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시대
2008-01-16 글/신혜영 기자
최신 유행도 쫓고 가격도 저렴해 인기, ‘누이좋고 매부좋고’
세월이 변화함에 따라 생활 유형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생활 유형이 바로 ‘패스트(Fast)’. ‘패스트푸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생활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패스트패션이 의류 업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린 핸드폰은 물론 화장품까지 점차 생활 속에서 패스트현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보면 가끔 기획 상품으로 몇 천 원에 판매되는 옷들이 많이 있어요. 가격이 저렴해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별로 맘에 들지 않아도 굳이 교환이나 환불은 하지 않아요. 유행하고 있는 옷을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인터넷 쇼핑을 통해서 저렴하게 구입하고 있죠.”
최근 이모 씨처럼 인터넷을 통해 패스트패션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떨어지거나 망가지면 버린다는 개념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란 유행에 따라 빨리 바꾸어서 내놓는 옷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써 시즌별 유행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요즘은 유행의 순환 주기가 빨라져 거의 주 단위로 새로운 스타일의 옷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행도 쫓고 가격도 저렴, 패스트패션시대
싼 맛에 사서 한두 번 입고 버리는 게 특징인 패스트패션은 10대와 20대 여성들에게 크게 각광받고 있다. 패스트패션을 선도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들어가 보면 티셔츠 한 벌에 1,000원, 바지 한 벌에 3,000원 하는 초저가 상품들이 즐비해 있다. 국내 대표 온라인 쇼핑몰 옥션, 지마켓, 디앤샵 등에서는 티셔츠 한 장이 2,000~3,000원 대의 옷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민소매 같은 경우는 단돈 몇 백 원에 파는 것도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서로 더 낮은 가격을 책정하며 패스트패션 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처럼 패스트패션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최신 유행을 쫓아갈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10,000원대의 의류와 1,000원대의 액세서리까지 한 벌 값으로 상하의는 물론 액세서리까지 코디가 가능해졌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노모 씨(24)는 “유행을 따라 갈 수도 있고 철 지나면 바로바로 바꿔 입을 수 있고 가격도 싸다는 게 패스트패션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젊은 남성들과 주부들도 패스트패션에 가세하는 추세다. 값이 워낙 싸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큰 부담이 없어서이다.
모 의류업계 관계자는 최근 패스트패션이 유행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국내 소비자들이 유행에 매우 민감한데다 패션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패스트패션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패스트패션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추세다. 명동 거리에 늘어선 보세매장을 둘러보면 몇 천 원대의 의류들이 즐비해 있다. 이처럼 저가상품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 패스트패션은 이미 정착한 단계다. 패스트패션 시장이 급성장하다보니 국내·외 업체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스페인과 미국 등의 해외 유명 패스트패션 브랜드 옷이 오픈 마켓과 해외구매 대행 사이트를 통해서 활발히 판매되고 있고, 국내 업체들도 패스트패션을 표방하며 앞 다퉈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유행에 매우 민감하고 패션 주기가 짧은 편이기 때문에 국내 패션시장에서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성장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휴대전화, 화장품 등 생활 곳곳에서도 ‘바꿔 바꿔’
이러한 패스트현상은 비단 패션계에만 나타는 현상은 아니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화장품 등까지 전자, 뷰피업계에서도 패스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1년 정도 쓰고 나면 휴대전화를 바꿔요. 1년 이상 가면 흠집도 많이 나고 디자인도 식상해 지거든요. 친구들 중엔 신제품에 눈에 띄는 기능이 있으면 몇 개월마다 바꾸는 애들도 있어요.”
지난해 3월 취업사이트 파워잡이 대학 매거진 씽굿과 함께 진행한 ‘휴대전화 교체주기’ 설문조사에 따르면 289명의 대학생 중 46.4%가 2년 전후 21.5%가 1년 전후라고 답했다. 이미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휴대폰이 업체들의 ‘공짜폰’경쟁까지 더해지며 교체주기가 짧아진 것.
업계 관계자들은 “2~3년 전 1년을 넘어가던 휴대전화 교체주기는 점점 빨라져 곧 6개월까지 단축될 것”이라며 “휴대전화를 할부로 사고 그 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구형이 되는 것이 요즘의 개발 추세”라고 말한다.
남들보다 먼저 신제품을 사서 써 보는 사람, 즉 얼리어답터들의 정보 공유 역시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여성들에게 패스트화장품도 인기다. A업체의 새치 전용 염색제 경우 염색시간을 30분에서 15분으로 줄였다. B사의 제모 제품은 3분 만에 제모가 가능하다. 또 붙였다 떼기만 하면 제모가 되는 간편한 제품까지 나왔다. 15분 만에 각질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피부의 빛깔을 나아지게 만드는 젤 타입의 마스크도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쉽게 버려져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지적도 있어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몇 가지 유행이 변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트렌드가 바뀌다 보니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건들은 곧 헌 물건이 되어버리고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국내에서 연간 1,300만 대의 휴대전화가 팔려 나가는 반면 폐휴대전화도 매년 1,000만 대 이상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패스트패션 의류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품질이 낮아 오랜 기간 동안 입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충동구매를 유발,구매하고도 몇 번 입지 않거나 혹은 가격표를 떼지도 않은 새 옷을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에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상당수 패스트패션 제품이 저가라 부담 없이 쓰고 버려 쓰레기를 양산하고 자원낭비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한 보고서는 최근 “패스트패션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환경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잘 입는가’란 이 보고서는 티셔츠와 스웨터 값이 어떤 경우 샌드위치보다 더 싸게 판매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패스트패션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패스트푸드 못지않게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지역 환경단체 관계자는 “현재 음식물쓰레기 문제가 심각한데, 패스트패션 열풍이 지속될 경우 의류부분에서의 쓰레기 양산도 사회문제화 될 것”이라며 “패스트패션의 특성상 일반 의류에 비해 재활용률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폐기처분할 때 태우든 땅에 묻든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