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보험이 밀려오고 있다
2007-09-30 글/이준호기자
보험업계는 두 보험이 허용되면 보험업이 은행에 완전 종속될 것이라며 반대
신협은 최근 CF광고를 새로 하면서 ‘신협생명’과 ‘신협화재’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신협까지 생명, 화재라는 이름을 쓰면서 수협과 새마을공제 등 나머지 공제도 뒤따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발효시 유사보험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기 때문에 사전에 시장을 넓히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에 시장잠식을 우려하고 있는 기존 보험업계는 공제별로 흩어진 감독주체 및 관련법을 일원화하는 등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유사보험, 경쟁력 있는 이유는
유사보험은 현재 총 33개에 달하지만 이들 4대 공제와 우체국보험은 개별 법률에 따라 일반인의 가입이 허용된다는 점이 다르다. 또 기존 보험 상품보다 보험료가 싸다는 점이 최대의 주무기다. 세금 감면 등 정부 지원을 받기 때문에 시작부터가 유리한 데다 보험설계사의 대면(對面)채널 대신 전국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가입을 권유하는 방식이어서 사업비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4대 공제는 아직은 손해보험보다는 생명보험 상품에 주력하고 있지만 상품구성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농협은 여행자보험 상품까지 판매한다. 금융감독원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유사보험의 지난해 말 기준 수입보험료는 총 14조1081억 원으로 민영보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5%에 이른다.
한미FTA 타결로 유사보험에 대한 감독은 3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금감위가 4대 공제 등에 대한 지급여력비율을 감독하는 등 건전성 강화 조치를 하게 된다. 지금은 공제별로 감독주체와 관련법이 모두 제각각이다. 농협공제는 농림부, 수협공제는 해양수산부, 새마을공제는 행정자치부, 우체국보험은 정보통신부가 감독주체이다. 따라서 4대 공제와 우체국보험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FTA 발효 전에 최대한 시장을 넓히려는 포석으로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지급여력비율을 높이려고 내부 유보금 등을 많이 쌓게 되면 보험료는 지금보다 높아지고 영업도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이들이 일단 ‘보험’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경우 보험업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생·손보협회의 수장이 직접 나서 방카쉬랑스 확대 시행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보험업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보험의 은행 종속화 등 금융산업간 불균형 현상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 중심의 금융정책을 추진한 결과 은행의 금융시장 지배력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은행의 자산비중은 전체 금융산업내에서 71.2%를 차지했다. 미국이 26%, 일본이 25%인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은행 비중이 높다. 순이익 규모도 2005년 기준으로 연간 13조원을 넘어섰다. 반면 보험권은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묶여 업무영역 확대가 제한돼 있으며,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보유계약 부담이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보험도 만성적인 적자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유사보험과 외국자본과의 경쟁도 심해지고 있다.
손보업계 “유사보험과 ‘동일한 잣대´ 적용을”
지난해 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외환은행이 거둔 수익은 8조 6513억 원이다. 이중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 판매) 수익이 5228억원으로 전체의 6%다.2005년(4483억원)보다 16% 늘었다. 내년 4월이면 자동차보험과 보장성보험도 은행에서 팔 수 있다. 보험업계는 두 보험이 허용되면 보험업이 은행에 완전 종속될 것이라며 반대한다. 은행에서 팔기에는 상품이 복잡해 불완전판매의 소지도 크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보장성보험의 방카슈랑스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은행 눈치 보느라 어느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도 공개적인 발언은 못 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은행에 밉게 보이면 업계 순위가 바뀔 정도”라고 했다. 지점망과 보험사 10배가 넘는 자산규모 등이 은행의 우월적 지위를 가능하게 한다. 지난해말 기준 한 은행당 자산은 77조 4000억 원으로 보험(6조 3000억원)의 12배다. 지점수는 5884개(농·수협 제외)로 6000개에 육박한다. 방카슈랑스는 신계약비의 80∼90%가 은행 몫이다. 신계약비란 설계사 수당, 보험사의 판촉·광고비 등이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이른바 ‘꺾기’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주거래기업이 새로운 시설 등을 도입하면 보험료 1000만원 상당의 화재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것도 기업을 힘들게 한다. 연세대 김정동 경영학과 교수는 “보험료는 내리고 서비스는 높이라고 도입했는데 싸게 파는 것도 없고, 부실 판매해도 은행은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고 비난했다.
