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1차 협상 결산
2007-06-27 글_이현지 기자
2차 때부터 본격 주고받기, 의약·車·서비스 부분은 막판까지 쟁점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1차 본 협상이 지난 5월 7일~11일 닷새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공식 폐막됐다. 양측은 상품, 서비스·투자, 기타 규범, 분쟁해결·지속가능한 개발 등 4개 분과 협상을 벌였으며 당초 목표대로 협상일정과 양허(개방)안 교환 시기 등 협상의 기본 방향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 특히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협정 발효 후 10년 내에 모두 없애기로 합의하고 농산물을 포함한 상품 분야의 시장개방 수준을 95% 이상(품목·교역금액 기준)으로 한다는데도 의견을 모았다.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은 첫 협상에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큰 밑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양측은 상품의 무역자유화 수준을 다른 FTA 못지않게 높이는 한편 서비스와 투자, 비관세장벽, 지적재산권 등 광범위한 분야를 함께 다루는 포괄적인 협정을 맺는다는 데 공감대를 마련했다. 특히 FTA 협상의 최대 쟁점이 될 양허안(개방계획안)을 이번 달 말까지 교환키로 함에 따라 한·EU FTA를 한·미 FTA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진행해 나가자는 데 합의한 것도 큰 성과다.
협상 걸림돌 사전제거(?)..진전속도 가장 빨라
한·EU FTA 협상이 1차 때 부터 한미FTA때와는 달리 매우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 통상전문가들은 1년여에 걸친 예비협상과 한미FTA 체결에 따른 경험이 협상 진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유럽팀장은 “양측이 예비협상을 통해 이미 중요 관심사항을 파악, 이번 협상에서는 다시한번 상호 입장을 최종 확인 절차를 밟았을 것”이라며 “협상진도는 우리가 체결한 다른 어떤 나라들과의 FTA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측은 상호 민감한 농산물에 대해 ‘예외 없는 개방’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으며 투자 분야에서 투자자-국가소송(ISD) 문제와 위생검역(SPS)의 쇠고기 광우병 문제와 같은 통상 현안은 이번 협상에서 다루지 않기로 했다.
방송·문화 분야도 협상대상에서 제외된다. 노동·환경 분야에선 교역과 관련된 문제로 협상의제를 한정키로 원칙을 세웠다. 양측이 협상 걸림돌을 사전에 제거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측은 이번 첫 협상에서 공산품과 농산품의 관세 폐지기간을 협정 발효 후 ▲즉시▲3년 내▲5년 내 등으로 단순화하되 민감품목의 관세 폐지기간은 따로 정하기로 했다. 개방안 교환은 이번 달 하기로 정했다. 양측은 또 전체 상품의 관세 철폐 수준을 액수와 품목 모두에서 최소 95%선 이상으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개방으로 한미FTA 개방수준에 버금가는 것이다.
▲상품 관세는 95% 이상 철폐 = 양측은 공산품과 농산물 해산물 등 모든 상품에 대해 관세 철폐 비율을 품목 수와 수출금액 모두를 기준으로 평균 95% 이상으로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이는 한·미 FTA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수준이지만 한·칠레, 한·유럽 자유무역연합(EFTA) 등 다른 FTA와 비교할 때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특히 공산품은 전 품목에 대해 관세를 10년 내에 철폐하겠다고 합의함으로써 공산품 교역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관세 철폐 단계는 일반품목에 대해서는 즉시-3년 내-5년 내 철폐 등 3단계로 구분하기로 했다. 다만 민감품목 관세를 어떻게 철폐할 것인지는 의견이 달라 일단 각자 방식대로 1차 양허안을 만들기로 했다.
농산물에 대해서는 서로 민감성이 있는 만큼 예외 없는 관세 철폐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데도 합의했다. 한·미 FTA 때는 미국이 농산물에 대해서도 막판까지 전 품목 관세 철폐 요구를 했던 점을 고려하면 농산물 협상이 더욱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한·미 FTA 때 미국측과 격돌한 무역구제 분야에 대해서도 EU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드러냈다.
김한수 한·EU FTA 수석대표는 “한국과 EU는 무역구제 분야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규정하는 내용에 플러스 알파가 돼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며 “우리가 제안한 제로잉 금지와 최소 부과원칙, 공익조항 등에 대해 EU가 적극적인 검토 의사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위생검역 분야에서는 한·미 FTA 때와 마찬가지로 쇠고기 수입 등 구체적인 품목별 수입문제는 다루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금융에 네거티브 방식 도입할 듯 = 서비스·투자 분야에서는 EU측이 마련해온 협정문 초안을 기초로 향후 협상 방향을 논의했다. 우리 협상단은 EU가 마련해온 협정문이 WTO 수준보다는 더 개방하는 안을 담고 있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FTA 협정문에는 다소 미흡한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EU 측은 이 협정문에 우편 택배 통신 등 서비스 개방 문제를 담았으나 우리측은 향후 양허(개방)안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EU는 예상대로 투자 분야에 대해서는 소극적 입장을 개진했다. 투자자와 국가간 소송제(ISD)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 투자도 협정문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금융 분야에서는 개방 방식을 포괄주의(네거티브) 방식과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을 혼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현지법인이나 지점을 설치하는 상업적 주재의 경우 명시하지 않은 분야는 모두 개방된 것으로 판단하는 네거티브 방식을 사용하고 온라인이나 팩스로 이뤄지는 거래, 즉 국경간 이동은 포지티브 방식으로 하는 안을 양측이 협의했다.
