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지각 변동, 더 이상 리딩뱅크는 없다

2008-04-19     글_신혜영 기자
우리·신한, 비은행부문 강화로 자산규모 키워… 리딩뱅크 판도 누가 바꾸나
우리·신한, 비은행부문 강화로 자산규모 키워… 리딩뱅크 판도 누가 바꾸나

빅3 은행이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자존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신한지주가 국민은행의 시가총액을 앞지르자 일각에서는 ‘리딩뱅크는 신한’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자산규모에서는 여전히 국민은행이 국내 최대지만 시가총액으로는 신한지주가 국민은행을 앞섰다. 우리은행도 금융권의 초대형 매물로 꼽히고 있어 향후 은행권의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한해 ‘국민-신한’의 각축전이 지속되겠지만, 향후 우리은행의 민영화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경우 우리은행의 리딩뱅크 탈환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금융시장 선도 구실을 하는 우량은행 리딩뱅크
리딩뱅크(leading bank)란 외형상의 규모와 상관없이 영업 중인 금융권에서 선도 구실을 하는 우량은행을 말한다. 누가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는 은행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리딩뱅크는 금리체계의 변화와 영업관행을 주도하고 금융 정책당국과 중·소형은행 간의 정책시행 과정의 매개 역할을 해야 한다. 금리자유화가 정착된 외국에서는 소수의 리딩뱅크가 국내·외 자금사정에 맞추어 주요 금리나 새로운 금융상품의 도입을 앞서 결정하면 나머지 은행들은 그 움직임에 따라 대출과 수신금리를 결정한다. 미국의 경우 도매은행에서는 모건은행, 소매은행에서는 씨티은행이 리딩뱅크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 리딩뱅크가 출현하게 된 시기는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부터다. IMF는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해주는 조건으로 금융산업 특히, 은행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 대형 은행으로의 통합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주문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은행은 30개가 넘었고 IMF는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5~6개가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이 높은 은행을 중심으로 통폐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자산 규모가 100조 원을 넘는 대형 은행들이 출현하게 되었고, 대표적인 은행으로는 국민은행, 신한금융, 우리금융, 하나금융 등을 들 수 있다.