보장성 떨어진다?
유사보험은 감독체계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고, 보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런 지적은 대체로 유사보험 때문에 시장을 잠식당한 국내 민영보험사와 외국계 보험사들이 제기해 왔다. 이번 한미 FTA에서 미국 측이 유사보험에 대한 감독 강화를 요구한 것도 미국 보험사가 유사보험 때문에 한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유사보험의 감독권은 각 부처로 흩어져 있다. 농협공제는 농림부, 수협공제는 해양수산부, 신협공제는 금융감독위원회, 새마을공제는 행정자치부, 우체국보험은 정보통신부가 감독하는 것이다. 금융감독과 관련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편인 정부 부처가 감독을 맡다 보니 4대 공제 등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도 제지하지 못한다는 게 민영보험업계 측 주장이다. 유사보험이 민영보험에 비해 보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사고가 나도 일반 민영보험사는 즉각적인 보상을 하는 데 비해 유사보험은 보험금 지급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우체국보험은 가입금액에 제한이 있어 충분한 보상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농협공제 관계자는 “2005년 기준으로 민영보험은 보험 1만 건당 2.9건의 민원이 발생한 반면 농협공제는 1만 건당 0.021건의 민원만 있었다”며 “보상이 제대로 안 된다는 지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사보험의 문제점
3일 금융감독위원회와 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4대 공제(농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와 우체국 보험 등 유사보험 수입 보험료는 지난해 연간 13조5,020억원에 달했다. 생명보험 시장에서 유사보험의 점유율은 20%에 육박한다. 특히 농협공제(6조6,184억원)와 우체국보험(5조4,622억원)은 생명보험 시장의 공룡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 유사보험의 급성장은 금융감독기구의 감독을 받지 않고 보험업법 적용을 받지 않는 등 다양한 제도적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유사보험의 감독권 자체가 금감위로 넘어온 것은 아니다. 4대 공제 등의 특수성을 인정해 감독권은 현행대로 해당 부처에 부여하되, 금감위가 건전성 감독 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한미 FTA 타결 내용의 골자다. 우체국보험의 경우 신상품 개발, 보험금 증액(4,000만원 이상) 등의 경우 금감위와 사전 협의하되 반드시 금감위의 의견을 따르도록 했고, 특히 주요 위원회에 금감위 추천 인사가 절반 이상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농협공제 등 4대 공제는 협정 발효 후 3년 내에 금감위가 지급여력비율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이 정도로 금융감독 당국이 유사보험에 대해 실질적인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민영 보험사와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영업 전반에 대한 감독이 이뤄져야 하는데 감독 권한이 건전성 감독 등에 한정돼 있어 형식적인 감독에 그칠 가능성이 짙다"고 말했다. 같은 금융업을 하면서도 적절한 관리감독을 받지 않아 덤핑성 보험을 내놓으면서 보험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관리감독 부재와 덤핑 보험의 폐해는 당장 눈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10~20년이 지나 보험금을 지급할 시기가 됐을 때 보험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거나 해당 금융기관이 거대한 부실덩어리로 전락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BOX 기사
4대 공제상품 및 우체국보험 현황
■구분 - 농협공제, 수협공제, 신협공제, 새마을공제, 우체국보험
■근거 법 - 농업협동조합법, 수산업협동조합법, 신용협동조합법, 새마을금고법, 우체국 예금 보험에 관한 법
■감독주체 - 농림부, 해양수산부, 금융감독위원회, 행정자치부, 정보통신부
■상품 종류 - 농협종신공제, 농협CI공제, 농협알토란저축공제 차세대유니버셜적립공제, 다사랑상해공제, 프레쉬교통상해공제 건강사랑공제, 더블라이프종신, 무지개한아름공제, 한사랑암공제 상해공제, 신저축공제, 좋은이웃종신공제, 신원보증공제 하이로정기보험, 에버리치복지보험, 우체국연금보험
■가입 경로 - 농협 지점, 수협 지점, 신협 지점, 새마을금고 지점, 지역 우체국
자료: 각 회사, 금융감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