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임대주택 ‘빈집’ 속출
2007-08-31 글/신혜영 기자
목표량 채우려다 ‘빈집’ 속출…대량 미분양 사태 배제할 수 없어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150만 채 공급정책이 난황을 겪고 있다. 올해 공급량이 10만 채를 갓 넘은 시점에서 입주한 지 1년이 지나도록 빈집으로 남아 있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정부가 계획 물량을 모두 짓게 되면 대량 미임대 사태가 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말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는 5만2,577채 가운데 지방은 5만266채로 2004년 10월 이후 2년 8개월 만에 최고치다. 민간 건설사들의 미분양 물량이 적체된 마당에 정부 주도의 국민임대주택까지 들어서면 민관이 한정된 수요를 놓고 경합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난황 겪는 국민임대주택 건설사업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핵심 대책으로 추진 중인 국민임대주택사업은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수도권 지역에 164만 가구의 주택 공급을 목표로 공공 부문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86만7,000가구를 공급하고 민간택지에서 77만3,000가구를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는 내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36만4,000가구를 공급하는 것으로 연도별로는 2006년 18만4,000가구, 2007년 29만7,000가구, 2008년 39만2,000가구, 2009년 36만4,000가구, 2010년 40만3,000가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임대주택 건설사업이 주먹구구식 수요 예측과 부실한 자금 조달 계획으로 곳곳에서 차질을 빚으며 정부가 장기 임대주택 비중을 전체 주택의 10%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추진하는 국민임대주택 건설사업이 곳곳에서 삐걱대고 있다.
현재 72㎡(22평형)짜리 국민임대주택을 지을 때 중앙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하는 비중은 건축비의 10%에 불과하며 50%는 국민주택기금, 30%는 입주자 부담, 10%는 주공이 조달하고 있다. 국민주택기금 지원금도 주공이 연리 3%를 내야 하기 때문에 재정과 입주자 부담을 뺀 60%를 빚으로 짓는 셈이다. 이미 총 부채가 30조원을 넘어선 주공으로선 실적을 맞추기 위해선 땅값이 싼 지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실적 채우기식 공급으로 공실 늘어
무엇보다 국민임대주택에 장기 공실(空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시장 상황을 무시한 실적 채우기식 공급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매년 10만 채씩 공급해야 2017년 150만 채를 충족시킬 수 있어 수요가 별로 없는 지방 소도시나 읍면 지역에까지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건립비용의 상당 부분을 빚으로 조달해야 하는 사업 구조로 인해 사업 주체인 주공이 땅값이 싼 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도 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지난 7월 3일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국민임대주택에 장기 공실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턱없이 높은 임대료와 지역 주택수요를 무시한 실적 채우기식 공급 때문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주공에 따르면 2002~2006년 사업승인을 받은 국민임대주택 35만4,601채 중 만성적인 주택난에 시달리는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16만2,965채로 4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주택보급률이 100% 이상인 지방에 들어섰다. 이 같은 추세로 계속해서 국민임대주택을 건립한다면 앞으로 지방을 중심으로 한 대량 미분양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미 지방 부동산 시장은 민간 주택업체들의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이 겹치면서 몸살을 앓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임실군 관계자는 “2000년에 3만7,600여 명이던 인구가 올해 5월 말에는 3만2,300여 명으로 14%가량 줄었다”며 “이곳은 집이 부족한 지역은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대한주택공사의 ‘국민임대주택 관리현황’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완공한 전북 임실군 이도지구의 국민임대주택도 374채 가운데 159채가 미임대 상태다. 지난해 7월 완공된 강원 동해시 묵호택지지구의 국민임대주택 단지역시 341채 가운데 118채가 아직 임대되지 않은 상태다. 또 인근 삼척시 건지지구에서는 503채 중 60%인 299채가 빈집으로 남아 있고 최근 임대분양을 시작한 곳도 마찬가지. 지난 4월 공급한 강원 원주시 태장지구는 584채 중 402채가 남아 있으며, 작년 9월 내놓은 전남 목포시 옥암지구도 올 9월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708채 중 56채가 미임대 상태다. 지난해 12월 내놓은 전남 무안군 남악지구는 1,117채 가운데 225채가 미분양 상태이며 경기 용인시 구성지구는 1,556채 가운데 454채가 빈집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이처럼 지방으로 중심으로 한 대량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미 지방 부동산 시장은 민간 주택업체들의 공급 과잉이 수요 부족이 겹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앞으로 발생할 대량 공실 가능성을 더 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전국의 미분양 아파트 5만2,577채 가운데 지방은 5만266채(95%)로 2004년 10월 이후 2년 8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이는 곧 민간 건설사들의 미분양 물량이 적체된 마당에 정부 주도의 국민임대주택까지 들어서면 민관이 한정된 수요를 놓고 경합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미임대 해결방안 있어
그러나 정부는 이미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미임대 문제까지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개별 후보지 엄격한 수요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사업시행자 등의 수요 분석, 전문위원회 사전 검토, 수요평가소위원회 자문의 과정을 거쳐 사업 여부를 결정토록 하고 있다. 이중 수요분석으로 대량 미임대를 막을 수 있다는 게 정부 측 입장이다.
수요평가소위원회는 해당 지역의 주택보급률, 가구 수 대비 인구, 부도임대아파트 존재 여부, 전국 평균과 비교한 지역 미분양률, 민간 임대료 수준, 자가 거주 가구 비율 등을 면밀히 따진다. 또 개별 후보지별 수요평가시스템과 별도로 ‘2005년 인구주택 센서스’와 국토연구원의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재 진행 중인 국민임대주택 수요 조사가 나오는 대로 지역별 건설물량, 신규 건설 및 매입임대 비율 등 2012년까지의 국민임대 공급 계획을 다시 한 번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이중적인 수요 분석을 거치는 셈이어서 향후 대량 미임대는 발생치 않을 것이라는 게 건교부의 판단이다.
