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구광역시지부 / 정 정호 지부장

2007-05-14     취재/김영란 차장
국가보훈처의 ‘부’ 승격은 신속히 이행되어야
대구광역시 정정호 지부장의 이유있는 항변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구광역시지부 정 정호 지부장은 국가를 위해 희생을 마다 않았던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와 유가족, 보훈단체, 재향군인회 등의 예우·처우 척도는 국가보훈처의 위상이라 여기고 있다. 단순히 보훈대상자에 대한 수혜를 확대한다는 등의 외형적 정책보다 보훈조직의 장을 국무위원 장관이 아닌 장·차관 대우로 한다는 것은 국가유공자 및 관련인들을 홀대하는 처우라는 주장이다. 대구광역시지부 정 정호 지부장은 현재까지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국가보훈처’의 ‘부’로의 승격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국민의 뜻을 결집하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왔던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1951년 부산에서 사단법인 대한민국상이군인회로 설립되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회원들의 권익은 물론 국가안보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의 노력을 다해 오고 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의 전국 지부들은 상부상조를 통한 자활능력 배양과 조국 평화통일 및 세계평화 기여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자유수호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을 마다 않았던 이들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지역봉사 등의 사회봉사활동으로 활발하게 진행돼 오고 있다.
특히 2006년까지 3차례나 전국 최우수 지부로 선정된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구광역시지부는 전국 유사단체에게 벤치마킹이 되고 있어 화제다. 대구광역시지부는 협회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회계, 행정, 업무, 조직관리 등 전반적인 업무 감사에서 전국 16개 시도지부 가운데 종합 평점이 제일 높게 평가되어 모두가 해당지역 정 정호 지부장의 탁월한 운영능력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부로의 승격은 당연하다
“국가보훈처의 ‘부’로의 승격은 당연히, 그리고 신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구광역시지부 정 정호 지부장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물질적 지원상의 수준도 그렇지만,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국민적 인식 수준은 한심할 정도다. 이러한 부분의 위상과 계몽적 차원에서라도 정 지부장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간언한다. ‘행정명부’처럼 국가보훈처도 보훈대상자에 대한 예우 및 지원과 대국민 민족정기 선양, 호국의식 고취, 나라사랑정신 함양 등 직접적인 대국민 행정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국가보훈부’로 승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 명칭을 사용하는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예산·법제·홍보·인사·조직 등 고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국민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공공기관을 행정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각 기관의 공통사무를 지원·조정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반면 ‘부’ 명칭을 사용하는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고유 업무에 대한 정책결정·집행을 통하여 행정서비스를 산출하여 국민이나 기업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일반국민 모두를 잠재적 행정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비춰볼 때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와 유가족, 보훈단체, 재향군인회 등은 예우·지원 등 대우의 척도가 바로 국가보훈처의 위상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보훈조직의 장(국가보훈처장)을 국무위원 장관이 아닌 장관·차관 대우로 하는 것은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홀대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정 지부장은 “국가보훈부로의 승격으로 국가를 위해 위국·헌신한 이들에 대해 국가의 무한책임을 입증하고 보훈대상자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야 하는 것이 이러한 취지의 당위성입니다”라며 미국, 캐나다, 호주, 대만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독립적인 부·소 형태의 정부조직으로 편제되고 그 위상이 강화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2004년도 「정부조직법」개정 시 격하되었던 차관급 ‘국가보훈처’를 단지 종전의 장관대우 ‘국가보훈처’로만 환원하는데 그친 일례에 대해 강한 불만감을 표시하며 재검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정 지부장은 국가보훈 업무는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공헌에 기초하여 현재와 미래의 국민통합과 국민 공동체의식, 국가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정신적인 토대를 마련하고 나라사랑 정신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국가기능의 한 축이므로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무한경쟁의 국제화·세계화 시대에 청소년들에게 국가유공자들의 나라사랑정신을 일깨워 국가의 정체성과 올바른 국가관·가치관 형성을 위해서라도 꼭 실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가보훈 업무의 효율적 수행과 중앙행정기관, 지자체와의 보훈정책관련 협조·총괄·조정사무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부령제정·발령권이 없어 독자적인 보훈정책 추진과 소관 사무에 대한 직접적·효율적인 지방행정의 장에 대한 독자적인 지휘·감독 등이 곤란한 것이 현실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라도 중앙행정기관·지자체 등과 연계된 대국민 나라사랑 현충·선양 사업 활성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총리소속 기관으로 되어 있어 정부 내 관장업무에 대한 독립성·자율성이 부족하고 행정명부와 관련정책 협의·조정권의 독자적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사회의 다원화 추세에 따라 보훈업무 영역이 보훈가족 중심에서 민족정기 선양, 제대군인 지원 등 전 국민 대상의 사무로 업무영역 확대가 불가피한 시점에서 정부조직법 개정 ‘국가보훈부’로의 승격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이러한 입법 추진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정 지부장 역시 이러한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끊임없이 매진할 각오다. 이 밖에도 국가유공자 대중교통이용 무임승차 혜택 등 상이군경회의 다각적인 개선 활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계획이다. 안보가 무너지면 경제성장은 물론 국가의 존립까지 의미가 없어진다. 이러한 교훈을 거울삼아 이들의 간곡한 청원에 정부는 귀 기울여 줘야 할 때다.






