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을 찾아서
2007-11-07 취재_김영란 차장
한국의 무속은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해 온 민간신앙이다. 무(巫)는 태고적부터 우리민족의 토착신앙으로서 전반적인 면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해 왔다. 시대를 거치면서 갖은 박해와 탄압을 받았고, 근대화?서구화라는 명목아래 전통문화와 종교적인 측면까지 완전히 도외시(度外視) 당하기도 했다. 뒤늦게 무당과 무(巫)는 전통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학문의 대상으로 정립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세인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전근대적’이고 ‘미신의 전형’으로 생각해 온 무(巫)에 대한 종교적인 이해와 예술성을 이해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에서의 무속은 가장 오래된 종교로서 한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민중종교적인 성격이 강했다. 신령-무당-굿을 통해 국가와 마을, 좁게는 가정과 개인의 안녕을 비는 인간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복을 얻어 함께 풍요로운 삶을 살자는 현세적인 행복주의를 바탕으로 조상을 숭배하고 가족 간의 사랑을 강조하는 가정윤리적인 부분도 중요시했다. 삶이 불행한 자의 편에서 함께 빌고 축원했으며, 이러한 여러 의식들을 통해 유희적으로 어우러지는 축제이자 공동결집을 통해 정신적 유대감 형성하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우리 조상들과 함께 했던 민간신앙인 무속은 한국 사회 연구의 중요 기반으로서 학문적 가치로도 의미가 클 뿐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도 매우 높다. 이를 간과하지 말고 새로이 의미를 정립하여 무속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넓은 안목으로 바라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신의 부름을 받고 평온을 되찾다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 터놓고 얘기할 대상이 제대로 없다는 것도 현대인들의 정신세계가 피폐해지는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예로부터 온갖 가정사와 세상사에 대해 격의 없어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사람 중 하나가 ‘무당’이었다. 무당은 신과 인간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길흉화복에 대해 조언하는 컨설턴트였다. 과학적 잣대로 인간을 진단하는 것이 정신과 의사라면, 보이지 않는 신령의 힘으로 영혼을 치유하는 사람이 무당이다. 무당의 팔자는 타고 났다고 했던가. 신에게 선택된 사람들은 상황을 받아들일 때까지 무수한 고초를 겪는다. ‘장군신당’ 김영월 씨도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세상사가 주는 고통 속에서 20여 년 동안 화류계 생활을 해 왔던 김 씨에게서 심상찮은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살아왔던 김 씨는 나름대로 다복한 가정도 꾸미고 보통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열심히 살아왔지만 일, 사람, 돈 등 모든 것이 원하는 것처럼 제대로 흐르지 않았고 가족들마저 원인 모를 우환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느 날 김 씨가 침상에 누워 쉬고 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지게에 한가득 짐을 지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영상이 보였다. 그 뒤까지도 헛 망상이거니 여기던 김 씨가 결정적으로 신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집 계단을 오르다 생긴 사고 때문이었다. 높지도 않은 계단에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뇌진탕을 당한 김 씨는 머릿속에 피가 차며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의학적 검사를 마쳤지만, 병원에서조차도 제대로 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시름시름 앓다가 심상찮음을 느낀 김 씨가 찾은 사람이 바로 지금의 신(神) 스승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내림을 받은 김 씨는 거짓말처럼 몸이 회복됐고, 하는 일 역시 순풍에 돛 단 듯 순탄해졌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는데, 장군 신령님을 모시고 나선 저 자신도 놀랄 만큼 행복해지고 편안해 졌습니다. 신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저의 숙명이었지요.”
고단한 삶의 인생 상담자, 길잡이로
김 씨가 장군신당을 차리고 점사를 보기 시작한 후, 어느 날 뜬금없이 ‘영숙’이란 이름이 와 닿아 주위 사람들에게 아는 사람 없냐고 묻고 다녔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날 점사를 보러 온 ‘영숙’이란 이름의 여자들이 둘이나 찾아왔다고 한다. 신내림에 대해 의구심이 많았던 남편도 이러한 부분들을 지켜보면서 지금은 누구보다 더 외조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필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타고 난 기운으로 ‘장군’이라는 강한 신령을 모신 김 씨는 생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나누고 치유하는 진정한 인생의 조언자로서 장군신당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제일 힘든 부분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조차도 ‘무당’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죠. 사회적인 시선도 곱지 않은 분위기에서 가족, 친구들조차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한없는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무속인을 고통 받는 사람들을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안정을 찾아주어 신명을 다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또 다른 길을 안내하는 사람으로 인식을 해 줬으면 합니다.”
김 씨는 금전과 인기에 영합하는 무속인이 아니라 수양과 인격을 겸비한 진정한 영매자로서의 역할을 다짐하고 있다. 김 씨의 바람처럼 고단한 삶에서 쉽게 내 놓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 놓는 인생 상담자, 길잡이로 참다운 무속인의 의미를 느끼게 해 주는 성인(聖人)으로 인식될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