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두 달
2008-03-15 글_신혜영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지난 2월 23일 해단식을 끝으로 숨 가쁘게 진행된 두 달 간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노 홀리데이’를 선언하고 경제 살리기에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를 적극 뒷받침한 인수위는 “의욕만 앞선 설익은 정책을 남발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따끔한 질책 속에서도 국정의 전 분야에서 새정부의 로드맵을 마련했다.
지난 2007년 12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의 “백지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역대 인수위는 정권을 쟁취하거나 권한을 통해 점령군 같은 인상을 많이 줬다. 이번 인수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했다.
인수위는 이명박 정부 5년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작업을 하는 조직인 만큼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 인수위는 ▲대통령 당선인 선거 공약의 구체화와 새 정부 운영 기반 마련 ▲각 부처의 업무 보고 청취 및 국정과제 설정, 정부조직 구성 및 주요 직위 인선의 기준 마련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채널 마련 ▲대통령 사전 ▲사후 행사 기획 등 취임식 준비를 통해 대통령직의 원환한 인수에 필요한 상항을 규정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
‘이명박 식 경제 개혁’ 위한 규제완화 로드맵 마련
인수위는 지난해 말 출범 직후부터 주요 정책 과제를 빠른 속도로 내놓으며 새 정부 국정 운영의 화두를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그 핵심은 ‘경제 살리기’를 축으로 하는 규제 개혁, 공교육 강화 등의 프로그램으로 요약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명박 식 경제 개혁’을 위한 환경 조성 차원에서 정부조직 개편→규제 완화→기업의 투자 활성화→일자리 창출로 연결되는 경제 살리기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새 정부의 운영 요체인 국정철학과 핵심과제를 선별하는 작업은 지난 2월 5일 발표된 5대 국정 지표와 21대 전략, 192개 국정과제로 요약됐고, 정권 출범 초기 핵심적으로 추진할 사항을 모은 ‘100일 플랜’도 마련했다. 5대 국정지표는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 대국, 글로벌 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이며 192개 국정과제는 43개 핵심과제, 63개 중점과제, 86개 일반과제로 분류했다.
우선 ‘MB노믹스’로 대표되는 경제분야에서 인수위는 이 당선인의 ‘비즈니스-프렌들리(business-friendly)’라는 언급처럼 경제 살리기와 투자확대를 위해 기업친화적이고 시장중심적 경제정책을 펴나갈 것이라는 신호를 시장에 꾸준히 보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규제 완화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는 ‘대불산업공단 전봇대’ 발언과 그에 따른 후속 행정 절차로 이어졌고 이는 대내?외에 천명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정부의 몸집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을 키우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의 국정철학으로 연결됐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역점 과제 중 하나인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 기존 18부4처였던 중앙정부 행정조직을 13부2처로 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했으나 지난 1월 20일 통일부와 여성부가 추가돼 15부2처로 재조정됐다. 이는 교원 경찰 교정직을 제외한 일반 공무원의 5.3%인 6,951명의 공무원을 감축하는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정부조직 개편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인수위는 외교?통일 분야에서 비핵화에 기초한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조를 창출하고, 이를 위해 전통적 동맹이었던 미국, 일본과의 관계복원에 주력한다는 대원칙도 마련했다. 또 고유가 등 에너지난 문제가 대두되면서 ‘자원외교’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1월 2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인 ‘대학입시 3단계 자율화 방안’도 공개됐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 보완, 대입자율화 조치, 대학책무성 강화 조치 등을 추진한 뒤 수능 과목 축소, 학생 선발권 대학 이양을 단계적으로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생 정책에서는 인수위의 방향 설정이 대기업과 성장 위주 정책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인수위가 마련한 국정과제 보고서에는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장애인 고용 할당제, 육아휴직 급여 상향 조정, 약값 인하 등 민생 관련 주요 공약들이 빠졌다. 반면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은 최우선 과제로 책정돼 대조를 보였다.
의욕만 앞선 정책 남발, 한나라당 “신중해야” 쓴 소리
인수위는 영어 공교육 강화 프로그램 발표와 함께 일부 정책에서 아마추어적인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과 인수위 내부 일각에선 “인수위의 감당범위를 벗어나 속도를 너무 내고 있다”며 곤혹스러워 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인수위가 호통치고, 자기반성문 같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고 반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의욕적으로 설익은 정책을 발표하면 국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검토 단계에 발표해서 재검토나 취소가 되면 국민들이 볼 때 ‘과욕을 부리는 거 아니냐’고 인수위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신경을 써달라”고 주문했다.
전날 인수위는 불법 집회와 시위 근절을 위한 검찰과 경찰, 노동부 등의 ‘산업평화정착 태스크포스(TF)팀’ 구성계획을 발표했다가 노동계가 “공안정국 조성 기도”라며 반발하자 4시간 만에 철회한 사태를 빚기도 했다.
특히 인수위가 지난 1월 17일 “2억 원짜리 아파트를 5,000만 원이면 장만할 수 있다”며 조속 추진과제로 발표한 ‘지분형분양제’는 졸속으로 ‘선심성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당시 주택분양가의 49%를 충당할 투자 수요나 투기조장 방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특별한 대책방안 구상도 없이 ‘신중 검토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지분형분양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혼부부 주택공급’ 공약과 함께 추진하면 좋겠다고 판단해 짧은 시간에 서둘러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수능 과목에서 영어를 빼는 대신 학생용 영어능력평가시험을 도입하기로 해 교육계의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인수위는 영어평가시험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영어 사교육 광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1월 30일 영어 전용 교사 2만 3,000명 신규 채용 등을 골자로 하는 영어 공교육 강화 프로그램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은 충분한 준비 없이 발표해 영어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인수위는 일주일 만에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물러섰지만 영어 교육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민 생계비 인하방안 역시 애초 의욕에 비해 체감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대운하 공약은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과정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부딪히기도 했다.
