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국회 난투극
2008-01-02 글_이준호 기자
BBK특검법과 수사검사에 대한 탄핵안으로 인해 벌어진 국회의원들의 폭력사태
제17대 대통령에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세계의 유수의 언론들은 이번 대선을 한국 역사상 ‘가장 더러운 선거’라고 평했다. 특히 영국의 BBC 방송은 “이명박 특검법 통과를 놓고 국회에서 전기톱과 쇠사슬, 쇠막대기가 동원된 폭력이 난무했으며, 유세전 정책과 공약이 사라진 비방전으로 물들었다”라고 보도하였다. 그동안 세계 주요 일간지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국회 폭력사태는 대한민국 건국 60년 동안 끊이지 않고 있으며, 국가 이미지 실추에도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BBK특검법 상정을 두고 전운이 감도는 국회
대선을 5일 앞둔 2007년 12월 14일 국회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17대 대통령 당선자인 이명박 당선자의 BBK 수사검사 3인에 대한 ‘탄핵안’과 ‘이명박 특검법’의 처리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 쇠사슬로 출입문을 폐쇠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이 대치양상을 보인데 따른 것이다. 12월 13일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노동당과 접촉해 이명박 특검법과 탄핵안을 함께 처리하기로 하고, 14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두 안건의 본회의 처리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신당은 141개의 의석을 보유하고 있었고, 민노당의 9개 의석을 더하면 법안 통과에 필요한 재적 과반수 149명을 넘기게 되기 때문에 법의 통과는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법안처리에 우호적인 민주당 표를 추가할 경우 법 처리는 한결 쉬울 것으로 보았다. 다만, 이날 본회의에서 함께 상정할 계획이었던 탄핵안 처리에 대해서는 각 당이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민노와 민주 양당이 서로 이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신당의 한 관계자는 “일단 특검법을 먼저 처리한 다음 탄핵안은 나중에 다룬다는 것이 우리의 현 계획이다”라며 본회의를 앞둔 당 전체의 입장을 전했다. 이런 신당의 입장에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이용될 것이 자명한 두 안건을 상정조차 시킬 수 없다”며 “필요한 경우 물리적 저지도 불사 하겠다”라고 맞불을 놓으며 사태는 파국양상으로 치달았다. 실제 한나라당은 전날 소속의원 20여 명을 동원,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 했고, 이날 10시 반쯤 회의장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며 의원들의 출입을 원천 봉쇄했다.
BBK 특검법 대치, 보좌진 가세해 ‘막말 신경전’
12월 14일 2시경 의원총회를 마친 100여명의 신당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 입구로 올라왔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의원들은 “국회 사무처 문 열어라” “한나라당 의원들, 범죄행위를 하느냐”며 문을 잡아 흔들었다. 임종석 원내부대표가 국회의장을 통해 국회 사무처에 정식으로 문을 열도록 요청하는 사이 신당 의원들은 로텐더홀에 매트리스틀 깔고 일렬로 나란히 앉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한나라당 보좌진들도 바로 옆자리에서 매트리스를 깔고 나란히 앉았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정상적인 국회 절차를 무시하고 방해했다”면서 “12시가 되더라도 반드시 힘을 모아 통과 시키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해찬 비상대책위원장은 “한나라당이 특검법을 처리하지 못하게 안에서 쇠사슬로 막는 것은 입법권을 스스로 져버리는 것”이라면서 “당당히 특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을 규탄하는 즉석연설을 하는 동안 한나라당 보좌진들은 시끄럽게 북적거리며 자리를 정렬했고 이 과정에서 “물러가라, 물러가라, 국정 파탄 세력 물러가라”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에 발끈한 강기정 의원과 홍미영 의원이 뛰어나가 항의를 했지만 보좌진들은 “의원과 보좌진과 다를 바가 무엇이냐”며 계속 시위를 벌였다. 결국 김효석 원내대표와 선병렬 의원, 한병도 의원이 안경률 한나라당 의원에게 자제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바리케이트와 톱질로 얼룩진 국회 특검법
12월 14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진입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봉쇄에 막혀 본청 내 로텐더홀에 앉아있던 이들은 오후 5시18분 국회 경위들의 도움을 얻어 잠겨있던 문을 열고서 본회의장에 전격 진입했다. 신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3시간여 동안 약식모임을 가지며 혹시 벌어질지 모르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허나 앞서서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문에 여러 차례 노끈을 감는 등 방어태세를 더욱 굳건히 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때는 오후 5시경 무렵 신당 보좌진은 본회의장 정문 양쪽에 있는 출입문을 열기 위해서 톱질을 하는 등 두 차례에 걸쳐 진입을 시도했다. 허나 이 노력은 무위로 끝났다. 문 안쪽서 체인을 단단히 감아놓기 때문이다. 이에 참고 있던 신당은 국회 측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했고, 기계식 절단기를 가지고 와 전날 밤부터 굳게 잠겨있었던 본회의장 정문을 활짝 열었다. 이 순간 “열려라”“열린다”를 번갈아가며 외치던 신당 보좌관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신당 의원들은 당 지도부를 선두로 해 하나씩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그러자 다시 사방에서 “진실승리”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한 보좌관은 “이제 의원들의 몫이다”라며 이명박 특검법 등 안건처리에 힘써줄 것을 요구했다. 5시경 신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치 양상이 벌어졌다. 특히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석을 무단 점거한 채 결사항전의 자세를 취했다.
