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분당 사태

2008-03-12     글_신혜영 기자
민노당 ‘재창조냐, 공멸이냐’ 논란 속 선택은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의 분당이 현실화 되고 있다. 민노당이 지난 해 대선패배 이후 평등파 당원들의 탈당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고 진보정당 창당 대열에 합류했다. 이로써 자주파와 평등파의 8년 동안의 동거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다. 최근 이러한 분당 사태에 민노당 내에서는 탈당파를 비난하며 재창당 작업에 나선 모습이지만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이 중심이 된 진보신당 창당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분당 사태로 앞으로 민노당이 어떠한 노선을 걷게 될지 주목된다.

민노당의 갈등은 평등파인 조승수 전 의원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 내 주사파를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평등파는 당의 인기를 올린데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파에 머무르는 설움을 토해내며 자주파를 공격했다. 이후 당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민노당 분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2월 4일 혁신안이 당내 다수인 자주파의 반발로 실패하자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가 공식 사퇴했다. 심상정 비대위체제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친북정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일심회 관련자 제명을 핵심으로 하는 혁신안을 마련했지만 자주파의 강한 반발로 부결된데 따른 것이다. 당시 심상정 비대위원장은 낡은 질서가 여전히 당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자주파를 겨냥했다.
2004년 총선에서 민노당은 ‘서민과 노동자의 당’을 자처하면서 돌풍을 일으켰으나 민노당은 일심회 간첩 사건, 평양 혁명열사 참배 등의 친북적 행보로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이번 대선에서도 북한의 연방제 통일론과 유사한 ‘코리아연방’ 공약을 내세워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평등파는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저조한 득표를 거둔 이유는 자주파가 당을 장악한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등파’ 연쇄 탈당, 8년 동안의 동거 막 내리나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의 탈당 선언은 당내의 이른바 ‘평등파’의 연쇄 탈당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14일 민노당 대구 달서구 및 북구지역 위원회 소속 당원 250명이 탈당을 한 데 이어 15일에도 김혜경 전 대표와 이덕우 임시 당대회 의장 등 지도부 인사 6명이 탈당했다. 19일에는 수성구, 남구, 동구지역 위원회 소속 당원 250명이 탈당을 선언했고 이어 20일에는 140명에 달하는 서구위원회 당원들이 또다시 집단 탈당했으며 내달 초에도 추가 탈당할 가능성이 있는 등 민노당 대구 서구위원회는 70% 이상이 탈당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개별 당원 200여 명을 포함한 달성군, 서구지역 소속 당원도 조만간 추가탈당 행렬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장태수 서구위원장은 지난 2월 21일 성명을 내고 “집행부 전원과 과반수의 당원들이 탈당하고, 추가 탈당도 예상되어 지역위원회를 해산한다”면서 “지역위원회 해산은 민노당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대구시민들께 용서를 구하는 반성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대구시당 창당위원장 김기수 전 최고위원, 대구시장 후보였던 이연재 전 대구시당 위원장, 민노당 출신의 지역 첫 공직자였던 장태수 전 서구의원, 김은자 여성위원장, 김수청 대구시당 당기위원장 등이 탈당대열에 앞장서고 있다. 탈당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대구에서 민노당을 만들었던 창당주역들이 탈당대열에 앞장서고 있어 파장이 만만찮다.
