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뒷이야기

2007-10-24     글/김정숙 기자
한·미정상회담 통역오류 웃지못할 해프닝 사건 전말
퉁명스런 대화’ 통역상 오류로 인해 회담 평가에 혼선 빚어

지난 9월 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상간 회담을 놓고 통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빚어지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일부 외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국내외에 커다란 파장이 일기도 했다.




지난 9월 7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미묘한 해프닝과 관련, 뉴욕타임스가 8일(현지시간) 양국 정상간의 당시 대화 내용을 상세히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타임스는 한·미정상이 회담을 마치고 기자들과의 브리핑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밀어붙였다(Press)’면서 통역을 통한 노대통령의 말을 소개했다.
“I think I might be wrong ? I might be wrong ? I think I did not hear President Bush mention the ? a declaration to end the Korean War just now,” Mr. Roh said. “Did you say so, President Bush?”(좀 잘못된 것 같아요- 잘못된 것 같아요 ? 부시대통령이 한국전쟁의 종전 발표를 언급하지 않은 것 같아요. 부시 대통령, 그렇게 말씀하셨죠?”)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이 “그것은 북한의 지도자에게 달린 문제”라고 답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겉보기에(apparently) 불만족스러워하면서 다시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If you could be a little bit clearer in your message,” he said. Mr. Bush cut him off. “I can’t make it any more clear,” Mr. Bush said, ending the exchange with a very terse, “Thank you.” (“당신의 메시지를 좀더 분명하게 해주신다면,” 하고 노대통령이 말하자 부시 대통령은 말을 자르면서 “더이상 분명할 수 없습니다”라며 간결하게 “감사합니다”하고 대화를 끝냈다.)
타임스는 양국 정상이 북한 정책을 놓고 ‘충돌(Clash)’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서 미국이 마카오 은행을 통한 북한의 금융 거래를 봉쇄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공공연히 불만을 ‘표시했다(Publicly Protestd)’고 전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한국이 단호한 행동을 취할 것을 약속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타임스는 다나 페리노 백악관 부비서가 이날 대화에 대해 “통역상의 문제가 있었을뿐 양국 정상간에 긴장의 분위기는 없었다. 아주 부드러운 만남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역시 두 정상의 언론회동 설명과정이 외교적 상궤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측 통역의 실수로 부시 뜻 정확하게 전달 못해
이들 보도의 발단은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 서두 발언에 이어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두 번에 걸쳐 회담의 메시지를 보충 설명해달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요청한 장면을 보는 시각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 노 대통령의 추가 설명 요청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현장에서 한국어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미국측 통역의 잘못에서 출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과정에서 "나의 목적은 ‘평화조약’(peace treaty)을 통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며, 한국전쟁을 끝내야 하고 끝낼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그가 갖고 있는 핵 프로그램을 검증가능하게 폐기해야 한다"고 언명했고, 이 같은 언급은 이번 회담을 집약하는 핵심적 발언이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게 되면 이 같은 뜻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후 ‘언론회동’에서 이 같은 언급의 연장선상에서 한국전쟁 종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에 대해 언급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북한 지도자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전면 공개하고, 해체할 경우 우리는 모두가 바라는 평화 구축을 위한 ‘새로운 한반도 안보체제’(a new security arrangement in the Korean Peninsula)를 이룩해 낼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우리는 ‘동북아 평화안보 체제’( the Northeast Peace and Security arrangement)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이를 추진키로 했다”라고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한국말로 옮긴 미국측 통역은 이를 “북한 지도자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전면 공개하고, 해체할 경우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평화체계가 새롭게 설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아주 짧게 번역해서 전하는데 그쳤다. 통역이 부시 대통령의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대폭 축약한데다, 이번 회담의 핵심적 메시지인 ‘a new security arrangement in the Korean Peninsula’도 빠트렸다. 미국측도 이를 "통역 누락"(lost in translation)이라고 표현했다.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한반도 안보체제’라는 표현은 회담에서 언급했던 한국전 종결이나 평화조약 등을 포괄하는 구체적이고 제도적 개념이지만, 통역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으로만 짧게 번역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 한국어 통역을 들은 노 대통령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선언에 대해 말씀을 빠트리신 것 같은데, 우리 국민이 듣고 싶어하니까 명확히 말씀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부시 대통령에게 추가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표현했던 ‘평화조약’(peace treaty) 이라는 구체적 표현을 다시 사용하며 “한국전을 종결시킬 평화조약을 서명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 (I said it's up to Kim Jong-il as to whether or not we're able to sign a peace treaty to end the Korean War)”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측 통역은 이번에도 ‘평화조약’이라는 개념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를 "평화체제 제안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달려 있다"라는 식으로 또 다시 분명하지 않게 번역했다.
노 대통령은 통역 해석을 듣고 웃으면서 다시 “김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재차 보충 설명을 요청했고,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씀드릴지 모르겠다”며 다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9월 9일 일부 외신 기사들에 대해 “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련된 언급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구체적 답변을 두번 요청한 부분에 대해서는 ‘통역 오류에서 비롯됐다’는 백악관 설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도 모르고 내용도 모른 채 쓰인 다소 왜곡된 기사”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평화조약’(peace treaty)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국전쟁을 평화조약으로 종결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이 사실을 양 정상이 확인해 나가는 과정은 정치외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하지만 통역이 부시 대통령의 구체적인 표현을 추상적인 말로 번역하면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말로 전해진 통역에서 ‘평화조약’ ‘새로운 한반도 안보체제’ 라는 부시 대통령 발언이 전달되지 않아 이를 확인하기 위해 노 대통령이 답변을 요청한 것이고,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왜 두번씩이나 물을까’라고 당혹했을 수도 있었다는 게 사실의 전체”라며 “이 같은 해프닝을 회담의 성과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언론회동 상황은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전 종전’과 ‘평화조약’을 언급하도록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을 통역이 누락해서 번역함에 따라 노 대통령이 이를 거듭 확인하는 상황이었고, 이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일부 외신은 양 정상이 다소 ‘퉁명스런’(testy) 대화를 나누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분명히 통역과정에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 회담은 부드럽게(smoothly) 진행됐다”며 이 같은 해석의 보도를 일축했고, 정부 관계자도 “미 국무부측에서 ‘통역상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의 ‘언론회동’을 직접 지켜본 한국 취재기자들도 “부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회담 내용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노 대통령이 화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고, 외신 기자들의 느낌에 다소 ‘미스’가 생긴 것은 통역과정의 실수에서 기인한 바가 컸고,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고 전했다.



