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채용개선
2007-02-21 글_염효진 기자
여성 취업 문턱 ‘용모·나이’ 개선방안 마련
백설공주, 신데렐라, 콩쥐팥쥐 등 거의 모든 동화 속에는 언제나 예쁜 공주님과 멋진 왕자님이 등장했다. 그리곤 어김없이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 했습니다~’로 끝을 맺는다. 하얀 눈처럼 눈부신 피부를 가진 백설공주와 마법으로 얻은 화려한 드레스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신데렐라, 만약 그녀들이 흉한 여드름 자국에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면 왕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동화에서 여주인공은 마음씨 착하고 얼굴도 고운데 반해 그녀를 괴롭히는 못된 여자는 성격도 이상하고 외모 역시 추한 모습이다. 사회의 이런 물신화된 풍조는 알게 모르게 어렸을 때부터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분위기를 익히게 했으며 그로 인해 여자를 보면 ‘아름다운데’, ‘예쁜데’, ‘귀여운데’ 또는 ‘못생겼네’, ‘촌스럽네’, ‘투박하네’ 등의 외모기준의 평가에 익숙해지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선 외모가 곧 경쟁력
외모(용모)가 개인 간 우열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나 사회 풍조를 ‘루키즘’(lookism)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외모지상주의를 일컫는 단어다. 외모가 연애·결혼 등과 같은 사생활은 물론 취업·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을 좌우하기 때문에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외모지상주의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며, 외모관련 상품을 판매함으로써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성형수술이 성행함에 따라 성형외과의 과부하, 의학의 기형화를 초래하고 날씬함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건강을 해치게 되는 등 비합리적 소비와 과도한 성형증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게 됐다.
비쥬얼 시대라는 흐름에 맞춰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요즘, 각 기업이나 기관에서 신입사원 선발기준을 자신감과 당당한 태도 뿐 아니라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에도 큰 비중을 둔다고 한다. 실력만 갖추면 그만이지 외모가 중요하냐고 반문하겠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같은 상품이라도 포장이나 디스플레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 또한 중요한 기준이 되니 말이다. 취업면접 때 지원자의 외모가 적잖이 작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기업의 인사담당자 10명중 9명은 채용 시 ‘외모를 고려한다’고 실토하고 있으며 특히 남성보다 여성 지원자의 경우 외모는 더욱 결정적이어서 당락을 가르는 최대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한다. 능력 위주의 시대에 성적보다 용모가 중시되는 현실은 한마디로 극심한 인권침해가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여성에게 있어 ‘취업’과 ‘외모’는 매우 가까운 사이다. ‘취업성형’은 옵션이 아니라 기본이 돼가고 있는 추세이며, 특히나 갈고 닦아온 실력을 펼쳐보지 못하고 연일 면접에서 낙방하는 준비생들에게 취업성형은 유일한 희망이다. 특히 구직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다 과거와 달리 외모가 개개인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주요수단으로 인식됨에 따라 취업성형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다. 이력서를 수백 통 넣었다는 사례는 아주 평범한 경우고, 이외에도 씁쓸한 현실을 대변하는 경우는 다양하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외모의 힘은 막강할 뿐 아니라 ‘예쁘면 그만’이 절대적 진리로 통하고 ‘아름다운 외모’는 신의 축복이 됐으며 외모의 우열을 가리는 변질된 차별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시류에 반대하며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지난해 12월 27일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위원장 이혜경)는 노동부·여성가족부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용모와 나이를 중시하는 여성채용 관행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여성채용 관행’ 이렇게 바뀐다
개선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올 상반기 중으로 공인노무사법 시행령과 군인사법 시행규칙, 군무원인사법 시행규칙 등에 명시된 면접기준을 현행 ‘용모·예의·품행’에서 ‘예의·품행’으로 바꾸는 등 일부 법령에 포함된 용모 기준을 삭제할 것이라 밝혔다. 또 여러 명의 면접관이 배치될 경우 1명 이상의 여성면접관이 배치되도록 공공기관 등에 지침을 내린 뒤 준수 여부를 기관 평가 등에 반영하고 민간기업에도 적극 권고할 것이며 이와 함께 사진 부착과 키·몸무게·나이 기재란을 없애는 대신 개인 능력과 장단점, 경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방형 표준이력서를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다.