▲노동·환경 협상원칙 확정 = 노동·환경 분야에서는 세 가지 협상원칙을 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양측은 수석대표끼리 만나 첫째, 무역과 직접 관련된 사항만 논의하고 둘째, 서로 상대방의 법을 개정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며 셋째, 환경·노동 문제를 구실로 무역제재를 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또한 우리측은 EU가 새로운 환경규제를 도입할 때 FTA체결 상대국 의사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강하게 제기했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는 보르도 샴페인처럼 지명과 상표가 연계된 지리적 표시제에 대한 협상을 늦어도 이번 달 초까지 별도 협상을 열어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
의약·車·서비스 문제 협상 막판까지 쟁점
통상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당초 드러난 이슈에 대해 상호 입장을 확인한 것 이상의 의미를 둬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1차협상이니만큼 탐색전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의약품·화장품 등의 지적재산권 문제를 비롯해 서비스(법률·금융), 자동차, 지리적 표시(GI) 문제는 협상 막판까지 갈 것 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지난 5월 6일 협상 출범 선언을 하면서 “전통적인 무역협정은 관세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지만 이미 관세는 어느 정도 줄었다”며 “따라서 비관세 장벽이나 기술적 장애물을 봐야 한다. 규정이 없거나 투명하지 못한 규정이 투자 저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힌 부분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EU는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 안전·배기가스 기준, 주름 개선과 미백 등의 효과가 있는 각종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심사를 간소화하고 자국이 실시한 제품, 공정, 서비스의 적합성 평가 결과 및 절차를 우리 정부가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2차 때부터 본격적인 ‘주고받기’ 구체적 협상
서비스·투자 분야의 우편 택배 문제도 양측 의견이 엇갈렸다. EU는 우편 택배의 민영화를 전제로 한 협정문을 제시했으나 한국은 우편이 국가 독점분야임을 내세워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들 문제들은 향후 협상에서 난제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EU는 이밖에 로이터 등 유럽 내 통신사가 한국 뉴스통신 시장의 개방을 원하고 있어 외국인 지분참여 제한을 완화하거나 현지 법인이 직접 뉴스공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등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팀장은 “EU는 관세철폐 이외에 한국의 비관세 장벽 제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화장품과 의약품, 금융서비스 분야가 집중 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본격적인 주고받기는 오는 7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릴 예정인 2차 협상 때부터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도 “의약품과 서비스, 자동차, 지리적 표시 문제가 협상 끝까지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한미FTA에서 논란을 빚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와 관련해 그는 “EU 협상 대표단은 ISD에 대한 멘데이트(협상지침)을 받지 않았다”며 “한국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독일이나 영국과는 개별 협상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한국이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선 우리가 먼저 개별 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EU FTA 체결돼도 자동차 수출효과 제한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데 이어 한·EU FTA가 추진되면서 자동차가 최대 수출 수혜품목으로 꼽히고 있지만 국내업체들의 활발한 해외생산으로 수출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일하게 해외에 생산기지가 있는 현대·기아차는 해외생산판매 전략의 수정을 검토하는 등 다양한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지난 5월 13일 ‘한·EU FTA 협상전망 및 주요이슈’라는 보고서에서 “FTA가 체결되면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10%의 관세가 사라져 일본차에 뒤지는 가격경쟁력을 보완하면서 유럽시장에 대한 접근도가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FTA 발효 예상시점인 2009년이면 현지생산 규모가 60만대에 달해 수출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아차는 지난해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슬로바키아 공장을 완공했고 현대차는 2009년부터 체코 노소비체 공장에서 연간 30만대의 차량을 생산한다. 게다가 현지에서 조달하는 원자재 등 재료비가 국내보다 8%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져 FTA로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현지생산과 수출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EU산 자동차는 관세철폐로 가격인하효과가 기대돼 가격경쟁력이 높은 일본 업체를 견제하면서 내수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나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미 FTA에서도 현대·기아차의 미국공장가동이 자동차 수출증가효과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차 45만5,520대중 현지 생산분은 23만6,773대로 52%를 차지했고 올해는 비중이 54%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에는 연간 30만대를 생산하는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이 문을 열어 FTA 효과는 그만큼 반감된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는 해외생산 확대와 FTA수출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한 ‘윈·윈 방안’ 찾기에 부심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최근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서 건의한 것처럼 미국에서 생산되는 차량을 멕시코나 남미 등으로 우선 수출하고 국내 수출분을 미국시장에 파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한·EU FTA와 관련,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EU측 부품관세는 즉시 철폐토록하고 국내 조달비용 인하를 위해 국내 부품관세도 빠르게 인하해야 FTA 체결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료 값 인상 안돼” 배합사료 인상 움직임에 농가 강력 반발
양돈업계가 국내 사료업체들의 배합사료 인상 움직임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대한양돈협회 제주도회(회장 김성찬)에 따르면 양돈협회는 최근 옥수수 등 국제곡물가격 상승을 내세워 일부 사료업체를 시작으로 배합사료 가격을 올리고 있어 한·미 FTA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양돈농가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배합사료 업체의 경우 최근 평균 6% 가량 사료 값을 올린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다른 업체들도 사료가격 인상을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돼 양돈농가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양돈협회는 성명을 통해 “국내 양돈농가들은 현재 미국에 KO펀치를 얻어맞은 상태에서 EU마저도 국내 돼지고기 시장을 크게 개방할 것을 주장하는 등 국내 양돈산업 위기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배합사료 업체들의 사료가격 인상방침은 국내 양돈농가들을 목 죄어 다시는 헤어나지 못할 낭떠러지로 몰고 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돈협회는 이어 “최근 한·미, 한·EU FTA추진에 따른 불안심리 가중, 가축분뇨 처리난, 사사상 최대의 돼지고기 수입으로 인한 돼지고기 자급률 하락, 소모성 질환 등으로 돼지폐사율 30% 증가 등 각종 현안으로 인해 고통 받는 양돈 농가를 위해서는 배합사료 가격 인상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