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대 사태, 판결과 헌법 가치로 풀어야

2019-06-14     박지성 기자

[시사매거진=박지성 기자] 강원도의 고즈넉한 도시 원주에 자리 잡은 상지대학교가 긴 시간 동안 뜨거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지금 이 대학을 새삼 주목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뒤섞임이 점점 심해져만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상지대를 둘러싼 진정한 문제들이 편견 속에서 홀대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문을 전수하고 연구하는 고등교육기관이며 사립대학은 개인이 국민교육에 대한 의지를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대학이 사립대학이다. 그래서 법으로도 설립자의 교육의지, 교육철학이 유지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은 그 철학에 동의하는 셈이고, 바로 그 철학에 기반한 교육이 행해지는 곳이 사립대학이다.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생각될 때, 해법을 찾는 중요한 방법이 크고 넓은 시각으로 사안을 살펴보는 것이다. 상지대학교 재단과 총장을 둘러싼 많은 논란과 법적 행위들을 명료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큰 시각에서 조망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1993년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한 상지학원은 그 이후 수많은 관선이사 체제와 김문기 설립자의 복귀 등 복잡한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20년 넘는 공방을 벌여오고 있다. 문제는 상지대학교의 출연자이면서 설립자인 김문기 전 이사장 측의 법적 권리가 침해된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이 정부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물론 애초에 갈등의 소지를 제공한 설립자 측에 일정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학교에 대한 그의 모든 권리를 빼앗는 형국으로 진행되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사립대학의 권리에 공적 영역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대목이다. 

학교 정상화와 관련해 제한적인 권리만 갖고 있는 임시이사회가 2003년 교육인적자원부에 9명의 정이사 선임을 신청하고, 정부가 이사 취임을 승인한 것을 불법적 상황으로 인식한 김 설립자 측은 ‘이사회결의무효확인청구’ 소송을 냈고, 2007년 대법원전원합의체(2006다19054)에서 ‘임시이사는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명료한 판결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김문기 설립자 측에 정이사 9명 중 과반수인 5명의 선임권이 있음을 의결했다. 

그에 따라 진행되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정이사 선출에 편법을 동원해 8명의 이사를 선임했고 다시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불러왔다. 명백한 위법성을 포함하고 있는 조치들이었기 때문에 행정소송의 결과로 정이사 8명의 선임이 취소됐다. 

그후 교육부는 6개월 임기 내 정상화를 공언하면서 또다시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그런데 그 6개월의 시한은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다시 1년 임기의 임시이사를 파견하며 사태 해결은 미뤄지기만 했다, 결국엔 교육부가 2018년 8월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개정해 가면서 상지학원에 정이사를 선임했다.

문제는 이 사립학교법 시행령은 대법원전원합의체의 판결을 뒤집는 것으로 이사추천권을 설립자로부터 빼앗았다는 것이다. 이제 또 다른 법적 논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립학교의 설립자가 갖는 권한에 대한 정부의 침해와 임시이사의 권한 밖 행태에 대한 판단이 이미 결정 난 대법원의 판결 앞에 다시 서야하는 셈이다.

법적인 진행과정을 보면, 기본적 사립학교의 권리 관점에서든, 실제적 판결의 관점에서든, 교육부와 관선 임시이사진의 권리는 제한적이라고 규정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선 상지대학 설립자 측의 권리가 침해당한 정황이 많이 보인다. 

설립자 측과 협의해 정해야 하는 요소들, 임시이사가 할 수 없는 것들, 임시이사의 짧고 제한적인 임기 등등 거의 모든 객관적 정황이 사립학교의 설립 철학을 보호하는 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지대학 사태에서는 그런 점들이 많이 침해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논란 중 교육부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의 주장 속에서 ‘설립자의 정통성’ 문제가 부각되었다. 김 전 이사장을 설립자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학교발전에 크게 기여하지도 않았고, 1962년 원주지역의 유지인 원홍묵 씨가 설립한 청암학원을 김 전 이사장이 1974년 인수해 이름만 바꾼 것이라 설립자로 보기 어렵다는 요지다. 

그러나 김 전 이사장은 1972년 청암학원의 원주대학이 폐교가 진행되면서 유상 인수했고 상지대학 설립인가를 얻고 1974년 상지대학을 개교했다. 그 과정에서 구입해 기부한 토지만 따져도 20만평이 넘어 현시가 약 3220억원으로 추정되는 기여를 했다. 그 이후 건물 10여개 동을 구입하는 등, 설립 관련 비용만 현시가로 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분쟁이 시작된 이후에도 상지대학교 기숙사 부지 500평을 기부하고 장학금 1억원을 기부했고, 상지영서대학교에는 기숙사 1000여평 부지, 장학금 1억원을 기부했다. 2010년 이후 출연금액만 따져도 6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금전적 기여가 적지 않고, 작은 학원을 인수해 새 학교를 개교하고 종합대학으로 키운 공로 또한 설립자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개정된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따라 현재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정대화 총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문기 씨가 두 차례에 걸쳐 대학에서 쫓겨난 인물로 복귀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취지로 발언을 했다. 정 총장은 참여연대 출신으로 현정권과 많은 인연을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상지대 홈페이지의 총장 인사말은 상지대가 ‘민주주의가 강물처럼 넘치는 민주대학’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정 총장과 교육부가 어떤 생각으로 상지대를 운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진정한 민주국가에서 사립대학에 관여할 수 있는 공적영역의 한계는 어디일까. 설립자의 의사가 반영된 이사진과 설립자의 철학의 연속성이 헌법적 가치로 인정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은 헌법적 가치와 배치되는 측면이 강하다. 혹시 정권의 차원에서 결정된 것들이 법적 정당성을 넘어서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사립대는 설립자의 철학이 계속되어야 그 존재 의미가 있다. 어려운 학교를 인수하고 새롭게 투자해 확장 개교한 사람을 설립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교육은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받은 사안에 대해 억지로 다른 해법을 찾겠다는 것은 어색하다. 정치적 혹은 대중적 정의가 개입하더라도 그 법적 한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국가에서의 교육정책이라 불러줄 수 없다. 이제 큰 시각으로 상지대 사태를 처음부터 다시 조망해봐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