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제출 vs 강압에 의한 임의 제출
공무원 휴대폰의 임의제출 논란
[시사매거진 254호=박희윤 기자] 현 정부 들어 청와대는 최소한 15차례 이상이나 외교부, 과기부, 교육부, 기재부, 해경, 복지부 공무원들의 휴대폰 등을 감찰했다. 지난달 23일 현직 외교관이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통화 내용을 유출했다는 보도에 대해 청와대가 해당 외교관에 대한 감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자, 한국당은 비판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한국당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진상조사단’회의를 열고 청와대가 부처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반강제로 거둬 감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당은 휴대폰을 압수해서 포렌식하고 별건 감찰 등을 자행한 것이 불법이며 인권침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휴대폰을 ‘임의제출’받았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임의제출인지 ‘강압에 의한 임의’인지는 논란이 있다.
적법 절차의 원리
800여 년 전 Magna Carta에서 유래한 ‘due process of law’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우리나라 헌법 제12조 1항 후문에 천명되어 있다. ‘due process of law’는 국가의 입법, 행정, 사법 등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기본원리로서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국민의 권 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원리다. ‘due process of law’는 형식적 합법성이 아니라 실질적 합법성을 지향하며, 모든 국가작용이 법이 정한 정당하고 적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며, 국가작용의 구체적 실현 과정에 있어서도 그 모습이 정당하고 적정하게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는 최소한 15차례 이상이나 외교부, 과기부, 교육부, 기재부, 해경, 복지부 공무원들의 휴대폰 등을 감찰했다. 한국당은 휴대폰을 압수해서 포렌식하고 별건 감찰 등을 자행한 것이 불법이며 인권침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휴대폰을 ‘임의제출’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임의제출인지 ‘강압에 의한 임의’인지는 논란이 있다.
한 외교관의 휴대폰 제출 회고
“한 사람의 휴대폰을 제출받으려 네 명의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들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무실의 문을 닫고 ‘당신이 바로 언론 유출범’이란 답을 정해놓은 듯 휴대폰 임의제출 동의서를 내민다. 업무용 휴대폰은 물론 사생활이 담긴 개인 휴대폰도 요구한다. 거절하고 싶지만 의심받을 것 같아 서명을 한다. 다음 인사 때도 청와대의 검증을 거쳐야 하니 거절할 선택권은 없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청와대 특감반에 휴대폰을 제출했던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 외교관은 “당시 휴대폰을 요구하며 협박조로 압박했던 특감반원들의 모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며 “동의서를 썼지만 뺏긴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언론 유출은 없었다. 그 후 기자들과 말 한마디 섞는 것조차 두려워졌다”고 회고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해명
청와대는 지난 1월 7일 민정수석실 소속 특별감찰반이 공무원 휴대전화를 임의 제출 형식으로 압수, 통화 내역 등을 살펴보는 게 불법이라는 야당의 주장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다음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출입 기자들에게 보낸 해명자료 전문이다.
1. 청와대 (구)특별감찰반은 형사소송법상 수사기관이 아니므로 당연히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권이 없음은 누차 밝힌 바 있다. 즉, 공무원에 대한 ( 구)특별감찰반의 휴대전화 제출요구는 형사법적 압수수색이 아니라 행정법적 감찰의 일환이다.
2.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무원의 위법, 비위 사실에 대한 감찰에는 당연히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가 수반된다. 조사의 방법에는 자료 검토, 진술 청취뿐만 아니라, 컴퓨터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한 사실확인도 포함된다.
3. (구)특별감찰반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인사권을 보좌하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의 자필서명 동의를 얻어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조사했다. 감찰은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7조 제2항에 따라,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임의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휴대전화 포렌식도 당연히 당사자의 동의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압수수색과 법적 성질이 전혀 다름을 밝혀둔다.
