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오리무중 대선후보
2007-07-13 글/ 김정숙 기자
혼전을 거듭하던 범여권 대선주자 라인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난 6월 19일 이해찬 전 총리의 대선 출마 공식 선언 이후로 범여권의 대선출마 후보가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것. 이해찬 전 총리를 비롯해 손학규 전 경기지사,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전 열리우리당 의장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한라라당 이명박·박근혜 검증공방을 틈타 대선후보 경쟁에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 주목받고 있다.
이해찬, 손학규, 한명숙, 정동영 등 4명은 각종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범여권의 다른 주자들에 비해 앞서가고 있으며 최근 들어 출마선언을 하는 등 대선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이 전 총리는 지난 6월 19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친노 대선주자로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교육부 장관과 총리를 역임하는 등 오랜 국정운영 경험과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이 범여권 대선주자로서 강점으로 꼽힌다. 전날 한명숙 전 총리도 범여권의 유일한 여성 대선주자로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여성부·환경부 장관과 최초의 여성총리를 지내는 등 다양한 국정운영 경험을 갖고 있는데다 민주화운동 세력 및 여성계에서 폭넓은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인 한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드럽고 강인한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고 국민과 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범여권 대권경쟁에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난마처럼 얽힌 교육 문제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공교육을 튼튼히 살려내는 등 교육혁신을 필생의 사명으로 여겨 사람에게 투자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또한 이들 두 주자는 DJ 정부서 장관을 거친 뒤 현 정부에서 총리직을 수행했다는 측면에서 노 대통령과 DJ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어 범여권 후보로서 강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손 전 지사와 정 전 의장은 노 대통령으로부터 범여권 후보로 부적격자라는 등의 지적을 받는 등 사실상 비토당하고 있는 처지여서 대선 행보에 부담을 떠안고 있다. 이들 두 주자가 DJ측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맞물려 있다.
손 전 지사는 지난 6월 17일 지지세력인 선진평화연대 발족을 통해 사실상 출마선언을 한 뒤, 범여권의 대선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출신이란 점이 범여권에서 대선 주자로 지지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난 6월 18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정 전 의장의 경우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이었다는 점에서 대선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정부에서 장관을 지냈고 열린우리당 창당의 주역이었음에도 반노 진영에 가담해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구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각 세력 간 통합 주도권을 둘러싼 힘 겨루기의 향배를 가늠키 어려운데다 노무현 대통령 및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등 범여권의 대선가도에 각종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준비하는 여권 후보들은 누구누구
지지율과 인지도 측면에서 높은 4명의 후보 외에도 영남 친노그룹의 좌장격인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와 우리당을 탈당해 개혁성향의 민생정치 준비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천정배 전 법무장관도 금명간 대권도전을 선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통하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권도전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당내 진보진영을 이끌고 있는 신기남 전 우리당 의장은 대권도전 의사를 이미 밝혔으며, 개혁성향의 김원웅 의원도 대선출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한편 민주당에서는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차기 대선후보는 현 민주당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당 잠룡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어 조순형 전 대표와 함께 노무현 탄핵정국을 주도했던 추미애 전 의원이 당 지도부와 의견조율을 거쳐 대망론을 밝힐 예정이며 정치권 밖에 머물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도 대선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범여권 대선구도는 금명간 대선출마 계획을 밝힐 예정인 정동영 전 의장과 천 전 법무부 장관을 아우르는 ‘비노 진영’과 이해찬·한명숙·김혁규·김두관 등 ‘친노 진영’, 현재 범여권 잠룡들 가운데 지지율이 가장 높은 손 전 경기도 지사 등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될 전망이다.
