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DLS 사태’…“믿는 은행에 발등 찍혔다”
DLF, DLS 총 판매액 8224억, 개인투자자 89.1% 차지
금감원, 분쟁조정 위한 조사 착수…불완전 판매 입증 핵심
(시사매거진257호=이미선 기자) 세계 경기둔화로 유럽의 장기채 금리가 급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결합상품(DLF·DLS)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00%까지 원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고,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의 프라이빗뱅커(PB)들도 멘붕에 빠졌다. 특히 해당 상품에 가입한 고객 중 개인투자자 비중이 89%에 달하고, 이중 절반은 65세 이상 고령층으로 드러나 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금융당국은 지난 8월 26일 판매사(은행), 발행사(증권사),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고강도 합동검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손실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A씨는 이사자금으로 준비한 2억 원을 3개월 만에 모두 잃을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5월 은행에서 추천한 6개월 만기의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에 가입했다가 수익은커녕 원금마저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A씨가 투자한 상품은 독일 10년물 채권금리에 연동하는 DLF로 100% 평가손실이 발생한 상황. A씨는 “절대 손해볼일은 없을 거라던 은행이 원금에 100% 손실이 났는데 ‘천재지변’이라며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총 8224억 중 7888억 우리은행·KEB하나은행 통해 판매
DLS상품은 해외 금리, 환율, 국제유가 등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정해진 조건을 충족하면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하는 상품으로 주로 은행 프라이빗뱅커(PB) 센터를 통해 판매된다. 문제가 된 상품은 독일 국채 10년물과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 스왑(CMS) 금리 등 해외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한 DLS다. 만기 때 금리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그에 따른 원금과 이자를 제공하지만 일정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원금 전체를 잃을 수 있는 고위험투자상품 유형에 해당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문제가 불거진 주요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DLS)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8월 7일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DLS) 판매잔액은 총 8224억 원 수준이다. 회사별 판매규모는 우리은행(4012억 원), 하나은행(3876억 원), 국민은행(262억 원), 유안타증권(50억 원), 미래에셋대우증권(13억 원), NH증권(11억 원) 순으로 조사됐다. 형태별로 보면 전체 판매잔액의 99.1%(8150억 원)가 은행에서 펀드(사모 DLF)로 판매됐으며 나머지(74억 원)는 증권회사에서 판매됐다. 고객별로는 개인투자자의 투자 금액이 가장 높았다. 개인투자자(3654명)가 투자한 금액은 7326억 원으로 전체 판매잔액의 89.1%를 차지하며, 법인(188개사)은 898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8000억 원 넘게 판매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DLS)은 주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을 통해 집중적으로 판매됐다. 따라서 이들 은행을 통해 투자한 투자자들은 거액의 원금손실 가능성이 높아졌다.
KEB하나은행은 미국 국채 5년물 금리와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스와프(CMS) 금리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조기 상환되거나 만기 상환되는 DLF를 판매했다. 배리어(barrier) 60% 상품에 가입했다면 만기 때 기초자산의 금리가 가입 시 금리의 60%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3~5%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60% 아래로 떨어지면 떨어진 만큼의 손실을 본다.
