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인의 髮자취
2007-09-25 취재_김영란 차장
미(美)를 향한 여성들의 집념과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대하다. 예로부터 미인은 타고 난 자태도 그러하지만 정갈한 차림새에 이어 머리모양새도 미적 기준으로 상당 부분 차지했다. 옛 여인들의 머리모양이 시대적으로 다양하고 호화롭게 변천해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우리의 옛 두식(頭飾)문화는 그동안 오랜 역사와 많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관련지식 부족이나 응용발전의 미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져 있는 머리모양은 세계 여느 민족의 헤어스타일보다 더 훌륭한 문화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역사 속 여인들의 고전머리 열풍
TV나 영화 등에서 사극 열풍이 불면서 우리는 한번 쯤 고전 속 여인들의 머리모양을 눈여겨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매체를 통한 부분들은 한류라는 급물살을 타고 외국인들의 관심을 자아내기에도 충분했다. 이러한 부분들은 단순한 스토리를 전개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한국 고전 속의 여인들의 미에 대한 부분들을 부각시키면서 문화홍보에도 일조하고 있다. 비록 컬러풀한 색상은 아니지만 단아한 한복차림의 옛 여인들의 머리모양새며 장신구, 각종 소품 등은 단순한 차원을 넘어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부분이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머리모양은 신분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때로는 상하귀천의 구분 없이 상류층이 하류층을 모방하면서 대유행을 만들기도 했다. 전통사회 여인들의 머리치장에 대한 집착은 과소비적인 사회문제로 번져 나라에서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만큼 심각한 시기도 있었다. 이러한 전통사회 여인들의 머리치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남성권위적인 역사 속에서 자존하기 위한 시대적 도피의 탈출구가 아니었나 싶다.
복식에 관한 연구가 ‘머리에서 발끝까지’라는 개념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의복에 비해 고전머리에 대한 연구나 자료는 유일무이한 상황이었다. 머리모양은 현존하지만 그 명칭이나 시대적 배경이 모호한 채로 흘러 온 것은 그 문제점을 심각하게 부각시켰다. 화려한 의상과 부담스러우리만큼 큰 가채를 쓰고 나와 옛 여인의 미를 한껏 과시했던 ‘황진이’같은 경우나, 사극으로는 최대 관객을 동원한 영화 ‘왕의 남자’의 장녹수의 머리모양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관심을 유발시키면서 고전머리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촉발시켰다. 이러한 관심의 증폭은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흥미를 높이면서 많은 이들이 고전머리에 대한 기술을 전수받고 있으며, 대학에 해당학과가 생기기도 하는 기염을 토했다. 의상이나 장신구가 많은 관심을 받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을 때 제대로 된 전수자가 없거나 해당자료가 없어 설움을 받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눈부신 발전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고전머리 역사를 체계화하여 집대성
고전머리라는 것이 옛 궁궐의 나인이나 서민층에 의해 시술된 것이기에 제대로 된 전수자를 찾거나 자료를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동굴벽화, 오래된 고서, 자문 등을 통해 제대로 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면 십리를 마다않고 전국을 내 달렸던 인물이 현 (사)고전머리연구협회 손미경 회장이다. 손 회장은 타고난 헤어디자이너로서 이십여 년 동안을 영화, 방송, 국악 무대 등에서 고전머리를 전문으로 해 오다 옛 여인들의 머리모양에 대한 정확한 정립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삼국시대의 고분벽화, 고려시대의 불화, 조선시대의 풍속화와 계모임 그림(계회도), 사람의 일생을 병풍에 그린 평생도 등을 통해 시대별 머리를 정리했습니다. 역사적 유물 속에 내재된 고전머리 모양은 참으로 다양하고 흥미롭습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 머리모양을 제대로 찾아 재현해 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임이자 보람입니다”라며 손 회장은 고전머리에 대한 역사를 체계화하여 제대로 자료화하는 것이 자신의 천명임을 다짐하고 있다. (사)고전머리연구협회는 현재 인터넷 카페를 통해 전국 지회 회원들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으며, 사찰, 유물전시장, 도서관을 방문해 우리머리 모양연구와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손 회장은 그동안의 연구와 자료들을 총망라하여 국내 최초로 고전머리 관련 전문서적 ‘한국 여인의 髮자취’를 발간하고 뒤이어 실용지침서 ‘고전머리 따라하기’를 발간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한국 여인의 髮자취’는 문화관광부에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어 그 내용의 우수성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현재 해당학과의 학점이수 과목으로 등록되어 있다. 손 회장은 고전머리에 관한 인식제고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며 그 지역에 얽힌 역사 속 여성들의 머리를 재현하는 전시회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또한 월간지 기고, 인터넷 헤어방송 강좌, 대학 강단에서의 강의를 통해 좀 더 친숙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 것’을 제대로 알리고 보존해야
손 회장은 화제의 영화 ‘왕의 남자’에 참여해 조선 초기 정치적 문화가 안정되었던 성종시대 여인들의 머리모양을 끌어내어 많은 사람들이 고전의 아름다운 녹수머리를 감상하게 해 주었다. 또 조선시대 말 영화 ‘한반도’에 참여해 국모의 당당함을 표현한 거두미를 보여 주었으며, 오는 10월에 개봉할 역사 미스테리물 ‘궁녀’에도 참여해 궁중나인들의 머리모양을 쉽고 아름답게, 혹은 사랑스럽게 연출하여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손 회장은 장금이 머리모양을 변형한 손새앙머리, 가채머리를 손쉽게 꾸민 손트래를 연출했고, 전통적으로 한번 해보고 싶어도 부담스러웠던 비녀 꽂은 쪽머리를 미적 감각으로 표현해 내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은 역사 속에서 올바른 머리모양을 찾아 제대로 알리겠다는 손 회장의 집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시대와 환경이 현대화되고 첨단화될수록 우리 것을 제대로 알리고 보존하는 노력은 국가나 개인이 다함께 해 나가야 할 몫입니다. 발전적으로 고전머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더욱 세련된 시술방법을 개발하고 장신구 개발에도 힘써서 신선미를 가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라며 손 회장은 관련 전문가와 후배 양성에 힘 쓸 것이라 밝혔다. 시대가 변하고 현상이 달라지더라도 기본적인 역사의식은 변하지 않아야 할 부분이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현실화함으로써 세계 속에 한국의 미를 알리기 위한 노력들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