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천태종 서광사/주지 박무안 스님

2007-06-22     취재/차성욱 기자
예술포교를 통한 현대인의 삶에 여백을 만든다
미술, 음악, 시집 등 예술포교로 대중과의 소통

“내가 곧 부처요, 내 마음이 부처다” 불교에서는 부모가 부처요, 형제가 바로 부처요, 내 남편, 내 아내가 부처요, 아들딸이 부처님이라는 가르침을 많이 내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떠한가? 참으로 부모를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아침저녁으로 공양하는 분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 아들, 딸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식을 자신의 욕망에 맞도록 키우고 멋대로 부리기까지 한다. 내외는 상호존중의 원칙 아래 서로 아끼고 받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사는 부부가 드물다.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내가 곧 부처요 내 마음이 부처다” 라는 가르침을 수 없이 듣고 들은 불자들 중에는 “네 마음이 부처지, 부처가 다른데 있나” 라는 말을 즐겨 사용 하고 있다. 정녕 우리가 참다운 불자라면 우리의 아들딸, 남편과 아내, 부모형제를 부처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그분들 앞에서 절을 하고 그분들을 잘 받들어야 한다.




포교는 종교의 생명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조와 교리와 교학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종교는 죽은 종교이다. 그러므로 종교의 교의를 남에게 전한다는 것은 종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종교의 생명 연장은 인간다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불교의 법은 꼭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을 전하는 자의 자세가 가장 중요한 의미로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법화경」에 “법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앉아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말을 하여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포교사의 기본적 자세이다.




예술포교로 대중과 하나가 된다
마음이 부처라는 말의 참뜻은 무엇인가? 아주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볼 수 없는 것이 눈이고, 아주 친한듯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심성(心性)이다. 눈은 직접 볼 수 없다 해도 거울에 비추면 볼 수 있다. 그리고 심성은 그냥 알 수는 없지만, 투철하게 깨달으면 알 수 있다. 투철하게 깨닫지도 못하고 심성의 심오한 이치를 알려는 것은 마치 거울을 버리고 자기의 눈을 보려는 것과 같다.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라 하나 아직 난 부처를 찾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나란 존재로 가득 차 있어 아직 난 부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중생의 습기(習氣)에 물들어져 내안에서 부처를 찾는 일은 쉽지 아니하여 이제 밖에서 부처를 찾고자 길을 떠납니다. 나보다 먼저 2,500여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부처를 만나고 그 가르침을 듣고자 길을 떠납니다” 번뇌와 고(苦)가 많고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잠시나마 삶의 괴로움을 잊고 자신의 뒤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라한다. 스님은 미술을 접하면서 문화의 가치를 느끼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여기에 외국문물을 흡수 한다면 우리의 민족성을 살리는 문화 개념을 확립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개념이 정착하기에는 긴 세월이 걸립니다. 따라서 보다 먼 시각을 가지고 문화를 통해 대중을 통합 할 수 있는 깨어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의 미술 작품을 통해서 천 명 중 한명이라도 계도가 되고 감동을 받는다면 저에게는 큰 보람으로 다가올 겁니다. 그것은 바로 대중과 하나가 되는 시작이니까요”
스님은 미술 외에도 음악과 시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피리와 대금으로 애절하면서도 심오한 소리로 현대인들이 고향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그 심오한 세계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곡을 쓴다. ‘산승’은 합창이나 독창은 물론 남녀노소 누구나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쉽고 무난한 노래이다. 신도들이 찾아오면 향피리를 연주하며 함께 음악 삼매에 든다는 무안 스님은 직접 작사, 작곡, 노래한 ‘님 향한 소리기행’이라는 음반으로 신도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또 월간 <문학 공간>으로 등단한 승려시인이기도 하다. 스님은 ‘산승’을 비롯해 그동안에 쓴 시를 묶어 시집을 출간했다. 독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 올해 1월에는 ‘소리 없는 시작’이라는 두 번째 이야기를 출간했다. “시나 그림은 모두 마음을 담는 것.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의미합니다. 소리 없는 시작처럼 요란하지 않지만 시를 접하고 그림을 접하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지금껏 알지 못하던 부처님 세계를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대한불교 천태종 서광사 주지 박무안 스님 인터뷰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불교의 의미
“불교는 마음을 논하는 것입니다. 생활에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좋은 마음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나쁜 마음을 쓰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직접 영화를 뿌리치고 출가하여 고행 끝에 성불을 보여주셨습니다. 즉, 고통을 받고 몸으로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진리의 세계는 한없이 평등한 열반의 경지이며, 형상의 세계는 차등의 세계라 할 수 있는데, 모든 만물의 형상이 다르듯 인간의 복락과 고통도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차등의 세계는 바로 삶을 살아가는 인간 자신이 만들어 갑니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성실히 임하고 선행을 베풀면 후세에는 복락이 있다는 것을 믿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의 어려움에 지치지 말고 끝없이 인격과 덕망을 닦고 선행을 행하는 것이 바로 열반으로 행하는 길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가의 마음에는 지성과 불성이 있기에 누구든 부처님같이 될 수 있다는 무안 스님은 마음의 선택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술을 접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는 무안 스님. 모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으로 지면 물러서야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인내를 가지고 내 몸을 길들이기 위해 항상 노력하며, 힘에 부칠 때면 한 번 더 나를 추슬러 이겨왔다는 스님의 굳은 의지와 집념이 지금의 스님의 자리로 이끈 것이 아닐까?
“3년 전 어느 날 밤 꿈에서 한 제자가 나타나 그림을 그리라는 말을 듣고 아무 생각 없이 화방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재료를 사서 계산대를 보니 30만 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 보니 딱 30만 원이 있었습니다. 분명 나올 때는 3만 원만 있다 생각 했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붓 한번 잡아 본적이 없던 스님은 이렇게 그림과 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림을 그릴 때 형상이 보여 따라 그리다 보니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만난 제자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1년에 1,000점을 그리는 수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국내에서 주최한 여러 작품전에서 수차례 입상하고 몽골 문화부 장관 초대전, 미얀마 문화부 장관 초대 전시회, 일본 개인전 등을 통해서도 세계에도 널리 포교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여기서 문화와 예술의 파급효과를 실감하고 이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이 또 다른 포교의 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무안 스님은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더 열심히 해 일상에 지친 중생들에게 삶의 여백을 느끼고 감로수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