조국 민정수석의 주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답변에서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공무원 핸드폰 압수와 포렌식은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1월 7일 페이스북에 또 글을 남겨 특감반이 공무원 감찰 과정에서 진행한 휴대폰 포렌식 조사에 대해 “당사자의 동의하에 이뤄지고 있는 절차”라고 항변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압수수색과는 법적 성질이 전혀 다르다”며 절차적 정당성도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이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청와대를 압수수색을 할 때 조 수석의 휴대폰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법조계의 다른 시선
조국 민정수석의 주장과는 달리 이에 대한 법조계의 시선은 다르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정승윤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조국 민정수석의 형사법 해설 잘 들었다. 그런데 정답이 아니다. 틀렸다”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압수 등의 행위가 형사소송법에 따른 임의제출이 아니라고 봤다. 그는 먼저 “청와대 특감반원이 검사나 사법경찰관리가 아니고, 특감반은 수사기관이 아니기에, 형사소송법에 따른 임의제출은 이번 사안에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휴대폰 압수 등의 목적이 범죄 수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 직무 기강 확립, 즉 직무감찰이기에 형사소송법이 아니라 행정법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특감반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고, 이 기관에서 한 조사는 ‘행정조사’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행정조사는 통상 ‘비권력적 행정행위’로 분류되며 기본적으로 당사자 동의를 전제로 허용된다”며 “그리고 수사가 아니기 때문에 압수와 같은 강제 처분은 허용되지 않는다. 조국 민정수석의 행동은 형사 절차에서만 압수를 허용하는 대한민국 헌법 제 12조에 위배된다”고도 했다. 또 “행정조사기본법과 감사원 직무감찰 규정 등에서 ‘개인 소지품’을 행정조사와 직무감찰 목적으로 압수할 수 없도록 근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며, 특감반 규정에도 ‘강제 처분에 의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비리 첩보를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에 한정한다’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조 수석의 논리에 내포된 문제점도 비판했다.
정 교수는 “이번 청와대 특감반 사건처럼 행정기관이 공무원 개인 휴대폰을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해 그 내용까지 포렌식으로 조사할 수 있다면, 감찰권을 가진 모든 기관이 공무원 개인 소유의 휴대전화·컴퓨터·금융자료 등까지 무제한으로 임의 제출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조국 민정수석 말대로 ‘동의가 불법을 조각한다’는 불법적 논거에 따르면 사기업 업주도 기밀 유출 방지와 유출자 색출 등을 위해 직원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은 이런 결론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비서실 직제 규정을 명백히 위반해 공무원 개인 휴대전화를 감찰 목적으로 행정 요원이 임의제출 방식으로 압수한 행위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다시 촉발된 불법 사찰 및 인권침해
지난달 23일 현직 외교관이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통화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놓고 여야가 격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청와대가 해당 외교관에 대한 감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자, 한국당은 “야당 재갈 물리기”라거나 “구걸 외교를 들키니 공무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끌어올렸다. 한국당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진상조사단’ 회의를 열고 청와대가 부처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반강제로 거둬 감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강 의원은 “국회의원이 밝힌 내용을 갖고 외교부 공무원의 휴대폰을 압수해서 조사한다는 게 21세기 대명천지에 가당키나 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청와대의 공무원 감찰은 공직사회를 겁박하고, 야당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의제출 vs 강압에 의한 임의제출?
행정감찰 과정에서 제출받은 휴대폰의 포렌식 절차와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법령은 아직 없다. 압수수색은 영장에 적시된 혐의와 관련이 없을 경우 피의자가 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임의제출은 그런 제한이 없다. 휴대폰을 뺏겼던 한 외교관은 감찰 내용과 관련 없는 사생활 문제로 징계를 받았다.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조국 민정수석은 이런 식의 감찰이 검찰의 대표적 적폐라 불리는 ‘별건 수사’와 닮았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공무원을 감찰하며 요구하는 휴대폰 제출과 포렌식 조사에 대한 법적 문제를 따져보기 전에 ‘공무원에게 과연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는가?’, ‘동의서를 받더라도 강제로 제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