단병호 민노당 의원도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민노당을 탈당할 의사를 밝혔다. 단 의원의 탈당은 노동계의 대거 탈당으로 이어지면서 민노당 최대기반이 붕괴될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단 의원은 “민노당의 분열로 비쳐지는 현 정국이 안타깝다”며 “지금으로서는 지역구에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 의원은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 신당파를 비롯해 선도 탈당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러브콜을 직간접적으로 받아왔지만 이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평등파의 연쇄 탈당에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과 강기갑 의원을 비롯한 5명의 민노당 의원들은 “탈당파 중 일부가 소위 ‘기획탈당’을 진행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민노당이 혁신을 거부한 것처럼 거짓 포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민노당의 분열은 한국 진보운동의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노당 분열, 노동 현장에도 탈당 이어져
민노당 분열, 노동 현장에도 탈당 이어져
분열로 치닫고 있는 민노당의 위기가 일선 노동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월 20일에는 전·현직 민주노총 간부 45명 등이 탈당했고 21일에도 민노당 충북지역 180여 명, 금속노조 소속 캐리어에어컨지회 93명 등이 탈당했다. 22일에는 한·미 FTA 반대 파업, 민주노총 동맹파업, 민노당의 정책방침을 지지하며 정치파업에 동조해 오던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집단 탈당했다. 박유기 현대자동차 전 노조위원장 등 250여 명의 노조원들은 유인물을 통해 노동자와 서민의 기대를 저버린 민노당을 더 이상 진보정당으로 생각할 수 없어 당을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평등파들의 이탈은 민노당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먼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민노당 당원 또는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평등파다. 박찬욱 감독, 배우 문소리 등 문화계 인사를 비롯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진중권 중앙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의원 중에서도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 역시 평등파다.
한 측근은 “심상정·노회찬 두 의원은 진보진영이 8년간 투자해 키운 자산인데, 자칫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월 12일 전국 700명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민노당 지지자의 73.7%가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중심이 된 진보신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 중심의 기존 민노당 지지는 22.6%에 그쳤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33.5%가 ‘진보신당’을 지지한다고 했고, 기존의 민노당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15.3%에 그쳤다.

민노당 ‘재창당’ 공언, 분열과 대립은 ‘공명의 길
이런 민노당의 분열을 지켜보는 당 안팎의 시각도 엇갈리고 있다. 2000년 1월 진보정당을 표방하고 창당한 민노당이 창당 8년 만에 분당 수순을 밝게 된 민노당은 이를 두고 ‘재창조냐, 공멸이냐’며 정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주파에 속하는 민노당 천영세 당 대표 직무대행은 비상대책위원회 혁신 실패로 평등파 탈당이 잇따르고 있는데 대해 진보정치세력의 분열과 대립은 공멸의 길이라고 지적했다.
민노당 사수 입장을 밝힌 권영길 의원은 분당 사태와 관련, “이혼이 아니라 별거다. 언젠가 재결합해야 한다”며 “분열은 공멸이고, 지금은 분열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은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다시 만나도 새로운 관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더 큰 갈등은 민노당과 탈당파들 사이에서 빚어질 전망이다. 민노당 내부적으로도 자주파와 평등파로 갈리면서 오는 4월 총선에서 양측 모두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월 총선에서 8~12% 정도인 잠재적 지지층을 놓고 다툼을 벌여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양쪽 모두 공멸하는 핏빛 ‘레드오션’이 될 수 있다. 탈당파들 사이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찾아 외연을 넓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영순 대변인은 “공멸이 불 보듯 하다. 민노당이 둘로 갈린다면 현실적으로 몇 석이나 얻겠냐”고 반문한 뒤 “지난 총선에서 13% 득표로 8석의 비례대표를 얻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각자의 길로 나서다 원내 진출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고 위기감을 표출했다.
