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돈
2007-04-02 글/ 김정숙 기자
정치권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존재한다? 당이 잘 나갈수록 대선후보 지지도가 올라갈수록 후원금 역시 많이 모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관위가 13일 공개한 2006년 후원금 모금 집계에서 각 당 예비대선주자들의 모금 실적도 정당 사정과 마찬가지로 ‘풍족한 한나라당과 배고픈 열린우리당’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의 후원금도 당과 마찬가지로 한나라당 측과 열린우리당 측이 뚜렷이 갈리는 양상이다. 한나라당의 주자들이 모금 한도액인 3억 원을 넘거나 접한 액수를 모은 것과 달리 우리당 소속 예비주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3억1,602만원을 모아 후원금 공개 대상이 되는 대선 후보 중에서는 최고액을 기록했다. 박 전 대표는 모금 한도액인 3억 원을 채운 것이다. 국회의원이 아닌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공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원희룡 의원은 2억7,962만원(25위), 고진화 의원은 2억3,910만원(44위)을 모아 만만치 않은 모금 실적을 보였다. 이에 비해 우리당에서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2억1,006만원(70위)으로 가장 많았을 뿐, 다른 대선 주자들은 2억 원을 넘기지 못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김근태 전 의장이 1억6,836만원(107위), 정세균 현 의장이 1억8,518만원(93위)이었고 천정배 의원은 1억6,530만원(112위)을 모금했다.
총리직을 수행한 한명숙 의원은 5,996만원(260위), 비례대표인 김혁규 의원은 4,933만원(276위)을 모으는 데 그쳤다. 원외인 정동영 전 의장은 공개 대상이 아니다.
민노당 대선 예비주자 ‘트로이카’가 모두 ‘십시일반’의 저력을 과시하며 후원금 한도액을 거뜬히 달성한 것도 눈에 띈다. 권영길 의원은 3억380만원(8위)을 모아 한도액을 초과 달성했다. 비례대표인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도 각각 1억7,391만원(104위)과 1억5,493만원(132위)을 모아 비례대표 한도액인 1억5,000만원을 넘겼다. 이들 의원은 후원금 기부 건수에서 4위(심상정 8,564건), 9위(노회찬 4,109건), 18위(권영길 3,109건) 등 모두 상위 20위에 들어 ‘개미군단’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율따라 후원금도 희비교차
미국 정가에서 힐러리 클린턴 뉴욕 상원의원을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선거자금 동원력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지난해 말 현재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국내 12개 정당의 재산 총액은 678억6,200만원. 이 중 한나라당 재산은 541억9,000만원으로 전체의 80%에 육박했다.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78억3,300만원에 그쳤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각각 28억7,600만원과 24억4,900만원. 나머지 정당의 재산을 모두 합해도 한나라당 자산의 25%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돈'으로 선거를 한다 치면 게임은 하나마나 한 상황인 셈이다. 지방선거가 있어서 평년보다 2배의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음에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후원금은 전년보다 35억 원 증가해 2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의 후원금은 58억 원이 증가, 전년 대비 40.1%의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수입’은 많고 지출은 ‘적은’ 효율적 비용 구조도 한나라당의 자산 증대에 한몫했다. 지난해 한나라당이 당비, 국고보조금, 후원금 등으로 거둬들인 금액은 714억4,100만원.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654억3,100만원)을 되레 앞선 액수다. 이에 반해 지출은 471억7,400만원으로 580억4,500만원을 기록한 열린우리당에 비해 적었다.
도드라진 점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당후원비 격차가 눈에 띄게 크다는 것. 정당 후원회 제도가 폐지되기 전인 지난해 3월 중순까지 한나라당은 17억6,9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았지만 열린우리당은 2억3,100만원을 끌어 모으는 데 그쳤다. 정당 지지율이 후원금 기부 행태에 짙게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의 모금액도 ‘힘’에 따라 편차를 보였다. 한나라당 대권 유력주자들은 ‘풍족’했고 범여권 잠룡들은 상대적으로 ‘빈곤’했다. 한나라당 대권 예비주자 중 지방자치단체장직을 퇴임해 후원금 공개 대상이 아닌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제외하고 박근혜 전 대표,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이 모두 전체 순위 50위안에 이름을 올렸다.
눈에 띄는 것은 민주노동당 대권 ‘3룡’인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의원의 모금 실적. ‘소액다수’ 기부문화를 활용해 괄목할 만한 기부액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후원금 기부의 경우 세액공제 혜택에 힘입어 일반인들의 ‘소액다수 기부문화’ 확산이 두드러진 점도 특징이다.
지난해 기부건수는 모두 38만 8,000건으로 전년도 28만 2,000건보다 10만 건 이상 늘어난 반면 1건당 후원금 기부액수는 11만 6,000원으로 전년도 12만 4,000원보다 줄었다.
속셈있는 후원금 여전해
국회의원들이 소속 상임위 또는 직무 등과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는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상당한 정치 후원금을 받는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간 120만 원 이상의 기부자와 의원 간의 직무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후원 행태는 건설교통위, 재정경제위, 정무위, 산업자원위 등 기업과 경제단체 유관 상임위에 집중됐다.
