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인사행정관의 군 장성인사 문건 분실

인사 문건 분실이 있었던 날의 진실은

2019-01-30     박희윤 기자

[시사매거진 250호=박희윤 기자] 지난 달 6일 청와대 인사 행정 담담관이 2017년 9월 육군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 만나고, 이후 장성 인사 관련 서류를 분실 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정치권에서는 갑론을박(甲論乙駁)이 계속되었고, 처음에는 담배를 피우다 잃어버렸다고 나왔던 사 실이 술집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계속 변경되었다. 의문점은 장성 인사 관련 서류를 왜 가지고 갔는지, 그리고 인사청탁이 있었 는지,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동안 발표된 사실을 따라 추적해 보았다.

정 모 행정관과 김 총장 카페만남, 그리고 사건의 시작

지난 2017년 9월 인사수석실 정 모 행정관이 군 장성 인사관련 자료 로 추정되는 비공식 문건과 출입증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청와대 외부에 서 분실한 당일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을 만났다는 사실이 지난달 6일 보도되었다.

토요일 오전 국방부 후문 인근 한 카페에서 이뤄진 정 모 행정관과 김 총장의 만남은 당시 국방개혁비서관실 소속이던 심 모 행정관이 주선했 고, 심 행정관도 자리를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인사수석실 담 당자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와 관련해 누구와도 만나지 못할 일은 아 니지만, 공식적인 경로가 아니라 동료 행정관의 주선으로 관련 인사 추천 권자를 만난 것은 의문이다. 더욱이 그 만남의 장소가 육군참모총장 집무 실이나 청와대 사무실 등 공식적인 업무공간이 아니라 국방부 후문 앞 카 페라는 점은 그 의문을 더욱 증폭시킨다. 게다가 육군의 인사선발 시스 템이나 참모총장의 인사철학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면 인사와 관련한 내 용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를 그 자리에 가지고 나갈 이유도 없었 을 것이지만 정 모 행정관은 문서를 들고나와 분실했다. 행정관이 육군 인사 관련 설명을 듣겠다며 육군 수장을 외부로 불러낸 것도 적절해 보이 지 않거니와 당시 만남을 주선한 인물이 청와대 안보실에 파견 근무 중인 심모 육군 대령이었던 점도 의문을 자아낸다. 심 대령은 그해 12월 준장 으로 진급했다.

청와대의 해명 “공식문서가 아니고 임의로 만들 것”

청와대는 지난달 7일 분실한 문건이 김 총장과 논의하기 위해 임의로 만 든 대화자료라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문 서는 공식 문서가 아니고 정 행정관이 자신이 임의로 만든 것”이라며 “군 의 인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만든 임의 자료이고, 육군참모총장을 만 나서 논의하기 위해서 가지고 간 대화 자료”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제가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확정적으로 말 씀드릴 수 없지만 총장을 만나기 위해서 가지고 간 자료이기 때문에 대화 를 위한 자료라고 생각한다”면서 “준비가 덜 돼 있는 행정관이 육군참모총 장을 만나러 가려고 현재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군 인사 상황이나 시스템 이런 것들을 본인이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가지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그게 대화의 기초 자료가 된다고 생각한다. 대화 자 료라는 것과 본인이 학습을 하기 위해서 정리한 것이 서로 별개의 것은 아 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대변인은 “그런 자료는 육군참모총장과 논의 또는 협의를 하기 위해서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 다. 또 김 대변인은 “장성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육군참모총 장 등 각 군 참모총장에게는 추천권이 있다.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일을 하는 인사수석비서관실의 행정관은 대통령의 철학과 지침에 대해서 추천 권자인 총장과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 대변인은 “사람 하나하나, 어떤 사람을 승진시키고 탈락을 시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가지고 계시는 군 인사에 대한 방침, 큰 방향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의·협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야전에서 일한 장교들을 우대하겠다는 지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며 “예를 들어 장성 진급 인사에서 기수는 어디까지 할지, 육사 출신에 편중돼 있는 육군의 구조를 고치기 위해서 학군이나 3사 출신 인사는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해 대통령의 비서가 총장을 만나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대변인은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을 만나느냐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육군참모총장을 만날 때 되도록이면 인사수석이나 인사비서관이 만나는 것이 더 예의에 합당하리라고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대변인은 “4급 행정관이든 인사수석이든 다 똑같이 대통령의 비서”라며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서 업무를 수행하는 비서이고 행정관이라고 해서 못 만나라는 법은 없다”고 밝혔다.

