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 위협하는 정신질환
2007-05-18 글/편집부
조승희 사건이 시사하는 것, 하지만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던 그것
인간이 감당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은데다 갈수록 복잡해져 스트레스는 높아지는데 내가 감당한 일을 확실히 책임져야 하는 한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은 나를 돌보는 일을 저 뒤로 미뤄놓고 있는 게 현실, 그렇다보니 스트레스는 자꾸 올라가고 스트레스 내성은 반대방향으로 떨어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십 건씩 터지는 이유 없는 살인사건, 늦은 야근에 몸은 피로한데 월급은 몇 년 째 그대로, 매달 날라오는 온갖 세금과 노후한 부모님은 병원에 자주 가시고 머리 커진 아이들은 돈 달라고 소리소리, 각자 따로 노는 가족들에 친구들은 멀어져 속 한번 털어놓을 기회가 없고, 일년에 한번 제대로 여행도 가지 못하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
'내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게 뭐지?'
기쁘고 행복한 일들보다 초조하고 걱정되고 후회되는 일들이 더 많은 세상. 사람들은 더 자주 한숨을 쉬고 우울해한다.
정신장애의 고통, 말 안하면 모른다
논현동에 사는 최정선씨(女/25)는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불면증에 새벽에 자주 깨는 것은 다반사고 일어나면 가슴이 쿵쿵 뛴다. 한 시간 이내로 자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적으로 작용, 더 의식하게 만들고 결국은 한두 시간을 훌쩍 넘긴 후 잠에 든다. 혼자 있으면 온갖 생각으로 미쳐버릴 것 같아서 누구를 만나면 이윽고 되레 불안하지 않은 것이 더 불안해진다. 그러면서도 최씨가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인생은 나 혼자 사는 거야’,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지’라는 생각이 깊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편하고 허무하다. 최씨는 불안장애와 편집증을 동시에 앓고 있다.
1988년 모 9시 뉴스방송이 진행되던 중 갑자기 한 남자가 뉴스 진행자 옆에 나타나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 제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외친 사건은 인터넷을 통해 두루두루 회자되며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고 있지만 사실 그 남자는 정말로 진지했다. 평소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던 사건의 주인공 소 모씨는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 믿고 그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 도움을 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신경정신과학회의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3분의 1(30.9%)은 평생 한 번 이상 각종 정신질환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불안장애는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다음으로 많이 겪게 되는 질병으로 8.8%의 유병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사회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기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신질환의 종류와 증상
정신장애(Mental disorder) 분류체계인 DSM-lv에 따르면 정신장애는 크게 17가지로 범주화 된다. 각각의 범주는 또한 여러 하위 장애를 다루고 있어 정신장애의 종류를 기억하기란 만만치 않다. 한국인들이 잘 걸리는 정신질환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우울장애(우울증)-좌불안석으로 가만있지를 못하고 무기력해져 모든 일에 흥미가 없어진다. 젊은 층에서는 폭식증이 중년층에서는 거식증 발생하고 과다 수면과 불면증이 반복된다. 혼자라는 느낌이 지속되고 특정 대상에 대한 원망감이 쌓여 화를 자주 내게 된다. 공상 속에서 대리 만족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정신장애(정신분열증)-몸에 이상이 있다는 막연한 건강염려증상으로 시작된다. 내 몸과 세상이 동떨어져 있다는 비현실적인 느낌과 철학적·종교적 주제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집중력이 저하되고 긴장, 불안 등의 양상을 보이며 주로 청소년기에 많이 발생한다. 사고의 지리멸렬, 감정표현의 부적절함, 지각의 불일치 등의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정신분열증으로 진단한다. ▲성격장애(편집증)-극도로 의심이 많아지는 정신학적 증상으로 상대방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핵심 증상이다. 모욕을 용서하지 않고 인정하고 싶은 사실만 인정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끼워 맞추려 한다. 어느 한 가지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해 편집망상으로 발달하고 사회적 고립, 은둔, 괴벽, 증오, 폭력행사 등을 수반한다. ▲불안장애-여러 가지 주변상황 속에서 만성적이고 지속적으로 불안해한다. 감정적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예민해지며 심장이 빨리 뛰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설사와 변비가 온다. 가슴의 압박감이나 통증이 생길 수 있다. 닥치지도 않은 위험을 크게 걱정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감이 없어져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홧병-한국민속증후군의 하나인 분노증후군으로 설명되며 분노의 억제로 발생한다. 문제 해결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 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던지 타인이 해결해 주길 바란다. 자학적인 측면이 많아서 정서적 고통을 쉽게 참는다. 고혈압, 각종신경증, 편두통, 소화성궤양, 안검경련 등의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
조승희, 지독한 편집증 환자였다
지난 4월, 60여명의 사상자를 내어 세계인들을 엄청난 슬픔과 쇼크로 몰아넣은 버니지아주 총기살인사건의 범인 조승희는 정신분열증, 편집증, 성격장애, 사회부적응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유범희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조승희의 동영상을 보면서 ‘오늘과 같은 참사를 피할 수 있는 천억 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표현에서 “누적된 피해방상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승희는 피해망상으로 대표되는 망상성 장애와 이보다 좀 더 심각한 편집형 정신분열증이 진행중이였다는 것이다.
그가 미국 NBC 방송국에 보낸 자료들에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계속 표현되고 있었는데 그는 왜 아무런 탈출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인생을,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악몽처럼 만들어놓고 떠났을까. 사건이 알려진 후 조승희의 부모는 큰 충격에 자살시도를 했다고 알려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 가족이란 개념도 없었던 것일까.
내가 관심을 가져야 모두가 건강해져
정신질환은 생물학적 요인과 심리-사회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기는 것이라 하였지만 생물학적 요인은 심리-사회적인 요인보다 극히 적은 숫자, 결국 정신질환은 크게 보면 내가 만들거나 환경이 만들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의사소통의 부재, 경쟁관계에서 오는 긴장감, 실수 없이 완벽해야한다는 강박감, 자신이 느낀 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소심함, 욕심이 가져오는 조바심과 시기, 각종 스트레스와 이 모든 것들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무관심이 정신질환을 야기하고 사회문제로 번진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느긋한 생각, 나와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은 어렵지만 꼭 필요하다. 실수했을 때는 자책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보자. 실수한 게 무엇이든 나 자신보다 소중하지는 않을 터, 정신병을 경험한 사람들은 정신질환으로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심해지든 말든, 고쳐지든 아니든 상관없어’라고 생각할 것을 조언하며 내 사정에만 민감하고 타인의 아픔에는 냉정한 사회의 분위기를 꼬집는다.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고민거리와 장애가 있고 나름대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상처는 인간으로 인해 생기지만 역시 인간으로 치유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늘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주변에 대한 관심,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어떤지 한 명당 5분씩만 생각해보자. 그 생각은 사람과 사회 모두를 밝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