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겸 가수 이지
2007-04-24 글_김영란 차장
꿈꾸라, 저지르라! 지금 변하지 않으면 평생 변할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꾸고 산다. 꿈꾸는 것은 누구나 자유지만, 그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천이 없다면 아무리 거창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남루한 상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자신이 가진 끼와 재능을 꿈꾸는 대로 풀어내는 발칙한(?) 여자 이지(본명 이지영). 그녀는 강남에서 개원한 잘 나가는 치과의사이자, 2집까지 음반을 발매한 가수이기도 하다. 거기다 맛깔스런 입담까지 소유해 각 방송사의 러브콜을 받고 바쁘게 출연하는 방송인이며, 거침없는 필치로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작가이기까지 하다. 지성과 미모, 거기다 끼까지 겸비한 이지는 늘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꿈꾸는 것은 저질러 버려라! 지금 변하지 않으면 평생 변할 수 없다!’라고.
노래 부르는 치과의사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다재다능한 멀티형 인간을 요구하지만, 정작 그 세상적 기대에 부응하고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어느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이 많은 사람들의 한숨 속에 후회로 녹아 있다. ‘시간이, 경제적인 부분이...’ 사람들의 실천에 대한 변명은 참으로 다양하다. 꿈의 언저리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결국은 접고 만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탓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짜 맞춰 진 듯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칙한 상상을 시작한 여자 이지(EG). 그녀는 생이 무료해 질 때, 금방 잡아 올린 퍼덕이는 물고기처럼 생동감있게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다. 어린시절 누구나 그러하듯 꿈과 욕심이 많은 여고시절을 보내고, 죽도록 공부해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내로라하는 종합병원의 치과 과장을 지내는 등 의사로서 부족함이 없는 이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는 굳이 가수가 되고자 한 것일까. 그녀의 대답은 명쾌하다. “노래를 좋아하고, 대중 앞에 들려주고 싶어서요.”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스스럼없이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있어 새로운 일은 도전이고 삶의 에너지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혔으며, 그 도전은 그녀 인생의 아드레날린으로 작용해왔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끼가 있었던 그녀가 숨겨진 재능을 하얀 가운 안으로 감추고 살기에는 너무도 인생은 짧았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서야 음반을 내느라 부산을 떨면서도 그녀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마냥 행복했다고 말한다.
“더 미루면 일평생 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무조건 저질러 버렸죠. 병원과 녹음실을 오가며 녹초가 되었지만, 그때 저의 하루는 행복 그 자체였어요. 막상 1집 ‘Storm'이 나오고 방송에 나가면서 사람들은 노래보다 제가 일류대학을 나온 의사라는 점에 더 관심을 갖더군요. 처음에는 감사하고 고마웠던 부분들이었지만 갈수록 제가 가진 본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어요. 해서 본업에 해가 되지 않게 출연도 자제하고 자기 관리에 더욱 철저했죠.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 인간 이지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사실 그녀가 음반을 내기까지는 쉬운 것만이 아니었다. 연예계 생활을 강력히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야했고, 전문직을 가진 의사로서의 외도(?)를 곱지않게 쳐다보는 시선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고통스런 출산같은 과정을 거쳐 ‘슬픈 기억’이라는 타이틀곡으로 대중 앞에 섰다. 특히 그녀는 1집 음반을 내고 2집 음반을 내기까지 공백 시간은 온통 눈물겨운 기억들이었노라고 기억한다. 연예인을 상대로 따라 다니는 악플 또한 그녀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장점 중 하나는 고통스러운 시간도 나름대로 즐기며 긍정적으로 견뎌낸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하고 마는, 그로인해 연유되는 어떠한 상처와 고난도 실패를 견딜 수 있으면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희망... 그것은 상처 투성이었던 그녀가 꿈을 향해 몸을 다시 곧추세우게 한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박하사탕 같은 여자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1녀 중 장녀로 출생한 이지는 어떤 강요도 없이 스스로 행하는 것을 생활화했던 부모님의 교육방식을 감사하게 이야기한다. 어려서부터 소꿉놀이보다 병원놀이를 즐기고, 슈바이처를 존경해 온 그녀가 의사의 길로 접어든 것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경쟁심으로 시작됐던 향학열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나타났고, 무엇보다 수학과목을 즐겼던 모습은 그녀의 성격을 단면적으로 엿 보게 한다.
“급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수학은 특히 명확한 답이 있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었어요. 과정이 힘들고 고생스러울수록 그 뒤에 나타나는 정답이 희열을 주거든요.”
그녀가 저술한 책에서 밝히고 있듯 늘 정답만 맞힌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정답이 있기에 계산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무척 중요한 부분이었다. 잘못된 것을 찾아내고 확인하며 고쳐가는 과정을 즐긴다는 점에서 그녀의 인생행보는 여러모로 그와 닮아 있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며 즐겼던 것처럼,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그녀의 모습이다.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난관에 부딪히는 게 ‘일’이냐 ‘결혼’이냐 하는 이분법적인 사회구조 같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후회하진 않아요. 하지만 유행가 가사 같은 애절한 사랑 한 번 못해 본 것에 대해선 무척 안타까워요. 그런 걸 보면 저도 천생 여자인가 봐요.”
자신의 생각과 메시지를 정리한 ‘나는 날마다 발칙한 상상을 한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한 이지는 담백하고 거침없는 필치로 작가적 소질을 발휘해 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 책은 꿈, 희망 등의 인생관과 각 사례들을 통해서 현시대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독려하고 있다. ‘꿈꾸라, 저지르라! 지금 변하지 않으면 평생 변할 수 없다!’라고 전하는 이지의 ‘생각 비타민’은 많은 여성들에게 자극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바라는 사상, 꿈, 물질, 노동, 재주 등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해요.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 마음을 전하는 것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거든요. 그런 세상을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가 바뀌어야 해요.”
여자 이지
거침없고 시원한 성격에 소탈함까지 갖춘 그녀는 박하사탕 같다. 처음 입에 베어 물었을 때 느끼던 쏴한 맛이 어느새 달콤함으로, 마지막은 텁텁함 없는 개운함으로 느껴지는 그런 여자 이지. 그림을 그리는 일도 그녀가 행복해 하는 일 중 하나다. 치과의사에서 가수로, 작가로 점점 사람들에게 이미지가 고정화된다 싶을 때 그녀는 화가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길 줄 아는 여자 이지. 그녀의 꿈과 희망을 위한 변신과 노력은 오늘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