북핵문제 6자회담 당사국들이 협의해 해결해야
한편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 무기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하면 평화협정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며 “김 위원장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언급함에 따라 내달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보다 진전된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당초 정부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목표치를 다른 의제들에 비해 비교적 낮게 잡고 있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최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북핵문제는 6자회담 당사국들이 함께 협의하고 해결해 나갈 사안이며, 상황의 진전을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튼튼한 기초로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6자회담에서 풀어나갈 사안이기 때문에 정상회담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남북관계 다지기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북핵 6자회담을 총괄하고 있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정상회담 공식수행단에서 빠진 것도 이 같은 정부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 소식통은 이와 관련,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 정부가 정상회담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북핵 불능화 절차 및 내용에 대해 6자회담에서 당사국들이 합의한 내용을 김 위원장 입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와 관련한 정부 목표치가 상향 조정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한 정부 소식통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불능화 이후 단계인 핵 폐기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거나, ‘언제까지 핵을 폐기하겠다’는 비핵화 일정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김 위원장의 공식 반응이 정상회담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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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맞은 노대통령 “휴일처럼 보낸 하루”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9월 16일(음력 8월 6일) 만 61번째이자 청와대에서의 마지막 생일을 특별한 행사없이 보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평소 휴일과 마찬가지로 권양숙 여사와 함께 관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은 아침에 가까운 친지를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신 것으로 안다”면서 “내내 관저에서 휴식을 취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까운 친지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당초 청와대는 이번 생일이 노 대통령이 임기 중 청와대에서 맞는 마지막 생일이기 때문에 9월 14일 저녁에는 국무위원과의 만찬, 9월 15일에는 비서관급 이상 참모들과 만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변양균 파문’과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문제’ 등 최근 불거진 측근 의혹 등으로 인해 모두 취소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