2006년 상반기 국회 건교위원장이었던 열린우리당 이호웅 전 의원은 진혜건설, 우진산업 등 7개 건설업체의 대표와 임원들에게서 모두 2,500만원을 받았다. 같은 상임위의 정장선 의원(우리당)은 성원종합건설과 평산에스아이 등 건설 관련 업체에서 총 600만원을 후원받았다.
재경위 소속 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김원갑 현대 하이스코 부회장 등을 비롯해 400만원을, 강봉균 통합신당모임 의원은 한화(290만원), 웅진그룹(200만원), 아잇브릿지(500만원), 우림회계법인(200만원) 등에서 1,190만원을 지원받았다.
산자위 소속 서갑원 의원(우리당)은 영남제분, 현대하이스코, 코엑스 대표에게서 200만원씩을 받고 안광구 대한변리사협회장에게서 150만원을 받는 등 총 750만원을 모금했다.
정무위 소속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김동진 현대기아차 사장에게서 195만원, 경청호 금강개발 사장과 구자준 LIG손해보험 사장한테서 각각 200만원을 받았다.
후원자 정체 드러내기는 꺼려해
후원자 중에는 직업을 아예 밝히지 않거나, 직업을 밝힌 사람 중에서도 회사명이나 직위를 밝히지 않고 ‘회사원’ ‘자영업’ ‘사업’ 등으로 모호하게 기재한 경우도 있었다.
구청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낸 기부금도 상당수였다. 전체 7,200건 중 구의원이 111건, 군의원이 4건, 도의원이 11건이었으며 시의원은 서울시의원 15건을 포함해 84건에 달했다.
김충용 종로구청장은 종로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300만원을, 정현옥 부산동구청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인 같은 당 정의화 의원(부산 중·동)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특히 지방의회 의원들의 후원금 기부는 지역구 내 영향력이 막강한 현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보험용’ 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자신의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기부금을 낸 사례도 적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의 경우 외곽조직 성격인 한반도재단 문용식 이사장이 500만원을, 보좌관 2명이 284만원과 300만원을 각각 기부했다. 같은 당 김종률 의원도 보좌관과 비서관이 각각 380만원과 3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
통합신당모임 김한길 의원은 자신의 보좌관에게서 500만원을, 한나라당 최병국 의원은 비서관한테서 200만원을 받았다.
이색 공개 후원자의 면면도 흥미롭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대표이사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게 500만원을, ‘여기자 성추행 파문’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무소속 최연희 의원에게도 500만원을 기부했다. 가수 이미자 씨는 박진 의원에게 200만원을, 연극배우 김갑수 씨는 민생정치준비모임 정성호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조광래 전 축구감독은 우리당 이광재 의원에게 400만원을 기부했다. 또 중앙일보이코노믹스 홍세표 기자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500만원을 기부해 눈길을 끌었다.
국회의원 간 ‘품앗이’도 관심을 모았다.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같은 당 전재희 정책위의장, 김광원·권철현 의원에게 각각 300만원, 500만원, 200만원을 기부했고, 정갑윤 의원도 같은 당 권철현 의원에게 300만원을 기부했다. 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같은 당 강창일 의원에게 3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이정일 전 민주당 의원도 같은 당 손봉숙·이낙연·이상열·최인기·김효석·신중식 의원에게 300만원씩을 기부했다. 우리당 선병렬·임종석 의원은 각각 360만원과 284만원을 자신에게 기부했다.
정당수입, 민생은 외면 받아
정당들이 민생정치를 외치고 있지만 정책개발에 들인 비용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도 정당ㆍ후원회 등의 수입ㆍ지출내역 공개’ 자료에 따르면 정당들의 총 지출은 2005년의 620억4,000만원에서 2006년의 1,526억500만원으로 무려 146%나 늘었으나 이중 정책개발비용은 같은 기간 중 85억5,300만원에서 75억9,700만원으로 11%나 줄어들었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정책개발비용은 이 기간 중 33억7,400만원에서 23억4,700만원으로 30%나 격감했다. 또 정당들 중 가장 부유한 한나라당도 정책개발 비용이 같은 기간 중 37억1,300만원에서 33억3,700만원으로 10% 줄었으며 민주당도 6억1,500만원이던 것이 5억8,200만원으로 5% 감소했다. 이 기간에는 민주노동당만이 정책개발비를 무려 89%(6억1,700만원→11억6,500만원)으로 늘려 상대적으로 활발한 정책 활동을 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정당들이 대부분 정책개발에 대한 씀씀이를 크게 줄인 것은 지출의 대부분을 선거나 조직관리와 같은 정무활동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당들의 총선거비용은 164억2,400만원, 총 기본경비(인건비 등)는 472억7,400만원, 총 조직활 동비(공직선거 후보자 지원금, 당원집회 경비 등)는 591억9,100만원으로 이들 3개 항목의 총액(1,228억8,900만원)은 전년도(451억8,400만원)보다 172%나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