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지지율
2007-05-31 글/김정숙 기자
여론조사 결과 놓고 설왕설래, 지지율 조정국면 해석도
대선후보로 지지율 우위를 점하고 있던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도가 하락세를 나타냄에 따라 정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해 8, 9월 20% 중반대의 지지율에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올 초 고 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한때 50%를 넘으며 폭발적인 지지도를 보여줬던 이 전시장의 여론 지지도가 최근 들어 일부 조사에서 40% 안팎으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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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4월 19일경 한 여론 조사에서 이 전시장의 지지율은 34.1%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조사기관의 지난 4월 4일 조사 때의 결과인 47.8%에서 무려 13.7%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당내 경선 라이벌인 박근혜 전 대표는 22.1%로 직전 조사 때와 같았다.
여론조사를 주최한 측에서는 조사 보고서에서 “이 전 시장 지지도가 하락하고 기권·모름·무응답이 16% 상승한 점이 주목된다”며 “이 전 시장의 지지도 하락은 여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권(-29.5%)에서 더욱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4월 조사에서도 이 전 시장은 42.3%로 3월 27일 조사 당시의 47.8%에 비해 5.5% 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4월 11일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 이 전 시장은 전주 대비 6.4% 포인트 하락한 37.7%를 기록했다가 4월 19일 조사한 결과에서는 41.9%로 다시 상승한 것으로 나오는 등 여론조사 결과가 불안정성을 띄고 있는 것도 과거의 기조와는 다른 경향이다.
이 같은 양상에 대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밴드왜건 효과(여론조사 발표가 1위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선거이론)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조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지율은 조정국면중”
이 전 시장측에서는 ‘신경 쓸 것 없다’는 반응이다. 이 전 시장의 핵심측근인 정두언 의원도 “최근 들어 지지율이 소폭 조정국면에 있는 것은 인정한다”고 했다. 캠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만일 경선 막바지나, 본선국면에서 이런 조정기가 온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니냐. 지금 시점에서 조정을 받으면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전 시장측은 지난 4월 14일 자신들이 의뢰한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이 전 시장이 45.5%로 3월 조사 때의 45.8%와 거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세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측은 “이 전 시장의 지지율 거품이 확연히 빠지고 있다”며 반색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이혜훈 의원은 “호남 등 범여권 지지 지역에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은 거품이 제거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거품있는 후보가 본선에 나갈 경우 그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한나라당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 캠프는 서로 여론조사의 신빙성 문제를 제기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정두언 의원은 “이번 글로벌리서치 여론조사처럼 지지율이 한꺼번에 10% 포인트 이상 빠진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조사방식을 ‘선호도 조사’에서 갑자기 ‘지지도 조사’로 바꿨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주장했다.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조사일을 투표일로 가정하고 ‘어느 후보에게 투표를 할 것이냐’고 묻는 방법으로 바뀌면서 지지율에 차이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반면 박 전 대표 캠프의 최경환 의원은 “이 전 시장측이 계약을 맺고 있는 유수 조사기관의 고위 관계자가 이 전 시장의 핵심 참모”라며 “여론조사와 정치컨설팅을 같이 하는 것은 변호사가 쌍방 대리인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그런 기관의 조사결과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여론조사는 조사 기관에 따라 똑같은 지역의 지지율 편차가 커지기도 한다. 지난 4월 11일 ‘한국갤럽’의 경기 화성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 조사에선 한나라당 후보가 21.4%포인트 앞섰지만, ‘리서치플러스’의 지난 14월 16일 조사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가 7.3%포인트 우세한 걸로 나왔다. ‘한국갤럽’은 여론조사 과정에서 후보의 소속 정당을 앞세워 질문한 반면, ‘리서치플러스’는 경력을 앞세웠다. 질문 설계에 따라 30%포인트 가까운 편차가 발생한 셈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들쭉날쭉한 데엔 설문의 객관성 결여, 언론과 인터넷 포털의 여과 없는 보도, 정치권의 교묘한 개입 등이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최소한의 신뢰성이 담보 안 되는 기관의 조사를 일부 언론과 인터넷 포털이 그대로 보도하고 이를 정치권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거품 빠지나
