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전쟁시대
2007-09-29 글/신혜영 기자
특허소송 급증, 특허를 활용한 기술경영은 선택이 아닌 생존문제
세계가 특허 경쟁력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야말로 특허전쟁시대로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년 특허신청과 특허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국내 굴지의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연 평균 40~50건의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으며 해마다 많은 중소기업들도 생존권을 걸고 특허전쟁을 치르고 있다. 현재도 여전히 기술력 특허권을 놓고 싸우고 있는 업체들이 줄지어 있으며 매년 이처럼 국내·외를 비롯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특허전쟁을 치르고 있는 21세기는 그야말로 ‘특허전쟁시대’다.
무형의 자산, 잠재된 폭탄 ‘특허’, 특허전쟁시대
전 세계가 특허전쟁으로 보이지 않는 총성을 울리고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의 특정 기술을 대상으로만 특허분쟁이 반발했으나 최근에는 IT제품 등 수출주력 상품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제품까지 분쟁이 확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큰 이익을 보기도 하며 제품 생산중단, 기업 도산 등 기업의 생존에 영향을 줄 만큼 막대한 손해를 입기도 한다. 글로벌 시대 무형자산의 가치가 점차 커져가는 지금, 특허전쟁에서 패하면 영원히 후발 기업 또는 후발 국가로 전략할 수 있다. 이러한 특허전쟁시대와 함께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특허전문회사가 전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특허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의 특허 출원 추이를 보면 1970년에 총 100만 건이던 것이 1992년엔 200만 건으로 늘어났고 지난 2002년에는 무려 1,450만 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국내기업도 특허전쟁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은 연간 수 백 억원의 특허수익을 거두면서 연평균 40~50건의 소송에 수 백 억원의 비용을 들여 특허전쟁을 치르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정확한 해외소송 건수는 알 수 없으며 안다 해도 대외비에 속한다”며 “과거에 비해 해외소송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삼성전자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해외소송건수는 총 16건이며 2006년 하반기에만 13개의 해외소송이 제기됐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제기된 해외소송건수는 적게는 수십 건에서 많게는 수백 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국내 중소기업의 경우 특허분쟁으로 인해 치르는 비용이 2001년 3억 9,200만 달러에서 2004년 5억 3,000만 달러로 대폭 증가했다.
선진국의 기업들의 구조적인 변화 추이도 특허분쟁에 한 몫하고 있다. 미국의 상위 500대 기업의 자산구조를 보면 1982년에는 유형자산 60%, 무형자산 40% 비율이었지만 2002년에는 이것이 20% 대 80%로 커다란 역전 현상을 보이고 있다. 상위권의 선진 기업일수록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토지, 기계 등 유형재보다는 특허 상표 등 지적재산권이나 브랜드, 인적자원이나 기타 정보자산과 같은 무형재의 비중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각종 지식재산이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이 되면서 특허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허에 웃고 특허에 우는 기업들
최근 LG전자와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세탁기 특허를 놓고 사활을 건 전쟁을 하고 있다. LG전자는 대우일렉트로닉스가 LG전자의 직결식 모터 특허기술을 허락도 받지 않고 세탁기 개발에 사용한 뒤 해외시장에서 덤핑판매까지 해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난 6월 20일 법원은 LG전자의 가처분 신청 가운데 일부를 받아들여 대우일렉트로닉스가 출시한 18종 세탁기의 판매 중지 처분을 내렸다.