인수위 한반도대운하TF 팀장과 상임고문을 맡은 장석효 전 서울시부시장과 이재오 의원은 “대운하를 최대한 빨리 시작해 이명박 정부 임기 내 완공한다”는 입장인 반면,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시기보다는 국민적 합의를 통한 추진이 중요하다”는 쪽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운하 투기 논란에 대해서도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사공일 위원장(전 재무장관)은 강력한 수단을 통해 막겠다는 데 비해, 추부길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장(교수)은 투기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해 대조를 이뤘다.
통신비 인하 방침은 의욕만 앞섰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인수위 출범 초기 발표한 통신비 20% 인하는 ‘반시장주의’ ‘총선용 선심책’이라는 논란을 낳았다. 결국 “규제완화를 통해 소비자의 피부에 와 닿는 장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720만 명 신용대사면정책에서는 ‘금융채무자 도덕적 해이를 확산한다’ ‘총선용 선시맥’이 아니냐며 신용회복 방안도 파장에 대한 고려 없이 내놓아 논란을 부추겼다. 양도세 인하와 관련해서는 내부에서 입장을 번복하는 가하면 한나라당 입장과 혼선을 낳았으며 지분향 분양제정책에서는 투기조장 등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보완대책이 미흡하는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에 지난 2월 4일 강재섭 대표는 “인수위는 한나라당이 망망대해에서 잡아온 여러 고기를 부두에서 인수받아서 공판장까지 운반하는 역할”이라며 한계를 명확히 했다. 또 “인수위는 인수위원회법에 의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주 신중하고 겸손하게 좀 더 차분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조금 오버하면 결국은 반발이 일어나게 되어있다”고 비판했다.
전재희 최고위원은 영어공교육 강화방안과 통신요금 인하 문제 등을 예로 들면서 “인수위가 짧은 기간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인수위 업무는 현 정부가 하고 있는 정책 중 계승, 발전시키고 시정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또한 당선인 공약 이행을 위해 무엇을 챙겨야하는가 등을 내부적으로 차분히 정리해서 넘겨주는 것”이라면서 “실제 인수위 대변인이 발표할 것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향응’ 인수위 2명 사퇴, 물의 빗기도
한편, 일부 인수위 국가경쟁력특위 관계자 9명은 지난 2월 15일 특별한 현안이 없음에도 하계 인사 23명과 함께 인천시에서 교통편을 제공받아 경기 강화군의 한 식당에서 인천시 간부 3명과 함께 식사를 한 뒤 강화군수에게서 선물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돼 향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자기 카드가 한도초과로 계산이 안돼 일단 인천시 카드로 하고 나중에 다시 들러 자기 카드로 바꿔 결제했다는 인수위 관계자의 변명도 납득이 안 된다. 이에 지난 2월 18일 인수위 일부 자문위원들의 집단향응 파문과 관련해 국가경쟁력특위 소속 인수위원인 허증수 기후변화·에너지TF 팀장과 박창호 비상임 자문위원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과 식사 자리에 동석했던 나머지 인수위 자문위원 7명은 경고를 받았다.
인수위 출범 초기 “현장방문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도 “식사도 가급적 인수위 사무실 내 구내식당을 이용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접대를 받아 물의를 일으킨 것만도 지난 1월 3일 금감위 업무보고 이후의 식사접대에 이어 두 번째이다.
박정하 인수위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허 팀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며 이에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고 말했다. 박 부대변인은 이어 “박 위원은 일을 진행시킨 책임이 있고 허 팀장은 사안을 모르고 있었으나 팀장으로서 도의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19일 한나라당 195차 의원총회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집단 향응으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이리저리 끼어든’ 일부 구성원들이 향응 접대를 받은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며 “그간 한나라당에 사고가 많았으나 윤리위의 역할을 강화해서 당 기강을 바로잡아 상당히 정리된 상황에서 인수위의 핵심 멤버가 아닌 이명박 당선자가 말한 것처럼 ‘이리저리 끼어든’ 일부 구성원들이 이런 감각이 없이 관행대로 향응 및 선물을 제공 받은 것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강재섭 대표는 “인수위가 집행기관처럼 보인 점이나 인수위 관계자가 개인 자격으로 한 발언이 마치 인수위 전체 견해처럼 오해받은 점 등은 옥의 티”라고 지적하며 “과거 ‘노무현 인수위’가 점령군처럼 한 것에 비하면 이명박 인수위는 세련되고 열심히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원래 일은 잘한 건 뒷전이고 잘못한 것이 부각돼 깎아먹게 되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한 두 달 남짓한 인수위원회 활동기간 동안 부동산정책 자문위원 고종완 씨가 자문위원 직위에도 불구하고 고액 부동산 컨설팅을 계속하다 해임되었고 박광무 전문위원은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의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한편, 4.9총선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의 최근 활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51.5%가 긍정적적으로 평가했다. 인수위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32.7%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