상이군경회는 보수가 아닌 애국애족단체
정 정호 지부장은 최근에 문제화되었던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사건에 관하여 “6.25당시 한국의 불리했던 전쟁 판도를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진압했던 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한 것에 대해 저희가 비판을 취한 것은 보수적 태도가 아닙니다. 갈수록 희미해지는 후세들의 국가안보의식에 경종을 울리고 바른 교육으로 인도하며 정치인들도 개인의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 줄 것을 요구할 뿐입니다”라며 상이군경회는 보수가 아닌 민족과 국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애국애족단체임을 강조했다. 상이군경회는 전국 8만 여명, 대구경북 통합 1만 5천여 명, 대구시지부 회원은 6천여 명 정도로 ‘구국정신’을 바탕으로 놀라운 결집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몸과 여건은 비록 부자유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국가유공자라는 자부심으로 이러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봉사하겠다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되어 있다. 대구광역시지부 정 정호 지부장은 노후한 보훈복지회관 지하 100여 평을 개조해 목욕탕과 헬스시설을 설치하여 유공자 가족은 물론 이웃 주민들까지 널리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정 지부장의 노력은 그 뿐만이 아니다. 쉬지 않고 행사를 계획하고 이를 위해 여러 인사들을 만나고 있는 그는 ‘호국사랑 김장김치 나누기’를 통해 200여 보훈가족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행사를 가졌으며, 60세 이상 고령회원 220여 명을 초청해 위안행사를 마련하여 국가유공자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계기를 제공키도 했다. 특히 지난 8월 강원도를 강타한 수해 현장에 복구를 위해 직접 자원활동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여러 분야에서 몸소 봉사활동을 해 오는 상이군경회 회원들의 불굴의 정신과 높은 기개는 세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일평생을 상이군경회와 함께
1980년 대 후반 창립된 대구광역시지부의 정 정호 지부장은 청춘을 상이군경회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지부장은 1969년 6월부터 상이군경회 경부지부 지도과장을 시작으로 경북지부 사무국장, 대구시남구 지회장, 중앙대의원, 대구지부 국장, 본부 지도국장 등을 역임하고 재향군인회에서 2년 여 간을 근무했다. 상이군경의 권익과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정 지부장은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까다로운(?) 사회단체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자신의 입신영달보다 상이군경 동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정 지부장의 남다른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5년 월남에 파병되어 美 7함대 소속 APA33호에 승선하게 되었는데, 당시 모 일간지 사설에서 ‘월남파병은 용병이다’라는 글을 보고 매우 분개했다고 회상한다. 스스로 ‘용병’임을 거부하고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었던 계기였기도 했다. 정 지부장은 월남파병으로 받은 수당의 대부분을 대구매일신문사에 장학금으로 기증했고, 이렇게 보내진 값진 성금은 왜관에 위치한 영생보육원과 불우한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졌다. 속된 표현으로 비유되어지는 용병에서 환골탈태하여 모범을 보여왔던 그의 선행은 계속 이어져 갔다.
귀국 후 철통밥그릇이라는 공무원 생활을 3년 여 간 했지만, 틀에 박힌 생활에 그는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었던 그가 생각해 낸 것은 바로 같은 동료들을 위한 봉사의 길이었다. 상이군경회 경북지부를 스스로 찾아 간 정 지부장은 그렇게 스스로 인연의 고리를 엮었다. 12·6 이후 민정당 창당시절 대구창당 청년분과위원 멤버로 활동했던 그는 정치로도 입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다 고사하고 참봉사와 각종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상이군경회 일을 묵묵히 해 나갔다.
투철한 국가관과 동료애로 뭉쳐진 그의 확고한 신념은 정평이 나 있다. 회원들의 신뢰와 결속이 있어야 조직이 제대로 된다는 생각으로 조직운영의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를 쇄신함으로써 회원들 간의 거리감을 좁혀가고 있다. 본인의 이익보다 타인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택해 살아 온지 40여 년을 그는 후회 없었노라 회고한다. 대한상이군경회 대구광역시지부 9대 지부장으로 취임한 정 정호 지부장은 조국을 위해 희생했지만 현재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전우들의 여생에 조금이나 보답하고자 매진하고 있다. 정 지부장은 그 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 대통령 표창을 받았지만, 주어지는 상보다는 남은 여생동안 이러한 현실적인 행보를 계속할 것이라 밝혔다. 그는 (주)거성자원을 경영하며 창출되는 수익의 상당부분을 상이군경회나 옛 전우들의 복지를 위해 기꺼이 내 놓으며 “호국영령과 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국민들에게 제고하고 국가유공자의 복지향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