아울러 ‘결혼·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가’ 등의 성별에 따른 질문을 금지하고 전문지식 등을 집중적으로 질문하도록 유도하는 표준면접 안내서와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가이드라인도 마련될 것이다. 정부가 이같이 여성채용 관행 개선에 나선 것은 외모지상주의적 채용 관행이 여성의 취업 장벽으로 작용하고, 실력 쌓기보다 ‘외모 가꾸기’에 시간을 들여 사회적 비효율을 낳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의 실태조사 결과 공공기관의 80%와 민간기업의 85.4% 정도가 사진과 키·몸무게 등 차별을 초래하는 정보를 입사지원서에 기재토록 요구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의 46.7%와 민간기업의 36.8%가 ‘용모’를 면접 시 평가항목에 반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민의 92.%, 인사담당자의 78%, 미취업 여성의 94.2%가 ‘여성의 용모를 중시하는 고용 관행이 존재 한다’고 답했다.
이런 사회적 풍토와 관련해 이번 발표에서는 우리사회의 문화와 국민의식이 개선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라는 차원에서 의식개선 노력에도 주력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와 관련 ‘용모?나이’ 차별의 문제를 지적하고 국민의 공감을 확보하는 다양한 방송 및 홍보·캠페인을 전개하는 한편, 방송사 등에 프로그램 편성 주의사항 협조 및 내·외부 모니터링을 강화해 외모 차별적 광고나 프로그램을 규제하며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관점 등 ‘외모주의 인식개선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기업체 및 청소년 교육을 강화키로 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여성차별 채용 관행은 인적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양성평등사회의 구현을 저해하고 있다며 우선 공공부문 위주로 채용 관행 개선에 나선 뒤 민간기업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개인의 경력과 능력이 우선시 되는 채용관행을 확산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고, 공공부문이 앞장서기로 함으로써 외모지상주의와 여성채용 고용관행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1% 부족한, 안타까운 개선방안
교육부·행정자치부 등 8개 관계부처가 함께 방안을 내놓은 만큼 정부의 의지가 상당히 실렸다고 봐도 될 것이며, 실효성 여부를 떠나 노력 자체는 높이 평가돼야 한다. 또한 성형 수술 등 과도한 외모 가꾸기에 따른 국가적 손실도 개선안의 배경이 됐으며 관련 법령들을 정비하고 성차별 판단 기준을 더 구체화하는 한편, 정부 부문부터 채용 관행을 개선하기로 한 내용 역시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개선방안이 여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정부가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를 보면 기업들이 남성을 뽑을 때도 나이와 외모를 중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채용 관행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사회전반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로, 정부는 이와 관련해 다양한 홍보캠페인과 기업체 및 청소년 대상 인식개선 교육으로 분위기를 바꿔가겠다고 밝혔다.
외모와 나이를 구별해 좀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한다면 적극적인 사회분위기 전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차별은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공무원 채용 때 나이제한 규정을 장기 검토 과제로 남겼다. 최소한 이 규정을 정부차원에서 적극 수렴한 뒤 민간 기업의 동참을 촉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외모 차별은 훨씬 날카로운 문제지만, 상대적으로 차별이 심한 여성에 국한해서 보자면 좀더 적극적인 개선책도 가능하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기업들이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점은 여성의 업무특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부터 우리기업에서 여성은 전문직보다 단순 보조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능력보다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됐다. 따라서 여성 전문직을 늘리는 방안은 고용평등까지 촉진하는 이중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정부가 이와 관련한 유인책을 적극 활용한다면 효과를 기대해 볼 수 것이다. 여성 전문직 비중이 높은 기업을 우대하는 방안이 예가 될 수 있는데, 남녀 고용평등을 실천하면 실질적 이익을 얻는다는 생각을 확산시키는 것만큼 좋은 대책도 없다고 한다.
외모가 아닌 ‘마음’을 성형하라
직무 수행에 필요치 않은 신체적 조건이 채용 기준이 돼왔다. 업무 성격상 말끔한 인상을 필요로 하는 업종들도 있겠지만 모두 용모를 우선시 한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며, 개인의 경력과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라야 사회가 발전 할 것이다. 예전에 한 재벌 기업은 신입 사원 면접 시 유명한 역술가를 데려다 관상을 보도록 해 화제가 됐었다. 외모보다 내면을 중시한 사례다.
