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당,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전격 합의
[시사매거진=박희윤 기자] 여야 4당이 자유한국당 없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에 22일 전격 합의했다.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은 4월 임시국회 정상화를 목적으로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을 주재했으나, 한국당은 "의회·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이후 논의에 불참했다. 이에 여야 4당은 한국당을 뺀 채 문 의장과 오찬 등을 하며 합의한 내용을 이날 오후 발표했다.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전격 합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온전히 지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고수해왔던 더불어민주당의 양보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내년 총선의 최대 목표로 삼아왔던 바른미래당 등의 관철로 해석된다. 결국 1년도 채 안 남은 총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여야 4당이 '게임룰' 마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급하게 전격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야 4당은 23일 오전에 일제히 의원총회를 열고 합의안에 대한 추인을 받아 25일 패스트트랙 지정을 마치겠다고 22일 밝혔다.
패스트트랙 지정 대상 중 하나인 선거제 개편은 지난달 윤곽이 드러났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들이 지난달 17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안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합의안은 국회의원정수를 지역구 의석 225석, 비례대표 의석 75석 등 300석으로 고정하되 초과 의석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로 연동률 50%를 적용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정당별 최종 비례대표 의석은 권역별 득표율을 기준으로 배분하기로 하는 내용을 담았다. 권역은 서울, 경기·인천, 충청·강원,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호남 등이다.
당초 선거제 개편 여야 합의안은 바른미래당의 내부 반대에 부딪혔고,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과 이언주·김중로 의원 등은 선거제 패스트트랙 처리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특히 유 의원은 지난 9일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것은 제가 (의원총회에) 가서 반드시 막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에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군소정당과 집권 중반에 접어들기 전까지 공수처를 마련해야 한다는 여당의 바라는 바가 맞물리면서 선거제도 개편은 기어코 패스트트랙에 오르게 됐다.
이와 함께 여야 4당은 신설되는 공수처에 '제한적 기소권'을 부여한다고 합의했다. 원칙적으로 공수처는 기소권 없이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검찰 불기소 처분에 대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권한 등만 갖는다. 다만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 가운데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경우에 한해 기소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당초 민주당이 주장해온 '완전한 기소권'에서 후퇴한 내용이다. 다만 이에 대해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사실상 기소권을 갖도록 한 것"이라며 "명시적으로 수사권·기소권을 100% 부여하지는 못했지만 대통령 친인척을 포함한 공수처 수사 대상 7000여 명 중 기소권을 부여한 판사·검사·경무관 이상에 해당하는 숫자가 5100명으로 충분히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 친인척과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공수처에 검찰 불기소에 대한 재정신청권을 줬기 때문에 충분한 권한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여야 4당은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도 야당의 견제 기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뤘다. 공수처장추천위원회에는 여야 각각 2명씩 위원을 배정하고, 5분의 4 이상의 동의를 얻어 후보 2명을 추천한 후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하도록 했다. 지명된 후보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4당 위원들 간 합의 사항을 기초로 법안의 대안을 마련해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했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능력은 제한하되 법원 등의 의견 수렴으로 보완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여야 4당 원내대표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23일 오전 10시 각 당이 의원총회를 통해 추인을 거쳐 오는 25일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 적용을 완료하기로 했다. 한국당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돼서인지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 적용 후에도 한국당과 성실히 협상에 임해 여야 5당이 모두 참여하는 합의 처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문구를 합의안에 담았다. 이 외에도 5·18민주화운동특별법 개정안을 늦어도 올해 5월 18일 전에 처리하기로 하는 내용도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