권영길 의원도 4월 총선 이후 민노당의 재창당 추진과 ‘진보신당’ 쪽의 창당 시점에 현재의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총선 과정에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 나올 것이며, 머리를 맞댈 대목을 찾아야 한다”면서 “당장 합치는 것이 어렵다고 해도, 차선책을 강구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 죽는 길을 피하자. 모든 분당·분열 행위를 중단하고 진보정치 세력이 함께 사는 방도를 찾자”고 호소했던 천영세 당 대표 직무대행도 민노당에 남은 이들은 ‘재창당’을 공언했다. 이에 천영세 민노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 지난 2월 22일 천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민노당 혁신과 재창당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민노당은 천영세 의원을 대표로 하는 ‘혁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 총선 준비에 들어간다. 위기에 처한 당의 혁신과 재창당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천영세 의원은 “진보진영 분열을 이대로 그냥 둔다면 그 후과가 10년을 넘게 갈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당을 다시 반석 위에 올려 세우지 못한다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당원들을 다시 한 번 좌절시키는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분열된 민노당을 수습하고 과감한 혁신과 전면적인 재창당을 통해 반듯한 민노당을 만들어야 할 임무와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할 역할이 저에게 맡겨졌다”며 “민노당이 이번 18대 총선을 통해 재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노당 외부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위기이지만 거듭날 기회도 될 수 있다는 것. 탈당파인 김형탁 전 민노당 대변인은 “의석수보다 진보정당의 새 씨앗을 뿌리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노당의 분당이 안타깝지만 지나친 친북 색채를 지우고 대중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노회찬 진보신당 창당 ‘이명박 정권 폭주 견제’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21일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 3월 16일 새 진보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심상정?노회찬 의원은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의 폭주를 견제할 강력한 진보야당을 열망하고 있다”며 “진보의 혁신을 열망하는 진보진영 세력들은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대토론회와 원탁회의에 참여해 새로운 길을 함께 열어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탈당 선언 당시 민노당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심상정 의원은 “현 틀로는 대한민국 사회 미래를 책임지는 진보정치 희망을 만드는데 한계에 다다랐음을 고통스럽고 안타깝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신자유주의와 이명박 정권의 폭주에 맞선 다양한 진보세력을 모아 창당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 의원은 “우리는 이합집산 일회용정당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시간이 걸리고 시련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정당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과도기’ 정당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4·9 총선을 앞두고 창당하는 신진보정당은 ‘예비내각’의 성격을 띤다. 심 의원은 “총선 전 창당하는 진보정당은 진보혁신에 동의하는 제세력이 공동총선강령과 공동비례명부를 축으로 법적정당형태를 지니는 공동총선대응형태를 지닌다”고 말했다. 총선 전에 일단 당의 모습을 갖춘 다음 총선을 치른 후 완전하게 창당 작업을 마치겠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우리가 경쟁상대로 삼는 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지 민노당이라 생각지 않는다”며 “부득이 두 정당의 경쟁국면이 있겠지만 경쟁의식 가지고 경쟁하진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탈당한 이들도 갈 길은 멀고 험하다. 먼저 심상정·노회찬 두 의원의 거취에 걸린 것들이 많다. 신당 창당을 위해서는 가급적 빨리 탈당을 해야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이기 때문에 ‘탈당=의원직 상실’이다.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면, 당장 머물 공간의원회관도 도와줄 인력보좌진을 동원할 경제력도 잃어버린다. 지난 2월 3일 민노당 임시당대회에서 ‘심상정 개혁안’이 부결된 직후 탈당을 선언했던 노회찬 의원이 탈당계 제출을 늦추고 있는 속내에는 이런 현실적 어려움이 배어 있다.
또한 노회찬·심상정 의원 등이 주도하는 진보신당제안모임과 조승수 전 의원, 김혜경 전 대표 등이 주도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모임 사이에는 감정의 앙금도 남아 있다. 평등파 내부의 강경파 혹은 선도탈당파로 불렸던 진보정당운동모임은 심상정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준비한 2월 3일 임시당대회 이전에 ‘혁신안의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밝히며 당을 떠났다.
심상정 의원 쪽 관계자는 “선도 탈당파들의 움직임 때문에 심상정 쇄신안의 추진 동력이 일정 정도 상실된 측면이 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은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승수 전 의원은 “실제로 그런 감정적 대립이 있었다”면서도 “현실 속에서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모임 구성원들은 공감대가 있는 분들이다. 우리도 그분들도 자연스럽게 창당준비위원회에서 결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보다 이른 2월 초에 탈당한 조승수 전 의원 등이 만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모임’도 진보정당을 추진 중이다. 한 달 보름밖에 남지 않은 4·9 총선 이전에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당이 아니라 새 출발이 문제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