다른 의견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는 대략 40%를 전후한 조정국면이 유지될 것으로 보는데, 하락 국면이라고 할 수 있는 30%대 중반까지 내려간 것은 좀 의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지율이 떨어진 4월 중순 기간 동안 이 전 시장 지지율의 급격한 폭락을 설명할 만한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런 설명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한 정치전문가는 “김유찬 씨의 이명박 검증론, 출판기념회의 선거법 위반 논란” 등을 언급하며 “작은 악재가 누적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지율에 있어 특히 40% 이상은 통상 거품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연초에 고건 전 총리가 사퇴하면서 15% 가량이 늘어난 부분이 빠지고 최근에는 한미 FTA, 남북관계 이슈, 개헌 등 노무현 아젠다에 의해 정국 흐름이 바뀌면서 이 전 시장에게 향하던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진 영향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예상됐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빼앗긴 이슈주도권을 만회하지 못하고 마지노선인 35% 까지 내려간다면 박 전 대표와의 경선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측 “이, 지지율 더 떨어질 것”
박근혜 캠프의 한선교 대변인은 이 전 시장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청계천 효과가 소멸되고 대운하의 비현실성, 새로운 콘텐츠나 실현 가능한 정책의 부재 등이 하락요인으로 작용했다”며 “이 전 시장은 지지율 50%의 위치를 이어가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현 언론특보도 “이 전 시장은 선거법 위반 등 각종 의혹에 대해 당당하게 대응하지 않고 소이부답으로 일관해 대중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이 전 시장이 새로운 걸 내놓지 못하기 때문에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5월말∼6월초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반전 포인트가 빨리 찾아왔다. 그의 높은 지지율도 대세론이라는 밴드왜건 효과를 본 게 아니냐? 후보 간 정책·자질 검증이 본격화되면 역전은 시간문제”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이명박 캠프는 “이번 조사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으로, 대선 가도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 캠프의 정태근 전 서울시부시장은 “특별한 악재가 없는 상황에서 지지도가 하락한 것으로 나왔다. 여론조사 회사들이 부동층을 줄이기 위해 지지후보를 재차 묻는 절차를 밟는데, 그런 노력이 미흡할 경우 여타 조사에 비해 부동층이 늘어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조해진 언론특보도 “단순 선호도를 묻지 않고 12월 대선에서 선택할 사람을 물어서 답변 유보층이 늘어난 것 같다. 그러나 여타 여론조사에서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에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나왔다”고 전했다.
양측의 이 같은 ‘여론조사 지지율 대치’는 경선 전의 과열로 이어지면서 당 내홍의 격화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한 당직자는 “지지율을 고수하려는 이 전 시장 측과, 이를 반전시키려는 박 전 대표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불가피할 것 같다”며 “검증 공방이 다시 부각될 수도 있고, 양측의 줄세우기도 더욱 노골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명박-박근혜 “마주 대하기도 싫어”
지지율이 혼전양상을 보이면서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간의 기류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특히 4.25 재보선을 앞두고 각종 지원유세 신경전에서 절정에 달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후보를 지지하면서도 얼굴조차 맞대지 않았고, 오히려 유세 시간을 놓고 말다툼을 벌였다.
4월 19일 오전 전남 무안 5일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차명진, 이성권 의원 등을 대동하고 국회의원 보선에 출마한 한나라당 강성만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이 전 시장은 “이제는 호남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을 만들고, 경상도에서도 다른 당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있어야 진정한 발전”이라고 호소했다.
이 전 시장이 5일장을 떠난 것은 오전 10시 35분쯤. 20여 분 뒤 이 전 시장이 사라진 반대 방향 쪽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지지자들과 함께 나타났다. 김무성, 한선교, 이계진, 이인기 의원 등과 호남 출신의 한영 최고위원도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서로 만나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 듯한 엇갈림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정부는 4년 내내 해야 할 일은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했다”며 “이번 재보선은 정권 교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관문”이라고 역설했다.
