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의 빗나간 부정(父情)
2007-06-30 글_김영란 차장
계층간의 갈등과 불신이 빚어낸 후진적 이분법 사고
발 문 : 지난 한동안 국내 재벌기업 총수의 유별난(?) 자식사랑에 대한 뉴스가 온통 지면과 방송을 도배했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유흥업소를 찾았던 둘째 아들이 시비 끝에 폭행을 당하고 오자 이성을 잃고 보복 폭행을 감행해 물의를 빚은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었다. 이번 사건은 법보다는 ‘이에는 이’라는 비뚤어진 이분법적 사고가 빚어낸 우리사회의 잘못된 윤리의식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사건의 발단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사회 지도층으로 꼽히는 재벌 총수가 상식과 도덕을 무시한 채 극단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우리사회 재벌과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현실을 되짚어 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재벌총수의 빗나간 부정(父情)
지난 3월 아들의 폭행소식을 접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폭력배를 연상시킬 정도로 조직력을 앞세우며 보복폭행을 감행했었다. 그의 진두지휘로 경호원 일행 등은 각종 흉기를 소지한 채 납치와 감금, 폭행을 통해 매 맞고 온 아들에 대한 분통함을 애정으로 표출했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다’는 세간의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회 지도층이라 일컫는 재벌총수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만큼 광기에 어렸었다. 이는 우리사회의 계층 간의 갈등과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사건의 내막과 수사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우리 사회가 보일 수 있는 윤리의 진정한 모습과 상식이 무엇이며, 과연 상식과 정의가 우리사회에 살아 있는지 의심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뒤늦게 상세 조사에 들어간 검찰과 법무팀까지 구성하며 맞서 왔던 재벌의 진실공방은 수사 진행과정에서 하나둘씩 그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김 회장 운전기사, 경호원 등이 청계산 부근에 간 사실이 드러나고, 심지어 ‘범서방파’ 오 모씨가 사건에 개입된 것도 포착되었다. 경찰은 김 회장과 경호 과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수사에 박차를 가하던 경찰은 김 회장이 청계산에서 직접 때리는 것을 봤다는 피해자 겸 목격자 3명을 밝혀내고 영장실질심사에서 김 회장은 결국 일부 ‘자백’하는 행동으로 태도를 전환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김 회장이 세인으로부터 곱지 않는 시선을 받는 것은 단순히 ‘보복폭행’이라는 부분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번의 검찰 출두 명령에도 불구하고 출석을 거부하였으며, 강제 연행이라는 문턱에 이르러서야 출두하는 등 수사에 대해 시종일관으로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한 점도 한몫했다. 수사 초기에는 묵묵부답으로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개인적인 사건에 회사의 법무팀을 총동원하는 사회 지도층답지 않은 우스꽝스런 모습은 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더욱 위화감을 조성했다. 평범하지 않은 ‘부’를 지녔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 또한 그에 따라야 함을 김 회장은 간과했다.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간다면 사회는 계층 간의 연대성 결여와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얼룩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져 버린 후에야 뒤늦게 “사건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회한에 빠진 김 회장은 이미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서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나라에서 손꼽는 재벌기업 총수의 구속 수감으로 인하여 한화그룹 또한 당황스런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한 개인이기도 하지만, 경제의 축을 이루고 있는 기업의 수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구속 수감당한 민망한 사건의 주범인 채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게 돼 버렸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오블리스 노블리제는 어디로 갔나
이 사건이 세간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것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빗나간 사랑이 아니었다. 과연 재벌이라는 사회적 지도층 위치에 있는 인사가 사회적인 도덕심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점이 더욱 여론을 들끓게 했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를 가리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조롱한 듯한 김 회장의 행동은 어떠한 논리로도 설명하기 힘든 명백한 사회적 도덕의식 결여였다. 사회적 도덕의식은 근대와 현대에서도 계층간 대립을 해결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 영국, 중국 등의 지도층 인사들의 솔선수범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무엇보다 총체적 국난을 맞이했을 때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는데 일조했었다. 김승연 회장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기여해 오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스스로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책임적인 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정의롭고 도덕적인 인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인 것이다. 로마에서 연유된 것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면,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중하게 여겼던 ‘선비의식’이 있다. 사회의 올바른 방향을 지도하는 지혜와 의리의 신념을 사회 속에 제시하고 도덕규범을 실천하면서 사회적 모범을 보여 대중들을 교화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강조된 것이 바로 선비의식이다. 이러한 부분을 놓고 본다면 김 회장의 행동은 동?서양적으로 보더라도 지도층답지 못한 경솔한 부분인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계층 간의 갈등과 괴리감 속에서 문득 우리나라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참으로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높고 얼마나 많은 경제성장을 했느냐는 것만으로는 그 사회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라’는 세간의 말이 문득 연상되는 씁쓸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