대우일렉트로닉스측은 “LG전자가 주장하는 특허 기술은 이미 국내·외 가전회사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범용 기술”이라며 “특허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6월 21일 법원이 자사 드럼세탁기 ‘클라쎄’ 18개 모델에 대해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리자 즉각 이의 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LG전차측은 “대우일렉트로닉스가 특허를 도용한 제품을 해외에서 우리의 히트상품인 트롬세탁기보다 30% 이상 싼값에 파는 바람에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기술 개발에만 주력했지만 이번 소송을 계기로 특허 문제에도 엄격히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한 휴대전화 제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미국 퀄컴은 경쟁사 브로드컴과의 특허소송에 패해 그 부품을 사용한 휴대전화를 미국으로 반입할 수 없게 되면서 최근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미국 수출의 발목을 잡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울러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이베이는 머크익스체인지가 제기한 소송에 의해 폐업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처럼 특허분쟁은 기업의 영업과 연구개발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생존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기업체로부터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벤처기업들까지 특허소송에 시달리고 있으며 국내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기술 중심적인 중소기업은 특허 침해 시 바로 사업의 도산 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사 기술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특허 침해 분쟁을 보면 대체적으로 대기업의 승소율이 높다. 특허청 자료에 따르면 특허, 실용신안,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 분야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분쟁에서 중소기업의 특허심판원 승소율은 2004년 29.6%, 2005년 44.7%, 2006년 상반기 48%로 매년 증가추세에 있으나 여전히 대기업과의 특허소송에서는 중소기업이 약세다.
국내기업과 해외기업간의 특허분쟁도 치열해
갈수록 특허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 간 특허분쟁은 물론 해외의 선진기업들은 해외에 진출한 후발주자 격인 국내기업에 대해 공격적인 특허소송을 해오고 있다.
지난 8월 7일 일본 샤프는 삼성전자가 샤프의 LCD 관련 특허 5건을 침해했다며 미국 텍사스에서 특허소송을 제기, 관련 기술을 사용한 삼성전자의 TV와 모니터, 휴대전화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도 요청했다. 또 삼성전자는 최근 한 외국의 반도체 장비업체로부터 반도체 장비를 만들지 않는 삼성전자가 이 같은 소송을 당한 데에는 해당 업체의 특허를 침해한 경쟁사의 장비를 썼다며 피소 당했다. 이 업체는 그 장비로 만든 삼성전자의 반도체도 수출하지 못하게 해 달라고 법원에 요구한 상태다.
지난 5월에는 대만 LCD업체 치메이 옵토일렉트로닉스(CMO)는 LG필립스LCD(LPL)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텍사스 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LG필립스LCD는 대만 옵토일렉트로닉스(AUO)와 CMO를 상대로 3가지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LPL은 2005년 5월 대만 청화픽쳐튜브(CPT)와 모회사인 타퉁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걸어 승소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2월 미국 ‘앤빅’은 일본 니콘 노광기를 수입해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대만 업체를 상대로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으며 LG전자는 지난 6월 18일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히타치 일본 본사와 히타치 미국법인 FHP(후지쓰 히타치 플라즈마)를 상대로 PDP의 구동 기술·셀구조 기술 등에 대해 특허침해 중지 및 배상요구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LG전자는 지난 2005년부터 히타치와 PDP특허에 대해 협상을 진행했으나 특허 가치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달라 지난 4월 23일 히타치가 LG전자를 상대로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 이에 LG전자는 맞소송을 한 것이다.
국가 경쟁력 ‘특허관리’로 키운다
기술이 곧 경쟁력인 지금, 기업의 생존은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특허의 연계전략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국내특허만 6만여 건, 미국 내 특허는 1만8,000여 건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특허를 이용해 벌어들이는 돈보다 로열티로 지급하는 비용이 많아 수 년 동안은 특허수지가 적자를 지속할 전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특허수지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면서 특허 경쟁력 확보에 역량을 집중, 향후 산업의 흐름을 내다보며 세계 각지에서 특허를 매입하는데 활발히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사내 인력 중 특허 발명자에 대해 많게는 2,000달러와 로열티 수입에 따른 추가 장려금을 지급하면서 특허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외에서 특허 및 법률 전문가를 영입해 자체 특허팀을 대폭 보강하는가 하면 서울 본사와 지역 공장 곳곳에 포스터를 통해 ‘특허에 약하면 기업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고 경고하며 특허 관련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특허에 대해 열정적인 것은 바로 21세기의 국가 선별기준에서 국가 경쟁력 기준은 특허 관리능력으로 부상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특허는 개인적 발명품에서 국가적 발명품으로 강조되고 있다. LG전자도 최근 국내·외 특허 및 법률 전문가를 영입해 자체 특허팀을 대폭 강화, 특허센터를 중심으로 국내·외 특허분쟁에 대응 중이다.