국회 특검법 대치, ‘표결’ 둘러싸고 몸싸움 파행
국회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명박 특검법’과 BBK 수사검사 3인에 대한 ‘탄핵소추안’처리 문제를 놓고 벌인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의 대혈투였다. 신당은 당내의 ‘젊은 피’ 강기정, 정봉주, 서갑원, 이화영, 김형주 의원 등을 전면에 세워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든 ‘인간 벽’을 진압하기 시작했고, 상위 자리를 선점한 한나라당은 위치적 이점을 이용, 무게중심을 아래로 실어 신당 의원들을 있는 힘껏 밀쳐냈다. 두 정당 의원들이 의장석 좌측 계단에서 충돌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계단 중앙에 드러누워 신당의 압박을 온몸으로 저지했다. 이에 신당 의원들은 일제히 “원희룡, 네가 거기 있는 건 안 어울린다. 내려와라”라며 철회를 요구했고, 결국 신당 의원들은 원 의원을 끌어내기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과 이화영 신당 의원은 극한 몸싸움을 벌여 동시에 의장석 아래로 떨어졌다. 또한 대치 상황 중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과 서갑원 신당 의원은 서로의 얼굴을 손으로 가격하는 등 격렬하게 충돌했다. 김형주ㆍ강기정 신당 의원이 의장석에 근접한 위치까지 다다랐으나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이 강 의원의 넥타이를 잡아당겨 제압했다. 이에 강 의원은 의장석 위에 있던 전화기를 들어 휘둘렀고, 정면에서 방어하던 김경숙 한나라당 의원이 이 전화기에 가격을 당하기도 했다.
신당·한나라, 또‘이명박 특검법’심야 난투극
12월 16일 한나라당은 다시 구의원·보좌관 등 1500명 동원해 국회를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이명박 당선자가 밤 11시 반 ‘특검수용’ 기자회견을 하기 전까지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양측 사이엔 끊임없이 충돌이 빚어지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명박 당선자는 밤 12시쯤 한나라당 측 예결특위 회의장에 들러 특검법 수용 배경에 대해 “어떤 조사든 수천 번을 해도 한점 부끄럼이 없다”면서 “여의도의 새로운 정치를 위해 한발 물러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가 의사당을 들르고 나가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측은 “이명박 대통령”을, 신당 측은 “거짓말” “사퇴하라”를 외쳤다. 이에 앞서 신당측은 ‘이명박 특검법’을 17일 통과시키기 위해 의사당 3층 본회의장에 진지를 구축하고 한나라당과 대치 준비에 나섰다. 신당 의원 100여 명이 본회의장을 사흘째 점거하고 있고 본회의장 바깥과 국회 출입구 등은 보좌관 등 수백명이 막고 있었다. 특검법을 저지하려는 한나라당의 진지는 본회의장 맞은편 예결특위 회의장이었다. ‘로텐더홀’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전선을 형성한 것이다.
‘이명박특검법’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우회통과
한간에선 특검법 표결 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간의 ‘대혈투’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자의 16일 특검법 수용 입장을 밝힌 데다 한나라당이 수정안 제출을 포기하며 표결에 불참하면서 ‘이명박 특검법’으로 인한 최악의 사태는 종결됐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국회를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전락시킨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20분. 임채정 국회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은 이용희 국회부의장은 이날 17일 오후 2시경 특검법안을 공식 상정했다. 이어 신당 윤호중 의원의 원안 제안설명과 같은 당 김종률 의원의 수정안 제안설명에 이어 신당 문병호 의원 및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찬성발언이 이어졌고 곧바로 표결이 진행됐다. 표결이 끝난 시간은 정확히 2시57분이었고, 재석 160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특검법 표결에는 신당 이외에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국민중심당 의원 대부분과 창조한국당 김영춘 의원, 참주인연합 김선미 의원도 참석했다.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 이회창 후보 캠프로 간 곽성문 의원과 임종인 의원 등 무소속 의원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신당과 한나라당은 앞서 각각 의원총회를 열어 특검법 처리대책을 논의했다. 신당은 본회의장에서 비공개 의총을 열고 직권상정을 통한 특검법 처리 방침을 거듭 확인한 뒤 전의를 불태웠고, 한나라당은 국회 246호실에서 열린 의총에서 수정안 제출 후 표 대결, 본회의장서 부당성 설명 후 퇴장, 본회의 원천 불참 방안 등을 놓고 격론을 벌이다 결국 불참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법안의 명칭을 변경하고 수사대상을 조정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출하려 했으나 임채정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자 “부당한 절차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면서 본회의 불참을 결정했다.
‘이명박 특검법’과 ‘검사 탄핵안’을 놓고 벌인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이 벌인 동네 꼬마들과 같은 국회 폭력사태는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과 냉소주의에 제대로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직접 주인이 되어 정치에 참여해야 할 국민들을 떠나보내는 결과를 낳았으며 역대 대통령 투표율 중 최저를 기록하게 만들었다. 이번 17대 대통령 선거는 국민들의 이런 감정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이번 대선 유세에서 보여준 정치인들의 네거티브 활동들은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정치혐오증을 만들어 냈다. 새롭게 시작되는 2008년에는 좀 더 성숙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기대하며 온 국민이 정치인들을 믿을 수 있는 활동들을 보여줘야 할 것이며, 성숙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