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한약협회장·백초당한약방/ 신전휘 회장
2007-06-20 취재_이종철 부장
세종이후 574년 만에 완성, 국내의학역사의 재구성
전통의학 중 중국의학계에선 중의가 한의학의 근원이라 주장하고 있다. 한의가 그 맥을 중의에서 들여온 것은 맞으나 체질과 토양에 맞추어 각기 다른 형태의 의학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는 문헌의 대표가 ‘향약집성방’이며, 본 문헌은 ‘의방유취’ ‘동의보감’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의서 중 하나이고 세종대왕의 명으로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발간되었다.
‘향약집성방’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에는 중국산 ‘당재’보다 우리 땅에서 나는 약초인 ‘향약’의 효능이 더 좋을 것이란 이론을 바탕으로 간행되었다. 이는 약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세종의 통치이념인 애민사상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같은 우리의학문헌의 귀중함을 되살리고자 무려 17년이라는 연구기간 동안에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를 출판하게 된 신전휘 회장을 만나 보았다.
527년만의 한의학 발전을 위한 초석
지난해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7월 7일 신전휘 회장과 아들 신용욱씨는 ‘향약집성방’을 새롭게 교정하여 우리의학문헌의 역사를 재편한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를 출판하였다. 이는 대중에게 국내 의학고서의 쉬운 이해와 활용성을 알림은 물론, 향약이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의학문서 이상의 가치와 활용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신전휘 회장은 “17년 전 한약박물관에 소장할 자료를 준비하던 중, 우리의학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의서의 하나인 향약집성방에 대한 후속연구가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본서에 실린 약초를 주목하게 되었고, 360여 종의 사진자료를 만드는 시초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향약집성방은 1433년 세종 15년에 편찬된 순수 국내의서로 허준의 동의보감보다 200여 년이 앞서있다. 조선 성종10년에 한양 승지 이경동이 1479년 백성들에게 국산약초를 쉽게 찾아 사용할 수 있도록 책으로 펴냈으나 약초의 이름만 명시되어 해당약초를 구하는데 실용성이 없었다. 성종은 백성들의 이러한 고충을 해결하고자 그림을 곁들인 ‘향약집성방’을 지시하였다. 허나 그림이 첨부된 향약집성방의 발간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527년 뒤 신전휘 회장에 의해 완성된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가 갖는 의미는 국내의학역사의 재구성을 넘어 문화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는 ‘향약집성방’의 명시된 약재들을 모두 찾아내어 당초 취지인 그림보다 실사적인 사진을 보여줌으로서, 의학적 가치가 크다. 또 이를 토대로 향약에 대한연구자료 및 약초활용분야가 늘어날 것이 점쳐지는 등 그 활용분야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향약집성방의 현대적 의미의 재편성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은 세종임금의 ‘향약집성방’에 담긴 원서의 취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완성되었다. 세종당시 백성들은 수입된 고가의 중국약재를 사용해서 병을 고쳐야만 했다. 세종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국내에 자생하는 약재들에 대한자료를 ‘향약집성방’을 만들어 보급하였지만 문헌만으로는 활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신전휘 회장은 “현재에도 향약집성방의 어려운 한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사진이 수록과 번역을 통한 새로운 향약집성방으로 국민들에게 알기 쉽고 도움이 되는 의학서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신전휘 회장은 독자를 위해 계절마다 바뀌는 약재식물의 변화까지 신경 쓰는 배려를 보여준다. 500여 년 전의 약초와 새로운 약재와의 비교는 물론, 누구나 쉽게 약초를 알아볼 수 있도록 각 약초마다 봄·여름·가을·겨울에 걸쳐 사진자료를 수집하였다. 약초뿌리, 열매사진 및 약재로 가공된 각 6장의 사진자료(총 1,800장)를 포함해 360여개(20여 종의 신 자료 추가)의 약초마다 일일이 고된 작업을 하였다. 오랜 시간동안 힘든 작업을 하면서도 신 회장의 옆에서 묵묵히 공동 작업으로 도움을 준 아들(신용욱, 진주산업대 교수)의 역할이 컸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본책의 문구를 선택할 때 저는 옛것을 고집하고 아들은 새로운 학문에 맞는 문구를 고집하면서 의견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토론을 하면서 합의점을 찾아서 집필을 했기 때문에 신구가 적절하게 조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의 자료수집과정 또한 본서가 기존의 의학서적과의 다름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신전휘 회장은 “수십 차례에 걸쳐 중국을 오가고 백두산에 5번이나 오르는 등 국내외(울릉도 4차례, 제주도 10차례) 전역을 활보하였습니다. 특히 본서를 위한 로케이션비만 아파트 한 채 값을 사용하였고, 이처럼 약초가 자생하는 곳 대부분이 오지이며, 험난한 지형 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신전휘 회장은 대구에서 33년째 백초당한약방을 경영하고 있으며, (주)한약재도매시장 대표이사를 비롯해 대구한약협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이 같이 한약관련 사업과 관련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한약과 규격집(한약재가)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고심하게 되었고, 1990년부터 시작한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를 17년 만에 완성하게 된 것이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월 대구한의대는 신전휘 회장에게 명예한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는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가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앞으로의 한의학 발전의 큰 주춧돌로 자리매김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출간 된 ‘사진으로 보는 우리약초 바르게 알기’는 영문번역판도 함께 출시되어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대구한약협회장·백초당한약방 신전휘 회장 인터뷰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의서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1999년 출판을 목표로 ‘향약집성방’에 실린 약용식물의 사진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허나 국내 자생식물만으로는 본서를 재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한약학을 전공하는 아들이 동참하게 되어 큰 힘과 의지가 될 수 있었고, 부자가 함께하는 연구로서의 가치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본서의 초대저자인 황자후와 노중례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현지의 약용식물자료를 수집하는 시간은 고되었지만 참으로 듯 깊은 시간이었다.
500여년의 의학환경과 현대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책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이 아닌,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의서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하게 되었다. 이에 올바른 전통의 계승으로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을 퇴색시키지 않고 후손에게 전해주기 위해 최근연구결과를 적극 반영하여 새로운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지난 17년간 우리부자는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도 이 보물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는 날을 생각하며 즐겁게 연구할 수 있었다. 물론 연구기간 동안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준 지인들과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와 논문 및 관련 자료가 참고문헌으로서의 큰 힘이 되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듯이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사회와 지역문화 창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