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글로벌 뱅크다
2007-10-12 글_신혜영 기자
해외시장은 새로운 성장 엔진, 금융 세계화위해선 대형화·겸업화로 나가야
최근 국내 은행들이 해외진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21세기의 경쟁력은 무엇보다도 글로벌화라는 점에서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해외의 내로라하는 은행들은 예전부터 조심히 글로벌 도약을 꿈꿔왔으며 이러한 그들은 세계적인 은행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갖추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금융 산업은 대형화·겸업화·글로벌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인데 반해 최근 국내 은행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국내 은행들도 글로벌화를 위한 준비를 갖춰야 할 때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내 은행의 총 자산 증가율은 지난 2000년 13.3%를 정점으로 2003년부터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다. 수익성을 좌우하는 예대마진(금융기관이 대출로 받은 이자에서 예금에 지불한 이자를 뺀 나머지 부분)도 1998년 4.20%포인트에 달했지만 2005년 3.39%포인트, 2006년 3.04%포인트, 2007년 3월 말 2.93%포인트로 계속 하락추세다.
국내에서 은행산업의 성장은 이제 한계상황에 부딪혔다. 이에 국내 은행들은 해외로의 진출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뱅크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씨티그룹의 경우 지난 1902년 처음으로 해외 지점을 개설한 후 단계적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씨티그룹은 미국에서 전체 순이익의 57%, 멕시코 10%, 라틴아메리카 5%, 유럽·중동·아프리카 7.9%, 일본 5.9%, 기타 아시아지역에서 14.3% 등을 차지하고 있다.
베티 데비타 씨티뱅크 글로벌 소비자그룹 대표는 “해외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진출 국가의 시장상황·금융규제·인적자원·고객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며 “씨티그룹의 글로벌 전략은 영업기반의 확대는 물론 고객서비스 향상으로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HSBC는 지역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세계의 지역은행’을 모토로 전 세계를 공략한 반면, 맥쿼리은행은 틈새시장형 전략으로 일부 제한된 시장에 집중 투자해 성과를 냈다. HSBC가 올 상반기 거둬들인 수수료 수입도 지역별로 고루 분산돼 있다. 유럽 지역이 4,144억 달러로 39.5%를 차지하고 ▲북미 27.7% ▲홍콩 13.7% ▲기타 아시아태평양 9.6% ▲남미 9.5% 등이다. 1년 전에 비해 유럽 비중이 줄어든 대신 홍콩·남미·아시아태평양의 비중은 늘어났다.
스티븐 그린 HSBC그룹 회장은 “해외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의 접근과 포트폴리오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이 공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해 글로벌 금융회사의 총자산규모는 UBS 19,894억 달러, 씨티그룹 18,840억 달러, 모건스탠리 11,206억 달러, 메릴린치 8,412억 달러, 골드만삭스 8,382억 달러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금융지주 2,252억 달러, 국민은행 2,113억 달러, 신한금융지주 1,888억 달러, 하나금융지주 1,233억 달러, 기업은행 1,125억 달러, 산업은행 1,110억 달러로 조사돼 글로벌 금융회사에 비해 우리나라 금융 자산규모가 현저히 낮았다.
국경 넘는 M&A로 대형화·겸업화로 일어선 글로벌 뱅크
전 세계적으로 간접금융보다는 직접금융의 비중이 날로 확대되면서 예대마진에만 의존해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때문에 기업공개(IPO)·인수합병(M&A) 등 투자금융(IB)사업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은행을 중심으로 한 M&A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씨티그룹의 경우 지난 1994년과 1995년 보험사인 트래블러스를 인수했고 1997년에는 살로만브러더스투자은행을 2000년에는 자산운용사인 슈뢰더스 등 다른 업종의 금융회사를 인수, 씨티그룹이 글로벌 초유량 종합금융회사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처럼 은행업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진 후 다른 금융업종에 속한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업다각화를 이뤄 절대강자로 떠올랐다. 씨티그룹의 경우 IB·보험 등 특정 부문에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를 인수하는 전략을 구사해 업종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크레딧스위스그룹도 이종업종 간 M&A를 통해 글로벌 종합금융사로 성장한 케이스로 꼽힌다.
척 프린스 씨티그룹 회장은 “우리는 성장기회가 무궁무진한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사업 활동을 더 활발하게 펼칠 계획이다. 그래서 신규 지점의 70%가량을 신흥시장에 집중해 왔으며 앞으로도 핵심 시장인 신흥 시장에서 지점을 늘리는 한편 핵심 사업 M&A도 계속 추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럽 회사인 USB는 1995년 유럽 시장에서 SG워버그투자은행을 인수한 후 미국으로 진출해 1997년 딜런리드투자은행, 2000년 페인웨버투자은행을 매입했으며 2004년에는 선물 및 옵션에 강했던 ABN암로를 사들였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미국계 투자은행은 백년 넘게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글로벌 강자의 위치를 다졌다”며 “IB업력이 일천한 국내 은행은 자신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부터 차근차근 도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변해야 산다” 국내 은행의 성장 동력은 ‘IB’
최근 국내 은행에서도 이러한 M&A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둔 요즘 국내 은행들은 일제히 IB역량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기업은행은 수십 년 간 쌓아온 중소기업금융을 자본시장과 연계하기 위해 증권 자회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대상 증권사를 적극 물색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보험사를 인수한 데 이어 한누리증권 인수를 추진 중이며 우리금융은 LG투자증권을 인수한 한편, 최근엔 한미캐피탈과 LIG생명보험 인수 예비제안서를 제출했다.