임대주택에 거주자는 저소득층?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저소득층이란 이미지도 한 몫하고 있다. 6공화국 때 건설된 영구임대주택에 저소득층이 집중되면서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다. 영구임대주택의 입주대상자는 원래 생활보호대상자 등 최저소득계층이었지만 미분양 되면서 일반 청약저축가입자로 확대됐다. 그러나 저소득층 단지라는 이미지는 여전하다. 때문에 기존 임대주택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로 일부 지자체와 지역주민의 반대는 그치질 않았다.
박신영 주택도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임대주택이 ‘저소득층용’이라는 이미지 대신 유럽처럼 ‘근로자용 임대주택’이라는 광범위하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졌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건교부는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 2004년 12월 건교부가 내놓은 ‘명품단지’계획에 따르면 경기 의왕시 청계지구, 안양시 관양지구 등 총 3곳을 각각 테마공원과 완충녹지, 생태학습장 등이 들어선 환경친화단지, 문화공간과 다양한 공원시설이 들어서는 문화주택단지 등 명품단지로 만든다는 내용이다.
건교부 국민임대주택건설기획단 관계자는 “지자체의 반대를 뚫으려면 국민임대주택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2007년 7월 의왕 청계지구를 시작으로 입주가 시작되면 인식이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2004년 말 계층간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국민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를 같은 단지 안에 섞어짓는 이른바 ‘소셜 믹스(Social Mix)’믹스 방침이 정해졌다. 2007년 현재 주공은 경기 군포시 당동2지구에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5개 단지 중 2개 단지에서 시범적으로 ‘소셜 믹스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우선 1개 단지는 한 동내에 임대 주택 89세대, 분양 196세대를 섞어서 짓고 다른 1개 단지는 동별로 구분해 임대 320세대, 분양 539세대를 짓는다. 주공은 단지 입주자의 반응을 살펴본 뒤 문제점을 보완해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2010년 이후 매년 10만 가구로 확대
지난 7월 4일 대한주택공사가 내놓은 올 하반기 아파트 공급계획에 따르면 공공분양주택 1만4,142가구와 공공임대주택 1,885가구, 국민임대주택 2만5,816가구에 이른다. 공공분양 주택은 7월에 경기 고양행신 2지구에 613가구(45~52평형)가 공급되는 것을 비롯해 이달에 경기 남양주가운 290가구(45~50평형), 9월에 서울 상암 263가구(25~44평형)와 경기 파주운정 1,062가구(21~34평형), 경기 광명소하 1,144가구(23~33평형) 등이다.
지방은 오는 9월에 울산화봉2지구 733가구(30~33평형), 10월에 대구율하2지구 1,071가구(28~35평형), 11월에 부산만덕지구 316가구(25~31평형) 등이 일반에 분양될 예정이다. 분양 전환되는 공공임대주택은 경기 화성동탄4-5블록에 503가구(30~34평형)와 경기 오산세교 B-2블록 849가구(29·32평형)가 9월과 12월에 공급된다. 부산만덕 86가구, 인천 동산 1블록 310가구 등도 10월 이후 순차적으로 나온다. 국민임대주택(30년 임대)은 고양행신과 성남도촌, 하남풍산 등 수도권에서 8,904가구가 나올 예정이다.
참여정부는 2003년 출범 직후부터 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주력했지만 실제 입주물량은 많지 않다. 사업승인, 택지 확보에서부터 실제 입주까지 보통 3~4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건교부 추정에 따르면 국민임대주택 입주물량은 2007년의 경우 전년도와 비슷한 3만4,500가구 정도에 머물지만 2008년 5만6,600가구, 2009년 8만 가구, 2010년 이후 매년 10만 가구로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지난 7월 5일 마산시는 “가포·현동지역에서 추진 중인 국민임대주택 9,000여 가구 건설계획에 대해 포기하거나 축소해 달라는 공문을 지난달 건설교통부와 주택공사에 발송했다. 토지보상 절차가 사실상 완료된 현동지구는 어렵겠지만 가포지구는 지구지정 철회로 공사 포기가 가능한 만큼 관계기관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히며 건설교통부와 주택공사에 국민임대주택 건설 포기를 요청했다.
시 관계자는 “신마산 일대에 신항만 개발을 추진 중이고 마창대교도 내년 말 개통될 예정”이라며 “가포지구 등은 신항만 개발 후 배후용지로 사용할 수 있는 조정 가능지역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게 마산시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임대단지 유지ㆍ관리 문제와 함께 마산 도심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만큼 2011년 이후에는 주택공급 과잉이 염려 된다”며 “기존 도심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만큼 국민임대주택 단지 규모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남개발공사를 사업자로 하는 현동지구는 3,128가구, 주택공사가 직접 주관하는 가포지구는 5,893가구인 마산 국민임대주택 규모는 총 9,021가구로 이중 현동지구는 이미 토지보상까지 마무리돼 곧 착공만 남겨두고 있었다.
마산시의 이 같은 갑작스런 조치에 대해 주택공사와 경남개발공사측은 “현재 한창 진행 중인 사업을 두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마산시 당국의 속셈을 이해하기 어렵다” 말하고 “그러나 건교부 주택공사 마산시가 재협의를 가진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당황스럽다”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