이해찬 전 총리 출마에 열린우리당내 들썩
이 전 총리가 6월 1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을 두고 열린우리당내 또다른 친노주자인 김혁규 의원과 한명숙 전 총리 측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전 총리에게 쏠려있다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총리의 캠프에는 최근까지 노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사람들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기획업무를 맡은 정태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홍보업무를 맡은 김현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또한 이날 대선출마 기자회견장에 총리 시절 그와 함께 일한 오영교 전 행자장관, 윤광웅 전 국방장관, 허성관 행자장관 등 전직 장관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낸 것 역시 노심이 그에게 있다는 항간의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이 전 총리와 ‘친노’라는 같은 지지기반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김 의원과 한 전 총리 측은 “‘대표 선수’가 정해졌다면 경선을 뭐하러 하느냐”며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은 “노 대통령을 만났을 때 노 대통령이 영남후보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표한 바 있다”며 노심은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한 전 총리 측도 “노 대통령과 친노 세력의 의중은 ‘이해찬 대망론’이 아니다”며 “노 대통령은 누구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친노진영인 유기홍 윤호중 서갑원 의원 등은 이 전 총리를, 이광재 김종률 이화영 의원은 김 의원을, 김형주 의원은 한 전 총리를 각각 돕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난 검증된 후보로 검증된 대통령 되겠다”
한편, 이 전 총리는 ‘검증된 대통령 후보론’을 내걸고 전국 순회 일정에 들어갔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오후 인천을 방문해 인천대교와 송도국제자유도시 홍보관을 둘러보고 21일에는 수원 삼성전자 연구 단지를 방문했다. 또한 강원도를 방문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원주 혁신도시 건설상황 등을 점검했다. 이 전국 순회 일정은 이 전 총리가 세계 일류국가 도약을 위해 제시한 4대 과제 중 하나인 ‘국가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될 것이라는 게 캠프측의 설명이다.
특히 이 전 총리는 국무총리 시절 관심을 갖고 집행했던 주요 정책과제들과 연관된 곳을 집중적으로 방문해 ‘풍부한 국정경험과 강력한 추진력’이라는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키는 한편 “검증된 후보로서 검증된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같은 행보는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 건설’ 정책과 대비시켜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론이 올바른 정책방향이라는 메시지도 담겠다는 뜻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리측 관계자는 “대선후보 경선전에 들어가기 전에 국가경쟁력 강화를 테마로 내걸고 전국을 순회할 예정”이라며 “이후에는 ‘양극화와 사회대통합’을 위해 민생현장을 찾는 행보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가 전국 순회 일정의 첫 방문지로 인천을 택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이 전 총리측 관계자는 “총리재직 시설 동북아경제 공동체의 관문으로 인천공항과 인천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인천대교 건설에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인천을 첫 방문지로 택했다”고 전했다.
이 전 총리는 이와 함께 이날 인천지역 의원, 당원들과 잇따라 간담회를 갖고 ‘이해찬 대망론’을 적극 설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 핵심인사는 “어제 이 전 총리가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만큼 왜 이해찬이 대선주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는 민주개혁세력의 유일한 대안이 이해찬 전 총리임을 강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범여권 내 주도권 경쟁 치열해 져
이 전 총리의 대선출마 선언 이후 범여권 유력주자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20여명에 달했던 범여권 주자군이 여론조사 등을 통해 ‘4강’ 구도로 압축된 결과이다. 측근들의 입씨름도 치열하다. 손 전 지사는 당초 5명으로 예정됐던 특보단을 7~8명으로 확대했다. 김부겸 조정식 정봉주 신학용 한광원 의원 외에 김동철·이호웅 의원도 특보로 임명한다. 손 전 지사 캠프는 “손 전 지사를 돕겠다고 나서는 의원들이 많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의원들을 받아들일 경우 후속 조직 작업에 애로가 있다고 판단해 최소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이번 주까지 밀려있는 언론사 인터뷰를 소화하고 다음주부터 지방특강을 재개한다. 지역의 선진평화연대 회원들도 만난다. 현재 3만 명 규모인 선진평화연대 회원을 10만~20만 명으로 늘리고 부산·대구·광주지부도 곧 조직할 방침이다.
이 전 총리 캠프에는 유기홍·서갑원·한병도·김재윤 의원이 합류했고 정태호 전 청와대정무비서관과 김현 전 청와대 춘추관장, 이강진 전 총리실 공보수석 등이 실무진으로 참여했다.
정 전 의장은 시민사회단체의 원로들을 주로 만난다. 함세웅 신부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만난데 이어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도 만날 예정이다. 강창일 김낙순·박영선·박명광·채수찬 의원 등 30여명이 돕고 있다고 정 전 의장측은 밝혔다.