특히 한국은 지난 2002년까지는 특허 처리 심사 처리기간이 보통 22개월 이상 걸렸으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국내 지식재산권 제도의 애로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심사 처리기간이 지연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인 손실이 연간 1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에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처리 심사 기간을 대폭 줄여 지금은 처리기간이 가장 빠른 나라다. 이와 함께 2003년 70명의 심사관을 채용해 383명에서 453명으로 정원을 늘렸고 매년 100명 이상을 충원해 현재는 720여 명으로 늘리는 등 특허분쟁에 대응하는 한편 특허관리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특허분쟁에 대응하는 나라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다. 미국은 기초과학과 원천기술 개발에 강한 자국기업에 유리하도록 특허심사를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난 2003년 총리 산하에 지식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하며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허가 기업의 희비를 가르는 잣대가 된지 오래다. 유형자산보다 무형자산의 가치가 커지면서 21세기의 국가 선별기준에서 국가 경쟁력 기준은 특허관리능력으로 부상되고 있다. 이제 특허는 개인적 발명품에서 국가적 발명품으로 강조, 다양한 특허를 개발하고 특허를 상품화시키고 특허권의 가치를 최대한 극대화시키는 전략적 특허관리 능력을 구축해야 할 때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개개인의 특허권과 기업의 특허권 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는가에 의하여 국가의 미래가 결정된다고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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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괴물을 아십니까?
2005년 12월 인터디지탈이라는 회사는 노키아로부터 시작해 파나소닉, 삼성과의 이동통신 관련 특허소송에서 차례로 승소, 노키아로부터 2억 5,300만 달러 및 삼성전자로부터 670만 달러의 로열티 지급을 합의를 이끌어냈다. 인터디지탈은 이 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계기로 LG전자, 팬택 등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특허소송을 제기할 것임을 경고했고, LG전자는 인터디지탈과의 싸움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9,500만 달러씩 총 2억 8,500만 달러의 휴대폰 로열티 계약을 체결했다.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특허괴물’은 특별한 생산시설 및 영업조직을 두지 않고, 몇몇 발명자, 기술전문가 및 특허소송 변호사를 채용하여 특허를 둘러싼 소송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특허소송 전문 기업을 의미한다. 특허괴물은 현재 시장에서 상당한 수익을 내는 국내·외 대기업을 먹이감으로 삼고, IT 분야를 중심으로 특허소송에서 승리하여 수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제까지 알려진 공격적인 특허 소송을 수행하고 있는 회사로는 인터디지탈(InterDigital), NPT, 포젠트 네트워크(Forgent Networks),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 아카시아 리서치(Acacia Research), 오션 토오(Oecon Tomo), 머크익스체인지(Mercexchange), 텔레플렉스(Teleflex)의 8개 회사다.
이들의 핵심적인 전략은 IT 분야를 중심으로 특허를 다량 출원하여 기술 그물을 만들거나 중소기업, 폐업한 회사, 개인 발명가 및 특허 경매를 통해 거의 평가받지 못한 특허를 헐값에 구입하고, 이를 무기로 현재 시장에서 기득권을 지닌 그 분야 최고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수행한다.
인터디지탈사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의 출원건수는 10건 전후로 미비하였으나, 2003년 이후 출원건수가 대폭 증가, 국내 통신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보인다. 인터디지탈사는 2005년 삼성 및 LG전자와 싸우기 전해에 468건의 가장 많은 특허를 출원했으며, 삼성 및 LG와 본격적인 협상이 있었던 2006년 한해 130건의 특허를 등록받았다. 그리고 2007년에는 현재까지 84건의 특허를 출원하여 심사대기 중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향후 국내 기업은 공격적인 특허소송을 수행할 특허괴물의 활동을 예의 주시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통하여 그들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