국민 리딩뱅크 위기, 신한 새로운 리딩뱅크로 자리 잡나
올 들어 리딩뱅크 자리를 둘러싼 국민·신한·우리은행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은행이 리딩뱅크의 입지를 굳힌 것은 주택은행을 합병한 지난 2001년 11월 단번에 자산 160조 원의 공룡은행으로 재탄생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주택담보대출 바람과 조흥은행 합병이라는 호재를 타고 눈부신 자산성장을 거듭하며 총 자산을 비롯해 점포수, 직원수 등의 차이가 줄면서 국민은행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지난 2001년 말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신한지주는 당시 국민은행 시가총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나 최근 국민은행이 주춤한 사이 신한은행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조흥은행 및 LG카드 등을 인수하면서 덩치 키우기에 성공, 빠른 속도로 국민은행을 추격했다. 급기야 최근엔 주식시장에서 신한지주의 시가총액이 국민은행을 앞질러 ‘이제 리딩뱅크는 신한’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7일 현재 신한지주는 시가총액 19조 7,000억 원으로 18조 6,000억 원인 국민은행을 1조 원 가량 앞섰다.
이병건 신영증권 연구원은 “현재 외국 주요펀드들의 은행주에 대한 편입비중을 보면 국민은행보다 신한지주가 더 많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들도 “신한지주의 매니지먼트 역량이 국민은행의 역량을 이미 뛰어 넘었다면서 신한지주는 앞으로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우리·신한 3대 은행을 기준으로 국민은행의 총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3년 말 37.5%에서 지난 2007년 말에는 29.8%(232조 원)로 30%선 밑으로 떨어졌다. 반면 우리은행의 총 자산의 비중은 20.8%에서 27.0%(219조 원)로, 신한은행이 25.6%에서 26.7%(208조 원)로 높아졌다. 지난 2005년 말 우리은행의 자산은 140조 원으로 당시 국민은행보다 57조 원이나 적었다. 그러나 2년 새 격차가 13조 원대로 좁혀졌다. 신한은행도 2006년 조흥은행 통합을 마무리한 후 1년간 자산을 31조 원이나 늘렸다. 금융그룹 전체로는 우리금융의 총자산이 지난해 말 287조 원으로 국내 최대 금융그룹 자리를 뺏었고 신한금융도 275조 원에 달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자산은 지난 2006년까지 2년 간 정체상태였다. 총 수신에서 국민은행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38.2%에서 31.6%로 6.6%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2월 28일 국민은행의 총 수신은 163조 원으로 우리은행 122조 원, 신한은행 118조 원으로 크게 앞지르고 있다. 점포수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이 1,154개에서 1,205개로 51개 늘어나는 사이 우리은행은 703개에서 884개로 181개를 늘렸으며 신한은행도 992개에서 1,020개로 98개 증가했다. 직원수(계약직 포함)도 국민은행이 2003년 말 2만 8,980명으로 우리은행 1만 5,111명과 신한은행 1만 3,016명을 합한 2만 8,127명보다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는 2만 6,655명으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을 합한 3만 569명보다 3,000명 이상 적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고객들이 과거에는 금리 차이가 다소 나도 은행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제는 금리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다른 은행으로 간다”고 말했다.
임일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국민은행은 여전히 업계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과거와 같이 리딩뱅크 입지를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 국민은행이 시가총액에서 밀린 것은 외국인들의 집중매도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은행의 핵심지표에서는 국민은행이 여전히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M&A, 해외진출 등으로 리딩뱅크 고수 할 터
지난해 부진한 성적으로 리딩뱅크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국민은행은 연초에도 예금과 대출을 늘리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3월 2일 은행권 자료를 보면 총 수신(예금)은 국민은행이 162조 7,996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조 8,147억 원(7.1%) 급증하면서 증가액과 증가율 면에서 1위를 기록했다. 두 달 간 증가액이 지난해 한 해 증가액인 6조 2,53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국민은행은 대출 영업 부문에서도 선두권을 차지했다. 국민은행의 원화대출 잔액은 지난 2월 28일 현재 156조 8,635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조 4,173억 원(2.9%) 증가하면서 증가액 면에서 1위를 기록했다.
국민은행의 1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 한누리투자증권 인수에 이어 올 9월께는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고 카자흐스탄 등 해외 은행 인수도 추진 중이다. 또 올 9월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마무리되면 손해보험사 M&A 등 다각화에 본격 뛰어들 예정이다. 2010년 말엔 총자산을 280조 원 이상으로 불리고 수익성을 높여 국내에선 경쟁상대가 없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기업금융이나 IB(투자은행) 분야 등에 상대적인 강점을 갖고 있는 우리 신한은행이 주택과 가계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은행에 비해 장기적으로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공격적인 자산 확대 논란
리딩뱅크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국민은행은 자산확대를 위해 능동적이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2007년 11월 26일 정기예금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인상하면서 6%대로 예금 금리를 은행권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본점 승인금리 조정 등을 통해 시장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정기예금상품의 영업점장 전결금리폭을 최대 0.3%포인트 인상하고 본부승인 금리우대 폭도 0.2%포인트 높이면서 은행들의 자금조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본부 승인 금리의 경우 기관 자금이나 거액 고객에 한해 적용되지만 전결금리의 경우 다수의 고객들이 받아갈 수 있어 사실상 1년제 정기예금 금리가 조건 없이 6%가 된 셈이다. 국민은행이 제시한 금리는 은행권에서 최고 수준이다. 특판 예금을 판매하고 있는 우리은행의 영업점장 전결금리는 1년제의 경우 CD플러스 예금이 5.9%, 일반 정기예금은 5.8%다. 급여계좌와 신용카드 개설 등을 통해 0.2%포인트의 보너스 금리를 받아야 CD플러스 예금이 6.1%, 일반 정기예금이 6.0%로 올라선다. 특판을 마감한 신한은행도 ‘파워맞춤정기예금’의 영업점장 전결금리를 0.3~0.4%포인트 인상했다. 이에 다른 은행들 사이에선 ‘자금조달이 더 빡빡해졌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모 은행 관계자는 “솔직히 국민은행이 제시한 금리를 따라가기 벅차다. 일단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대응을 하고 싶어도 더 이상 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분부 협상 금리로 1년제 정기예금을 6.2%까지 주는데 이는 노마진 수준이다”고 말했다.

리딩뱅크 자리 쟁탈전 당분간 계속될 듯
앞으로 시중은행의 1등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민은행은 1위를 고수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진행중이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종합 금융그룹으로 변모하며 덩치를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업은행 민영화와 외환은행 재매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모든 금융회사들이 투자은행(IB)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총자산을 단순 비교하는 것보다는 은행·증권·카드·보험 등 다양한 금융 계열사들의 시너지 효과를 누가 가장 잘 발휘하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국책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어느 은행이 인수·합병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국내 금융권 구도가 급격하게 변화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푸르덴셜투자증권 성병수 기업분석실장은 “장기적으로 리딩뱅크는 얼마나 균형적인 성장을 이뤄나가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연구원 이건범 연구위원은 “리딩뱅크의 학술적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자본과 자산, 순익 규모, 시가총액을 종합적으로 본다”며 “지금까지는 국민은행이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이제는 3∼4개 금융사들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계에서는 외형뿐 아니라 금리체계나 영업 방식에서도 선진은행으로 탈바꿈해야 진정한 1등 은행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 역시 규모의 경제 논리가 힘을 받는 시장”이라면서 “머니무브 현상과 미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문에 주요 은행들이 지난해 자산 성장을 자제했지만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이 가라앉을 것으로 보이는 올 하반기 이후 그동안 잠잠했던 금융권 자산경쟁이 다시 시작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