홍대희 우리은행 IB본부 부행장은 “기업대출 등 간접금융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대규모 자본투자가 필요한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IB사업으로 연결하면 이자수익보다 수십 배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국내 은행의 복합화를 위한 이종(異種) 금융업 간 M&A는 1990년대 중반 금융시장 통합화 바람과 함께 몰아쳤던 미국 금융시장의 이종 업종 간 M&A와 흡사하다”며 “복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기업이 앞으로 국내 및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B사업의 경우 자금력·노하우와 함께 투자 마인드를 가진 전문가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가도 부족한 상황인데다 전문가를 키울 수 있는 여건도 취약한 편이다.
산업은행의 한 임원은 “IB는 결국 유능한 인력이 만드는 것인데, 식견과 경험을 갖춘 인재가 아직 드물 뿐 아니라 전문 인력에 대해 파격적 대우를 해 줄 보수와 성과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철선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씨티그룹 등 글로벌 강자들이 이미 다 진출해 있는 중국 등 신흥시장에만 진출할 게 아니라 구미 등 선진시장에 진출해 시행착오도 겪으며 노하우와 경험을 익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지난 8월 3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금융업의 미래형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필립 코틀러 석좌교수는 “글로벌은행이 되려면 맞춤형 서비스로 전 세계 다양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시장은 글로벌 뱅크를 향한 새로운 성장 동력
일찍이 글로벌 뱅크를 지향한 외국의 금융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보면 해외시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은행의 새로운 성장 엔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국내 은행들도 최근 들어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동남아시아·우즈베키스탄 등 해외 신흥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현지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해외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현재 국내 주요 은행의 해외영업 수익 비중은 3%를 조금 웃돈다. 국내 은행의 경우 전체 점포에서 해외점포가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씨티그룹이 78.2%, HSBC가 79.7% 등을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해외자산 비중도 2.5%로 UBS 90%, 도이치뱅크 79%, 씨티뱅크 43% 등 선진국 글로벌 뱅크와 비교해보면 턱없이 낮다. 해외점포 수익 비중역시 국내 은행은 3.4%로 UBS가 70.5%, HSBC가 48.1%, 씨티뱅크가 33.1% 등과 큰 차이를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보고한 2006년 말 ‘국내은행 아시아 신흥개발국 진출현황’을 살펴보면 ▲사무소의 경우 중국 4곳, 베트남 2곳, 인도1곳 ▲지점의 경우 중국 18곳, 베트남 4곳, 인도 1곳, 필리핀 1곳, 방글라데시 1곳 ▲현지법인은 중국 1곳, 베트남 2곳, 인도네시아 3곳이다. 이 가운데 최근 국내 은행 중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해외진출을 통해 서서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신한비나은행은 신한은행과 베트남대외무역은행이 50대 50으로 합작해 지난 1993년 설립한 소매금융 전문 은행으로 지난해 말 자산이 1억 9,242만 달러였지만 올 6월 말에는 2억 8,878만 달러로 6개월 만에 50%가 증가하는 등 최근 성공적인 현지화를 바탕으로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진출 초기에는 한국기업을 지원하는 영업 전략으로 영업기반을 확보한 후 1995년 호찌민 지점 외에도 베트남 현지 은행과 합작 투자해 설립한 신한비나은행이 독자 외국계 은행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은 “2012년까지 아시아 10위권 은행으로 성장하고 이후 글로벌 리딩 뱅크로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 2003년 설악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도네시아은행 BII(인도네시아국제은행)을 인수한 후 우리식의 금융기법을 도입해 성공을 거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은행은 정보기술·카드·기업금융 등에 걸쳐 전문 인력을 파견, 국민은행식 경영 노하우를 전수했다. 주택금융을 활성화하는 한편, 현금관리서비스를 도입했고 신용카드사업의 경쟁력을 높였다. 이러한 국민은행만의 경영 노하우로 지난 2007년 3월 말 현재 546억 원의 자본이득을 얻었다.
장기성 BII 이사는 “국민은행의 노하우를 활용해 3년 만에 IT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영업이 본궤도에 올랐고 이제는 BII가 우량은행으로 탈바꿈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하나은행도 인도네시아 현지 소형은행을 인수, 본격적인 해외진출에 발을 내딛었으며 중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할 수 있는 예비인가를 받은 상태다. 지난 8월 6일 하나은행은 인도네시아의 소형은행 ‘PT뱅크 빈탕 마눙갈’을 약 3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최종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 현지법인은 오는 12월부터 베이징, 산둥성 및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영업을 시작해 2012년까지 창춘과 하얼빈, 톈진, 다롄 등에 매년 분행을 증설할 예정이이며 2015년까지 중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을 연결하는 해외네트워크를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밖에 우리은행과 외환은행도 인도네시아에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