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 석굴암/석무정 스님
2008-01-11 취재 양성빈 본부장/ 글 장영희 기자
조용한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참 뜻
경남 양산시의 인터체인지를 지난 후 첫 번째 좌회전을 받아 계속 직진하면 산막공단이 나온다. 이 산막공단의 주도로를 지나 산 쪽으로 계속 진행하면 마애불 석굴암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가파른 고갯길을 5분여 정도 올라가면 깊은 산 중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산사를 만나게 된다. 원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마애불 석굴암 그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중생들의 마음이 평온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있는 석무정 스님을 만나보았다.
우리나라 고승들 중에서 원효대사만큼 수많은 일화를 남긴 고승도 드물 것이다.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다가 동굴 안에서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을 마시고 득도했다는 일화는 남녀노소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 외에도 원효와 관련된 일화는 수도 없이 많은데 5만의 일본군을 물리친 이야기, 직접 만든 무애라는 악기를 들고서 전국을 떠돌아다닌 이야기, 판자 하나로 중국의 1,000명 대중을 구한 이야기 등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온통 신비와 설화, 재미로 가득 차 있다. 이 중에서도 1,000명의 대중을 구한 이야기는 ‘천성산’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 천성산의 한 줄기인 원효산에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이 하나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리에 있는 마애불 석굴암이다.
원효대사의 숨결과 불심을 되새기는 마애불 석굴암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리는 몇 안 되는 청정지역 중 하나로 마애불 석굴암을 찾아가는 길에 귓가를 스치는 새의 지저귐과 계곡을 따라 흘러가는 물소리는 각박한 세상에서 얻었던 스트레스와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마애불 석굴암은 규모는 작지만 ‘불자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음 편한 사찰’로 불자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져 왔다. 이곳에서는 도 지정 문화재 96호인 마애불을 만날 수 있는데, 부산·경남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마애불은 몸에 비해 유달리 강조된 얼굴로 보아 신라 시대 초기의 불상이라는 짐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마애불은 지그시 감은 눈과 함께 입모양이 직선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작은 머리 묶음이 있으며 다소 불균형한 모습을 지닌 기다란 손가락이 조화롭게 수인을 취하고 있다. 특히, 이 마애불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활짝 핀 연꽃무늬 받침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양식은 인극 지역에서 보기 드문 형태라고 한다. 이와 함께 마애불 석굴암의 큰 특징은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밑에 있는 동굴이라고 할 수 있다. 10명 남짓이 들어 갈만한 공간에 만들어진 법당은 설악산 흔들바위 옆에 있는 계조암보다는 규모는 작지만 그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마애불 석굴암 주지 석무정 스님은 기자로 하여금 마애불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을 이야기 해주었는데, 옛날 사람들은 마애불 밑의 석굴을 ‘반고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효대사가 이 반고굴에서 수행 정진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조암에 가면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의 뒤를 이어 계조암에서 수행하였다는 말이 전해져 온다. 그렇다면 도대체 원효대사는 지역적으로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석굴에서의 수행을 어떻게 하였을까? 도승답게 하룻밤 사이에 구름을 타고 두 석굴을 왔다 갔다 했을까? 상상은 관찰자의 몫이라며, 마애불 석굴암에서 원효대사의 삶과 철학을 되새기며 불교의 참뜻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마애불 석굴암 석무정 스님 인터뷰
아름다운 마애불 석굴암을 지키며 부처의 가르침과 함께 원효대사의 숨결을 불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석무정 스님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현대사회는 각박하고 냉정합니다. 사람들은 가볍고 편한 것만 좋아하고, 나를 희생하고 남을 배려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철학의 구심점은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 속에 있는 선을 얼마나 잘 가꾸며 사는지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삶의 에너지입니다. 여기서 ‘남’이란 단순히 다른 사람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모든 생물체를 말합니다. 사랑을 주면 사랑이 오는 것입니다”며 불교의 사상을 통해 올바른 인생을 살기 위한 통로를 찾아가라고 전했다.
인생은 그 자체가 수행이며 생활 속에 불교가 있다고 한다. 석가는 신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원효대사 또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이는 곧 우리도 수행을 거치면 부처와 같은 불심을 가지고 바르게 살 수 있음을 의미하는 바 이다. 어느새 깊어져 가는 겨울 산자락에 불자들을 향해 넉넉히 열린 사찰 인심이 있는 곳, 원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마애불 석굴암에서 바쁜 생활을 잠시 접고 불도의 한 자락에 서서 편안함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