정작 회사 임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중요한 것은 이목구비 하나하나의 생김새 보다 얼굴빛, 눈빛 등의 전체적인 인상과 표정이라고 한다. 얼굴은 마음관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늘 환한 마음가짐으로 자기 컨트롤을 잘 하는 사람이 인상도 밝기 마련이다. 단정한 인상과 깔끔한 맵시, 재치 있는 말솜씨는 노력하고 연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재능이며 이런 재능이 얻어진다면 실력 되고 돈 되는 ‘파워풀 한 외모’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파워를 발휘하는 외모란, 절대적으로 완벽한 미모라든가 일류모델을 능가하는 환상적인 몸매가 아니라 성실하고 진지한 성품이 배어나는 자세, 상냥하고 따뜻한 미소의 얼굴 표정, 신뢰감 있는 눈빛 등이 조화롭게 어울릴 때 외모의 힘은 파워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외적인 모습을 잘 가꾸고 닦는 것, 중요한 실력임에 틀림없으나 우려스러운 것은 혹여 취업이 안 되는 원인을 외모에서만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원하려는 업계가 연예계나 모델계가 아니고선 프로다운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회사는 없을 것이며, 이점을 유념한다면 취업성형이 아닌 근본적인 자기성형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대통령 자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가 여성 채용 시 나이·용모의 차별을 없애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관계법령을 고치고 이력서에 사진부착 금지 및 신체·나이 기재란에 능력과 장단점으로 대체하기로 했다는 것, 현실적으로 봤을 때 큰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이렇게라도 외모차별을 추방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공공기관과 기업 등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할 것이라 한다.
드디어 ‘딸들의 시대’가 도래 했다
이제는 ‘여성’이다. 세상의 절반인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도 예외는 아니다. 사법·외무·행정·기술고시뿐 아니라 변리사·공인회계사·세무사·감정평가사 등 주요 국가자격시험 8개를 모두 휩쓸었으며 여성 합격자 비율도 매우 높아졌다. 외시의 경우 전체 합격자중 35%을 기록했고 사법시험에서는 24.4%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군대에서도 2020년쯤이면 여군이 5%선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연함, 섬세함, 상상력, 연대와 네트워크, 감수성과 끈기….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른 필수조건들은 모두 여성적 특질이다. 미래 직종의 흐름이 정보화와 소프트화로 요약되며, 문화산업이나 서비스·정보화·보건의료·마케팅·디자인·건강 관련 산업 등 부상하는 직업에서 여성들의 사회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학생·주부·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여성적 특징이 키워드로 작용하는 기업일수록 여성임원 비율이 높다.
또 여성학을 배우고 탐구하는 남성이 증가하는 추세다. 일부 학문적 관심도 있긴 하지만 마케팅과 고객 관리 차원에서, 더 나아가 가정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소비하고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이 여성 심리학을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서적이 많아지면서 여성학에 대한 고정관념도 상당히 무너졌다는 평으로, 여성학 접근성이 높아진 점도 이런 변화의 결과로 보고 있다. 2000년을 전후 해 대학가에서 ‘여성학’ 과목이 남녀 불문하고 인기를 끈 후 단순 호기심 차원을 뛰어넘어 이젠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여성의 지갑을 노리는 실용적 접근도 더 많아졌다. ‘여성’이 강력한 소비 주체로 떠오르면서 고객 관리, 마케팅 차원에서 여성학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특히 여성을 주 고객으로 하는 패션·미용 업계에선 여성학 공부가 기본이다. 한 의류업체 조사에 따르면 남성 직원의 70% 이상이 여성학·여성심리학에 관한 책을 적어도 한 권 이상 읽었다고 한다. 또한 고객관리 차원뿐 아니라, 직장상사가 여성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여성에 대한 이해는 성공의 절대적인 발판으로 꼽히고 있다.
사실상 여성차별이 많았지만 점차 여성들의 특성을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으며 여성채용 증가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굳게 닫혔던 ‘금녀의 문’은 자취를 감추고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은 더 넓게, 더 깊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아니 주어진 자신의 몫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