두 주자는 이어 나주 영산포 광역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서 다시 조우할 뻔했다. 이 전 시장이 당초 일정을 앞당겨 유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 시장이 떠난 10분 뒤 박 전 대표가 유세장에 도착하는 시간차 유세가 재연됐다.
이들의 ‘시간 차’ 유세를 지켜보는 무안 주민들의 심정은 다소 복잡해보였다. 농산물 도매업을 하는 이모(60)씨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본받은 박 전 대표가 좀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양모(70)씨는 “지금까지 민주당만 찍었지만, 잘한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씨는 “박 전 대표를 직접 보니 어머니 육영수 씨가 떠올라 마음이 짠하다”면서도 “대통령감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경제를 살리려면 경험 많은 이 전 시장이 더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전남도당에서 박 전 대표는 오전에, 이 전 시장은 오후로 나눠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이 전 시장측이 꼭 먼저 하겠다면서 갑자기 시간을 바꿔 혼란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측은 “전남도당에서 유세 일정 변경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일정 때문에 변경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우리는 1주일 전에 잡힌 일정대로 유세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예민해진 후보들, 측근 질책만
두 유력후보의 지지율 변화, 캠프 간 신경전 등으로 예민해진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최근 측근들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본격 경선 대결을 앞두고 두 주자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전 시장은 두바이ㆍ인도 정책탐사를 끝내고 귀국해 일부 측근들을 불러 야단친 것으로 전해졌다. 캠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시장은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 측에서 배포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또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확인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언짢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 캠프는 즉각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해 중간점검에 나서기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표도 참모들을 불러 질책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재보선 지원유세가 대선 경쟁으로 비치는 것은 문제다. 당을 위한 순수한 활동이 곡해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 달라. 선거 결과로는 평가받을 수 있지만 사전에 다른 의도를 가진 것처럼 여론이 조성돼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곧 본격 경선전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이 전 시장은 최대 강점인 여론 지지율 공세에, 박 전 대표 또한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재보선 지원 문제에 막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비난 괴CD 유포에 정치권 술렁
박근혜 전 대표를 비방하는 괴CD가 국회 의원회관 등에 나돌아 캠프측이 경위 파악에 나섰다. 4월 18일 당 소속 일부 의원들에 따르면 지난 주 후반부터 박 전 대표를 비방하는 CD가 의원회관 주변에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긴급조치피해자가족협의회’가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 이 CD는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으나 해당 전화번호는 일반 가정집인 것으로 확인돼 출처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의 CD는 지난 90년대 초반 발간된 1개 일간신문 및 6개 주간지 기사 스크랩 17개를 한 군데 모아 놓은 것으로, ‘박근혜와 C의 밀착관계’ ‘육영재단 분규와 재산싸움’ 등에 관한 과거 기사가 실려 있다. C(94년 사망)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 전 대표를 도와 구국봉사단 등의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CD에는 또 A4용지 1장짜리 유인물도 동봉돼 있는데 이 유인물은 박 전 대표를 ‘유신독재의 실질적 2인자’로 규정하고, 그가 올 1월 대법원의 인혁당 사건 관련자 무죄 선고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 이정현 공보특보는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한마디로 잔인하고도 구태스러운 흑색선전”이라면서 “이번 CD 유포는 기획적이고 계획적이며 조직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 군데 밖에 의심할 데가 없다”고 말해 배후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을 지목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 캠프 관계자는 “우리는 CD를 본 적도 없고 아는 바도 없다”면서 “과거 실명으로 된 ‘박근혜 비방 괴문서’가 국회에 유포됐을 때도 박 전 대표 측에선 근거 없이 우리를 물고 늘어졌었다. 이번 건 역시 늘 하는 상투적 주장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