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1 운동 100주년을 맞는 독립기념관 이준식 관장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관장
[시사매거진 251호=박희윤 기자] 천안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전시·조사·연구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념관이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관람객이 줄어들고 있고 사료 수집에 대한 예산, 연구 인력 등 정부 지원 예산은 넉넉치 못한 실정이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로 알려진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을 만나보았다.
외할아버지인 지청천 장군에 대한 기억
제가 1956년에 태어났는데 외할아버진 지청천 장군은 1957년 초에 돌아가셨으니까 기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다만 외할아버지께서 몸이 좋지 않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던 때 늦게 결혼한 막내딸 이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낳은 외손자라고 각별히 예뻐하셨다는 이야기는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아버님이 군인으로, 무장투쟁의 지도자로 만주에서 활동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씀하시고는 했다고 전해주셨다. 내가 아는 지청천 장군의 모습은 모두 일기, 사료, 연구논문, 평전 등을 통해 얻은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당시 수유리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계 시던 외할아버지에게 자주 데려가시곤 했다. 가족이 부산에 살고 있었는데도 1년에 최소한 네댓 차례는 외할아버지 묘소에 들렸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들려주신 말이 있다. “외할아버지 같은 분은 그래도 역사에 이름 석 자를 남겨서 이 정도의 예우를 받고 있지만 이름 석 자도 남기지 못하고 심지어는 후손도 없이 돌아가신 수많은 독립군 전사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총사령관을 맡은 임시정부 국군 한국광복군이 1940년 9월 출범할 때 여군으로 입대해 대일 항전의 최전선에서 싸우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같이 어울리는 독립운동 동지들을 많이 뵀는데 그땐 그냥 아저씨들로 보고 넘어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보니 그분들이 젊었을 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의 삶이 제대로 기억되고 제대로 보상받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독립운동사 연구의 길을 걷게 한 것 같다.
독립정신에 대한 생각
1945년 8월의 광복과 1948년의 정부 수립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자주독립을 위해 그리고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피땀을 바친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도 없이 만주 땅에서 연해주땅에서 중국땅에서 사라져간 이들의 피땀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국민의 책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자주독립의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는 독립운동가들의 꿈을 이어받는 것도 대한민국 국민의 책무일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군과 광복군은 남의 나라 땅에서 독립전쟁을 벌여 빼앗긴 주권을 되찾고 자주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말이 쉬워서 무장투쟁이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하는 중국도 한국광복군을 중국군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지도자들은 그런 중국 정부에 대해 광복군이 한국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임시정부의 국군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벌였고 결국에는 중국 이 이를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독립정신은 바로 이런 것이다. 완전한 자주독립, 민주공화국, 자유, 평등이 바로 독립정신의 요체다.
3·1운동 100주년 독립기념관 행사에 대해
2월 28일 정부가 주최하는 3·1운동 전야제가 기념관에서 성대하게 열린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다. 이와는 별도로 독립기념관이 자체적으로 3·1운동 관련 학술회의와 중국, 미국, 일본에서의 해외특별 순회 전시회도 준비 중에 있다. 독립기념관에는 모두 7개의 상설 전시관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제3전시관을 3·1운동 100주년에 맞추어 3·1운동 주제관으로 재개관하는데 독립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3·1운동 관련 중요 자료, 예를 들어 독립선언서, 태극기 등의 원본을 특별 전시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바뀐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 11일에 맞춰 독립기념관은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여는 한편 김구 선생 등 21명의 임시정부 요인 초상화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3·1운동 100주년 행사에 맞춰 독립운동 인명사전 특별판도 준비하고 있다. 원래 독립운동 인명사전은 모두 15,000명 정도를 대상으로 2024년에 완간할 예정이지만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특별판을 미리 내기로 한 것이다. 그것과 병행해 독립운동가 1000명 정도로 웹 전시판도 펴내기 위해 마무리 작업 중에 있다.
좌파 독립운동가 서훈에 대한 논란
최근 김원봉 서훈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과거에도 해방 후 북한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은 이루어져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사회주의 계열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은 상해파 고려공산당이라는 초기 사회주의 운동 세력의 지도자였는데 일찍이 서훈이 되었다. 상해파 고려공산당은 사회주의 운동의 일차 목표가 계급혁명이 아니라 민족혁명 곧 일제 식민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고 규정했고 그래서 임시정부에도 참여했다. 이동휘 등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이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으니 독립유공자로 포상하는 데 문제는 없다. 다만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포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지금도 이 원칙은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점 추진 사안
2017년 12월 독립기념관 11대 관장으로 취임하면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뿌리로서의 독립운동, 앞으로 이루어야 할 평화통일의 바탕으로서의 독립운동사를 정비하는 데 독립기념관의 활동을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생각은 남북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높아진 이후 더 확고해졌다. 작년 한 해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북한 지역 3·1운동 관련 기록을 입수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했고 이와는 별도로 북한 지역 3·1운동 사적지에 대한 문헌 조사를 완료했다. 지금 정부에서 독립유공자 발굴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대통령께서도 한 명의 독립운동가도 빠뜨리지 말고 찾아내 공적에 상응하는 예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독립기념관은 이러한 정부 방침에 따라 작년부터 독립운동가 발굴 TF팀을 꾸려 모두 361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로 발굴했다. 올해에도 독립운동가 발굴 사업은 계속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독립기념관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분노한 국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국민이 주인인 곳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 연구, 전시 등을 통해 국민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민족 문화의 정체성 확립과 올바른 국가관 정립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설립된 국민통합의 중심기관이다.
지난 30년 동안 독립기념관이 이룬 것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는 독립기념관의 위상과 역할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독립기념관에는 통일염원의 동산이 있고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타종행사를 할 수 있는 종도 있다. 독립운동과 통일이 무슨 관련이 있냐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독립운동이야말로 통일을 위한 자양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독립운동의 역사 자체가 독립운동 진영 사이의 연대와 통합을 이루어나간 역사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은 늘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꿈꾸었는데 여기서 완전한 자주독립이란 바로 민족의 통합이 이루어져 그 통합된 민족의 힘으로 자립을 유지할 수 있는 독립을 말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평화공존, 평화통일의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고 있다. 이런 때 민족 통합을 지향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연구하고 전시하고 교육함으로써 평화공존, 평화통일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독립기념관의 새로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건이 허락하면 북한과 독립운동사 관련 교류를 이루어나갔으면 한다. 실제로 10여 년 전에 북한과 교류협정 체결 직전 단계까지 논의를 이어나가다 중단된 적이 있는데 조속한 시일 안에 다시 재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3·1운동을 포함한 독립운동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 상황과도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의 민주주의의 한 뿌리로 3·1운동, 더 나아가 전체 독립운동을 봤으면 한다. 현행 헌법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적시돼 있다. 이것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오늘날 대한국민이 독립운동의 바탕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이 그런 인식을 갖는데 독립기념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