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총림 수덕사/옹산 주지스님

2007-11-28     취재_김은예 기자
수덕사, 고암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수덕여관 복원
누구나가 찾을 수 있는 예술이 꽃피는 산중으로 거듭날 터
수덕여관은 고암 선생이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고향처럼 여기며 심신을 달래고 틈틈이 작업 활동을 했던 곳으로 고암의 예술혼이 서려 있다. 이번 복원을 통하여 누구나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예술 명상의 감상 공간으로서 사찰 문화 체험(템플 스테이 Temple
Stay) 등의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되길 기대해 본다.


1,300년을 이어 온 대가람(大伽藍)
수덕사는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불자들은 어떤 소원을 안고 이곳을 찾은 것일까? 그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수덕사를 둘러 보다 보니 나 역시도 어느새 내 본분을 잊고 자연에 취하고 고요함 속의 평화에 취해 버렸다.
옹산 주지스님과의 약속 시간이 되어 그 분을 만나 뵈러 약속 장소인 수덕 여관으로 갔다. 아직 복원 중인 수덕 여관 내엔 일하는 사람이며 그 곳을 둘러보러 온 사람이며 북적대는 것이 벌써부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옹산 주지스님을 찾았는데 챙이 큰 밀짚모자에 승복을 입고 계셨다. 방금 무슨 일을 하셨던 것 같은 수수한 차림으로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 묻혀 하마터면 몰라 뵐 정도였다. 자세히 보니 스님이 신은 하얀 고무신 앞도 찢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스님이 하신 말씀 중 “불교는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고 내 자신을 깨닫는 것이야. 내 마음이 불교인 것이지. 마음이 희로애락을 조작하니 마음이 부처인 것이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깨달으려고 노력하고 있어”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보여 지는 겉모습이 아닌 내 마음을 깨닫는 것이야 말로 참 불교라는 것을 말이다.


고암의 미공개 작품 수십 점 전시
수덕사 입구에는 고암의 고택을 복원한 수덕여관이 새 단장을 하였고, 그 기념으로 고암의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고암의 미술관은 대전 시립미술관에도 있다. 그러나 수덕여관에는 그 곳에서 볼 수 없는 살아생전 고암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고암 이응로 화백의 암각화인데 그것은 고암이 옥고를 치르고 이곳에서 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며 우주 삼라만상을 조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특히 고암의 체취가 풍기고 그 분의 숨이 살아 있으며 그 분의 정신과 영이 살아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수덕여관에 오면 이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고암 생전에 살던 집의 원형을 최대한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 수덕여관은 덕숭산의 정기가 쉬어가는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곳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노라면 바람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스쳐 지나가고, 그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자락만이 세상이 깨어 있음을 알린다. 바쁜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이들이 꼭 한 번 찾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내가 나를 깨닫는‘ 부처가 될 수 있기를. 또한 이곳에서 고암 이응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덤이며 행운이다.
또 하나의 눈에 띄는 것은 고암이 그림을 그린 후 낙관을 찍던 도장이다. 그 인보집을 예산에 있는 분이 소장하고 있는데 잠시 전시 기간 동안 대여(빌려) 주었다. 또한 이응로 화백이 일본에 가 유명한 화가 스승을 만났으나 그 쪽에서 만나주지 않아 한 달 간을 대문에서 치맛자락을 잡고 제발 입문 시켜달라는 데에 스승이 감동을 받아 입문을 시켰다는 일화를 들었다. 수덕여관을 복원하는 중에 그의 젊은 시절 습작품이 수십 점이 나온 것이다. 이렇듯 이 곳에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고암의 분신과도 다름이 없는 작품들이 전시가 된다.
옹산 주지스님은 수덕여관에 대해 “고암선생이 생전에 이곳에 미술관을 지으려다 두 번이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기에 이제라도 그 뜻을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고 또 고암의 얼을 살리는 것이야 말로 그 분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미술을 애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지나가다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예술 명상의 공간으로 재탄생되길 바라는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