예를 들어 기초자산으로 삼은 금융상품의 금리가 가입 시점 1%였다면 만기 때 금리가 1%의 60%인 0.6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3~5% 수익이 나고, 0.6% 아래로 가면 최소 41% 손해를 본다. 하나은행은 이 상품을 지난해 9월말부터 판매했는데 상품 만기가 1년 또는 1년 6개월이라 일부 상품은 9월 만기가 도래한다. 현재 일부 상품은 평가손실이 투자원금에 50% 이상 발생했다. 다만 대부분 6~8회 만기 연장이 가능해 당장 손실을 확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은행 판매 DLF, 판매액 전체 ‘원금 손실’ 구간 진입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금리 연계 DLF다. 판매액 전체가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한데다 다음 달부터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해당 상품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0.2%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연 4~5%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반면 금리가 행사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금리 차이에 손실배수를 곱한 비율로 손실이 난다. 예를 들어 배리어(barrier) -0.2%인 상품에 가입했다면 금리가 -0.3%가 되면 금리 차이인 0.1%에서 손실배수인 200을 곱해서 원금의 20%를 손실 보는 구조다. 금리차가 0.5% 이상이면 원금 100% 손실을 보게 된다. 현재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0.7%선에서 오르내리고 있어 DLF 투자자는 원금을 한 푼도 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은행이 1250억 원 규모로 판매한 DLF는 만기가 4~6개월로 독일 금리가 마이너스에 진입하기 직전인 올해 4월부터 5월까지 해당 상품을 팔아 9월 19일부터 만기도래한다. 더욱이 연장도 되지 않아 올해 안에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투자자들 금융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준비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자 투자자들은 금융사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송성현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지금까지 파악한 피해자들의 사안은 다양하다. 예금이라고 알고 가입한 사람도 있고, 독일 금리가 떨어질 일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판매한 분도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분쟁조정보다는 소송으로 가는 것으로 보고 9월말 전에는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원도 9월 초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 DLF) 피해 사기 혐의로 우리은행장과 KEB하나은행장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금융소비자원은 “금융당국이 늦장 조사를 벌이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들이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주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무능한 감사를 믿을 수 없다는 점에서 두 행장을 검찰에 형사고발하겠다. 두 행장은 3700여명의 피해자가 7000억 원의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진솔한 사과도 없이 행사장에 다닌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당장 피해보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 절반 65세 이상 고령층, 무리한 상품권유 가능성 높아
피해 투자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투자했다”며 은행들의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DLS 투자자들 중에는 법인도 있지만 개인이 3654명으로 전체 판매 잔액의 89.1%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투자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정무위 소속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두 은행이 65세 이상 고령층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한 DLF 상품 잔액은 2020억 원이다. 이는 개인 고객에게 판매한 전체 금액의 45.7%에 해당한다. 판매의 절반이 고령층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고령층에게 고위험상품은 통상적으로 부적합 상품으로 분류된다. 특히 파생금융 상품은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다. 또 복구할 수 있는 기대 여명이 상대적으로 짧다. 이 때문에 65세 이상 고령층을 대상으로 DLF 상품 가입이 많다는 것은 은행 측이 무리하게 상품을 권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 사태의 파문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해당 파생결합상품의 제조·판매 등 실태파악을 위한 합동검사를 빠르게 추진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불완전 판매 여부를 중심으로 상품 구조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는 계획이다.
해당 상품 대부분을 판매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측은 말을 아끼면서 금감원 검사부터 성실히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은행 측은 이달 초 약 70명의 인력을 투입시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DLS 사태와 관련된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하나은행도 검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잠든 금소법, DLS사태로 논의 본격화
금융권 안팎에서는 은행들이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위험 성향 투자자에게 상품을 권유한 것인지, 위험성을 충분히 알렸는지 여부가 불완전 판매 여부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사 결과 불완전판매가 입증될 경우 가장 큰 관심사는 해당 상품을 판매한 금융회사가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배상을 할지다. 금감원은 상품 판매의 적정성, 적합성, 부당 권유 여부 등을 기준으로 불완전판매 여부를 가린다. 과거 불완전판매로 투자자들이 피해액의 최대 70%까지 배상을 받아낸 전례가 있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상품은 사모펀드 형태로 판매돼 더욱 배상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8월 22일 국회 정무위에 참석해 “금소법이 제정됐다면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데에도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감원장도 금소법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입법이 추진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금소법은 금융상품이 복잡·다양화되는 상황에서 금융사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금소법은 위법 계약 해지권과 징벌적 과징금 조치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제한할 수 있다. 때문에 법통과 땐 해당 조치를 통해 금융소비자 피해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금소법은 지난 2010년 6월 법 제정방향이 제시된 후 지난 8년 동안 14개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9개가 기한 만료로 폐기됐고 현재 5개가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금감원은 현장 검사와는 별개로 은행과 투자자들에 대한 분쟁조정을 위한 조사를 지난 8월 26일 착수했다. 이번 조사는 투자자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불완전 판매가 입증하는 게 핵심이다. 빠르면 9월 분쟁조정위원회에 이들 은행의 DLF 불완전 판매 안건을 상정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