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007-08-15     글_김영란 차장
대한민국을 떠나는 사람들, 50~60대가 사라지고 있다
저렴한 생활비로 풍족한 삶을...생활안정 수입구조는 계획해 둬야
최근 모 공중파 방송에서는 중장년층 및 노년층의 은퇴이민에 대한 생활들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이들은 국내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돈으로 동남아로 건너가 각자의 생업을 꾸려 제2의 인생을 영위하고 있는 소위 ‘이민 성공자’들이었다. 이러한 열풍에 힘입어 각 여행사들과 에이전시들은 앞 다투어 이민답사 프로그램까지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추세다. ‘은퇴이민’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떠나는 5060대는 젊었을 때 비축한 재산으로 그들만의 멋진 노후를 위해 짐을 꾸리고 있다. 이러한 은퇴이민자들이 다 행복하게 꿈꾸는 생활을 하고 있을까. 옹기종기 모여 살던 우리의 ‘가족’들은 점점 타국의 새로운 일원이 되어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다. 이제는 가족을 만나러 각기 타국으로 가야할 형편이다.


저렴한 생활비로 상류층의 삶을 산다
2006년 말 외교통상부의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 이민자 수가 50.3%, 베트남은 100% 이상의 재외동포 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이민에 대한 정확한 통계수치는 미비한 상황이지만, 투자이민 못지않은 수치라는 게 외교통상부의 설명이었다. 특히 은퇴이민의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은 50~6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생계를 위해 해외로 떠나던 옛날과는 달리 젊어서 번 돈으로 편안한 노후를 즐기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태국, 말레시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가 은퇴이민지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데, 이곳들은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필요한 노후자금의 50%만 가지고 가더라도 상류층의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한국하고 가깝고 선진국들의 문화적 우월감에 대한 상대적 위축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 여러모로 체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 높다는 평이다.
2001년 퇴사를 한 뒤 필리핀 바기오에 아는 사람 집에서 세를 살면서 현지 실정을 파악해 왔던 박 모씨(63)는 마닐라 부자가 별장으로 썼던 집을 가재도구를 포함해 7천만 원에 구입했다. 가정부 월급 6만 원, 운전기사 월급 14만 원. 저렴한 바기오의 물가는 여러모로 박 씨에겐 흡족했다. 쾌적한 환경에서 680만 원에 구입한 골프 회원권으로 박 씨 부부는 거의 매일 골프를 즐기며, 단돈 1만 원에 마사지를 받는다. 가까운 거리의 산페르난도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저녁이면 참치잡이 배에서 신선한 회를 즐긴다.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채소와 야채, 시간당 4천 원의 승마를 즐기는 생활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가나 인건비가 이보다 더 쌀 수는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기도 하다.
박 씨처럼 아예 정착하여 사는 이민 형태가 있는가 하면, 주거지는 한국에 두고 일단 ‘살아보고’ 이민을 하는 ‘메뚜기 은퇴이민족’도 꾸준히 늘고 있다. 경기도에 있던 별장을 팔아 아예 동남아 지역의 펜션이나 콘도를 별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계절이 서로 상이할 때를 맞춰 가족 단위로 장기간의 휴가를 즐기거나, 체류를 하면서 현지의 생활들을 파악하는데, 이러한 메뚜기 은퇴이민족을 겨냥한 이민 상품들도 여행사마다 러시다. 여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죽기 전에 여유롭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은퇴이민을 희망해 오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은퇴이민도 사전 조사가 충분히 된 상태에서 진행해야 하고, 금전적 여력없이 무작정 이민한 사람들은 중도에 이민생활을 포기하거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좀 더 양질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서 은퇴이민이 파라다이스가 될 것인지, 지옥같은 생활이 될 것인지는 본인들의 철저한 준비와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은퇴이민을 위한 한국 내 부동산 대책
은퇴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바로 현재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집과 부동산에 대한 처분에 관한 부분이다. 5060세대가 제2의 인생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자금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의 매각 대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지 생활의 불투명성으로 인하여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처분하고 간다는 것이 조금은 불안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만일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국내 부동산을 완전 처분하기 보다는 매달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수익형(임대) 부동산으로 조치한 뒤 이민을 떠나는 게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해외에서의 일거리가 여의치 않는 상황을 고려해서 국내에서 적정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두는 것이 안전하다는 측면에서다. 또한 이것은 혹여 이민생활을 실패하고 돌아오더라도 다시 생활할 수 있는 생활의 근거지는 남겨둘 필요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주택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유세가 큰 주택을 매각해 은퇴자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 여러 주택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해외에서 일일이 다 관리하기도 힘들뿐더러, 종합부동산세의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격 상승 가능성이 큰 재건축 아파트나 재개발 주택 등으로 자산 배분을 단순히 하고, 일정 수익을 고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상가나 오피스텔의 임대도 현지에서의 생활비 충당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 상가나 오피스텔을 남겨 둔 상황이라면 반드시 관리인을 지정해 두는 것이 좋은데, 자녀나 친인척을 활용하면 비용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안전하다. 특히 임대와 관련해서는 장기적으로 계약을 하고, 자동기간 연장에 대한 부분을 계약서에 따로 명기해 두는 것도 좋다. 최근에는 은행PB센터나 은행 해외이주센터에서 해외 거주자를 위한 부동산 절세요령과 해외 금융거래법 등을 알려주고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두는 것이 낫다. 특히 국내 은행계좌와 보유 중인 신용카드는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여유롭고 안정적인 삶을 위해 한국을 떠나는 5060세대. 하지만 ‘아주 떠나는’것이 아니라, 장기여행을 한다는 기분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아무리 좋은 파라다이스라도 북적대는 ‘가족문화’에서의 이탈은 정신적 건강에도 그리 좋을 것은 없다는 게 경험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한국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이민지 생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개인 나름대로의 생활계획도 은퇴이민 생활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