야당의 비판 “청와대 절차, 권위, 품격 전무”

지난달 7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해명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이 비판에 나섰다.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 “행정관이든 수석이든 같은 비서로 참모총장을 못 만날 이유가 없고, 분실한 자료 역시 공식 문서가 아니라 임의로 만든 문서라는 청와대의 해명은 기본적인 국정 운영의 개념조차 의심하게 한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변인은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을 만나 대통령이 가진 군 인사에 대한 방침, 큰 방향에 대해 얼마든지 논의하고 협의할 수 있다는데, 정작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에 대응할 땐 급이 맞지 않는 일을 하지 말자던 청와대가 육군 참모총장과 청와대 행정관은 급이 맞는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참모총장 위의 행정관이다. 청와대 정부가 얼마나 권위적이며 기강이 해이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의겸 대변인의 해명에 대해 “궤변”이라면서 “저번에는 급 타령 하더니, 이번에는 급이 상관없다고 하는 것”이라며 “해명도 사리에 맞게 해라. 공무는 그에 맞는 합당한 절차와 의전이 있다. 절차, 권위, 품격이 전무한 청와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만남…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과 어떤 일이

당시 정 전 행정관은 같은 날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당시에 민간인 신분이었으며, 두 달 뒤 정책실장에 임명됐다.

여석주 전 실장은 지난달 8일 한 일간지와의 통화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심 모 행정관이 근처에 일이 있다며 정 전 행정관과 인사차 찾아왔다”며 “단순 인사였으며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 전 행정관이 김용우 육군참모총장과 만나기 직전에 두 사람을 만난 것이다. 당시 군에서는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의 부임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는 이에 차기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유력한 인사가 청와대 행정관을 만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말도 나왔다. 국방부는, 정 행정관이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과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을 만난 이후인 2017년 9월 21일 장군 인사 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육군의 입장…“실무적 어려움 조언이었다”

육군은 지난달 9일 기자들의 휴대전화에 보낸 ‘입장’을 통해 “육군총장은 작년 9월 초 청와대의 군 장성 인사담당 측에서 ‘실무적 어려움이 있는데 조언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문의와 부탁이 있어 서울 일정이 있던 (총장이) 주말에 시간을 내어 해당 행정관을 국방부 인근 장소로 불러 만났다”고 전했다.

육군은 ‘입장’을 통해 당시 김 총장은 “그 자리에서 육군의 인사 시스템과 향후 절차, 총장의 인사 철학 등에 관해 설명하고 헤어졌다”고 설명했다.

‘카페’, ‘술집’, ‘버스정류장’…문건의 흔적은 어디로

“카페에서 군 인사와 관련된 논의를 하고 나와 길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자료가 든 가방을 분실했다”라는 청와대 인사수석실 정 모 전 행정관의 진술 내용에 대해,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가방을 잃어버린 장소가 카페나 길거리가 아니라 술집”이라며 거짓 진술이라 주장했다. 그 후 김 의원은 문건을 잃어버린 장소가 ‘술집’이 아닌 “버스정류장이 있는 벤치로 보여 진다”며 장소를 정정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전쟁 발발시 행정병 행동 매뉴얼 제1번이 인사자료 소각이다”라며 “잃어버린 자료도 공식 자료가 아니라 임의자료다고 설명할 때 거의 기절할 뻔 했다”고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 “임시자료냐, 공식자료냐는 구분법도 처음 들어보지만 설령 임시자료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민감한 내용이 수록될 수 있다. 이런 설명을 안 하고 그냥 임의자료라며 퉁치고 넘어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야당은 지난달 15일 국방위 소집을 요구했지만 민주당 측의 불참으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핵심은 근본적으로 청와대가 군 인사에 어느 정도 개입하였는지의 여부가 핵심이라고 본다. 김종대 의원이 “자료 분실 경위를 정확히 조사를 했느냐, 찾으려는 노력은 했느냐, 이런 과정들이 이루어지고 나서 의원면직을 했는가 이를 따져보고 싶었다”고 지적한 것처럼 이 부분에 대한 사실은 밝혀진 것이 없다. 이에 대해 정 전 행정관을 직접 조사하면 모든 실체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왜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청와대는 “상관의 지시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지만 정 전 행정관의 단독 행동인지 아니면 제3자의 지시 또는 청탁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