한 간음’도 법적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특별법 8조에 ‘신체 또는 정신상 장애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는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자는 형법상의 강간 또는 강제추행죄로 처벌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실제 어느 정도 수준의 신체·정신적 장애를 가져야 ‘항거불능’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명확한 기준도 없고 이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다. 또 형법 302조는 ‘심신미약자 간음’을 친고죄로 규정하여 피해 여성의 의사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돼,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장애 여성에게는 특히 불리한 조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련자는 “형법과 특별법에 흩어져 있는 관련 규정의 통합과 함께 장애여성 보호를 방해하는 문구 삭제 또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사후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법률적인 제도가 당연시 되는 부분이겠지만, 장애여성들을 여러 번 울리는 악행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애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애인 성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고 육체적 성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체변화에 대해 구체적인 지식이 결여되어 있고, 성에 대한 관심과 충동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장애인들 스스로 적절한 성적 표현과 책임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의 성교육이 필요하다. 성교육을 통해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인지시켜 성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며, 개인적으로는 관련된 여러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주고자 하는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 성교육에 있어서도 지속적이고 장애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체계에서 동일한 마인드로 접근했을 때만이 진정한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애인의 성은 적응능력과 대처능력에 있어서 비장애인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성적인 부분에서는 다를 바 없다. 단지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신체적 불편함으로 인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거나 경험하지 못 했을 뿐이다. 따라서 올바른 성지식과 함께 성에 대한 표현을 알려주는 지속적이고 다양한 교육이 병행된다면, 성의 외곽에서 움츠려 억누르고만 살았던 장애인들의 성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효과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부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불편함을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진심어린 배려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