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원 정수의 확대는 필수불가결?
[시사매거진 249호=박희윤 기자] 지난달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2019년 예산안 처리와 연계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처리하자며 국회에서 농성 을 벌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야3당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유한국당과 협의하여 2019년 예산안을 통과시키자 손학규 대 표와 이정미 대표는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지난달 15일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 토하기로 합의문을 작성하면서 단식 및 집단 농성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합의문이 작성된 후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합의문에 대한 각각의 해석으로 내놓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 내용을 살펴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총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로 정해지고, 지역구에서 몇 명이 당선됐느냐 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혼합 비례대표제’ 혹은 ‘혼합명부 비례제’(Mixed-Member proportional)라고 하며, 독일 에서 운영하고 있어서 독일식 비례대표제 또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라고 도 불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국회의원 총 의석 300석 중 지역구 253명을 제외한 비례대표 47명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배분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연동해서 당선자 수를 정하기 때문에 단순히 정당 득표율에 따라 47석을 나누는 현행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당의 의석수를 먼저 정해놓고 여기서 지역구 당선자를 제외한 수가 비례대표 당선자가 되는 식이다.
총 국회 의석수 300석 기준으로 지역구는 200명, 비례대표는 100명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A 정당이 30%의 정당 득표율을 얻고 지역구 당선자 70명을 배출했다면, 전체 의석수 300석에 정당 득표율 30%를 곱 한 90석이 A 정당의 의원 총 규모로 정해진다. 이 중 70명의 지역구 당선자가 있기에 배정받은 90석에서 70명을 제외한 20명이 비례대표 당선자가 되는 것이다. 또 B 정당이 정당 득표율 20%에 지역구 당선자를 20명 배출했다면 전체 300석에 20%를 곱해 60석을 일단 배정받는다. 그리고 지역구 20명을 뺀 40명의 의원이 비례대표로 당선된다.
12월 15일 원내 5당이 합의한 선거제도 개편안 합의문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5당은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합의한다. 1.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 2.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3.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도입을 적극 검토한다. 4.선거제도 개혁 관련법안은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 5.정개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한다. 6.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논의를 시작한다. 2018.12.15. |
제20대 총선에 적용한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20대 총선 당시 득표상황에 적용해 보면 정당 득표율에서 민주당은 25.5%, 새누리당이 33.5%를 얻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77석, 새누리당은 101석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구에서 이미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110석과 105석을 얻었기 때문에 비례대표는 0명이 되고 지역구 당선자인 110명과 105명만 남게 된다. 지역구 당선자 수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된 규모를 초과한 경우, 지역구 당선은 그대로 인정되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지난 선거에서 지역구 당선자 25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정당 지지율이 26.7%였기에 이 제도가 도입되면 무려 80석을 확보 할 수 있게 된다. 또 지역구 당선자 2석, 정당 득표율 7.23%였던 정의당은 22석을 가져가게 돼 원내 교섭단체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비례대표제가 함께 운용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월 내놓은 ‘선거제도 개선방향 : 중선거구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 시뮬레이션 분석’ 보고서에서 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대해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를 혼합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며 “비례대표의 비율이 낮고, 득표율과 의석율의 불비례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전체 의석(300석) 대비 비례대표가 47석으로 15.7%에 불과하고, 비례대표와 지역구 선거가 연동되지 않아 비례대표를 통한 비례성 증대 효과가 미미하다”면서 “지역구 국회의원은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로 선출되는데 다수득표 1인이 선출돼 사표 발생률이 높고 득표율과 의석율 차이가 크다”고 진단했다. 한 선거구에서 1인을 뽑는 소선거구제에 따라 사표가 많고, 전체 의석대비 비례의석이 적어 국민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다수 득표한 1인이 선출되는 승자독식 구도의 소선구제도 끊임없이 지적되는 문제다. 한 표라도 많은 최다득표자는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나머지 후보들에 대한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제20대 총선 기준 사표율은 50.32%를 기록했는데, 전체 투표율이 58%인 점을 감안하면 당선인들은 유권자의 1/4 정도의 지지만 확보한 셈이다. 여기에 더해 비례대표와 지역구 선거가 연동되지 않아 비례대표를 통한 비례성 증대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20대 국회 비례대표 득표율은 새누리당 33.5%, 국민의당 26.7%, 더불어민주당 25.54%였으나, 실제 의석은 더불어민주당 41%, 새누리당 40.67%, 국민의당 12.7%로 차이가 있다.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제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제안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전국을 6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권역별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하되,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은 2:1 범위에서 정하고, 권역별로 배분의석을 확정하여 각 의석할당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지역구+비례)을 배분한다. 정당별 배분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비례대표 명부순위(지역구 후보자의 동시 입후보 가능)에 따라 권역별 당선인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서 전국 6개 권역별로 의석을 나눈 뒤 각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지역구+비례)을 배분한다는 것이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나누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면 각 정당 득표율과 국회에서 각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 비율이 상당히 근접하기 때문에 국회의 대표성과 비례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회의원 숫자다. 중앙선관위는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2대1’로 하기 위해서는 지역구를 200개로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역구를 현행 253개에서 53개나 줄이는 것은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지는 선거법 개정안에 국회의원들이 찬성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중앙선관위는 두고두고 여야 의원들에게 비현실적인 제안을 했다고 비판을 받아야 했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대해 바른미래당 바른미래연구원이 의뢰해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국민 중 절반 가까이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지만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는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당제와 다당제 중 어떤 구도로 운영되는 게 좋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다당제가 55.5%, 양당제 27.2%의 결과가 나왔으며,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유지해야 한다(30.9%)’는 의견보다 ‘바꿔야 한다(55.5%)’는 의견이 우세했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을 일치시키기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여부에는 ‘찬성한다(47.6%)’는 의견이 ‘반대한다(35.1%)’의견보다 높게 나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인해 현재 국회의원 300명이 쓰는 예산을 늘리지 않고 의원 정수를 확대할 경우’에는 ‘늘어서는 안 된다(60.0%)’는 의견이 ‘늘어도 된다(24.7%)’는 의견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찬성? 반대?
반드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수많은 표들이 사표(死票) 처리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이나, 의원 수를 늘리는 것은 국민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당 모두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하지만, 많은 국민은 그들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지 않는다. 지난해 2.6%에 이어 올해도 2년 연속으로 세비를 1.8% 인상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에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선거개혁을 하더라도 의원 수는 절대 늘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선거제도는 정당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한국의 정치가 국민이 신뢰를 회복할 정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 의원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보다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의 수를 증가시키는 타협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일 것이다.