측근간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각 후보 간 측근들은 지난 6월말 거친 언쟁을 벌였다. 손 전 지사측 정봉주 의원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나와 손 전 지사를 기회주의자라고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한 이 전 총리를 겨냥, “손 전 지사가 기회주의자가 아니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오히려 이 전 총리가 치명타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전 총리측 유기홍 의원도 라디오 방송에 출연,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역사성을 지울수 없다”고 공격했다.
정 전 의장측 박영선 의원은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에서 한 업적이 없고 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만 신봉 한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이에 범여권도 유력후보가 정리되는 상황에서 네거티브 전략이 나오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범여 일각에서는 아직 대통합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지지율도 높지 않은 상태에서 잠재 후보들이 벌써부터 네거티브전에 들어갈 경우 뜨기도 전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손학규 전 지사 첫 검증대상에 올라
친노주자들은 집중적으로 손 전 지사 공세에 나설 태세다. 우선 이 전 총리의 ‘기회주의자’ 발언은 손 전 지사를 공격해 친노주자 중 지지율이 가장 높은 자신과 손 전 지사와의 ‘빅2’ 구도를 만들기 위한 전략 차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 전 총리 본인은 참여정부의 핵심에 있었던 반면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점을 집중 대비시켜 논란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선명성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 전 총리 캠프에 참여키로 한 유기홍 의원은 6월 20일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역사성은 사라지지 않지만, 이 전 총리는 한 길을 걸어와 (역사성을)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 또한 지난 6월 18일 대선출마 선언을 하며 “한나라당에 있었던 손 전 지사와 민주개혁세력에 몸담은 저와의 차별성은 확실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손 전 지사 측은 ‘공식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쾌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손 전 지사 캠프의 정봉주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 이 전 총리의 발언이 손 전 지사를 향한 것이냐는 질문에 “충분히 그렇게 이해된다. 반한나라 구도에서 (이 전 총리가) 손 전 지사를 공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 의원은 “그러나 손 전 지사가 기회주의자가 아니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그 때는 오히려 이 전 총리에게 치명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메시지를 던졌다.
우리당을 탈당, 손 전 지사와의 연대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 또한 K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기회주의라는 말은 대단히 유효한 공격수단이긴 하지만, 딱지를 붙이고 분열시키며 기회주의자라고 몰아붙이면 상생하기 어렵다”며 이 전 총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손학규 ‘범여권후보’ 1위
범여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0%선을 돌파하며 치고 나가고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친노 주자들도 강한 상승세를 탄 것으로 나타났다.
범여권 대선후보로 누가 적합한지를 물은 결과 손 전 지사가 24.1%의 지지를 얻었다. 이 전 총리가 10.9%로 2위에 올랐고 한 전 총리(8.6%),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8.2%),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4.6%), 김혁규 의원(2.0%), 추미애 전 의원(1.1%), 천정배 의원과 김두관 전 열린우리당 최고위원(각 1.0%),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0.7%) 순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 6월 1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 전 총리가 단번에 2위로 올라서고 한 전 총리가 근소하게나마 정 전 의장을 따돌리는 등 친노주자들의 약진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번 조사에서 친노그룹(이해찬·한명숙·유시민·김혁규·김두관)은 총 27.1%의 지지로, 33.4%를 얻은 중도그룹(손학규·정동영·추미애)을 맹추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학규·이해찬·정동영의 3자 대결이 펼쳐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손 전 지사가 앞서나가고 이·한 전 총리와 정 전 의장 등 3중(中)이 각축을 벌이는 양상이다.
손 전 지사가 전 계층에서 우위를 보이는 가운데, 이들 4인은 강세층이 뚜렷이 구분됐다. 손 전 지사는 인천·경기와 광주·전라(각 28.9%), 40대(30.1%), 대학재학 이상(27.3%), 자영업(31.7%) 층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다.
이 전 총리는 부산·울산·경남(14.5%)과 대전·충청(13.3%), 30대(18.1%), 고졸(13.1%), 농림어업(23.5%) 층에서 강했다. 한 전 총리는 대구·경북(14.6%), 50대 이상(10.4%), 주부(10.7%)에서, 정 전 의장은 광주·전라(14.7%)와 19~29세(11.4%), 블루칼라(13.8%)에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