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가라고? 택배기사는 노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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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배송지 아파트는 택배차량 진입금지로 모든 택배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걸어서 배송하라는 아파트 측 입장에 저희들도 해결방법이 없어 반송조치합니다. CJ대한통운·한진택배·현대택배·로젠택배로 도착하는 상품은 전량 반송조치됩니다. 영업에 손실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택배기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정당하게 차량진입해서 배송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저희 택배사들 생각입니다. 물건 보내신 사장님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택배기사들의 답답한 내용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이 전단지가 인터넷에 떠돌면서 택배차량 출입을 통제한 아파트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차량 진입을 막고 “걸어서 배송하라”고 하자 택배기사들은 “반송조치하겠다”며 배송을 거부한 것. 그리고 택배기사들이 반송거부에 대한 내용을 전단지에 써서 돌린 것이다.
추석 대목을 전후로 택배물량은 실로 엄청나다. 명절에는 12시, 새벽 1시에도 배송되어 오는 택배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배송을 해야 겨우 날짜를 맞출 수 있는 택배기사들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잠자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다반사, 식사조차 할 수 없어 배송 중에 빵이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한다. 그래도 배송이 곧 돈이니 기쁜 마음으로 밤낮없이 뛰어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아파트 내 안전을 이유로 지상주차장을 둔 단지가 점차 줄면서 택배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곳이 부쩍 늘었다. 지하주차장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높이 제한이 있어 차량출입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단지 밖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손수레나 카트를 이용해 배송을 하지만 주차할 장소도 마땅히 없고… 몇 배의 시간과 힘이 든다는 택배기사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업무효율이 떨어지고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차치하고, 불법주차로 과태료를 물거나 물품을 도난당하는 경우도 있어 택배기사들의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택배회사 입장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현재 일부 택배사들은 외부차량 진입제한을 특정시간대만 해제해 출입하는 방안과 단지 밖 무인택배함 설치·운영, 일반 택배차량보다 낮은 저상탑차를 이용해 지하주차장에서 배송하는 것 등을 구상 중이지만, 이 또한 입주민과의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입주민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싼 돈을 주고 마련한 좋은 아파트인 만큼, 일반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안전과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선량한 택배기사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서로가 좋은 방안을 빨리 강구해야 할 것이다. 택배차가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아예 택배발송이 되는 제품을 주문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무거운 생수꾸러미를 집에 앉아서 받기를 원하면서 택배기사들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갑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