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차별과 젠더’를 화두로 한 파격적 판소리 무대,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
2월 16(토), 17(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시사매거진=하명남 기자] 가장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할 것 같은 전통공연 장르에서 ‘권력과 차별과 젠더’ 문제를 화두로 내세운 파격적인 판소리 창극을 선보인다. 그것도 음지에 가려져있던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중 최고의 기대작으로 주목받아온 창극 <내 이름은 사방지>(사성구 작, 주호종 연출)가 2월 16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드디어 그 비밀스러운 막을 올린다.
<내 이름은 사방지>는 남녀양성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모든 모욕과 혐오를 뒤집어썼던 인간, 사내인 동시에 계집이었던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실존인물 사방지의 파란만장하고 처절했던 비극적 인생을 전혀 새로운 판소리 문법과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도 있는 기상천외한 극적 전개로 풀어내는 판소리 공연이다.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되는’ 왜곡된 권력과 차별에 대한 통렬하고도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가 이 공연을 관통한다.
"저것은 인류(人類)가 아니다. 마땅히 먼 후세의 자손들과 격리하여 나라 안에서 함께 할 수가 없으니, 머나먼 변방에 노비로 영원히 쫓아 보내는 것이 가하도다.(세조실록 42권, 세조13년 4월 5일 기록)"
조선왕조실록에 남녀추니 사방지에 대한 기록은 몇 줄에 지나지 않으나, 사성구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덧붙여져 세상에 없던 ‘혐오스럽고도 아름다운 사랑가’가 완성되었다. 모멸로 점철된 조선시대 성소수자 사방지의 가혹한 일생을 판소리에 담아 극으로 엮어낸다는 자체도 파격일 뿐만 아니라, 기존 창극의 획일화된 음악 패턴을 과감히 깨부수는 작창과 악기편성도 신선하고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사방지를 바라보는 세상의 일그러진 시각을 구현한 초현실적인 거울 이미지 무대, 한복의 패턴을 변형한 과감하고 도발적인 의상들, 관객의 상상력을 투사하는 미디어 영상기법 등이 씨줄과 날줄로 어우러져 가히 세상에 없던 파격적인 판소리 창극으로 탄생했다.
무엇보다 전통공연 팬들과 판소리 마니아들이 <내 이름은 사방지>를 손꼽아 기다려 온 것은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국악계 최고 슈퍼스타들이 이 공연에 똘똘 뭉쳐 어떤 엄청난 아우라를 발산할지 가슴 설레는 기대감 때문이다.
판소리계의 아이돌 스타 김준수가 매혹적인 사방지 역을, 소리신동에서 국민소리꾼으로 우뚝 선 유태평양이 팔색조 색깔의 화쟁선비 역을, 국악계 프리마돈나 박애리가 중성적 남장여자 홍백가 역을, 천상의 목소리 전영랑이 관능적인 기생 매란 역을 맡아 팽팽한 긴장감으로 4인 4색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판소리계의 마에스트로 한승석 중앙대 교수가 작창을, 몸짓으로 인간내면의 우주를 끄집어내는 박성호 국립국악원 총무가 안무를,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이야기꾼 사성구 중앙대 교수가 대본을, 창극의 신세계를 주도하는 주호종 연출이 총지휘한다.
가래침과 욕설로 뒤범벅 된 성소수자 사방지의 비극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슬프고 저리게 유전되고 있다. 이 작품은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별을 만든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사방지의 무지갯빛 파란만장한 만가(輓歌)로 녹여낸다.
가장 보수적인 장르라 할 전통극 장르가 가장 파격적인 방식으로 던지는 저 날카로운 메시지가 세상의 부조리한 차별과 편견의 단단한 유리벽을 어떤 아름다운 파장과 울림으로 깨뜨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권력과 차별과 젠더’라는 화두를 내세운 이 공연의 혁신적 실험정신이 기존 판소리 창극의 식상한 지형도를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